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한 켠 신비한 행성에서 10년 전 자살한 아내를 만나다...
<솔라리스Solaris>는 영화 <희생>이 지난 1996년 처음으로 국내 개봉되면서 뒤늦게 화제를 불러일으킨 러시아 감독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Andrei Arsenyevich Tarkovsky(1932~1986)의 1971년 작품이다. 그의 초기작 <안드레이 루블료프>로 타르코프스키의 영화세계를 한국에 처음 소개한 성베네딕도 시청각종교교육연구회가 출시하고 으뜸과 버금이 배급을 맡았다.
폴란드의 SF작가 스타니슬라프 렘의 공상과학소설을 토대로 한 <솔라리스>는 흔히 스탠리 큐브릭의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와 함께 SF영화의 대표작으로 거명되지만, 감독 자신은 이 영화에서 중요했던 것은 “결코 공상과학영화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라리스>에는 본질적인 문제로부터 관객을 오도誤導하는 공상과학 영화적 속성들이 유감스럽게도 많이 있었다... 그런 속성들을 모조리 포기했더라면 이 영화에서 이야기하고자 했던 것이 훨씬 더 분명해졌을 것이 틀림없다”고도 그는 자평(<봉인된 시간>에서)했다.
그러나 작가 자신의 비평은 너무 부당해 보인다. 우주라는 공간은 단지 하나의 우화적 배경일 뿐, 인식과 과학과 도덕과 사랑, 그리고 양심에 관한 타르코프스키의 아름답고 진실한 이야기를 삼켜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솔라리스’는 미래의 지구과학이 탐사하는 가공의 행성이다. 솔라리스는 ‘제3의 종’ 인간을 맞아 인간이 상상하는 것들을 구체화해 우주선으로 보낸다. 그것은 대부분 양심의 가책으로 남은 과거의 흔적들인데, 지구에서 파견된 인물들은 그를 견뎌내지 못한다. 심리학자 크리스 켈빈이 실상 파악의 임무를 띠고 파견되지만, 그 역시 자신의 애정을 확신하지 못해 10년 전 자살한 아내 하리와 마주친다. 그가 마침내 하리 아닌 하리, 솔라리스의 생명체와 사랑과 교감을 나누게 됐을 때, 하리는 그를 위해 사라지기로 결심한다. 행성 역시 지구인에 대한 의심을 거둔다.
크리스는 지구로 귀환했을까. 영화의 마지막은 도입부의 반복과도 같다. 지구에 대한, 땅에 대한 감독의 애정을 확인이라도 해주듯 아름답고 서정적인 고향집의 장면이다. 호수와 숲과 그 사잇길을 지나 도착한 고향집에는 아버지가 기다리고 있다. 문득 카메라는 높이 떠올라 이 고향집이 솔라리스의 지혜로운 바다가 크리스의 마음에서 읽어낸 풍경 한 자락임을 보여준다. 어떤 이들은 아버지의 출현에 주목하기도 한다.
시인이던 감독의 아버지 아르세니 타르코프스키는 어린 시절 감독과 어머니를 버리고 떠났고, 타르코프스키의 상실감은 영화 속 아버지의 부재라는 상황으로 나타났었다. <솔라리스>는 아버지가 중요하게 등장하는 타르코프스키의 첫 영화였다. 아버지를 얻는 대신, 그리고 외계와 화해하며 생존을 위한 ‘데탕트detente’를 예언하는 대신, 미구에 소비에트 러시아를 떠나게 되리라는 것을 1971년의 감독은 아직 모르고 있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