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블록 위의 자동차사고
길이 있습니다. 걸을 수 있는 길입니다. 보도블록으로 포장되어 있고, 차도와는 엄연히 다릅니다. 일정 높이 위에 포장되어 있고, 가로수가 심어져 있습니다. 차가 다니는 길과는 다른 길입니다. 그 길을 우리는 오랫동안 걸었습니다. 이 길은 누가봐도 안전하다는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 날도 여느 평범한 아침이었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일상에 맞추어 회사를 가거나, 학교를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차가 인도를 덮쳤습니다. 멀쩡한 인도에 괴상한 차 하나가 올라와서 우리를 쓰러뜨렸습니다.
억울합니다. 우리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궤도를 벗어난 건 나를 향해 돌진한 자동차입니다. 도대체 자동차 운전자는 무슨 생각으로 인도로 뛰어든 걸까요? 나는 학교에 가야하는데 갈 수가 없습니다. 친구를 만나기도 힘듭니다. 온몸이 아프고 자꾸 눈물이 흐릅니다.
자동차 운전자가 찾아왔습니다. "미안해. 잘못했어. 내 잘못이야."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사과를 합니다. "그러게 왜 그랬어? 왜 나를 이렇게 만든거야?"라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남자는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을 뿐입니다.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는 남자를 바라보자 더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몸을 흔들면서 더 큰소리를 질렀습니다. "왜! 왜 아무 잘못도 없는 나를 이렇게 힘들게 만들어?"라며 악을 썼습니다.
그러자 남자가 발끈합니다. "미안하다고! 그래서 아까 미안하다고 했잖아! 너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나 이제부터 아주 그냥 보도블록으로만 운전한다!" 남자가 오히려 화를 냅니다. 게다가 남자 뒤에 서있던 남자의 엄마가 달려 나오며 얘기합니다. "이봐! 그러게 왜 그렇게 걸어가고 있었어? 우리 애가 사고를 낸 것은 네 책임도 있어! 네가 전후 좌우 잘 살피면서 차를 피했으면 우리 애가 사고 안 냈을 거 아니야! 너 때문에 우리 애는 가해자 됐어. 어쩔 거야. 우리 애 이렇게 된 거 다 네 책임이야!"
진짜 내 잘못인가요?
이상합니다. 분명히 아픈 건 난데, 사람들이 나를 손가락질 합니다. 아직 상처가 아물지도 않았는데, 훌훌 털고 일어나랍니다. 모든 건 내 의지에 달렸답니다. 하루에도 여러 번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숨이 차고, 가슴이 답답해서 미칠 지경입니다. 그런데 그런 건 다 내 마음이 약해서 생기는 거랍니다.
억울하고 분하지만, 자꾸 그런 말을 듣다보니 마음 한구석에서는 진짜? 하는 생각도 듭니다. 내가 그 길을 걸어간 게 잘못인가? 혹은, 그 길이 진짜 인도가 아니었나? 이제까지 내가 인도라고 생각해왔던 게 착각이었나? 아니면, 그 날만 내가 발을 헛디뎌서 차도로 걸은 건가?
하긴 내가 10분만 빨리 나갔어도, 그 사고는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길로 가지 않고, 멀리 돌아갔거나, 차도를 바라보면서 자동차가 인도로 뛰어들지 않을까? 걱정하는 습관이 있었다면 그 사고를 피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엄연히 이 사고는 우리의 잘못이 아닙니다. 보행자 통로를 보행한 것을 두고 잘못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이상한겁니다. 물론, 그 자동차가 급발진을 해서 튀어 올라온 것인지, 운전자가 음주운전을 한 것인지, 혹은 더 큰 자동차에 밀려서 어쩔 수 없이 보행자 통로에 올라오게 된 일인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엄연한 진실은 보행자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도 그런것 입니다. 남편이 외도를 했다면, 그것은 남편의 잘못입니다. 결혼이라는 독점 계약을 위반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원인은 부인에게도 있다고도 주장합니다. 물론, 부인에게도 잘못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세심한 배려가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외도라는 행동이 있다면, 그것은 외도를 한 사람이 잘못입니다.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단지 상처 받았을 뿐입니다.
당신은 잘못한 사람이 아닙니다. 물론, 사람들이 당신의 꼬투리를 잡을 수도 있습니다. 원인제공 어쩌고 하는 얘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잘못한 것도 있을 수 있습니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고, 상호작용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운 것이 외로워서이고, 그 이유가 부인이 냉정한 사람이라는 주장이 있다 칩시다.
그런데 앞서 말한 그 논리,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고, 상호작용이라는 논리를 또 적용시켜봅니다. 그러면, 부인이 냉정해진 것은 남편 탓입니다. 남편이 공감을 안 해 줘서 부인이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또 그 논리를 더하면, 남편이 공감 못해준 게 부인 탓이며, 그렇게 된 건 남편 탓이고. 이 과정을 무한 반복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결국 과거 탓, 남 탓, 부모 탓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부모 탓, 그 부모, 조상 탓을 하면서 우리는 끊임없는 싸움에 빠져들 것입니다. 원인을 찾는 작업은 다툼을 만들고, 미움을 만들어냅니다. 내 탓이 되면 내가 미울 것이고, 남편이 원인이면 남편이 미울 것입니다. 시어머니의 잘못된 육아 때문이면 시어머니가 미울 것이고, 대한민국의 음주문화가 원인이면 대한민국이 미울 것입니다.
문제는 미움은 우리에게 상처를 남긴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주 아주 매운 맛과 같습니다. 미운 감정이 우리 마음에 남아 우리의 심장을 시도 때도 없이 뛰게 하고, 얼굴을 화끈거리게 합니다. 입에서 독한 말이 나가게 하고, 피부를 주름지게 합니다. 우리 탓도 아니고, 우린 잘못한 게 아닌데, 상처를 입는 것입니다.
우린 이제 행복해지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억울한 일입니다. 당신은 불행해질 이유가 없습니다. 더 이상 상처에 아파하지 말아야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야합니다. 이제는 건강해져야하고, 행복해져야합니다. 그것을 최우선의 목표로 두어야 할 것입니다.
앞으로 나는 9장의 편지를 더 보낼 것 입니다. 그 작업을 통해서 나는 당신을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하나 하나 되짚어 볼 것입니다. 물론, 앞으로 당신을 비난하거나, 책임을 전가하는 일 같은 건 발생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이 작업을 해왔고, 많은 성공사례를 알고 있습니다.
만약에 약간의 여유가 있다면, '그럼, 앞으로 나는 뭘 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행복해지고 싶다.'라고 중얼거리기 바랍니다. 소리를 내서 당신 귀가 그 소리를 듣도록 하면 됩니다. "
'이게 도대체 무슨 소용이람?', '이렇게 한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될까?'라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괜찮습니다. 그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질문입니다. 이제 메일 한 장 읽어봤는데 무슨 큰 변화가 생기겠습니까. 그저, '나는 이제 행복해지고 싶다.'라고 중얼거리면서 다음 메일을 기다리면 됩니다.
윤홍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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