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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두(南宮斗)는 호남사람으로 젊은시절 사부(辭賦)를 잘 지었다.
일찌기 성균관의 과장(科場)에서 일등을 하니,
선비들이 모두 그 글을 돌려가며 읊었다.
불행히 집 안에서 젊은 첩과 장난하다가 실수로 그녀를 죽게 했다.
그러고 나서 그 친척들이 알까 두려워하여 몰래 논 가운데에 묻고서는
못된 젊은 놈이 데리고 달아났다고 말을 퍼뜨렸다.
1년 남짓 지나서 여종이 매를 맞고는
분해서 죽은 첩의 친족에게 달려가 이 사실을 말했다.
논 가운데를 파 보니 그 첩은 얼굴색이 살아있는 듯했다.
그제야 남궁두가 살려 달라고 애걸하였다.
이로부터 다시는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신선술과 불교에 몰두해 인간 세상의 영리를 끊었다.
본래 재주가 뛰어난 사람으로 정진하는 바가 정밀하고 심오했으며,
게다가 일생 동안 공력을 쌓았다.
색욕만은 완전히 끊어 내지 못해 연단의 묘법은 터득하지 못했지만,
오직 기만 마시고 곡기를 끊었다.
그리하여 나이 팔십에도 오히려 어린아이의 얼굴빛을 지녔으며,
나막신을 신고서 전주와 은진을 왕래했는데,
젊고 건장한 사람일지라도 그의 걸음을 뒤좇을 수가 없었다.
그가 고요하게 방에 앉아 있으면 방 안에는 늘 자줏빛 기운이 돌았다.
식자들은 그를 일컬어 '지상의 신선'이라고 하였다.
하루는 우레가 치며 비바람이 불어 햇빛을 가리니,
남궁두가 말하였다.
하늘이 장차 나를 부르려는 것이로군.
그러고 나서 병도 없이 앉은 채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