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뒷편에 자리한 안산(295.9m)을 산책길 산행을 합니다. 오전 10시 03분에 2호선 신촌역 3번 출구를 빠져 나옵니다. 씨모우 조단서 서류바 패노우 까토나 노객 다섯명입니다. 연세대 정문을 바라보며 세브란스병원 본관을 통과합니다. 치과대학병원을 지나면서 왼쪽에 하얗고 커다란 둥근 모양의 천문대가 시야에 들어옵니다. 봉수대가 있는 정상(頂上)까지는 족히 잡아도 한 시간이면 충분합니다. 동과 서(西)의 두 봉우리가 마치 말의 안장과 같다고 하여 안산(鞍山)으로 불리웁니다. 정상에 오르면 동봉수대가 있으며 서울시내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무악재를 사이에 두고 동쪽에는 인왕산이 마주하고 있습니다. 붉은 벽돌집 서대문형무소가 저 아래 선명하게 다가옵니다. 지금은 독립공원으로 탈바꿈한 역사교육관이기도 합니다. 일제 강점기 때에 유관순 열사를 비롯하여 숱한 독립투사들이 눈을 부릅뜨고 스러져간 곳입니다.박정희 군사독재정권 때는 민정이양 군사독재타도 유신헌법 철폐 한일협정 반대 등을 부르짖는 학생과 국민을 옭아매 투옥시키던 곳입니다. 1.5평의 감방에 열명의 학생들을 몰아넣었습니다. 한쪽 귀퉁이에는 나무똥통이 놓여 있으며 발도 뻗을 수 없는 쪼그려 앉을 수 밖에 없는 공간입니다. 식사래야 찌그러진 양은그릇 두개에 보리콩밥과 머얼건 씨레기국이 전부입니다. 썩은 냄새로 며칠 동안은 먹지도 못하고 창틀문 밖으로 던져버리고 맙니다. 죽지 못해서 먹은 식사는 쫙쫙 쏟아지는 설사가 되어 똥통을 흔들어대기도 합니다. 온 몸에는 몸니가 득실거리매 잠도 제대로 잘 수도 없습니다. 50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바로 어제처럼 억울하고 분한 마음은 치가 떨리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느낌입니다. 일개 육군소장인 군인 독재자가 수천만 국민들에게 자갈을 물리우고 자유와 인권과 민주주의를 말살시킨 치욕의 현장입니다. 그의 딸도 대통령이랍시고 헌법을 짓밟고 국정 전반을 사유화하고 농단한 자칭 병들고 늙은 여인네입니다. 지금은 영어(囹圄)의 몸으로 재판 자체를 거부하며 민주국가인 대한민국의 헌법을 부정하고 있는 백치(白痴)와 다름없는 꼴불견의 극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 평반 정도의 감방에 열명의 학생을 몰아 넣었던 군사독재자 아버지가 있습니다. 6~7명이 사용하던 3.6평의 방을 혼자 사용하면서도 인권침해라고 헛소리를 지껄이는 그의 딸입니다. 유전자가 꼭 닮은 부전녀전(父傳女傳)으로 대한민국의 수치(羞恥)이며, 인권탄압의 당사자들로서 전세계의 지탄의 대상이며 원흉입니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국민의 뜻에 의하여 범법자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한 심판대에서 대가를 치뤄야만 합니다. 사면(赦免)이라는 어처구니 없는 헌법유린의 극치는 더 이상 자행해서는 안됩니다. 일벌백계로 다시는 이 땅에 민주주의의 퇴행적 역사는 기필코 반복되지 않게끔 뿌리를 뽑아야겠습니다. 이런 희망을 위안으로 오늘도 노객들은 붉은 벽돌집을 내려다 보면서 안산을 넘고 있습니다. 14시 36분에 충정역에서 부득이한 이유로 산행에 불참한 위짜추와 합류합니다. 원조 마포갈비집으로 여섯지기들이 찾아듭니다. 원조라는 집에서 처음 맛보는 돼지갈비의 그 맛은 그저 거기서 거기입니다. 짜릿한 알콜에 갈비를 곁들이며 권주가의 합창은 오늘도 식탁을 흔들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후손들이 길이길이 살아가야 할 삶의 터전이며 조국입니다. 부끄럽고 추한 모습의 대한민국이 나라다운 나라, 정의가 살아 숨쉬는 법 앞에 공평한 민주국가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역사는 언제나 국민의 편이며 누구든지 역사의 도도(滔滔)한 물결을 거꾸로 되돌릴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공교롭게도 108년전인 1909년 10월 26일에 일본 이토히로부미가 하얼빈에서 한민족의 울분과 비통함을 터뜨리는 안중근의사(義士)의 총격에 사망한 날이며, 38년전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유신독재자가 국민을 대신한 충복(忠僕)의 총탄에 꼬꾸라져 사라진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