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4. 06
공급사슬 세계화 퇴조하고 지역 블록화 진행된다
지난달 18~19일 앵커리지에서 열린 미·중 고위급 회담에서 양측이 벌인 험악한 설전은 미·중 관계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미국은 중국의 행동이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고 포문을 열었다. 중국은 미국이 오히려 국가안보 개념을 남용해 국제무역의 미래를 위협하고 있다고 맞받아쳤다. 미국이 신장·티베트·홍콩 등 민감한 문제를 거론하자 중국은 내정간섭이라며 격렬히 반발했다. 두 나라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이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미·중 디커플링은 2010년대 중반 중국 정부가 공세적 산업정책과 외교·안보 정책을 펼치기 시작하면서 본격화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12월 발표한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에서 중국을 미국의 안보와 세계질서를 위협하는 경쟁자로 보겠다고 공식 선언했다. 이후 중국 기업에 대한 각종 제재 조치가 취해졌고 양국 관계는 급속도로 균열하기 시작했다.
올해 1월 취임한 바이든 대통령도 지난달 발표한 예비 국가안보전략 안내서에서 중국과의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미국 안보전략의 핵심임을 분명히 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전략도 정교해졌다. 바이든 행정부는 중국과의 경쟁을 민주주의적 가치와 사회주의적 가치의 경쟁으로 규정하고, 민주적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국들이 중국에 공동 대응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바야흐로 미국 디커플링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중국, 자주적 혁신으로 세계 최고 도전
미·중 디커플링은 미국의 공격에 중국이 반격하면서 확대되는 양상이다. 원인은 중국이 제공했다. 2006년 중국이 발표한 ‘중장기 과학기술 개발계획’이 디커플링의 시발점이었다. 이는 과학기술의 ‘자주적 혁신’을 통해 2020년까지 중국 경제를 기술 강국으로 만들고 2050년에는 세계를 리드하는 사회주의 최강국으로 올라선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소위 ‘자주적 혁신’이란 외국기술을 모방하거나 흡수하거나 개선해 이를 중국기술로 만드는 것을 의미했다. 기업활동에 중국 정부가 적극 관여할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이후 중국 정부가 자주적 혁신을 지원하기 위해 특허제도, 제품검사 및 승인제도, 공정거래심사, 정부조달, 기술표준을 불공정하게 운용하고, 외국인 투자 시 중국기업으로의 기술이전을 강요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2015년에는 ‘중국제조 2025’가 공표됐다. 2025년까지 차세대 통신기술 등 10개 전략 분야를 적극 육성해 중국산업이 세계 최고로 올라서도록 한다는 공격적인 계획이었다. 전략산업 육성을 위해 국가의 모든 자원을 쏟아붓겠다는 의지가 담긴 계획이었다.
이러한 중국 정부의 공격적 정책과 관행에 대해 미국은 미국 중심의 공급사슬에서 중국 기업을 배제하는 조치로 맞섰다. ZTE·화웨이 등에 미국 반도체 공급을 중단시켰고, 틱톡과 위챗 앱의 미국 내 사용을 금지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임기종료를 몇 주 앞둔 지난해 12월 중순, 중국 최대 반도체 제조기업 SMIC와 세계최대 드론업체 DJI 등 60개 중국기업을 블랙리스트에 올려 미국 기업들과의 거래를 차단했다.
바이든, 공급사슬 재편 작업으로 견제
바이든 대통령은 공급사슬 재편작업을 좀 더 정교하게 진행하고 있다. 지난 2월 향후 100일간 반도체·배터리·희토류 같은 희귀광물과 의약품 등에 대한 미국의 공급사슬 현황을 검토해 보고하도록 연방 기관들에 명령했다. 또한 국방·공중보건·정보통신기술·에너지·운송·농업 식품 등 6개 산업에 대한 공급사슬 현황을 1년간 조사, 보고토록 했다. 아울러 미국과 가치를 공유하는 동맹국 및 파트너들과 새로운 공급망 구축을 위해 협력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러한 미국의 디커플링 조치에 대해 중국은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우선 ‘국내외 쌍순환’을 중국의 새로운 발전전략으로 채택했다. 미국과의 디커플링 등 외부환경 변화에 맞서, 중국의 거대한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국내경제의 대순환 구조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국내외 이중순환을 상호 촉진한다는 전략이다.
중국의 또 다른 반격은 미국의 중국기업 제재에 동조하는 제3국 기업을 제재하겠다는 것이다. 중국 상무부가 2020년 9월 공포한 ‘불신기관 목록’ 규정은 중국기업과의 정상적인 거래를 중단하는 외국 기업에 대해 중국과의 수출입, 중국 내 투자, 관련자들의 중국 입국을 금지하고 벌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했다. 올해 1월에는 제3국 기업이 중국기업에 대한 미국의 제재에 따라 중국기업과 거래를 중단하면 그 제3국 기업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공포했다.
이런 중국의 대응조치들은 한마디로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는 경우, 제3국 기업들은 중국 편에 서든지 아니면 미국 편에 서든지 선택을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미·중 디커플링은 어디까지 확대될까
우선 대상 분야 측면에서 볼 때, 중국이 ‘중국제조 2025’에서 10대 전략 분야로 지정한 산업들과 바이든 대통령이 공급사슬 현황 검토를 명령한 다른 산업들로 미·중 디커플링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이 의도하는 대로 미·중 디커플링이 민주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 간의 대립으로 발전할지는 미지수다. 일본·호주·인도 등 쿼드 참가국들이 미국 진영에 서게 될 가능성이 크고, 유럽연합(EU)도 큰 틀에서 미국에 동조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은 중국대로 우군을 확보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국가별 또는 산업별로 처한 여건과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국가와 기업들 간에 다양한 대립 또는 협력구조가 형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확산되는 미·중 디커플링을 저지할 국제법적 장치는 없는가? 미국과 중국은 서로 상대가 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규범을 위반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렇지만 막상 WTO 규범으로 양국의 디커플링을 통제하기는 쉽지 않다. 그 이유는 불완전한 WTO 통상규범과 미비한 분쟁해결 절차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은 각자 탈동조화 조처를 하는 명분으로 ‘국가안보’를 내세우고 있다. 지난달 발표한 예비 국가안보전략에서 미국은 “오늘날의 세계에서는 경제적 안보(economic security)가 곧 국가안보”라고 선언했다. 국가안보 개념이 크게 확장되고 있다. 문제는 국가안보가 무엇인지에 대한 합의된 국제법적 룰이 없다는 점이다.
국가안보를 이유로 한 무역제한 조치가 WTO 분쟁의 대상이 될 수 있는지도 논란의 대상이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제21조는 안보상 조치를 WTO 규범의 예외로 인정하고 있다. 미국은 당사국이 스스로 국가안보를 위한 조치라고 판단해 안보 예외를 선언하기만 하면 그런 조치는 아예 WTO 분쟁해결 절차의 심리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중국도 자국의 디커플링 대응조치를 국가안보를 위한 조치로 정당화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은 미국이 국가안보 개념을 남용하고 있다고 비난하지만, 막상 자국의 조치가 WTO에 제소되면 미국처럼 안보 예외를 주장할 것이다.
김두식 /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국제통상법센터장
중앙일보
한국, 전략적 선택 시점 다가와
미·중 디커플링으로 인해 공급사슬의 세계화가 퇴조하고 지역화 블록화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 기업은 미국이 재구축하고 있는 공급사슬에 참여할 것을 요구받을 수 있다. 중국도 똑같은 요구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당장 미·중 디커플링이 기업의 영업활동에 미치는 영향은 업종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어느 기업이든 전반적으로 불확실한 경영 환경에 노출되는 상황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국가안보를 이유로 한 미국과 중국의 제재와 보복 조치에 기업이 직·간접적으로 휘말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런 디커플링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미국·중국 등 주요국들의 수출통제조치, 미국의 세컨더리 제재와 같은 개별기업 제재, 공급사슬 재편과 관련된 조치들을 면밀히 추적, 관찰하고 규범 준수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또한 각국의 디커플링 조치들이 기업 및 공급자들에 미치는 현재적·잠재적 영향을 경영 및 투자전략에 반영해야 함은 물론이다. 전체적으로 투자와 무역 측면에서 과도한 중국의존도를 분산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그러나 국가 간 디커플링으로 경제가 정치화되는 상황에서 기업의 노력만으로 대응하기는 역부족일 것이다. 정부와 기업 간 정보 공유와 총체적 대응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