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관악산, 자하동천과 케이블능선 길
1. 일자: 2023. 7. 29 (토)
2. 산: 관악산
3. 행로와 시간
[정부청사역(06:55) ~ 과천향교(07:10) ~ (자하동천) ~ 관악사 갈림(08:02) ~ 연주암(08:23~30) ~ 정상(08:47) ~ 석탑 바위(09:05~17) ~ 연주암(09:20) ~ (케이블능선) ~ (좌측 지계곡) ~ 강씨묘(10:40) ~ 정부청사역(10:50) / 8.64km]
기영과 관악산을 함께 오르기로 했는데, 몸이 안 좋아 못 간다는 연락을 새벽에 받고 망설이다 집을 나선다. 산에 가는 것 말고 더 좋은 일이 떠오르지 않는다. 게다가 산이란 게 몸이 멀어지면 마음은 더 멀어지게 마련이다. 호수 트레킹에 빠져 산과 이별하게 될까 두려웠다.
최근 심산의 '인문산행'을 읽고 있다. 관악산 편의 제목이 '자하동천과 바위글씨를 찾아서' 이다. 평소 선호하지 않는 코스이나 혹 책에서 말하는 역사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까하여 계곡 길을 따라 걷는다. 초입 풍부하던 수량은 오를수록 줄어들고, 바위글씨는 찾기 어렵다. 변화 없고 긴 계곡 오름에서 왜 내가 이곳으로 오르는 걸 내켜하지 않음을 뒤늦게 생각해 낸다. 기억이란 망각되기 마련이다.
관악사 갈림에서 붉은 연등을 본다. 녹과 적, 색의 조화가 멋지다. 마지막 긴 오르막을 치고 올라 연주암 절 마당에 선다. 관음전 난간에서 건너편 선방을 바라보는 풍경이 무척 좋았는데, 웃자란 나무 탓에 기억 속 멋진 모습은 사라졌다.
팔봉을 지나 안양으로 하산할까 하다가, 온 김에 정상에 오르기로 한다. 0.5km, 15분의 발품은 날 관악산 정상에 서게 했다. 오르며 전망대에서 올려다 본 연주대의 풍경, 바위와 연등과 암자의 앙상블은 지친 눈을 확 뜨게 만들만큼 멋졌다.
정상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또 잠시 망설인다. 어디로 하산 할 것인가? 선택지가 많다는 건 머리에 부하를 가중시킨다. 일단 다시 연주암으로 내려선다. 삼층 석탑을 찾아 보자는 심산으로 바위를 올라서는데 공사 중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바라보는 관악의 정상 부근 모습은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풍경으로 나를 안내한다. 통신탑과 기상청 돔 그리고 연주대가 한 눈에 들어온다. 그 중심에는 푸른 산이 있다. 새롭고도 멋졌다.
연주대 관음전을 돌아 케이블능선(자하능선)에 들어선다. 여름 햇살이 길에 땀을 떨군다. 덥다. 무척 덥다. 케이블능선은 늘 들어와서야 바위 투성이의 만만치 않은 암릉의 연속임을 기억해 낸다. 처음엔 케이블카와 비행기가 지나는 풍경에 이끌려 걷다, 이내 지쳐간다. 중간에 문원폭포로 향하는 길은 버리고 가다 연주암 지나 50분 쯤 걸었을까, 좌측으로 못 보던 길 안내가 있어 빨리듯 그리고 들어선다. 등로는 희미하고, 거미줄에 얽기고, 물것들의 습격에 지쳐갈 즈음 이정표와 만난다. 과천 둘레길. 반가운 마음과 이 길의 끝은 어디일까 하는 호기심의 힘을 빌어 걷는다. 낯익은 강씨 묘가 나타난다. 이내 정부청사의 여러 건물들이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낸다. 그렇구나. 새로운 건 없었다. 또 아둔한 내 기억에 속았다.
여름 관악 등산은 힙겨웠다.
< 에필로그 >
관악산 하산 시 자주 들리던 음식점의 문을 연다. 이곳을 찾은 이래 처음으로 손님이 나 혼자다. 11시가 지났는데, 그리고 나름 맛집이라 소문나서 늘 붐비던 곳인데.... 하기야 휴일에는 등산객이 주 고객인데, 오늘 같이 더운 날 누가 산을 찾겠는가. 너무 시원한 에어컨이 부담스러웠다.
기억이란 믿을 게 못 된다. 잊혀지고, 왜곡하는 것 말고도 확대 해석하는 경향이 크다. 오늘 산에서의 과천계곡, 케이블능선 길이 그랬다.
그래도 하산 후 찾은 이 집의 통돼지 김치찌개 맛은 내 기억이 가끔은 정확하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음식점을 나와 집으로 향하는 길, 한여름 태양의 열기가 밑에서부터 올라온다. 조금 일찍 집을 나서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