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정초부터 죽음에 대해 얘기한다고 야단맞을까봐 겁이 나지만, 생각난 김에 몇자 적고 싶습니다. 일부러 일찍 죽을 필요는 없지만, 만약에 일찍 죽는다면 재수없어서 일찍 죽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일찍 죽었기 때문에 좋은 점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는 것이 힘이 들거나 죄책감과 절망감에서 혹은 항의의 뜻으로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종종 있다고 합니다. 전라도 출신의 선비 매천 황현선생은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자 “조선 5백년 역사에 선비를 많이 길렀는데 나라가 망할 때 따라 죽음으로 슬픔을 표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 없어서야 되겠느냐? 잠에서 깨어난 듯 통쾌함을 느끼며 죽으니 너무 슬퍼하지 마라”하는 글을 아들과 동생에게 남기고 제 나이 비슷한 55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제가 아는 미국인 은퇴 여자목사는 오클라호마에서 살던 자기 딸이 자살했다고 하는 말을 저한테 얘기하던 것을 들은 일이 있습니다. 미국인 원로 목사 한 분은 젊은 아들이 자살을 했는데 너무 마음이 아파 그 일에 대해 일절 말을 삼가한다고 교인 한 사람이 저한테 얘기하더군요.
저처럼 미국인 교회에서 목회를 하던 한인 목사 한 분은 부인과 이혼을 하게 되자 상심한 나머지 권총자살을 한 일이 있었고, 충청도의 암자에 살던 비구니 스님 두분이 동반자살을 한 일도 있었고, 뉴져지에 살던 카톨릭 신부님이 목을 메고 자살한 일도 있었고, “도미니끄”라는 경쾌한 노래를 불러서 인기를 끌었던 벨기에 출신의 수녀 가수도 자살했다고 하고, Johns Hopkins대학병원에 근무하던 정신과의사도 자살한 일이 있었고, 행복전도사로 불리던 사람도 자살하고, 미국의 유명 코메디언 Robin Williams도 자살로 세상을 떠난 일이 있었습니다.
영화배우 최진실과 김추련도 자살했고 대통령의 비난을 받고 속이 상해 한강에 뛰어 내려 죽은 회사 사장도 있었고 여론의 비난과 후임 대통령으로 부터 푸대접을 받자 뒷산 바위에서 뛰어 내려 죽은 전직 대통령도 있다고 합니다.
Martin Manley라는 미국사람은 60세 생일날에 “나는 돈도 많고 우울하지도 않고 건강하고 행복하다. 지금이 죽기에 딱 좋은 나이다. 더 이상 나이들어 추해지고 병들기 전에 지금 죽겠다”는 메시지를 인터넷에 남기고 죽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서울대학에 다니던 청년이, “이 사회는 금수저, 흙수저로 운명이 결정된다”고 한탄하며 자신이 살던 옥탑방 자취방에서 자살을 한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유태교의 율법은 자살을 엄격히 금지했기 때문에 요새라는 뜻의 히브리어인 마사다에 갇힌 유태저항군들이 로마군의 공격을 받아 체포되어 노예가 될 위기에 처했을 때 자살하기 보다 제비뽑기를 하여 서로를 죽였다는 이야기도 들어 보았습니다.
저는 자살이 미화되어서도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자살은 죄이기 때문에 자살한 사람은 천국에 가지 못한다는 생각도 반대하는 편입니다. 돌아가신 저의 어머니는, 제가 어렸을 때 부터, “사람은 아깝다 할 때 가야 한다.”는 말씀을 종종 하셨는데, 저는 그 말을 듣고 어머니가 돌아가실까봐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어머니는 그 말씀을 하시면서도 50년을 더 살고 가셔서 저는 참 감사했습니다.
제가 한국에 계시던 어머니께 전화를 드리면, “나는 행복하다. 너희들만 잘 있으면 된다.”하시고, 제가 “오래 사시라. 백살까지 사시라”고 하면, “사람의 운명을 내 맘대로 하나? 사는데 까지 살아 보는 거지”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의 큰형님 목사님이, “어머니가 오래 사시고 편안한 죽음을 맞으시라”고 기도해 주신 것을 고맙게 기억하시던 어머니는 86세의 추운 겨울 어느날 뇌출혈로 쓰러지셔서 의식을 회복하시지 못하시고 돌아가셨으니, 그런데로 천수를 누리시고 편안히 돌아가신 것으로 알고 저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요즘도 웃으시며 나타나시는 어머니를 식당에 모시고 가서 맛있는 것을 대접해 드리는 꿈을 꿀 때가 있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으나, 어머니가 팔순까지 살아 주셔서 참 감사했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더 살아 봐야 뭐 하노? 자식들 걱정만 끼쳐주지. 사람은 아깝다 할 때 가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제 생각으로는 86세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10년만 더 살아 계셨다면 좋았을텐데”하는 아쉬운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30여년전에 저는 강원도 인제군 원통면 서화리에 있던 육군 12사단 37연대의 군목으로 근무했습니다. 저의 부대는 철책선을 방어하는 일을 맡고 있었기에 저도 철책선상의 GOP와 철책선안에 있던 GP(Guide Post)에 주둔해 있던 병사들을 방문하여 종교행사와 정신교육 및 병사들의 개인상담을 해 준 일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대대장이 저에게 이등병 한 사람을 만나서 상담을 좀 해 주라는 부탁을 해 왔습니다. 그 병사는 서울의 연세대학을 다니다가 군대에 입대한 귀공자같이 생긴 청년이었는데, 부모님과 여동생이 전방근무중인 그 병사를 면회왔다가 돌아 가는 길에 꼬불꼬불한 강원도의 시골길에서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자가용을 몰고 면회를 왔다가 서울로 돌아가시던 부모님과 여동생이 교통사고로 한꺼번에 죽은 충격과 슬픔때문에 그 병사는 우울증과 슬픔에 시달려서 못으로 자기 팔을 긁어 상처를 내며 마음의 괴로움을 어찌할 줄 몰라 했습니다. 저는 그 병사랑 부대의 한 쪽 귀퉁이에 앉아서 여러 가지 말을 해 주었지만 별 다른 위로나 도움이 못 되었을 것입니다.
이제 그 병사도 50대 초반이 되어 있을 겁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갑자기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것보다 더 큰 충격과 슬픔은 없으리라 생각됩니다. 저도 동생이 냇가에서 놀다가 익사한 일 때문에 평생 슬픔이 남아 있습니다.
일부러 죽을 필요는 없지만, 피치 못할 이유로 사랑하는 가족이 죽거나 자신이 일찍 죽는다면 슬퍼하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그래도 몇가지 좋은 점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어에 “Look on the bright side!”라는 말이나, “Every cloud has a silver lining.”는 말처럼, 매사를 긍정적으로 보고, 절망의 먹구름 끝자락에 희망의 햇살이 비치고 있음을 믿고 살았으면 합니다.
말쟁이, 글쟁이의 꾸며낸 말일 수 있지만, “일찍 죽어서 좋은 이유 열가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1. 늙고 병들 걱정, 치매에 대한 걱정을 안 해도 되고 양로원에 돈을 낼 필요가 없어서 좋다.
2. 사랑하는 내 가족을 왜 일찍 데려가셨나 슬퍼하기 보다, 짧은 시간이나마 사랑을 주고 받은 가족이 있었음을 기억하고 감사할 수 있어서 좋다.
3. 전기세, 수도세, 집세, 인터넷비, 소득세금을 안내어도 되어서 좋다.
4. “매도 먼저 맞는 놈이 낫다”는 말처럼, 죽고나면 더 이상 죽음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어서 좋다.
5. 더 이상 암, 심장마비, 고혈압, 당뇨병, 뇌출혈, 체중조절, 규칙적인 운동, 맛도 없는 건강식품등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어서 좋다.
6. 일하러 가지 않아도 되어서 좋다. 매일이 휴일이 된다. 사람들도 “안식하시라” (Rest in Peace!)하고 인사해 준다.
7. 돈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서 좋다.
8. 일찍 죽은 유명인사들과 공통점을 갖게 되어서 좋다. 안네의 일기의 저자 Anne Frank는 15살에 사망, 영화배우 James Dean은 24세에 사망, 음악가 슈베르트는 31세에 사망, 이소룡은 32세에 사망, 예수는 33세에 사망, 모짜르트는 35세에 사망, 영국의 Diana왕비는 36세에 사망, 빈센트 반 고흐는 37세에 사망, 마틴 루터 킹 목사는 39세에 사망, John Lennon은 40세 사망, Elvis Presley는 42세에 사망.
9. 장의사 가족들, 화장터의 화장부들도 먹고 살 수 있도록 도와 줄 기회를 갖게 되어서 좋다.
10. 보이스 피싱 사기전화를 더 이상 받지 않게 되어 좋다.
제가 이런 글을 썼다고 “그럼 너 부터 일찍 죽도록 해 주겠다”는 자원봉사는 안 해 주셔도 됩니다. 시간되면 다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 날이 올 때 오더라도 오늘 하루는 즐거운 하루를 보내었으면 합니다.
첫댓글 맞습니다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