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10편. 시대의 도구를 먼저 쓰는 사람이 앞서간다
①나는 101살#26》25 AI수정·협업》실용인문학은 현장 관찰로 배운다
by여유시간
2시간전
사람을 관찰하는 일은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일로 이어졌다.
카페에서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면서 나는 주체성, 확증편향, 관계의 거리, 소통의 방식 같은 것들을 생각하게 됐다.
처음에는 그저 사람을 관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내가 하고 있던 일은 조금 달랐다.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관계를 맺으며, 무엇에 끌리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를 살펴보는 일이었다.
그것은 내가 생각하는 실용인문학의 한 모습이었다.
학문은 꼭 책 속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을 관찰하고,
내 행동을 돌아보고,
관계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를 생각하는 것도 인문학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 여기에 하나가 더 들어왔다.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환경이다.
사람들이 만나고 대화하고 싸우고 관계를 맺는 공간이 온라인으로 옮겨왔기 때문이다.
카페와 SNS에서 벌어지는 일도 결국 인간의 문제다.
다만 환경과 도구가 달라졌을 뿐이다.
그런데 요즘 AI를 두고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AI를 사용하면 사람이 생각하지 않게 된다고 한다.
AI에 의존하면 사람이 멍청해진다고도 한다.
그래서 AI를 안 한다고 말한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조금 웃음이 난다.
도구를 잘못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밭을 갈면서 쟁기를 사용하면 사람이 무능해지는가.
삽을 사용하면 사람이 삽보다 못한 사람이 되는가.
잡초를 뽑으면서 호미를 사용하면 호미가 사람보다 똑똑해지는가.
시대적 인지능력이 부족한 경우 하는 말이다.
도구는 인간을 대신해 인간의 능력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더 적은 힘으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쟁기를 쓰면 더 넓은 땅을 갈 수 있고,
호미를 쓰면 손가락으로 하나씩 풀을 뽑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일을 할 수 있다.
도구를 잘 사용하는 사람은 도구 때문에 무능해지는 것이 아니라 도구를 이용해 자신의 능력을 확장한다.
AI도 마찬가지다.
AI가 글을 써준다고 해서 사람이 글을 쓸 필요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AI를 사용하는가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다.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 AI는 편리한 자동생성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자기 생각이 있는 사람에게 AI는 생각을 정리하고 확장하고 발전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다.
나는 지금까지 AI와 글을 함께 만들어오면서 그것을 직접 경험했다.
AI가 모든 것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생각을 던지고,
AI가 정리하고,
다시 내가 고치고,
그 과정에서 생각이 더 선명해졌다.
도구와 인간이 서로의 역할을 나누는 것이다.
그래서 AI는 나르시시스트나 플라잉 몽키에게는 사용하기 어려운 도구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상대의 말을 다시 받아들이는 소통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AI를 두려워하는 것보다 AI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편이 훨씬 중요하다고 본다.
도구는 계속 발전한다.
사람이 도구를 거부한다고 해서 시대가 멈추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도구를 먼저 익힌 사람과 나중에 익힌 사람 사이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차이가 생긴다.
예전에는 작가들이 원고지에 글을 써서 투고하는 것이 당연했다.
원고지 칸에 한 자 한 자 글을 채우던 사람들이 이제는 원고지를 쓰지 않는다.
컴퓨터로 글을 쓰는 것이 더 편하고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원고지를 쓰던 작가가 컴퓨터를 거부했다면 지금까지 작가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컴퓨터가 처음 등장했을 때도 그랬고,
인터넷이 보급됐을 때도 그랬다.
스마트폰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새로운 기술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결국 그것을 먼저 익힌 사람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더 많은 기회를 얻었다.
AI도 결국 같은 흐름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AI를 쓴다고 모두 앞서가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의 주체성이다.
무엇을 물어볼 것인지,
무엇을 받아들일 것인지,
무엇을 버릴 것인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지는 사람의 몫이다.
도구가 좋아질수록 오히려 인간의 판단력이 더 중요해지는 이유다.
나는 사람을 관찰하면서 주체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많이 생각했다.
누군가의 말을 그대로 따라가는 사람보다 자기 생각으로 판단하는 사람이 결국 자기 삶을 만들어간다.
AI도 마찬가지다.
AI가 하는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아니라,
AI를 이용해 자신의 생각을 더 멀리 가져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리더로 살것이냐 팔로워로 살것이냐.
도구에 끌려가는 사람이 아니라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
결국 내가 리더로 살 것인가, 팔로워로 살 것인가의 문제다.
그 차이가 앞으로 더 중요해질 것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카페에서 시작한 작은 관찰은 결국 여기까지 왔다.
사람 사이의 거리에서 시작해,
나르시시스트와 에코이스트를 바라보고,
플라잉 몽키와 확증편향을 생각하고,
주체성과 소통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새로운 시대의 도구인 AI까지 왔다.
나는 이것이 모두 하나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자기 삶의 주체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다.
호미를 쓴다고 호미가 똑똑해지는 것은 아니다.
쟁기를 쓴다고 사람이 무능해지는 것도 아니다.
AI를 쓴다고 사람이 멍청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시대가 새로운 도구를 내놓았을 때 그것을 먼저 이해하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사람이 다음 시대를 먼저 살아갈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나는 AI를 두려워하기보다 먼저 써본다.
써보고,
부딪혀보고,
내게 필요한 방식으로 바꿔본다.
시대의 도구를 먼저 쓰는 사람이 반드시 성공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새로운 도구가 등장했을 때 그것을 이해하고 활용할 줄 아는 사람과 끝까지 거부하는 사람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생긴다.
나는 그것을 이번 관찰의 마지막에 기록해두고 싶다.
인간을 이해하는 것 못지않게 시대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도구가 등장한다.
그 도구를 어떻게 활용할지는 결국 사람의 몫이다.
AI 같은 시대의 도구도, 인문학도 모두 우리 삶을 돕기 위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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