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스 보른(Max Born)은 1882년 12월 11일 지금은 폴란드 영토이나 당시에는 독일 영토였던 브레스라우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0년부터 자신의 고향인 브레스라우에서 대학공부를 시작하였는데, 그 후 하이델베르크, 취리히 등을 옮겨다니며 공부하다가 마침내 1904년부터는 당시 세계 수학의 메카였던 괴팅겐에서 본격적으로 수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당시 괴팅겐에는 펠릭스 클라인, 힐베르트, 헤르만 민코프스키 등 당대의 쟁쟁한 수학자들이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자신의 전문 분야인 수학 이외에도 수학을 물리학, 천문학, 지구과학 및 공학에 응용하는 데에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보른은 처음에는 수학을 공부하였으나 박사학위를 받은 뒤로는 그 연구 분야를 바꾸어 본격적으로 이론 물리학을 연구했다. 이런 학문적 조건은 또 보른의 학문적 성향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즉 괴팅겐의 수학적 전통 내에서 성장하면서 이 곳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보른은 될 수 있으면 경험적, 실험적 자료가 많은 물리학적 문제를 선택하여 수학적으로 아주 엄밀하고 일반적인 해를 구하는 수학적이고도 형식주의적인 자연기술을 선호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시 물리학 내에서 해결하기 어려웠던 광양자의 존재에 관한 문제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보른은 빛이 실제로 입자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와 같이 논쟁에 여지가 있는 문제는 의도적으로 피하고, 빛과 물질의 상호 작용에 관계되는 광범위한 실험적 사실을 어떻게 수학적으로 완벽하고 일반적으로 기술하느냐에 치중했던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자칫하면 물리개념에 대한 그릇된 이해를 갖게 할 수도 있다는 약점이 있는 반면, 만약 문제 자체가 정확하게 설정되어 있을 경우에는 그 계획의 진전이 대단히 크다고 하는 장점도 있었다. 보른은 1909년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대한 개념적 이해가 부족하여,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강체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채로, 상대론적 강체 개념을 정의했다가 커다란 학문적 패배를 경험한 적이 있었다.
상대성 이론 분야에서 학문적 패배를 맛 본 보른은 1912년부터 자신의 연구 영역을 상대론 분야에서 고체 비열 분야로 바꾸면서 그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보른이 연구 분야를 상대성 이론에서 보체 비열 분야로 바꾼 이유는 상대론 분야가 자신의 역량에 비해 너무 어렵고 통상적인 물리학과 너무 동떨어져 있으며, 특히 관찰 자료가 너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보른은 이후에도 수많은 관찰 자료가 존재하는 분야를 수학적으로 엄밀하게 다루는 학문적 스타일을 유지하게 되는데, 고체 비열, 광학, 고전양자론 분야는 보른의 이런 성격에 가장 부합되는 분야였다.
1921년 보른은 실험 물리학자이며 자신의 친구였던 프랑크와 함께 괴팅겐 대학 이론 물리학 교수가 되었다. 괴팅겐에서 보른은 파울리, 하이젠베르크, 노르트하임(Lothar Nordheim) 등 우수한 공동연구자들과 함께 푸앵카레와 보린(Petrus Theodor Bohlin, 18601939) 등에 의해서 개발된 천체 역학적 이론을 이용해서 보어의 원자론을 다전자 체계로 확장하는 프로그램을 정력적으로 추진했다. 보른은 파울리와는 세차운동에 의해 생기는 '고유 겹침'(intrinsic degeneracy)을, 하이젠베르크와는 전자들의 질량이 서로 같아 위상 관계가 생기는 '우연한 겹침'(accidental degeneracy)을, 노르트하임과는 수소 분자 등에서 장미꽃 형태의 괘도로 나타나는 '경계 겹침' (limiting degeneracy) 등을 체계적으로 연구했다. 다전자 체계에서 나타날 수 있는 모든 겹침 현상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했던 이들의 연구 결과 헬륨이나 수소 분자의 에너지 값이 보어 원자론에 의해서 예측된 것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나 결과적으로 고전양자론의 한계를 결정적으로 밝히게 되었다. 그 뒤 보른의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과학자들은 고전양자론이 아닌 새로운 역학체계를 모색하게 되었고, 이런 일련의 노력의 결과로 새로운 양자역학이 출현하게 되었던 것이다.
양자역학 출현 과정에서 보른의 역할은 행렬역학의 수학적 발전 과정에서 더욱 극명하게 드러난다. 1925년 여름 무렵 하이젠베르크는 자신의 새로운 역학 체계인 행렬역학의 기본적인 개념틀을 얻어냈다. 하지만 하이젠베르크는 자신이 이 역사적인 논문에서 사용한 상징적인 곱셈이 수학적으로는 행렬의 곱셈에 해당한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즉 하이젠베르크는 행렬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이 행렬역학의 기본적인 틀을 만들어내었던 것이다. 하이젠베르크의 생각을 행렬역학이라는 일반적인 역학체계로 발전시킨 사람은 수학적 전통 내에 있었던 막스 보른이었다. 보른은 하이젠베르크의 논문을 살펴본 후 하이젠베르크가 사용한 상징적 곱셈이 바로 자신이 대학시절부터 배워서 잘 알고 있었던 일종의 행렬곱셈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양자역학에서 나오는 유명한 기본식인 pq-qp 이라는 수학적 표현을 최초로 얻어냈던 사람은 하이젠 베르크가 아니라 보른과 그의 학생이었던 요르단이었다.
보른은 하이젠베르크의 행렬역학의 수학적 기초를 더욱 깊게 고찰하여 오늘날 양자역학 교과서에 나오는 수많은 수학적 개념을 발전시켰다. 힐베르트 공간, 선형변환에 있어서의 주축 변환, 에르미트 행렬 등과 같은 수학적 개념은 바로 보른에 의해 행렬역학에 도입되었던 것이다. 결국 양자역학의 수학적 기초를 마련하는 데에는 괴팅겐의 수학적 전통 내에 있었던 보른의 역할이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