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길 10코스 송악산 입구에서 우리는 차에서 내렸다.
송악산에서 바다를 보면 가파도와 마라도가 멀리서도 보인다.
가파도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오늘 우리가 가게될 섬이 저기라고? 하면서 경이로워했다.
걷기 어려운 현서는 코스 반대 방향에서 걷기로 했다.
쌤은 현서에게 어디로 걷는지 알려주고 다시 돌아와 우리를 뒤따라오기로 했다.
못걷는 사람들은 코스 반대 방향으로 걷기로 했고
양쪽에서 걷다가 중간에 합류해서 같이 종점으로 가기로 했다.
이름에 '악'자가 들어가서 걷기 힘든 산이지 않을까며 유준형이 걱정하고
혁수는 또 힘든길을 올라야 하냐며 질색팔색 경악하자
산 정상이 아닌 둘레길을 걷는거라 그렇게 버겁진 않을거라고 안심시켰다.
어차피 산 정상으로 가는 코스라 해봤자 분화구가 보이는 전망대로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코스일 뿐이라
혁수가 힘들다고하면 둘레길만 걷는 걸로 합의를 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팻말이 안내하는 길을 잘 살펴보지도 않고 그냥 걸어갔다.
주변이 나무와 억새풀로 배경이 가려진 시점에서 우리는 전망대를 향해 가고 있었고
나중에야 잘못 걸어왔다는걸 알았다.
4년 전 제주 올레길 걷기 때 송악산을 오른 적이 있어 다들 나를 신뢰했을 텐데
모두에게 헛걸음질을 하게 해서 미안했다.
왔던 길을 돌아가 다시 둘레길을 한참 걸었을 때
선생님께서 분화구를 꼭 봐보라고 전화가 왔다.
전망대까지 올라가면 보이는 분화구를 말하는 것이다.
(추후 선생님께서는 한라산의 백록담처럼 볼만한 가치가 있는 분화구가 있다고 하면서,
전망대로 간다는 것은 지금까지 걸었던 길을 되돌아가야 하는데,
선생님께서는 그 고생스러움을 감안해서라도 꼭 보길 바랐다고 하셨다.)
아까 오르다 말았던 전망대 코스를 마저 올라갔으면 될걸 하고
더 고생스러워진 상황에 대해 모두가 화가 나 있었다.
그런데 화를 내는 주체가 선생님이었다.
애들이 선생님한테만 화나 있는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내가 잘못가서 생긴일 아니냐며
왜 나를 탓하지 않냐고 내가 잘못했다고 재차 사과했다.
이 후 기가 꺽였는지 한층 수그러들었고 전망대에 도착 하자마자
분화구가 어디에 있는지 여기 저기 둘러봤다.
유준형이 산이 움푹 파여있는 쪽을 가리키며 분화구의 위치를 알려주자
그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오목하게 들어가 있는 부분이 마치 물을 받는 바구니처럼 생겼다.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저곳에 물이 고일까 하면서 자연은 신비스럽고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망대에서 한참동안 쉬다가 도착 예정 시간이 생각보다 더 길어지게 되자
마음이 조급해지고 나는 처져가는 분위기를 얼른 되돌리고 싶었다.
그런 와중에 아침 시간 때 밥을 안 먹고 잠을 선택했던 아이가
걷다 말고 달달한 간식을 먹었으면 좋겠다고 푸념했다.
나는 이 때 뭔 생각이었는지 공용 짐으로 넣었던 과일을 언급하면서
몇 조각만 먹고 힘내자며 설득했다.
내가 개인적으로 가져온것도 아닌데 이런 황당한 결정을 내린것이다.
안 그래도 아침밥을 거르는 아이인데 점심 될 때 까지
‘밥 언제 먹어요?’, ‘배고파요’, ‘짜증나요!’를 따라 다니며, 수없이 반복하며
떼를 써서 모두를 힘들게 하는 날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 간식을 주고 또 다음날도 아침을 안먹고 잠을 선택하고
(문제는 잠을 자야할 시간에 휴대폰을 하느라 잠을 자지 않는다는 것)
배고프다고 짜증내고 떼쓰고, 옆사람 힘 빠지게 하고가 반복되는 '간식'이라는 고리를 채워준 것이다.
잘못된 습관을 깨우칠 수 있는 기회를 내가 날려버린 것이다.
이 사실이 모두에게 알려지고 선생님이 반성하라며 꾸지람을 했다.
이 일로 혁수는 묻는 말에 대답도 안하고, 짜증을 내며
알뜨르비행장에서 추모비 경계막을
발로 차는 비뚤어진 행동을 시작했다.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말이 통하지 않았다. 말의 의미는 찾으려고 하지않고 말꼬리를 잡고 시비를 걸었다.
쌤도 화가나서 그딴식으로 계속하면, 우리도 너를 어른스럽게 존중해줄 수 없다며 야단하고 무릎을 맞닿게 원을 그려 앉게 했다.
그리고 돌아가며 이 상황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을 돌렸다.
세바퀴 쯤 돌자 조금씩 누그러져 표정도 달라졌지만
여전히 자기 차례에 한마디도 하지 않고 말할 마음이 없어보여 선생님께서는 자리를 정리했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밤모임에서 할말을 해야할 것이니, 잘 정리해서 밤모임에 다시 얘기 나누자고 하셨다.
운진항으로 갔다. 가파도로 가는 배를 탑승했을 때
가파도 가서도 잘 놀고, 잘 즐기다 가보자고 파이팅을 외치고
그 곳에서 하고 싶은 일들을 말하면서 설레는 마음을 부풀게 했다.
가파도에 도착했을때 유준형은 낚시에 푹 빠져서 틈 나는대로 낚싯대를 들고 나갔고
우리도 따라 나가서 낚시 하는법을 배웠다.
저녁 무렵 나눔하는 시간에 속상했고, 섭섭했던 이야기들을 말하며
우리는 반성하고, 사과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늘 있었던 사건 때문에 미처 생각 못 했는데
하루 나눔에서 현서가 송악산에서 혼자서 출발할때 두려웠는데
그걸 이겨내고 낯선곳에서 혼자 걸어온 것에 대해 보람찼다고 했다.
우리 모두는 큰 용기를 내 멋지다고 잘 걸었다고 축하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