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행복한 사람
사랑하니까..
사랑하지 않는 거라며
이별을 통보한 남편은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짐을 챙겨
혼자 사는 친구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트럭을 몰고 지방을 오가던 남편이
새벽 콜음운전으로
사고가 나
두 다리를 잃어버리고 나서
선택한 결과 앞에
아내인 난 받아들일 수 없다며
찾아갔지만
침묵으로 대화를 거절한 남편에겐
시간이 더 많이 필요할 거라며
스스로에게 위로를 건네며
아내의 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퇴근을하면서
남편이 좋아하는 밑반찬을 챙겨
현관문 앞에 놓아두고 오는
일상이 반복되어가던
어느 날
집 앞 우체통에
어둠에 감싸여 있는
낯선 서류 봉투 하나를 들고
방으로 온 나는
남편이 보낸 이혼서류를 앞에다 두고 전화를 걸고 있었다
모든 강이 모여들어도
넘치지 않는 바다처럼
남편은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지만
허공에 던져진
날 선 단어들을
차곡차곡 내 마음의 쓰레기통에 던져넣으며
"언제 내가 당신의 잘난 모습만 사랑했느냐며.
힘들어하거나 아파하는 모습도
사랑하는 게 부부라며
소리치고 있었다
다음 날
일하는 마트로 찾아온
남편의 친구는
지석이는 자신 때문에
제수씨가 더 이상
고생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기에
이혼을 선택하려 하는 겁니다"
지금 남편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은 나라는 걸
다시 한번 각인 시켜주고
간 그날 밤
"여보, 여기 버스정류장인데
당신이 끓여주는 라면이 먹고 싶어 왔어.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정류장 위로
갑자기 퍼붓는 소나기를
머리로 받쳐 들고 도착한 집에서
자기 혼자만의 슬픔으로
끓어 넘치는 냄비 속 라면을 바라보며
"여보.... 나왔어?"
째깍 거리는 초침 소리가
빗소리에 묻혔다
다시 걸어 나올 때
철 대문이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하늘에서 내리는 비와
다투기라도 한 듯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남편의 손목에는
아직 펴지지 않은
우산 하나가 걸려있었다
"어디 갔다 오는 거야?'
차마 마중 나갔다는 말은
입안에서만 맴돌 뿐
내뱉지 못하는 남편과
나는
그날 세상에서 가장 굵은
면발의 라면을 먹고 있었다
아픔으로 베인 상처가
핥고 지나간
남편의 몸을 붙잡고
응급실로 간 나는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는
링거병의 수액을 바라보며
녹이 슨 당신의 몸은
열심히 잘살았다는
증거일 뿐이라며
남편의 두 손을 꼭 쥐어 보이고 있었다
당신의 하루를 사랑했기에
우리에겐
내일이 있을 거라는
믿음 하나로 버텨온
시간을 되뇌어 보며
불앵은 행복을 위해
먼저 찾자 온 스님일 뿐이라며
서로에게 위로를 건네고 있었고
별도 어둠 속에서 빛나는 것처럼
우리에게도
이 아픔 속에서
빛나는 행복이 찾아올 거라며
끝까지 함께 할 거라는
약속을 하고 있었다
가장 깊이 사랑한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며
펴냄/노자규의 골목 이야기
카페 게시글
$ 우리들의 이야기
가장 행복한 사람
추웅처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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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0.28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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