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이가 해사하게 웃으며 들어왔다.
준이는 아침마다 와서 얼굴을 보여준다.
어떨 때는 물을 마시거나, 홀스, 비타민을 달라고 해서 먹기도 한다.
하얀 티셔츠를 되반사한 얼굴이 해사해졌다.
거의 1년여 만인것 같아요. 맑아진 화색이.
나도 덩달아 몸이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선생님, 저요. 어제 하루종일 담배 안폈어요. 저 담배 끊을 수있어요. 엄마가요,
엄마도 담배는 피지 말래요, 여기 있잖아요, (왼손 팔목의 문신을 보여주며) 문신은 해도 된데요.
용 문신도 된데요"
빠르고 급하게 말을 쏟아내며, 1교시 쉬겠다고 하는 것이다.
준이는 침상안정을 한 적이 없기에 이제 2학기 시작인데, 잠자코 '입실증'을 내주었다.
준이는 1교시에 쉬러 오지 않았다.
교실 앞에 까지 갔으나, 그냥 왔다가, 수업이 끝난 다음에, 미술선생님에게 아이가 안정하고 싶다고 해서 기다렸는데 오지 않았다고 말씀드리니, 미술선생님은 아이가 아예 수업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당연히 '침상안정'에 대한 사전에 얘기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 해사한 모습에 기쁘던 마음이어선지 더 씁쓸해진다.
아니, 1분 뒤에 딴 짓할려고 거짓말을 하다니 말이다.
어쩌지, 이제 3학년이고, 2학기인데말이다.
6교시에 1학년 다혜와 다정이가 생글생글거리며 팔짱을 끼고 왔다.
'생리통'이라며 다혜가 쉬겠다고 한다.
입술을 빨갛게 칠하고 볼 연지 마저 붉게 칠한 것이 아직 풋풋한 소녀들의 장난기와 어울려 그도 이쁘다.
7교시 안정할려니 미리 '입실증'을 원하는 다정이에게 한 시간뒤에 또 컨디션이 나아질 수 있으니 지켜보자고 하고, 다혜만 입실증을 주어 보냈다.
6교시에 다혜도 나타나지 않았다.
한 참 시간이 흐른 뒤 다혜 대신에 자유학기부장님이 나타나셨다.
다혜는 '입실증'을 친구에게 맡겨놓고는 여기 쉬고있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선생님 어떡해요. 오늘 자유학기제 첫 날인데....
담임선생님들이 아이들 찾으러 다니느라 , ...
애들이 없어져요"
이렇게 말씀하시는 자유학기제 부장님이 울상을 지으니 얼굴의 기미와 다크 서클이 더 진해진다.
며칠 전에 고등학교 다니는 큰 아들 이야기를 전해 준 여동생의 이야기로 마음이 짐짐해진 차에 마음이 무겁다.
동생: 운수가 제 동생은 전학시키라잖어, 저는 공부 포기했다고, "
나 " 아니 그 학교 배정받고 좋아했잖아, 대한민국 명문 고등학교고, 보니 좋은 학교라고"
동생 : 그러게 말야, 언니, 그게 제가 중학교를 잘못 만나서 그랬다고, 동생을 전학시키래잖아,
글쎄, 운제 졸업반인데, 여지껏 동네 뒷산 다니고 혁신학교라고 놀기만 하다가, 내년에 입학할 학교는
1년 자유학기제 하는 학교라는 거지, ... 운수가 제 동생은 그 학교 보내지 말라고 하는 거지,
옆에 신신중학교는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그 학교 보내라는 거야, "
아이들은 제들이 놀면서, 놀겠다고 우기고, 눈에 보이는 실존재의 선생님 탓을 할 것이다.
우리들이 그랬다.
공부 안 가르쳐주고 맨날 '헌드레드 마일스, 헌드레드 마일스' 창밖에서 불어오는 선들 바람에 맞춰서
배짱이처럼 노래만 부른 기억은 학교가 우리를 망가지게 했다고, 동창회때마다 학교 탓을 하게 되는 것이다.
실업계 여상간 것을 후회한 것이다.
풍남동 학교 옆에 오목교가 있었는데, 그 공원에 가지 말래서 한 번을 가 본적이 없는 어중띠기 평범한
나는, 머리가 비상한 그 한창 때에 주산부기타자에 적응을 못하고,그렇다고 놀지도 못해서 억울함까지 있었다.
시골 모범생들이 모였기에 더했다.
...................
벌써 아침 여섯시가 넘었다.
40여일 비가 오지 않아, 집 앞 둠벙의 물은 빼빼 마르고, 동네 앞 저수지는 가운데 섬까지 걸어갈 수가 있게 되었다.
백일홍에 물을 주러 나가야겠다.
저절로 숲이 되어 꽃무리를 이루는 백일홍 인줄 알았는데, 올해는 간신히 피어난 몇 그루에 공을 들이고 있다.
씨을 받기 위해서다.
이틀 뒤에 태풍이 몰려온다.
우리 시절, 학교 바깥엔 집안에 꽃 마당이 있었고 마을이 있었고, 너른 들판과 산이 펼쳐져 있었다.
요즘 아이들에겐 자동차 달리는 도로를 건너면 PC방과 대기업 편의점과 전자담배 가게가 줄지어 늘어서있다.
보드랍고 어리디 어린 유아원, 유치원 아이들이 실내에서 열 몇 명씩 한 선생님의 손길에 맡겨져 자라고 있다.
이 아이들은 어떠한 세계를 지금 경험하고 있는가?
아, 태풍이 겁난다.
태풍 솔릭은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