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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호킹 박사는 자신의 유고집에서 “신은 없다”라는 결론을 내린 소식이 알려져 눈길을 끌고 있으며 “모든 것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설명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먼저 신의 존재 여부에 대해 호킹 박사는 “신은 없다. 하나가 전세계를 지시할 수 없다”고 전달한 상황이다. (원문보기:http://www.sisu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91766) 또한 2010년 출간한 '위대한 설계(The grand design)'에서 신의 존재를 부정했다. 우주의 기원인 '빅뱅'은 신이 아니라 자연현상이라고 강조하며 "우주는 신이 설계한 것이 아니라 저절로 생겨났다", "과학은 신을 불필요하게 만든다"라는 도발적인 주장을 내놓았다. |
호킹박사는 2010년도에도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말을 하였으며, 2018년10월 16일 그의 유고집에서는 자연현상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은근히 말꼬리를 붙혀놓고 있다. '신은 없다'라는 말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또한 칼 세어건의 중력과 관계된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그의 이야기도 함께 언급하여 신의 모습과 존재를 수행의 바른길을 통해 설명해 보고자 한다.
본인의 공부를 통한 견해이기에 항상 충분치 못할 수도 있으나,
본 글을 읽으시는 분들 나름대로 각자 다양한 생각을 가져보길 바라면서
아래와 같이 써내려 가 본다.
아무리 훌륭한 천재 과학자나 영특한 사람이라도 깨달음은 학문과 관계가 없다.
신의 존재는
내가 터득하려는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스스로 깨달아서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다.
수행의 바른길에서는 가장 우선적으로
신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고 몸과 마음으로 인식되어야 한다.
그게 수행의 기본이다.
왜냐면 그게 나를 이끌어 가기때문이다.
(참조 : 수행의 바른길 2편 261p 신의 모습)
일반적으로 종교를 통해 알고 있는 신이란 기복적 미신적 신비적으로 흐르기엔 충분하다.
왜냐면 나의 의식이 종교라는 틀 속에 믿는다는 마음이 이미 한 쪽으로 치우쳐져있기 때문이다.
작금의 현대불교가 부처님 가르침과 얼마나 많이 동떨어져 있는 지 아주 쉽게 알 수 있다.
하지 않아야 될 것과 할 필요도 없는 것들을 참 많이 하고 있다.
1. 부처님 가르침을 올바르게 공부하는 사람은
종교란 인간의 무지와 욕심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인식하게 된다.
왜냐면 바른 수행을 통해 기존 의식에서 벗어나 우주의식을 가지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교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바탕으로 각자 스스로 깨어나
자신의 종교를 올바르게 더 좋게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 부처님 가르침이란 자연의 이치와 법, 진리를 말한다.
종교적인 믿음과 자기 상식을 벗어나게 하는 것, 즉 우주의식을 갖도록 하는 것으로
그게 깨달음이다. 그래서 부처님 가르침을 깨달음의 공부, 지혜의 공부, 믿음의 공부라고 한다.
3. 신이란 자연을 부릴 수 있는 분을 말한다. (자연 N = N', N'', N''',N'''',........N'''''''''')
사람 몸을 가지고 내가 신이라고 하는 사람들을 가끔 본다.
바람이나 파도가 불어오는 방향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면,
떠 있는 구름을 이리저리로 보낼 수 있다면, 그게 자연을 부린다는 것이며
그것은 삼라만상을 창조하신 주인이 바로 신이시기 때문이다.
(참조 : 수행의 바른길 2편 218p - 우주자연의 이치와 실체,
222p - 우주자연 파장시스템에 따른 올바른 수행의 이치도 그림)
수행의 바른길 시리즈 전 편을 통해 항상 강조하는 것은
깨달음의 공부는 보이지 않는 길을 가는 것으로 차원이 다르기에
알 수가 없기에 항상 비유를 통한 표현과 설명을 하였으며,
그것또한 항상 충분치 않음을 항상 조심스럽게 설명하고 있다.
함부로 신이 없다를 자기 주관 속에, 아무런 증명할 펙터도 없이, 대중 앞에 드러낸다면
사는 동안 반드시 힘들고 고달프며 아프다. 인간이 깨달아야 하는 이유다.
인간은 아무리 머리가 뛰어나고 훌륭하다해도 99프로까지 갈 수 있지만
나머지 1프로는 자연의 이치를 알고 순응하지 않으면 결코 불가능하다.
알고 나면 그 1프로가 전체를 좌지우지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색(0.000.....0001)즉시공(99.999....9999)은 공즉시색.
현상계에서 사는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것은
색이 99.999....9999이고 공이 0.000.....0001 이다.
즉 보이지 않는 것은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이다.
보이지 않는 그것을 찾고자 생각하고 노력하는 것이 공사상이며,
그것을 통해 올바른 길을 찾아가는 것이 중도다.
그게 부처님 가르침이다.
호킹박사가 2010년도에도 신의 존재는 없다고만 하였으나
이번에는 신은 없으나 자연 법칙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설명될 수 있다고 밝힌다.
자연의 법칙에 따라 설명할 수 있다면
신의 존재를 표현할 수 있다는 말로도 해석할 수도 있다.
과학자답지 않은 참 애매모호한 표현이다.
과학자는 과학자로서 본분을 다하면 참 좋겠지만 마치 선지자라도 된 것처럼
자기 생각 속에 인간 삶의 실체인 신에 대한 무례함과 오만함을 나타낸다면
반드시 한 만큼 나에게 돌아온다. 그래서 수행은 반드시 반복된 체험과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올바른 수행의 과정에서는 즉 자연의 인도(빛 혹은 천사, 보살의 인도)로 이끌어지게 되며
그릇된 말과 생각과 행동은 여지없이 순간순간 즉시즉시 그때그때 고꾸라지게 만든다.
알면 손바닥 뒤집기 만큼 쉬운 것이나,
아무리 영특한 천재라할지라도, 모르면 평생가도 알 길이 없다.
그게 수행이며 깨달음의 공부이며, 믿음의 길이다.
삶이 힘들거나 어렵고 아프게 된다는 사실을 진실로 인식할 수 있다면
결코 그런 말을 뱉을 수 없을 것이다.
불교의 부처님은 불의 파자의미로 보았을 때 사람이 아니신 분이라는 것이며,
하느님은 가장 큰 의미로서의 표현한 것이며 하나님이란 오직 한 분이란 것으로 경칭이다.
부처님 하느님 하나님 공히 한국말로서만이 최고의 경칭이다.
그 외 우리가 알고 있는 다른 경칭들도 많이 있다.
하나의 원기둥을 각각 다른 면에서 보고 각기 다른 경칭을 붙히고 있는 것이다.
똑같이 하나의 이치에서 나온다는 말이다
그것을 우리나라말로
과거에는 옥상황제 천신 등으로 불려져 왔으며
전체를 하나로 말할 때 그냥 신이라고 하는 것이다.
수행의 바른길 시리즈 다섯 편을 통해 줄곧 강조하는 것은
부처님(하느님 하나님 등)은 이 세상 어디에도 현존하시며 부지불식간 나타나심은
수행의 바른길을 통해 체험할 수 있게 된다.
일반적으로 신에 대한 개념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올바르게 인식되어 있지 않은 것이
종교를 기복적 미신적 신비적으로 몰고 가며,
수많은 종교가들이 그것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부와 명예와 자리다툼에 연연하며
사회적 도덕성의 파렴치함의 극한을 지금 현실 속에서도 그러한 취부들을 여지없이 드러낸다.
모든 종교에서 놓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 '체득'이다.
불법승 혹은 삼위일체의 반복된 체험을 통한 자기화와 실용화를 말한다.
(참조 : 수행의 바른길 4편 98p, 올바른 수행의 길 - 자기와와 실용화)
서양의 많은 과학자들도 동양의 사상에 심취되기도 하나,
체득을 통한 자기화와 실용화의 과정은 거의 힘들기에
신은 없다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나
모르면 모른다 소리를 하지 않는다.
부처님 자체를 하나의 원으로 표현하며,
부처님 자체가 자연의 이치이며 법이고 진리다.
불교의 종파에 따른 로고들에서도 그것을 알 수있다.
즉 신이시라는 말이며,
그렇기때문에 수행은 '믿음'으로 가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이며
반드시 일상사를 통해 '반복된 체험'이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부처님은 신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불교 수행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불성'을 모른다는 것이며,
불성화의 이치를 아직 몸과 마음으로 인식하지 못해 세월을 가더라도
바른 수행을 시작하지 못한 것이 된다.
왜냐면 수행을 이끄는 실체가 바로 부처님이시며,
부처님의 빛이며 사랑이기 때문이다. 즉 신의 빛을 말한다.
경전을 읽거나 외우거나 혹은 수많은 명상이나 호흡 수행법을 통해
뭔가를 한평생 행한다는 것은
그 본질과 실체를 놓고 볼 때 깨달음과 아무 관계가 없다.
왜냐면 일상사를 통해 잘못되고 부족한 것을 고쳐가는 것이 수행이며,
그 속에서 믿음과 사랑을 키워서 건강과 행복을 찾아가는 것,
그게 인간 삶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심오하고 고차원적으로 가려는 것이 항상 문제다.
누구는 호흡수련하면서 한 호흡이 길어야 되느니,
게다가 한 가정에서 부모와 어린 자식 할 것없이
경쟁하듯이 호흡을 길게 하려는 것을 보기도 한다.
또는 온 몸의 혈을 유통시켜야 되느니, 뇌호흡을 하면 좋다느니,
하물며 천목을 뜨게 한다고 하여 어린애때 부터
눈을 가려 훈련을 시키는가 하면 무슨 음식이 천목과 관계된다는 등등 ...
전부 깨달음과 상관없다고 보면 된다.
전부 다 스스로 어렵고 힘들게 만들며
아프지 않으면 천만 다행이다.
시간이 되고 여유가 있어 그것들을 통해 즐거운 마음을 가졌다면 다행일까,
수많은 표현과 설명이 난무한다.
세상 모든 것들은 있을 게 있는 것이고, 나올 게 나오게 되어있다.
즉 생성, 변화, 소멸이라는 자연의 순환 시스템에 의해
그렇게 되어왔으며, 그렇게 되고 있고, 그렇게 될 것이다라는 말이다.
즉 자연스럽게 그냥 하면 될 것을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반드시 불편하고 어렵게 돌아오게 된다는 말이다.
칼 세이건
"신이라는 말이 우주를 지배하는 물리적인 법칙을 말한다면, 신은 존재한다.
그러나 신은 우리에게 정서적 만족을 주지 않는다.
중력의 법칙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또한 호킹박사가 말하는 신이 없다는 것과 중력을 부처님 가르침과
동일한 것으로 온라인상에서 비교 설명하려는 것을 볼 수도 있었는 데
그것은 전혀 맞지 않다. 우선 법비를 보고 이해할 수 있다면 즉시 알아차리게 된다.
법비란 불교의 용어이지만 종교와 상관없이 누구라도 볼 수 있는 것이다.
1. 법비
부처님의 빛이며, 자연의 사랑이다. 그것은 비바람이 불든, 집안에서나 버스나 비행기 등 실내외 장소 불문하고 아무 영향을 받지 않는다. 위로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하고 또한 그 모양 또한 다양하다. 즉 우리가 알고 있는 시공간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다. 설사 그것을 볼 수있다하더라도 그것은 사는 동안 수행의 과정에서 위로나 위안이 되는 것이지 현재 나의 수행의 수준과 정도를 말하기에는 충분하지 못하다.
(참조 : 4편 87p, 명상과 믿음의 상관관계 - 법비)
2. 자연 파장 체험(이끄는 실체 : 부처님, 빛, 사랑)
계정혜의 올바른 수행을 통해 반드시 반복된 체험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참조 : 수행의 바른길 2편 41p, 계정혜를 통한 수행의 이해 및 실제적 체험,
4편 34p, 계정혜의 실천요령)
결언,
누군가 아무리 영특하고 존경받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수행의 바른길에서는 그 사람의 삶의 과정과 마지막을 우선적으로 본다.
수행의 바른길이란
인간은 사는 동안 건강하고 아프지 않고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면서
사랑을 쌓아가다 그 기운이 다하면 가게 되는데,
그러한 자연의 이치에 따라 순응하면서
오래동안 잘사는 것이다.
수 세기에 걸쳐 신을 공개적으로 부정한 철학자나 과학자 그 누구라도,
아무리 사회에 공헌한 업적이 지대하다 할지라도,
그들의 삶이 평탄치 못함은 결코 우연이 될 수없을 것이다.
■수행의 바른길 시리즈 책(저자:김정성, 맑은샘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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