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가끔 잠실에 있는 롯데 월드내의 민속촌을 찾아 간다.
별 다른 감흥없이 예전의 저잣거리를 재현한 먹거리 풍부한, 어는 주막의 평상에 올라 앉아
예외없이 부침개 한 접시에 쌔주 한병 시켜 먹는 쏠쏠한 재미를 맛 보기 위해서 이다.
무명 흰 치마를 둘른 아낙이 건네 주는 자그만 소반을 받아 들면 그저 행복한 따름이다.
일본에서 젊은 시절 어렵게 사업을 시작한 현재의 롯데그룹 신회장께서 괴테가 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란 책에 나오는 여주인공 샤를 롯데를 너무나 좋아 하여, 롯데란 상호를
쓰기 시작하였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삭막한 도시의 빌딩 숲에서 동화의 세계같은
아름다움이 주절이 주절이 열린 이 곳은 많은 도시 사람들의 지친 심신에 새로운 활력소를
넣어 주는 곳이라고 생각된다.
민속촌내에선가 본 적이 있는데, 시골 이발관을 옛 모습 그대로 옮겨 놓아, 한참이나 그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던 적이 있었다.
어릴 적에는 대부분의 어린 아이들이 이발관에 가는 걸 싫어 했었다.
몸을 움직이기 불편한 흰 천을 목에서 부터 발끝까지 두르고 고문대 같은 깊숙한 의자에 푹
파묻힌 상태에서 예리한 가위와 날카로운 면도날이 쌍춤을 추어 대니 좋아할 까탈이 있을 수 없
음은 당연지사가 아니었겠는가?
공포에 쌓여서 주위를 돌아 보노라면 미루나무가 우거진 시골 개천변에 물레방아와 오리가 한
가로이 떠 다니는, 말 그대로 이발관 명화들이 정겨운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 온다.
거친 파도와 싸우는 돛이 여러개가 달린 서양 범선과, 키는 난장이 거시기만 하지만 세계를 제
패한 나폴레옹이 애마위에서 군대를 지휘하는 늠름한 모습도 본 기억이 생생하다.
이발관의 가위 치는 소리와 열차에서 기차바퀴가 레일의 죠인트 부분 위를 통과하는 소리는
2박자라서 나긋한 졸음을 늘상 동반하곤 한다.
구러면 엿장수 가위치기의 명수 윤 팔도씨가 흔들어 대는 가위 소리는 왜 들을 적마다 졸음은
간 곳 엄꼬 신바람만 나느냐 구요?
엿장수 맘대로 치는 가위 소리에 일정한 박자가 있겠습니껴?
한참을 신나게 졸다가 부시시한 눈을 비비면서 세면대 위에 머리를 푹 박으면 옆에 붙어
있는 펌프에서 막 물을 올려선 여지없이 뒷통수에 부어 대는데 지하수라서 여름엔 더 차가운
지라, 정신이 번쩍 든다.
열악한 생활 환경 덕에 머리를 자주 감질 않으니 자연 쇳똥같은 것들이 머리에 엉기 덩기
붙어 있기 마련인데 이발관에서 견습하는 나이 어린 형들은 요즘은 운동화 빨때나 쓰는 플라
스틱 솔로 인정사정없이 머리를 박벅 문질러 댄다.
비눗물 땜에 눈도 뜰 수 없고 형들이 옆에서 머리를 눌러 대고 있는 지라 발버둥도 못 하고
그저 억억 소리만 내면서 한참이나 곤욕을 치루게 된다.
의자에 앉아 머리를 말리고 나면 엄마들이나 쓰는 동동 구리모같은 걸 발라 주는데 은은한
향이 몹시도 낯 설어 보인다.
유리가 여러 개 달린 이발관 입구 미닫이 문을 옆으로 비시시 밀고 나올 즈음이면 웬지 어른이
다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나도 모르게 여덟 팔자 걸음을 걸어 본 적도 있었다.
환한 여름 날 햇살이 기분좋게 내려 쪼이고 개울 건너 포플러 숲에서 매미마저 귓청이 찢어
져라 울어 대면 개선장군의 팡파레를 듣는 기분에 우쭐대는 마음마저 들게 된다.
요즘의 이발관들은 도로변이나 옥상,건물벽 구분없이 이발관 심벌이랄 수 있는 빙빙 돌아
가는 등을 켜 놓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적,청,백색의 3가지 스트라이프가 나선형으로 그려져 있음을 볼 수 있다.
과연 어떤 깊은 의미가 담겨진 색상의 조화일까?
깍새 아저씨들은 이발관을 두개의 부류로 나누더군요.
컷트 전문업소와 대형업소인데 에지간한 손님은 죄다 미용실에 뺏겨 버린 깍새 아저씨들의
마지막 자구책이 그저 싼 값에 간단히 하는 컷트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남성이라면 재스민 향기 그윽한 파마 머리의 언니가 매니큐어 진하게 발른 손으로 자기 대가리
만져 주는 걸 싫어 할 턱이 없다.
그러한 연유로 많은 남성분들이 미용실로 달려 가더만요.
그저 수입이 줄어 든 깍새 아저씨가 불쌍할 뿐이다.
오래 전에 나두 겁없이 미용실에서 이발하고 왔다가 마눌에게 엄청 얻어 맞고는 지꿈은
그저 사우나 가서 대충 머리를 손보고 다니는 입장이다.
대형업소란 곳은 머리 깍는 깍새 아저씨는 몇눔 엄는데 면도사(?) 언니는 여름날 뒷칸의 구데기
처럼 우글대는 곳을 말한다.
윤락 방지를 위해서 성을 매도, 매수하는 쌍방을 처벌하겠다며 나라에선 강력한 의지를 표방
하고 있다. 쌍수를 들고 환영을 할 일인데 무엇보다도 멀쩡한 도심에서, 그것도 심한 곳은 주택
가가 제법 가까운 이발관에서 그 짓꺼리를 하는 웃지 못할 작태부터 후리가리(일제 단속)를
하여 건전한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으면 하는 점이다.
방송에서 보면 병든 분이나 거동이 불편하신 노인들을 위해서 오랜 세월 바쁜 시간을 쪼개어
봉사활동을 하시는 타의 귀감이 되시는 훌륭한 이발사 분들을 자주 보게 된다.
이발관은 이토록 우리들에게 많은 소중한 것들을 안겨 주는 곳인데 오래 전 서양에서는
그러니깐, 글레디에이터란 영화에 나오는 검투사들이 칼과 창으로 밥을 먹고 살던 시절엔
간단한 욋과 수술을 이발관에서 하였다고 하누만요.
청은 동맥, 적은 정맥, 백은 붕대를 뜻한다고 하는데, 이런 소중한 의미를 담은 심벌을 걸어
놓고 들어 오는 손님을 상대로 그 짓꺼리를 하는 대형업소 쥔장께는 예전에 많이 쓰던
도루코 면도날을 한 상자 택배로 보내 드림이 어떨런지요?
노상 방뇨를 스스럼 없이 하던 어릴 적엔, 동네 담벼락에 가서 보면 늘상 써 있는 문구가 소변
금지인데 글씨 밑에 그려진 가위 그림의 의미를 알고 난 후론 그런 그림이 있는 담벼락에선 웬
지 바지춤을 내리기가 찜찜했던 기억이 늘 아물거린다.
그 시절만 해도 머리를 깎으면서 사람 살아 가는 얘기도 하고 동네 소식도 들을 수가 있었는데
급기야는 오천원짜리 컷트 전문 업소가 동네 방네를 휘 젓고 다녀서 이발관이라고 들르면 그저
공장에서 대량 생산한 가위손 언니에게 잠시 머리통을 맡겼다가 일이 끝나면 허우적거리면서
문을 열고 나올 뿐이다.
아! 우째 사는 게 넘 드라이 크리닝한 기분인 걸 감추지 몬 하겠군요.
뺨이 천도 복상처럼 발그스레한 정향사의 부목 돌삐 합장드립니다.
카페 게시글
불자님 글방
어느 시골 리발관 풍경 이야기.
돌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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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56
05.03.15 21:07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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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돌삐님은 우짜만 이렇게도 글을 재미나게 쓰시는지요??ㅋㅋㅋ이밤 또 님 덕분에 엔돌핀 팍팍 ... 돕니다.....복상빛도는 님의 빰이 영원히 발그스리무리 하시길....().많이 웃고 갑니당.ㅎㅎ
글 마무리가 미소를 짓게합니다..... 복상처럼 발그스레한.. *^^*.....잘보고갑니다 좋은날 되세요...()
오늘도 정말 마무리글에서 대중을 웃겨주시는군요. ㅎㅎㅎ.......정감있는 글 잘 보고 갑니다. 사라지는 우리정서들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글이기도 하였습니다. 웃음속에 꼬장꼬장한 무언가가 있어서 거사님글이 다 읽고나도 여운이 남는 것 같습니다. 늘 불은이 충만하옵소서....()
정향사는 어쩜 이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부목을 모신 절이 아닌가 싶네요...누가 그러데요 부목일을 하시던 분중 공부를 이루신 분이 많다데요..대광사 법당에 앉아 꾸벅 꾸벅 조시는 것도 아마전생에 부처님 전에서 열심히 공부하면서 고개를 끄덕이던 습이 아닐까 싶네요. 언제까지나 그마음 변치 마시고 정진하시길..
뺨이 청도복숭아처럼 발그스레한 정향사의 부목 돌삐님 ......감사드립니다.
ㅎㅎ.....읽으면서 제 머리 속에는요~ 여름철 장맛비에 떠내려가는 소중한 것들을 건져올리느라 안간힘쓰는 수해입은 동네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것은 어인 까닭인지 몰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