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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스크랩 삼천포 아침 팔포 해안과 활어배,그리고 시장
庭光文培 추천 0 조회 246 09.11.01 23:33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삼천포 아침 팔포 해안과 활어배,그리고 시장

 

고 박재삼 詩의 고향<삼천포 팔포> 앞 목섬이 있는 아침 풍경

 

삼천포 하면 60년 후반 시절에 만들어진 "잘나가다 삼천포를 빠진다" 란 말이 연상되는 곳이다.

이 곳 삼천포 출신들은  그 말을 정말 기분 나쁜 말로 여긴다. 80년 시대 모 언론사가 그런 말을 썼다가 시민들의 성토까지 당한적이 있다.

지금은 그 낱말 사전까지 올라간 덕분에 아마 삼천포를 다녀가지않은 사람도 삼천포란 지명 정도는 알고 있을 것 같다.

 

지리적으로 한려수도 가운데 위치한 항구도시로 호수같은 잔잔한 바다에 떠 졸고 있는 섬들이 봄철 풍경도 일품이다.

고운 최치원이 명명했다는 남해안에서 제일 경치가 빼어났다는 사구 갯가 남일대가 있다.

 

지금은 삼천포와 늑도를 비롯한 5개의 섬을 연결한 삼천포대교의 아름다움이 있는 곳이다.

삼천포 항구에서 사량도,수우도,신수도, 여러 섬을 연결하는 연락선이 떠나고 들어온다.

 

5년만에 삼천포 아침 바다에 나왔다. 박재삼시인이 어릴 적 바로 마주했던 팔포 앞 바다를 보러 나왔다.

밤새 정박된 고기잡이 배들이 깨어나는 시간이다.  삼천포는 활어시장에서 깨어나고 있다. 삼천포 서부 부두 활어선 경매장에는

7시 이전에 이미 경매사들의 경매소리가 멈추고 중간 상인들의 활어전이 펼쳐지는 시간이다.

 

어릴 적 부둣가 근처에 살았던 관람객인 화자는 벌써 옛 정취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삼천포시는 김영삼시대에 지역 통폐합 때 사천군과 삼천포시를 묶어서 사천시로 개명되어

이제 삼천포 시는 삼천포항 지명으로 축소되어 버렸다. 삼천포 사람들은 아직도 사천시란 명칭에 동의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삼천포 지명찾기 사무실과 모임이 건재하고 있다.

시가 군에 합치지는 불명예를 안고 살아가는 삼천포 시민들이다.

 

삼천포가 시로 승격된 것도 1956년으로 시 승격은 전국 도시 중에서 깨 빠른 역사를 가진 도시이다. 또한 제일 적은 인구의 시였기도 하다.

시로 승격되기 위해서 인구5만이 되어야 한다. 50여년이 지난 지금 인구는 필자가 알고 있기에도 7만이 채 못되는 줄 안다.

이 처럼 이 지방은 해안 도시이기에 바다에 의존한 인구들이 태반이다.

 

연안어업의 사양길로 삼천포 도시 인구는 거의 자연증가를 멈췄다.

 

삼천포 토박이는 거의 객지로 나가고 지금 2세 3세 삼천포 태생은 거의 창선남해(창남해)사람들로 어업을 위주로 삼천포 사람이 되었다.

횟집이 많은 삼천포, 시내에서 5분 거리에 바닷가 항구가 펼쳐진다.

바다와 함께 생활하고 바다를 보고 자라는 곳이 삼천포 사람들이다.

 <사진 박재삼 시인>

싱싱한 활어가 넘쳤던 항구, 60,70년대까진 남해안 여안여객선의 중간항구 삼천포부둣가가 여객선 인구들로 북적였다.

여수, 삼천포. 충무. 그리고 부산으로 연결되는 여객선 교통로 가운데 항구였다.

 

70년 80년때까지 쥐치를 잡은 트롤선이 매일 새벽 드나들어, 한 때 삼천포 취치포가 전국 생산량에 70%이상 쉐어를 가졌던 고장이었다.

이젠 대전 ,진주  고속도로 개통으로 충청도 사람들이 생선회를 먹고 한려수도 유람선 타는 항구로 제 2의 번성기를 누리는 곳이기 하다.

 

삼천포항에 오는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노산공원이 있다. 원래 섬이었던 곳인데 일제시대에 개축을해서 이젠 육지가 되었던 공원이다.

노산공원에서 바라보는 아래 바닷가의 풍경은 감탄할 정도이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닷가에 졸고 있는 듯 뜨있는 섬들,한려수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김삿갓으로 유명한 김병연 삿갓어른도 이 곳에 들렸다는 일화가 전해 지는 곳이다. 공원에 가면 꼭 눈에 들어오는 시비가 있다.

한국 문단에서 일관적으로 고향 바다의 비린내가 묻어나는 서정과 비극적 사랑,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 등을 노래했던 시인 박재삼 시비가 서있다.

 시비가 내려보는 바다 한가운데 홀로 선 섬이 보인다. 이름하여 이곳 사람들은 '목섬'이라 불렀다.

목섬은 진도 모세의 기적처럼 한달에 한 두번 사리물때(썰물이 심할 때) 갯가에 물이 열린다. 그 곳을 따라 난 자갈길로 걸어 갈 수 있다.

물론 다른 곳은 수심30미터 넘는 깊은 물길이다.

 

이 갯가의 끝이 강이 맞댄 곳이다. 삼천포 시내를 가로 지르는 한내 강 하구이다. 이 하구의 갯가에 60년초까지는 모래톱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의 여름철 

수영하던 곳이다. 이름 하여 "팔장개"라 불렀다. 나중엔 "팔포"라고 부리는 갯가였다. 팔장이란 단어는

뒷산 와룡산은 천추태후 드라마에 나오는 대량원군(후일 고려 현종)이 유배되었던 절이 있었다.

와룡산 정기로 인해 文千과 武萬(문인천명과 무인만명)이 나온다는

와룡산 일대의 전설이 서린 곳이다. 팔장이란 이 곳에서 여덟의 장군이 나올 바닷가란 전설이 서린 곳이다.

박재삼은 이 곳에서 어린시절을 보냈다. 항시 그 바닷가는 어머님 품안 같았다. 

가난하여 중학교 졸업하고 고등학교 수업종치고 일거드는 지금 알바학생으로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하여 고려대학 국문과로 진학하는 수재였다.

고려대학 시절 <현대문학>에 등단한다. 당시 서정주와 유치환이 서로 추천할려고 탐을 낸 시인이었다.

 

그의 시 모티브 중에 바다가 많이 나온다. 그가 쓴 "무더위의 시"와 "봄바다에서'란 시에도 바다가 나온다. "특히 울음이 타는 가을강"에서는

가을강에 해당되는 "한내"와 그 끝자락에온 바다가 바로 팔장개 앞바다이다.

그 바다가 바로 그가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 항상 바다 앞에서 놀고 위안 받았던 삼천포 팔포 앞 바다이다.

 

그 바닷가 옆 거리가 "박재삼 거리"로 명명되어 그를 기리고 있다.

내가 찾아간 그 바닷가는 이제 매립되고 방파제가 서고 변형되고 있었다.

아직 그대로 서 있는 정도는 박재삼씨가 썰물 때 조개 및 해삼 멍게 잡아 먹었던 목섬일 것 같다.

 

등대가 들어서고 다리가 놓아지고 팔포 옆이 매립되어 그 곳에 들어선 횟집들은 박재삼 시인이 살아보았다면 알 수 없을 정도로 변해있었다.

필자의 고향도 이 곳이다. 여객선 항구쪽으로 가던 길, 삼천포극장 거리에 있었던 집.

동리다리에 밀물시절 바닷물에 밀려들어오는 문조리를 낚시하던 시절.

노산아래 등대가 보이던 바닷가 고향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던 기억들, 노산 비렁바닷가, 

팔도 축강에서 어릴적 멱감을 시절과 비교 해 보니 너무 많이 변해있었다.

바닷물도 많이 오염된 것같고 뭔가 잃어버린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팔포하면 50년부터 있었던

유일한 생선횟집 "미찌(道)집"이 수없이 많은 생선횟집을 보면서 불현듯 생각났다. 

고향이란 곳은 추억이 있는 곳이다. 산천,바다와 같은 자연들이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고향의 맛과 향기를 말이다.

하지만

고향에 와서도 모르는 사람들과 개발되어 변형된 환경들로 인해 낯선 곳으로 온 느낌이었다.

 마치 이방인이 된 느낌이었다. 옛 향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목섬 너 마져 없었다면 아마 박재삼 시인도 그 바다를 잊어버릴지 모를 정도였으니 말이다.(글돋)

 

 

  울음이 타는 가을 강 / 박재삼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 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江)을 보겄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江)을 처음 보겄네

 

 

박재삼 고등학교 시절까지 바로 이 바다와 마주하며 아침을 맞았다 

 목섬이 있는 아침풍경

 

 

 한내가 팔포다리 아래 흘러 바다에 이른다

 

 

 

 

 

 

 

 팔포다리

 

 

약30년전엔 노산아래 거리가 있는 곳은 바다였다 

 동동 활어판매상들이 즐비한 시장,점심시간 때 부터 관광객들이 붐빌까

 동리다리거리에서 뒷 부두가가는 서부시장통

 서부시장 건어물 판매

 

 옛 일제시대 건물-서부시장

노천 억척 어전 아지매 

 

청너리굼터가 보이는 곳에 제빙공장, 활어선 배들이 경매처로 모였다 

밤새 잡아온 생선을 이 곳에서 위판하는 위판장 

부부로 보이는 어부 

삼천포 항구를 깨우는 생선위판장 

 

 아침 장보려 온 주부들과 요즈음은 관광객들이 더 붐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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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11.13 14:52

    첫댓글 억척스러운 삼천포 아지매들의 모습을 보니까 어릴 때 들었던 은방울 자매의 삼천포 아가씨라는 대중 가요가 생각 나네요. "비내리는 삼천포에 부산배는 떠나가고..." 그 때 애절하게 부르던 은방울 자매도 가고...삼천포 아가씨의 삶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네요.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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