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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 중 나의 마지막 학기(4학기). 석ㆍ박사 공통의 '문화콘텐츠' 시간에 방재석 교수의 발의에 의해 책의 기획부터 대상 선정, 편집, 출판 등을 학생이 주도하여 프로그램을 진행한 바 있다. 이태석(고인이지만, 그 주변인들을 취재하여 이태석 신부 자신의 내레이터 형식으로 서술), 홍수연, 백롱민, 제너럴 닥터, 충남 501호 병원선, 이승복, 라이문트 로이어, 허영진, 최경숙, 이승규, 신희섭, 이춘기, 김찬, 김성덕, 김승철, 이병두, 하홍일 등 각 분야의 문제적 의사 및 단체가 그 대상이었다. 15명의 대학원생 인터뷰이가 취재해서 집필한 결과물이 『올 댓 닥터 - 나는 의사다』(이야기공작소, 2011)이고, 아래 글은 그 중 한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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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쥐의 뇌에서 인간을 추적하다
-뇌과학자 신희섭 박사
취재 및 집필 | 이영숙
인간의 뇌는 크게 대뇌, 소뇌, 뇌간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그 중 대뇌의 호두알 같은 주름을 폈을 때 피질은 대략 40제곱미터의 표면적에 이른다. 150억 개의 뉴런이 6개의 층으로 쌓여 있는 피질의 평균 두께는 그러나 2.5밀리미터에 불과하다. 이러한 물질적 특성과는 달리 기능적으로 뇌는 대략 천억 개의 뉴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뉴런 1개 당 평균 천 개의 시냅스를 형성하여 전체 회로구조가 무려 100조 개에 이르는 신경덩어리를 이루고 있다. 우리의 모든 판단과 행동은 매순간 수천억 개의 신경망이 이완과 긴장을 반복하며 작동하는 뇌 활동의 결과다. 이렇게 우리의 정신적 육체적 활동 전체를 관장하는 뇌의 총 무게는 1.4킬로그램이다.
‘뉴런’은 신경세포의 다른 말이며, ‘시냅스’는 뉴런 상호간의 접합부를 가리킨다. 시냅스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이 뉴런과 뉴런 사이를 연결하여 전기적 신호를 뇌로 전달하면 모든 정보를 종합한 뇌가 신체의 행동과 사고를 결정하여 우리 몸의 각 부분에 필요한 명령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뇌 속에서 이루어지는 그러한 작용들을 감지하지 못한다. 사실 알 필요도 없다. 우리가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웹 서핑을 하거나 리니지를 할 때 컴퓨터 내부의 회로들이 얼마나 복잡한 기능을 수행하는지를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뇌의 신비로운 구성과 작동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보려는 도전의 역사는 유구하다.
인류 최초로 뇌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의사로서 뇌에 철학적 접근을 한 히포크라테스였고, 이후로는 주로 철학자들이 연구해 왔다. 18세기 무렵에 철학에서 과학의 영역으로 넘어온 뇌의 신비는 20세기에 이르러 뇌신경과학이라는 학문분야와 학습 및 기억과 관련한 인지과학으로 정립되었으며, 뇌의 기능을 유전자 수준에서 이해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여 년 전부터다. 우리 자신의 정체성과 본질을 규명하기 위한 시도가 먼저였고,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으로 발생하는 각종 뇌신경계 질환을 치료하기 위한 시도가 그에 뒤따랐던 것이다. 뇌 연구의 짧지 않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과학자들은 뇌를 우주에 비견되는 미개척지라고 부르며, 21세기가 뇌의 신비를 풀어가는 새로운 도전의 세기가 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러한 도전의 중심에 서 있는 과학자 중의 한 사람이 신희섭 박사다.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신경과학센터장인 그는 현재 뇌 연구의 세계 최고 권위자 그룹에 속해 있으며 노벨상에 가장 근접한 국내 과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뇌 연구자로서 그의 개인사가 바로 한국 뇌 과학의 역사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그는 국내에 유전자 변형 생쥐를 만드는 기술을 처음으로 도입하여 뇌 연구의 저변확대에 기여하고, 그가 이끄는 연구팀과 함께 70여 편의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논문을 세계 유수 과학지에 발표했으며, 이로써 한국의 뇌 과학 분야를 세계가 주목하게 만든 장본인이다. 그러한 공로로 그는 우리나라에서 ‘제1호 국가과학자’로 선정되었고, 한국인으로서는 두 번째로 NAS(미국 국립학술원)의 외국인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2010년 현재 한국의 국가과학자는 8명이고, 2009년 당시 NAS의 미국인 회원이 2,150명, 외국인 회원이 404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에게 주어진 영예의 무게가 짐작된다.
그의 연구 성과 중에서 가장 최근의 것은 「공포공감 뇌회로와 메커니즘 규명」이라는 논문으로, 2010년 3월 1일자 국제 학술지 『네이처-신경과학』의 온라인판에 게재되었다. 타인의 고통이나 공포에 공감하는 통증체계의 감각을 뇌신경으로 전달하는 물질이 ‘L형 칼슘채널’이라는 사실을 밝혀낸 이 논문은 발표 다음날 국내외 언론에 일제히 소개되었을 만큼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가 이끌고 있는 ‘학습 및 기억현상연구단’이라는 연구팀명에 잘 드러나 있듯이 그는 인간의 의식과 관련한 유전자의 결함이 행동으로 나타나기까지 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추적한다. 사람에게 직접 실험할 수 없는 어려움 때문에 연구는, 사람의 유전자의 대부분을 가지고 있는 포유동물인 생쥐를 이용한다. 생쥐는 새끼를 많이 낳고, 세대가 짧아 1년에도 4~5대까지 내려가는 장점이 있다. 연구의 시작은 특정 유전자를 인공적으로 파괴하거나 제거하여 특정 유전자의 기능이 발현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를 녹아웃(Knock-out) 생쥐 혹은 유전자 적중(Gene targeting) 생쥐라고 부른다. 유리 상자 속에 들어있는 실험 생쥐에게 전기 충격을 가했을 때 이를 밖에서 관찰하고 있던 일반 생쥐는 자신이 직접 자극을 받지 않았는데도 공포반응을 나타내지만, ‘L형 칼슘채널’이 제거된 녹아웃 생쥐는 아무 반응도 나타내지 않는다. 이 현상은 향후 공포 공감 능력이 없는 사이코패스나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환자를 과학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획기적인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의사’는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이 가장 흔하게 선택하는 진로 중 하나이다. 한국전쟁에서 부친이 전사했을 때 겨우 한 살이었던 그는 집안의 종손이었고 어머니에겐 외아들이었다. 그는 어머니와 집안을 위해 모범적이고 공부도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극단적’ 모범생이었다. 대학에 입학할 무렵 주변 어른들이 의대를 가라고 권하였고, 그 역시 어머니를 위해 경기고등학교를 거처 서울의대에 진학했다. 의사가 되는 길을 ‘모범적’으로 밟아 나가던 그에게 생의 전환점이 된 경험은 본과 4학년 때 일어났다.
당시 결핵성 뇌막염으로 머리가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르고 거의 혼수상태에 가까운 어린아이가 그의 담당 환자였는데, 회진을 따라 돌던 어느 날 아침 문득 환자를 돌보는 일이 본인 자신에게 즐거움의 원천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충격을 받았다. 분명 의사로서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상황을 바꾸어주는 것의 소중함을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의 의학으로는 어떻게도 손 쓸 수 없는 환자들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그는 지금까지 개발된 의술을 숙련하여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치료하는 일이 어쩐지 자신의 몫은 아닌 것 같았다. 보람은 있을지 모르지만 일을 통해 기쁨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진료하는 의사보다는 연구하는 의학자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본과 2학년 때 신경해부학 교수로부터 ‘인간의 의식을 조절하는 뇌간 망양체의 매력에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일 자체가 기쁨의 근원이 되어야 한다고 막연히 느껴오던 그에게 신비로운 뇌의 세계를 향한 도전은 포기할 수 없고 후회하지 않을 결정적 선택이었다. 사회적 지위로 보나 경제적 보상으로 보나 의사의 매력이 압도적이던 시절에 그는 미래가 불투명한 기초의학자의 길로 들어섰다.
학부를 졸업한 그가 선택한 대학원은 의대의 생명과학부였다. 면역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1974년 2년 예정으로 뉴욕의 슬로운 케터링 암연구소로 면역학 연수를 떠났다. 한국의 기초의학자로서는 행운인 동시에 모험이었다. 인체 혈액에서 분리한 임파구세포를 이용한 실험을 통해 면역학 관련 논문을 여러 편 쓰는 과정에서 그는 생명연구의 근본이 유전학에 있음을 절감하고, 귀국 대신 코넬대학으로 가서 분자유전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오래된 포유류의 유전학적 미스터리라고 알려진 ‘T/t-complex'를 연구하는 팀에 합류한 그는 지도교수가 ’남들의 3배를 한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로 열정을 바쳤다. 그는 세계적 학술지인 『셀』과 『네이처』에 다섯 편의 논문을 발표하고 2년 반 만에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틈이 날 때마다 코넬대학에 있는 신경생화학분야의 권위자 조동협 박사를 찾아가 신경과학에 대해 경청하곤 하였다. 본과 2학년 때부터 가졌던 뇌 연구에 대한 관심이 그의 마음속에서 한 순간도 사라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유전학에서 거둔 성과는 그로 하여금 쉽게 뇌 연구로 눈을 돌리지 못하게 했다.
그즈음, 노벨상 수상자로 MIT대학 생물학과 교수로 있던 발티모어 박사로부터 교수 초빙을 받는다. 당시 그곳에는 노벨상 수상자가 두 명이나 더 있었다. 그 제의는 그의 귀국을 손꼽아 기다리는 어머니를 향한 마음을 눌러버릴 만큼 강력한 것이었다. 그는 생물학과 조교수 겸 화이트헤드 연구소의 책임연구원으로 부임했다. 자신의 박사학위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T/t-complex’ 내의 모든 유전자들을 분자생물학적으로 분리하여 기능을 증명하는 연구에 밤낮으로 매달렸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 들어 그는 자신의 연구 주제를 실제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과도하게 해석하고 있다는 자각을 하게 된다. 그것은 연구 성과를 웃도는 양의 회의를 불러일으켰다. 그럴수록 뇌 연구에 대한 관심이 강렬하게 솟구쳤다. 그는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신경전달물질인 PLC에 대한 연구로 이 분야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던 이서구 박사의 협조에 힘입어 PLC 중에서 뇌에 많이 발현하는 ‘PLC베타1’과 ‘PLC베타4’를 연구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1989년, 때마침 ‘녹아웃 생쥐’에 대한 새로운 기술개발이 미국의 생물학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PLC베타1’과 ‘PLC베타4’ 유전자의 돌연변이 생쥐를 만드는 일에 착수한 그는 또 한 번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포항공대에서 그를 생명과학과 교수로 초빙하겠다고 제안해온 것이다. 지금까지 그가 수행해온 생명과학 연구는 뇌 과학에 반드시 필요한 분야이긴 했지만 뇌 과학을 정면으로 다루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뇌 과학을 정면으로, 그것도 외국이 아닌 한국에서 하기로 결심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국가에 도움도 되고 인재도 기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1991년 그는 포항공대에 부임했다.
하지만 부임했을 때는 포항공대를 포함해서 어느 대학도 무균 동물실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귀국하면서 데리고 온 생쥐들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무균실이 가동되고 있는 대전 화학연구원의 실험동물연구실에 맡겨졌다가 거의 1년 후에야 포항공대에 정착했다. 국내의 연구기반도 취약했지만 더 큰 문제는 축적된 연구 역량의 부재였다. 녹아웃 생쥐를 만들어 낸 후에도 이를 신경과학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동분서주해야 했다. 대학원생들을 외국으로 파견하여 기술을 배워오게 하였고, 그 자신도 뉴욕의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에서 제공하는 생쥐 행동분석기법에 대한 연구과정에 참여하는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였다. 이렇게 의욕적일 수 있었던 것은 뇌에 대한 현재의 과학적인 이해가 전 세계적으로 아직 초기 단계이므로 아무 열등감 없이 선진국들과 어깨를 겨뤄볼 만하다는 자신감 때문이었다. 1992년 과학기술부의 주관으로 시행된 ‘G7 프로젝트(선도기술개발사업)’의 일환으로 3년간 연구비를 지원받으면서 그의 연구에 탄력이 붙었다. 시설과 장비가 확충되고, 연구 인력이 늘어나면서 뇌에 관한 연구는 비로소 본 궤도에 진입하였다.
2001년 그는 안정적인 기반을 갖추어가던 포항공대를 떠나 KIST로 자리를 옮긴다. MIT대에서 포항공대로 올 때와 마찬가지로 주변에서는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국책연구소 연구원들이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 더 일반적이던 시절에 그는 뇌 연구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 KIST를 선택한 것이다. 당시 KIST의 정년은 포항공대보다 4년이 이른 61세였고, 3년 후 재계약 조건이 붙어있긴 했지만 그에게 단 하나의 잣대는 ‘뇌 연구에 무엇이 도움이 되느냐’였다. 서울에 집중된 다른 기관들과의 융합 연구와 ‘유전자 적중 생쥐’를 필요로 하는 연구 팀에 신속하게 공급해줄 수 있다는 장점과 함께 더 많은 연구시간이 그를 결단하게 만들었다.
서울시 성북구 하월곡동의 KIST 신경과학센터 건물 1층. 알코올로 손을 소독하고 멸균된 실험복과 마스크, 신발, 모자, 장갑을 착용한 후 에어 샤워를 거쳐야 들어갈 수 있는 무균동물실. 온도나 습도, 기압, 낙하균 여부 등을 주기적으로 체크하여 관리하는 이곳도 동물 특유의 악취는 어쩔 수 없다. 고층아파트의 축소판 같은 소형 사육 틀(cage)이 수없이 놓여 있고, 그 안에는 1만여 마리의 생쥐들이 2~3마리씩 나뉘어 들어 있다. 생쥐들마다 머리에 플라스틱 통을 달고 있는 것이 특이한데, 연구원들이 ‘왕관’이라고 부르는 그 속에는 전선가닥이 얽혀 있다. 전극의 한쪽 끝은 생쥐의 뇌 속에 파묻혀 있고, 또 한 쪽은 실험을 할 때 전극으로 연결되어 생쥐의 신경세포에서 발생하는 전기신호를 증폭해 컴퓨터에 저장하는 데 쓰인다. 이러한 기술의 축적은 뇌에 정보가 입력되고 처리되는 메커니즘을 발견하기 위해서다. 이들 중에는 한 마리에 몇 천 만원에서 1억 원을 넘기는 녹아웃 생쥐들도 있다. 25그램에 불과한 생쥐의 무게에 비하면 금값보다 비싼 셈이다. 이는 유전자 변형 생쥐를 만드는 과정의 어려움을 말해준다.
신 박사에 따르면, 가칭 ‘A’유전자가 제거된 생쥐는 적어도 4~5번의 교배를 통해 태어난다고 한다. 먼저 가짜로 바꿔치기한 배아줄기세포를 어미 생쥐의 자궁에 이식하여 정상 쥐와 교배하면 가짜 유전자를 일부 지닌 키메라 생쥐와 정상 생쥐가 태어난다. 이 중에서 키메라 생쥐 수컷을 정상 생쥐 암컷과 교배하면 염색체의 절반에 A유전자가 없는 새끼 쥐(Aa)가 태어난다. 유전자형이 Aa인 쥐끼리 교배하면 AA, Aa, aA, aa의 네 가지 유전자형이 나타나는데, 이중에서 오직 ‘aa' 유전자를 가진 생쥐만이 녹아웃 생쥐라 불린다. 유전자형이 aa인 생쥐끼리 교배시키면 항상 aa인 생쥐가 태어나 두고두고 실험에 이용할 수 있게 되는데, 여기까지의 과정이 결코 녹록치 않다. 그 기간이 2년이 걸리기도 한다. 신 박사가 녹아웃 생쥐를 만드는데 성공했을 때가 가장 극적인 순간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의 과학자 마리오 카페키, 올리버 스미시스, 마틴 에번스는 녹아웃 생쥐를 만드는 기술로 지난 2007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이들이 정작 녹아웃 생쥐를 만들어 학계에 보고한 것은 1989년이다. 이들이 노벨상을 수상하는데 왜 이렇게 긴 세월이 필요했을까. 노벨과학상 수상자들은 보통 30~40대에 새로운 과학적 발견을 하여 이와 관련된 논문을 발표하고 그 업적으로 60~70대에 이르러 노벨상을 수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십 년에 걸친 사회 기여가 수상의 조건이 되는 셈이다. 신희섭 박사도 이들의 ‘사회 기여’를 증명하는 후속 연구 성과를 내는데 이바지한 사람의 하나다.
뇌 세포를 구성하고 유지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담고 있는 뇌 유전자는 30만 개에 이른다. 이들은 개별 뉴런에 각각 약간씩 다른 능력을 부여해서 인간의 다양성을 형성한다. 우리의 운동 감각과 지능은 모두 특정 유전자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이제까지 세계적으로 뇌 세포에서의 기능이 밝혀진 유전자 개수가 500개임을 감안하면, ‘세계 최초’로 15종류를 밝혀낸 신 박사팀의 연구 성과는 실로 놀라운 것이라 하겠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앞서 말한 ‘L형 칼슘채널’을 비롯하여 간질과 운동 마비 증상을 일으키는 ‘PLC베타1’, 몸 안의 생체 시계를 작동시키는 ‘PLC베타4’, 불안증에 관여하는 ‘알파1E’, 학습과 기억능력에 장애가 되는 ‘NCX-2’, 그리고 통증 억제 메커니즘을 조절하는 ‘T형 칼슘채널’ 유전자 등이다. 이들은 수면장애나 학습 및 기억능력 저하, 우울증, 정신분열, 퇴행성 뇌질환 등을 치료하는 길로 이어지게 되는데 특히 지난 2003년에 그의 연구팀이 ‘T형 칼슘채널’을 발견했을 때 10억 달러가 넘는 규모의 세계통증시장을 주도하는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그를 경쟁적으로 만나려 했던 것도 그의 연구결과의 가치를 말해준다. MIT 대학 재임 중이던 40대 초반에 유전자 적중 기술을 처음 접했던 그는 지금까지 다양한 연구 성과를 내면서 인간의 가장 오래된 신비인 뇌의 실체에 근접해 가고 있다.
그는 우리의 뇌를 유전과 환경의 합작품으로 본다. 즉 뇌가 겪어 온 과거의 경험이 뇌의 구조를 바꾸어 현재의 뇌의 작동 방법을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그가 ‘유전적 결정론’이라는 단어 자체를 신뢰하지 않는 것도 환경이 유전적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음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똑똑한 쥐가 미로를 빨리 파악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둔한 쥐도 훈련을 반복하면 미로를 찾는 시간이 짧아진다. 천재로 태어나는 두뇌가 따로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학습과 교육을 통해서 유전적 차이는 극복할 수 있다. 게다가 과거와는 달리 요즘은 ‘좋은 머리’의 개념이 공부에 국한되지 않는다. 운동선수나 연예인, 엔지니어, 사무원, 세일즈맨 등이 제 몫을 능가하는 실력을 발휘하는 것도 머리가 좋은 것에 속한다. 심지어는 마음이 착한 것도 머리가 좋은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새로운 경험을 했을 때 그에 따른 정보를 축적하는 것이 기억이고 그 기억을 토대로 하여 대처법이 달라지는 것을 학습이라고 정의하는 그의 논리에 따르면, 우리가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도 실은 두뇌에 저장된 정보를 바탕으로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뇌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인간의 착한 행동은 결국 ‘마음’ 두뇌가 좋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된다. 인생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삶의 결과가 달라지는 것은 노력의 정도에 비례한다고 그는 믿는다. 이는 ‘타고난 유전자는 내가 더 이상 알 바가 아니다. 그러나 후천적으로 일어나는 일은 내가 손을 쓸 수 있다’는 능동성으로 요약된다. 그가 요가에 심취하고,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음악을 들으며, 아마추어급이지만 알토 섹소폰을 즐겨 부는 것도 평소에 사용하지 않는 부분의 뇌를 자극하기 위한 것이다.
신 박사는 자라면서 증조할머니와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한국전쟁에서 사위 셋과 손자를 잃은 증조할머니는 80세가 넘도록 농사일도 마다하지 않던 실질적인 집안의 가장이었다. 생활에 절도가 있는 분이었는데, 약간 부족할 때 숟가락을 내려놓는 음식에 대한 절제도 그 중 하나였다. 손님이 오면 항상 웃는 낯으로 대하고 성의를 다하는 분으로,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하였다. 신 박사의 어머니는 남편을 잃은 24세 이후로 재혼하지 않고 104세까지 생존한 시할머니를 모시고 두 시동생을 뒷바라지 하면서 외아들을 기른 의연한 분이다. 84세에 이른 지금까지 마음을 아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불교적 수행을 통해 마음을 다스리는 한편, 요가나 꽃꽂이, 서예 등으로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여장부와도 같은 두 분의 절도와 의연한 삶의 태도는 신 박사가 마음 놓고 연구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었다. 어릴 때부터 스스로를 집안의 가장으로 생각해 온 그가 어머니를 두고 오랜 기간의 유학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자신들의 주어진 역경에 굴하거나 생에 함몰되지 않고 인생을 살아나온 두 어른에게서 보고 배운 바였다.
마음이 뇌의 기능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은 뇌 과학이 발달하기 시작한 20여년 사이의 일이다. 그동안 우리는 마음의 처소는 가슴(심장)이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심장 이식을 받고도 환자의 기억이나 정서, 사고체계가 전혀 달라지지 않는 데 비해 뇌에 손상이 생겼을 때는 손상의 부위와 정도에 따라 마음의 변화가 따른다는 연구 결과들이 보고되면서 빠르게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뇌 과학은 유전자 기능의 통제를 통해 마음과 육체의 고통으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만들기를 꿈꾼다. 신 박사는 뇌 연구를 마음 수련과 동일한 의미로 해석한다. 뇌 연구가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수준에 그치지 않고 마음의 작동 과정에 대한 유전자의 역할을 파악함으로써 인간 스스로 자신의 뇌를 컨트롤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데까지 나가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그는 예상한다. 만약 그 단계에 이르게 되면 우리의 인류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영위하게 될 것이다.
그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감각에 대한 뇌의 반응 체계와 경로를 밝혀내는 단계의 연구 기반을 국내에서 구축하려는 꿈을 가지고 있다. MIT 대학의 피코어 연구소를 벤치마킹해 세계에서 손꼽히는 신경과학연구센터를 만들겠다는 구상이 그것이다. 국가과학자 1호로 선정되면서 연간 최고 15억 원의 지원금을 이 구상의 기반을 마련하는데 우선 투자하고 있다. 매년 3억 원에 이르는 생쥐사육비를 아끼지 않는 이유도 연구기반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설사 자신이 그 결과를 보지 못하다고 해도, 이러한 연구 기반 위에서 한국의 뇌 과학이 인류의 삶을 새로운 단계로 진입시키는 성취를 이루어내게 되기를 그는 기대하고 있다.
<신희섭 박사 프로필>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 신경과학센터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밍 대학원 졸업, 미국 코넬 의과대학ㆍ대학원 졸업 |미국 슬로안 케터링 암연구소 선임여구원. MIT 생물학과 조교수ㆍ화이트헤드 연구소 책임연구원. ,Asia-Pacific Regional Committee. International Brain Research Organization(Executive Member). International Behavioral and Neural Genetics Society(President). 한국분자세포생물학회 회장. 한국생명공학연구협의회 회장 역임 |한탄생명과학상. 듀폰과학기술자상. 국민훈장 동백장, 대한민국 최고 과학기술인상 수상, 국가과학자 선정 | Apoptosis regulating gene. US5843773, 1998.12.01., 미국(외 13건) 특허 |<뇌를 알면 행복이 보인다>
-『올 댓 닥터 - 나는 의사다』공저, 이야기공작소,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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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민 향
대담,생쥐의 뇌에서 인간을 추적하다 ㅡ 노과학자 신희섭박사. ㅡ이선생님의' 취재및 집필'의 결과물을 읽고
신희섭 박사의 연구과정과 그 결과물이 쏟아낸 열정의 열매, 사회의 공헌도까지 한국의 과학자 1호가 되실만 합니다
잘 간추려진 글 감명 깊게 잘 읽었습니다 한분의 일생을 세밀하게 잘 정리하시고 취재 하셔서 독자에게 뇌과학에 더
접근하게 하신점 큰 효과를 주셨습니다
'문학 콘텐츠' 시간을 창설 하신다면 용기있게 잘 이끌어 가실 수 있으실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