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준 <비화밀교>
이청준이 1985년 발표한 <비화밀교>는 독특한 소재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에 대한 대립적 시선을 그려낸다.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가시적 현상 뿐 아니라 그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보이지 않은 힘의 영향을 받는다는 전제 속에서 소설은 전개된다. 그리고 그 보이지 않는 힘이 때론 가시적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라는 점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은폐되고 숨겨진 신비적 힘의 강조는 구체적인 사실의 힘을 의도적으로 축소시키려는 의도를 담고있을 수 있다. 추상적인 것에 대한 신비화를 통해 타자를 지배하는 수많은 상징적 시도는 사실에 대한 축소를 통해 권력의 지속을 유지하는 행위일 수도 있는 것이다.
소설가인 나는 선배이자 은사인 민속학자 정선생과 함께 새해맞이 비의적 행사에 참가하게 된다. 동향인 두 사람의 고향에 있는 산 정상에서, 참가한 사람들이 손에 횃불을 들고 가는 해와 오는 해를 지켜보는 행사였다. 행사는 특별하게 주도하는 사람없이 모두가 손에 횃불을 들고 침묵과 때론 가벼운 인사와 함께 서로에 대한 일체감을 확인하면서 개인적인 소망을 기원하는 것이다. 추운 겨울 날 깜깜한 밤을 밝히는 수많은 횃불의 출렁거림만으로도 그 모습은 비의적 색채를 다분히 표출한다고 할 수 있었다.
행사를 초대한 정선생은 이 행사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우선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일상의 신분이나 지위에 대한 어떤 편견없이 만나 행사가 끝나면 이곳에 대한 기억을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그 말 속에는 얼핏 평등적이고 대동적인 느낌을 발견하게 된다. “이곳에서 태어나 오늘 밤일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곳으로 올라와 어울리니까 좋은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나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산 아래서 지녀온 신분이나 입장을 아무 구별없이 서로 똑같은 인간으로....” 산에 모인 사람들은 일종의 소망을 갖고 모인 사람들이다. 그들의 소망은 각자 다르겠지만 각자의 간절함을 동일한 방식으로 기원하는 것이다.
정선생은 이 행사의 의미를 공동체의 존재를 은밀하게 지속시켜 주는 힘의 일종이라고 규정한다. 그가 개인적 경험에서 발견했듯이, 행사의 참석을 통하여 “소망이나 감동을 통해 나는 용서를 받았다는” 것이다. 일상에서 타인에게 경원시되고 미움을 받는 존재들도 이 행사 속에서 미움을 주는 대상과 함께 어울리면서 일종의 해원의 과정을 거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시적 세계의 모순이 어떤 특정한 행동의 변화를 통해서 해결될 수 없다면 이러한 배후의 질서를 작동시켜 그 갈등의 강도를 완화시켜주는 또한 의미가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어차피 한번의 폭발로 모든 소망이 실현될 수 없다면 내일의 세상에도 꿈만은 줄기차게 이어져가야 하니까”
하지만 정선생의 이러한 시각은 소설가인 나에게는 정당하게 인식되지 않는다. 그의 말은 “타인이나 세상과 무관한 증거, 그 은밀스럽고 이기적인 자기 증거의 기다림”에 불과한 것이다. 그것은 가시적 현상이 질서 뒤에 숨어있는 또 하나의 힘과 그 힘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현실의 사실을 은폐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정선생은 섣부르게 무언가를 가시화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산 속의 샘물처럼 ‘숨어 기다리는 소망의 힘’이 중요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배후의 것을 과장하는 일은 현실에 대한 왜곡이자 망각일 수 있다.
그러기에 나는 항변한다. “소설질이 무엇인가, (......) 그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의 세계와 삶의 현상들에 대해 인간정신의 밝은 빛을 쏘아 비춰 그것을 가시적 삶의 질서로 끌어들이는 노릇”이 소설가인 자신의 역할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산 정상에서 벌어지는 신비스런 비화밀교는 은폐하면서도 위로받고 싶은 현실의 권력자들에게 기만적인 정신적 위로를 제공하면서 공동체의 결합이 아니라 고통의 지속을 허용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비화밀교의 현장에서도 약간의 균열이 이어진다. 그것은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일련의 과정에 대해 반발하는 세력의 움직임이 감지된 것이다. 정선생은 그러한 반발을 불만스러워했지만 어쩌면 그러한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각자의 개인적 소망의 실현만을 꿈꾸고 현실의 갈등의 실제를 부인하는 행사의 지속은 결국 정신적 거짓위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결속과 연대는 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사실이 진정 모두에게 가치있는 방향으로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비적 행사의 존재는 어쩌면 현실을 왜곡시키면서 모두를 청맹과니로 만들 뿐이다. “하나의 사실이나 힘의 질서라는 것은 그 증거의 질이 지나치게 억제될 때 그것의 존재나 질서 자체를 궁극적인 덕목으로 지탱해 나가려는 어떤 정신적인 조작의 틀도 무용한 것으로 만들어 버릴 수가 있으니까. 그게 이를테면 폭발인 것이었다.”
이 작품의 발표연대가 1985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시대적 상황에 맞춰 새로운 해석도 가미하고 싶다. 전두환의 5공화국은 정치적 폭력을 통해 권력을 장악한 후 사람들에게 일종의 쾌락적 요소들을 허용하고 즐기게 했다. 그것은 일시적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었고 사회적 반발을 완화시키는 효과도 보여주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진실은 은폐될 수 없었다. <비회밀교>는 사실에 대한 명백한 드러남이 없이 지속적으로 은폐가 유지될 때 결국 어떤 폭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냉정하게 표출하고 있다. 우리의 객관적 인식을 방해하는 모든 의례는 극복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현실에 대한 인식을 방해한다면 일시적인 만족을 준다할지라도 그것은 극복의 대상이 될 뿐이다.
첫댓글 소설의 시대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