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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왕중 왕 다윗 (천보산기도원) 2019년 1월21일(월)
말 씀 ; 사무엘상16;1~5 안산 빛나교회 유재명 목사
나는 어떻게 살 것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써 어떤 복을 받을 것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써 어떻게 살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저 개인적으로도 교회를 개척한지가 30년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처음부터 목회를 잘못배웠다 싶었다.
예를 들자면 제가 개척을 시작할 때 무조건 교회를 키우면 훌륭한 목사인 줄 알았다.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세상사는 기준으로 교회를 키우려했다.
그런데 정작 돌이켜보니 이것이 아닐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여러분은 자식을 어떻게 키웠으면 좋겠습니까? 물으면
종종 성경적으로 보면 “모세 같이요, 다윗 같이요, 솔로몬 같이요” 하며 종종 이런 대답을 한다.
욕심을 안가질 수는 없다.
어떤 목사 후보생이 나도 누구같이 되었으면 좋겠다 기도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하나님! 나 아브라함 같은 목사 되게 해주세요!” 그랬더니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시고 답하시기를 “너 75세까지 자식이 없어도 되겠느냐?”물으셨다. 그래서 “하나님! 저 자식이 없으면 안 돼요”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나 모세 같은 목사 되게 해주세요?” 그랬더니
하나님이 들으시고 “너 광야에서 40년 살 수 있갰느냐?” 물으셨다.
그래서 “하나님! 저 외로운 것 못 참습니다” 했더니
하나님이 “그래, 그것도 안 되겠구나”하셨다.
그래서 이번에는 “저 다윗 같은 목사 되게 해주세요!”했더니
하나님이 대답하시기를 “너 다윗이 사울한테 13년 쫒겨 다닌 것처럼 그렇게 쫒겨다녀도 되겠느냐?”물으셨다.
그는 그것이 싫어서 “하나님 저 쫒겨 다니는 것 싫습니다”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하나님! 저 바울 같은 목사 되게 해주세요!” 했더니
하나님이 들으시고 “너 장가 안 가도 되곘느냐?” 물으셨다고 한다.
후보생이 대답하기를 “하나님! 저 장가는 가야 되겠습니다”고 했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 이야기를 하다 보니 더 말할 것이 없었다.
“하나님! 저 그러면 누구처럼 되어야 해요?” 그랬더니
하나님이 딱 한 마디로 말씀하시기를 “너는 너처럼 되라”고 하셨다고 한다.
우리는 항상 누구와 비교하면서 스스로 무너지면서 힘들어하는 것이 아닌가!
“너는 너처럼 되라!”
여러분은 여러분을 잘 압니다.
내 안에는 내가 아는 나 말고 하나님만이 아는 내가 있다.
내 안에는, 내 삶에는, 내가 원하는 나 말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내가 담겨있다.
아브람 안에 아브라함이 담겨있다.
사울 안에 바울이 담겨있고 시몬 안에 베드로가 담겨있다.
이것을 우리는 모른다.
아브람 안에 아브라함이 담겨있다.
그러면 아브람은 누구고 아브라함은 누구인가
아브람은 개인인데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브라함이다. 아 멘!
그래서 아브라함의 삶을 들여다보면
아브람과 하나님이 끊임없이 씨름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아브람은 아브람의 자리에서 늘 개인으로 “왜 자식을 주지 않아요! 나 그만 둘래요” 한다.
그런데 하나님이 처음부터 갈데아 우르에서 불러낼 때 아브라함의 기준을 가지고 그를 만들어간다.
아브람이 스스로 개인 안에서 늘 판단하고 늘 순종할 때 너는 아브라함이 되어야 한다는 초점을 맞추어 놓고 간다는 것이다.
마치 우리가 자식을 기를 때와 마찬가지다.
사춘기 때 자식을 기르다보면 자식들은 공부를 안 한다.
그런데 엄마는 자식에게 공부를 하라고 그런다.
왜냐면 부모로써 앞선 인생을 살아보니까 공부가 전부는 아니라 해도 그래도 공부를 많이 하면 그래도 잘 될 수 있는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부해라! 공부해라!“ 하지만 자식들에게는 공부보다 얼마나 재미있는 것이 많은지 모른다.
부모가 자식과 늘 씨름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부모를 미래를 그려놓고 너는 이래야 된다 하며 늘 자식과 씨름을 한다.
그래서 자식들은 오늘의 나와 내일의 나가 늘 충돌한다.
아브람 안에 아브라함이 담겨있다.
아브람을 갈데아 우르에서 불러내신 것은 아브라함이 원하는 것을 주시기 위해서다.
아브람이 원하는 것을 주시기 위해서 라면 아브람을 갈데아 우르에서 불러낼 이유가 없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람을 갈데아 우르에서 아브람을 불러내셨다.
이것은 아브람이 원하는 것을 주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아브라함을 섭리하시기 위해 불러내신 것이다.
아브라함이 원하는 것을 주시기 위해서 라면 하나님에게는 길고긴 25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에게 무엇을 주려면 준비가 필요하고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
왜냐면 하나님은 창조자이시고 전능자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하고자 원하시면 말씀 한 마디로 지금도 무엇이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기나긴 25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 하면 아브라함이 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브람도 모르게 아브람 안에 담겨진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버지이다.
아브람은 끊임없이 아브람 안에서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가지고 시험 들고 넘어지고 그런다.
그런데 하나님은 끊임없이 아브라함에 초점을 맞추고 그를 만들어 가신다.
어쩌면 우리가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아 멘!
정말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아브라함인데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는 아브람이 원하는 것 때문인가!
내가 정말로 금년 한 해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가 원하는 내가 아니다.
사실 내가 원하는 나는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있다.
살아가면서 내가 원하는 것은 재물, 명예, 자식 잘되는 것과 같은 자랑스런 것으로 변한다.
우리가 정말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는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아 멘!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것을 주고 하나님은 씨름을 하신다.
그러면서 당신이 원하는 사람으로 나를 섭리하시고 이끌어 가신다. 아 멘!
이런 원리를 우리가 알고 이 번 주간에 여러분과 함께 다윗에 대하여 씨리즈로 마지막 시간까지 설교를 하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은 그 다윗의 시작이다.
이 번 주간도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시길 바랍니다! 아 멘!
은혜는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은혜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다.
따라하세요!
“설교는 목사님이, 은혜는 하나님이”
“설교는 목사님에게 듣고 기대는 하나님께 하는 것이다”. 아 멘!
이 원칙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 멘!
제일 바보 같은 것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사람에게 매이는 것이다.
이것이 가지에 있을 때는 가지 신앙이다.
신앙생활하면서 주의 할 것이 누가 대단해보인다고 거기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시지 누구의 하나님이 아니다. 아 멘!
그래서 오늘도 설교는 목사님에게 듣지만 기대는 하나님에게 해야 한다.
그러면 오늘 은혜를 못 받는다면 목사님 탓일까, 하나님 탓일까! (웃음바다)
성경에 보니까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망, 불평하다 망했다.
그런데 깜짝 놀란 것은 성경에 보니 모세도 원망했고 다윗도 원망했다.
그런데 모세나 다윗은 망하지 안았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이들의 원망과 광야 이스라엘 백성의 원망의 차이가 무엇일까?
목사생활 30년 했는데 작년에서야 깨달았다.
처음부터 다 깨닫고 목사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얼마나 기가 막히신지 한꺼번에 주지 않고 조금씩 주신다.
그런데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그래서 모세에게 사람에게 원망을 했다.
그런데 모세나 다윗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했다.
그러니까 우리가 부족하면 때로는 무의식중에 하나님에게 투덜대고 하지만 우리 아버지 되신 하나님이 그것을 다 품어주신다. 아 멘!
그래서 우리가 끝까지 하나님을 향하는 것이다. 아 멘!
아브라함의 하나님, 모세의 하나님이 오늘 나의 하나님이시다! 아 멘!
나 같은 것도 내 안에 나도 모르는 내가 담겨있다.
내 안에 내가 원하는 나 말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내가 있다 아 멘!
금년 한해 하나님이 원하는 내가 되어서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아 멘!
다윗은 대단한 사람이지만 그의 시작은 목동이었다.
그런 그가 이스라엘 욍이 되었는데 성경은 말하길 그를 왕중의 왕이라 했다. 아 멘!
성경 신약에서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소개할 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이야기하고, 왕 중의 왕 다윗을 이야기하면서 그런 혈통을 타고 오셨다고 이렇게 이야기한다.
예수님을 이야기할 때도 다윗의 자손 예수라고 이야기한다.
다윗이 얼마나 대단한가 하면
지금의 이스라엘 국기에 별이 있는데 이 별을 이름하여 다윗의 별이라 한다.
유다와 이스라엘 왕이 있는데 그 왕들이 선한 왕인가 악한 왕인가 믿음이 있는 왕인가 기준을 삼을 때도 다윗이 기준을 맞출 정도로 다윗은 대단한 인물이다.
놀라운 것은 성경 66권에 다윗을 설명하는 장이 66장이다.
성경에서 예수를 제외하고 이 정도의 부분에서 할애해서 그 한 사람을 이야기한 경우는 없다.
신약 성경에서만 다윗이 59번이나 나온 사람으로 다윗은 대단한 사람이었다.
다윗이 성경에서 첫 번째 등장할 때 첫 번째 표현이 무엇인가?
성경은 말하길 “그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 했다. 아 멘!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셨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 “그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다윗을 말씀하셨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다윗이 이스라엘 왕 중의 욍이 되었다. 아 멘!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가장 위대한 왕 인정받는 왕이 되었다.
그러나 다윗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해서 사람 마음에 합했던 것은 아니다.
하나님 마음에 보시기에는 다윗이 합했지만 사람이 보기에는 처음에는 아니었다.
다윗의 시작을 보면 성경은 다윗을 이새의 아들 여덟 명 중 막내라고 했다.
막내라고 하는 말은 등급의 개념도 있는데 여덟 명중에 가장 못난이라는 뜻도 있다.
이에 대한 증거도 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폐하시고 이스라엘 새 왕을 세우기로 계획을 하신다.
왕이 되려면 사무엘이 기름을 부어야 한다.
이제 기름을 부어야 하는데 사무엘에게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사무엘아! 이제 내가 사울을 버리고 새 왕을 세우려한다”.
“저 베들레헴에 가면 이새의 집에 아들중에 내가 왕을 삼을까 한다.”
오늘 본문에 보면 내가 가면 사울이 나를 죽이려할 것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제사를 드리려는 것처럼 하고 가서 이새를 초대하여 자식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하셨다.
그래서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 사무엘이 연락하기를 당신의 아들 중에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울 자가 있다는 하나님의 음성이 있어 내가 기름을 부을 테니 아들들을 데리고 준비하고 오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이새는 흥분 된 마음으로 일곱 명의 아들들을 데리고 사무엘 앞에 세우게 된다.
막내 다윗은 이새가 보기에도 왕감이 안 된다는 생각에 그를 양을 치라고 보낸다.
아버지 이새가 보기에 막내 다윗은 늘 형들보다는 부족하다는 생각에 이새의 집안 가장 큰 행사 우리 집에 왕이 나온다며 기름을 붓는 현장에 막내는 그 자리에 참석하지 못하게 했다.
사무엘이 일곱 명의 아들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감동을 한다.
세상에 어디 이런 좋은 아들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큰 아들 엘리압을 보며 감동을 하고 기름을 부으려고 할 때 하나님이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둘째 아들 아비나답에게 기름을 부르려고 했을 때도 아니라 했고 셋째 아들 삼마에게 기름 부으려고 했을 때도 아니라 했고 일곱 명을 기름을 부으려고 했는데도 다 아니라고 했다.
이 때 사무엘이 이상하게 생각하고 아들이 더 없느냐고 물었다.
막내가 있다고 했다.
다윗은 막내로 아버지가 보기에도 막내 다윗은 철부지로 왕감이 아니라 생각했다.
다윗이 덜 떨어진 것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면
죽은 양을 위해 사자하고 곰하고 싸웠다는 이야기는 상식적으로도 이야기가 안 된다.
어찌 보면 좀 덜 떨어진 사람이라 생각된다.
성경은 다윗의 시작을 볼 때 대단한 사람이 아니라 못난이 중 상 못난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런 못난 다윗에게 한 가지 장점이 있다면 하나님만이 보시는 것이 그 안에 있다는 것이다. 아 멘!
가장 중요한 것은 “그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는 것이다. 아 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이 “그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하셨다. 아 멘!
여기서는 우리가 성경을 자세히 이해해야 한다.
“그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 할 때 이 “합한 자”라 하는 것은 지금의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 다윗을 다윗 안에 있는 다윗 말고 하나님이 원하시고 섭리하시는 다윗을 담아두신 하나님이 “그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 한 것이다.
서두에 내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내 안에는 내가 원하는 나 말고 하나님이 원하는 내가 있다고 했다.
내 안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내가 있다고 믿으시면 크게 아 멘!~ 아 멘!~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는
내가 원하는 나인가?, 하나님이 원하는 나인가?
하나님이 원하는 나이다.
오늘도 하나님이 나와 씨름하시며 기도해라! 믿음으로 살아라! 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시기 위해서인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주시기 위한 것인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주시기 위해서다.
사울을 폐하시고 다윗을 찾아주셨는데 다윗은 못난이 중 못난이라 했는데 그를 하나님이 찾아 주시며 “그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 말씀하셨다.
“그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하는 것은 다윗에게 그 어떤 자격이 있다는 것이 아니다.
세상적인 기준에 미달된 못난이에게 하나님이 원하는 다윗, 기대, 이것이 다윗에게 있었다는 것이다. 아 멘!
그래서 그 안에서 하나님이 그를 만들어갑니다. 아 멘!~
“그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는 말은 지금이 아니라 나중 다윗을 섭리하신 것이다.
따라 해보세요!
“내 마음에 합한 자라!”
이 말과 비슷한 말이 성경 처음에 나온다.
따라 해보세요!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맨처음 세상을 창조하시고 아담을 창조하신 후 아담을 만드신 하나님이 아담을 보시며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말씀하셨다.
그러면 좋으신 이유가 무엇일까?
좋으신 이유가 미래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이유다. 아 멘!~
우리 가정에 아이가 태어나면 예쁜가, 안 예쁜가? 너무 이쁘다.
아기가 태어나면 지금도 예쁘고 좋지만 진짜 사랑스럽고 좋은 이유가 무엇일까?
이 아이가 잘 자라줄 것을 믿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가정에 장애아이가 태어나면 사랑스러울까, 사랑스럽지 안을까?
엄마가 열 달 동안 품고난 자식이라면 그가 어떤 모습이든지 사랑스럽다.
그러나 이 아이가 앞으로 성장해나갈 것을 생각하면 사랑스런 만큼 눈물이 난다.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한 말은 지금도 지금이지만 앞으로 아담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아담의 비젼, 앞으로의 계획을 가지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한 것이다. 아 멘!~
우리는 내일 일을 모르지만 하나님은 아신다. 아 멘!~
하나님은 내일 일을 섭리하시고 내일 일을 만들어 가신다. 아 멘!~
하나님은 나를 오늘의 문제가지고 초대하시지만 오늘만 섭리하시는 것이 아니라 나중을 섭리하신다. 아 멘!~
그러기 때문에 나는 오늘 응답을 받았네, 못 받았네, 이런 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
기도하게 하신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한다. 아 멘!~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을 감사해야 한다. 아 멘!~
오늘의 기도는 어떤 축복을 안겨줄 줄 모르기에 나는 기도하리라 아 멘!~
이것이 중요한 것이다. 아 멘!~
그래서 하나님이 아담을 보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한 것은 지금만이 아니라 앞으로의 기대, 앞으로의 섭리를 보시기에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신 것이다. 아 멘!~
어쩌면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도 “보시기에 좋았더라“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아 멘!~
오늘의 기도가 미래의 승리이기 때문이다. 아 멘!~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은 오늘이 아니라 오늘 다윗을 보고 “그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 한 것은 오늘 다윗이 자격이 있어서 왕이 되었다는 그런 것이 아니다.
다윗은 막내 못난이로 처음부터 자격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은혜가 있었던 것이지, 자격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아 멘!~
다 같이 아 멘!~ 아 멘!~
그래서 하나님은 나중 계획을 보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신 것이다.
다 같이 아 멘!~ 아 멘!~
내일 일을 섭리하시는 바로 이것이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숨어있었다.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숨어있는 아담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니다.
아담의 육신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아담이 어디가고 망가져 가지고 여기 있느냐는 것이다.
너는 내가 원하는 네가 아니다 너는 왜 망가져 가지고 여기 있느냐 묻는 것이다.
오늘도 하나님이 아브람 안에서 아브라함을 붙들고 씨름하신다.
아브라함으로 그럭저럭 설려고 그래서는 아브라함으로 살면 안 된다.
다윗도 마찬가지다. 오늘 여러분도 마찬가지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그렇게
다른 사람은 그냥 그냥 살아도 괞찮은데, 왜 나는 믿음으로 안 살면 안 되는가
다른 사람은 십일조 떼먹어도 잘사는데 나는 왜 이런가!
다른 사람은 예배 빠지고 TV만 보아도 다 은혜를 받는데 나는 왜 이런가!
왜 나는 새벽기도 안 가면 안 되는가!
이 씨름이 왜 있는지 우리는 모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기대하는 내가 누군지 모르니까 금년 한해는 무조건 하나님의 은혜 앞에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아 멘!~
이것이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아 멘!~
그래서 오늘 무조건 은혜 받아야 한다. 아 멘!~
그리고 오늘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 믿으면 아 멘!~ 아 멘!~
우리 안에는 내가 모르는 나, 오늘의 나만 보면 절망하고 울지만 그러면 안 된다.
어릴 때 제가 부모 없이 성장하면서 제기동에서 신문 돌리던 때가 있었다.
저는 아버지가 5살 때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8살 때 돌아가셨다.
저는 그 때 어디 가서 먹지, 어디 가서 자지,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울면서 신문을 돌리던 때가 있었다.
그래서 너무 힘들어 시골에 가서 살려고 셔울역에 갔다가 그곳에서 어리버리하고 있던 나는 앵벌이 꾼에게 붙들려 서울역에서 다시 신문팔이를 하게 되었다.
신문을 팔며 저녁이 되어 숙소에 들어가면 구걸하는 애들은 구결 하는 애들대로, 신문을 파는 애들은 그들 대로 하루 할당이 있는데 이것을 못하면 저녁에 매를 맞는다.
날마다 지옥생활인데도 지키는 사람이 있어 도망을 갈 수도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서울역에서 신문을 팔다가 우연히 친 형을 만나게 되었다.
형아가 집나간 나를 찾으러 다니다가 포기하고 시골로 내려가다가 나를 만난 것이다.
그 때 힘들었던 생각을 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 14살 처절한 유재명이 안에 지금의 유재명이가 담겨있었다. 아 멘!~
그 배고파하며 힘들어하던 소년 안에 지금의 유재명을 저는 몰랐다.
그냥 그 소년은 소년인 줄 알았는데, 다윗은 그냥 못난인 줄 알았는데, 그 다윗의 미래적 섭리 안에서 지금은 그 누가 보아도 못난이였는데, 하나님이 그를 보고 “그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 하시며 오늘의 나를 보고 평가하지 안는다.
그런데 나는 오늘의 나를 보고 스스로 무너진다.
나는 왜 이런지 몰라, 나는 왜 아픈 곳도 많아, 나는 자식도 잘못키웠어, 나는 왜 오늘, 오늘, 하면서 자존감이 무너지고 쓰러지게 되다보니 기도가 없어지게 되고 그러다가 스스로 무너지게 된다.
자존감이 무너지면 아무리 은혜를 받아도 은혜가 되지 않는다.
자존감이 무너지면 은혜를 받아도 위로는 되지만 능력은 안 된다.
그래서 하나님이 진짜 은혜를 베풀 때는 자존감부터 회복시켜주신다.
어떻게 하느냐? 크게 아 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 멘!~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아 멘!~
내가 모세와 함께 했듯이 “내가 너와 함께하리라!” 아 멘!~
하나님은 그런 분이시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나는 오늘 꿈도 없다. 그런데 꿈을 꾼다
아! 하나님이 원하는 내가 이런 거구나
자존감을 회복시켜주시고 그 안에 은혜를 바라든지 그 은혜가 믿음 되게 하신다.
우리가 바랄 수 있고 계획하는데서 꿈을 꾸는 것이 아니다. 아 멘!~
우리가 예수 안에서는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것이다. 아 멘!~
가능성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 나는 아무 것도 없다.
오늘 나는 왜 이러한가!
그런데 그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니 이것이 놀라운 은혜가 아닌가!
그런데 마귀는 기도 응답이 없다고 우리를 스스로 무너지게 만든다.
“너 믿음으로 살아보았자 소용없다” “교회 다니면 무엇하냐” “네 모습을 보라” 하면
어느 날 그 소리에 아 멘!~~ 하며 스스로 무너진다.
우리는 늘 부족하다,
부족하다고 신세 한탄하지 말고 “아 멘!” 해보세요|
“부족하면 하나님에게 매달려보세요!” 아 멘!~
“하나님께 능력을 구하라!” 아 멘!~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라!” 아 멘!~
“하나님! 내가 부족해서 왔어요!” “내가 못나서 왔어요!”
“하나님! 내가 은혜가 필요해요!” “하나님! 이겨야 되는데 이길 힘이 없어요!“
“내게 은혜가 필요해요!” 그렇게 은혜를 구해야 한다. 아 멘!~
부족하다고 늘 자존감이 무너지면 안 된다.
자존감은 누구보다 자격증 하나 더 가졌다고 누구보다 뭐 하나 더 가져서가 아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여러분도 안 예쁜데 예쁜 줄 알고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가! (웃음바다)
그러면 그 못난 다윗이 어떻게 은혜를 입었는가?
못난 만큼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다.
그래서 다윗이 은혜를 구하다보니 성령충만 하게 되었다. 아 멘!~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는 것은 그냥 충만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기 때문이다. 아 멘!~
아버지도, 형들도 다윗을 알아주지 안았다.
다윗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아버지의 아들 중에서 왕이 세워진다고 다 모이라 하는데 자기 보고는 양을 치라고 했다.
그러나 그 못난이가 못난 만큼, 부족한 만큼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다. 아 멘!~
성령으로 충만했다면 그냥 충만한 것이 아니다.
“나는 못났어요! 나는 못났어요!“ 나는 못났다고 스스로 아버지를 원망하고 형들 탓이라 하며 스스로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다윗은 부족한 만큼 은혜를 구했다.
하늘로부터 오는 은혜는
”아 멘” 해봐요! “아 멘!~”
하늘로부터 오는 은혜는 부족한 것이 부족한 것이 아니다! 아 멘!~
오늘 우리도 이곳에 은혜를 구하러 왔다. 아 멘!~
오늘 우리도 은혜 받아야 한다. 아 멘!~
우리가 부족하면 부족한 만큼 은혜를 구해야 한다. 아 멘!~
저는 개척하여 교회를 섬긴지가 30년 되었다.
지금은 괜찮지만 30년 전에는 내가 얼마나 부족했는지 모른다.
당시에는 배운 것도 없었고 뭐 하나 내 놀 것도 없었다.
저는 30년 전에 목회를 처음 시작하면서 얼마나 부족했는지 내 책상 앞에 이렇게 써 놓았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유재명“
당시 돈이없어 십자가도 없이 간판도 없이 지하실에서 시작했다.
우리 식구들도 사역현장에 와서 보고는 다 울고 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인가 책상 앞에 붙여 논 글씨가 바뀌어져 있었다.
“은혜가 아니면 설명될 수 없는 유재명“
내가 30년 동안 목회를 해올 수 있었던 것은 다 하나님 은혜다. 아 멘!~
우리 교회가 얼마나 예쁘게 잘 지어져 있는지 모른다.
그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다. 아 멘!~
내 삶속에 하나님의 은혜 아닌 것이 하나도 없다. 아 멘!~
다윗 안에는 다윗도 모르는 하나님이 원하는 다윗이 있었다. 아 멘!~
그 하나님이 그 다윗을 딱 발견하고 이끌고 가셨다.
그래서 인내도 해야 되고, 그래서 은혜도 받아야 되고, 그래서 꼭 일어나야 했다. 아 멘!~
힘들고 어려울수록 사람이 아니라 주님 은혜 구해야 한다. 아 멘!~
다윗이 그 못난이가 왕중의 왕 은혜를 입을 수 있었던 것은 자격이 아니라 성령충만했기 때문이다.
성령충만하려면 그냥 충만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힘쓰고 애써야 한다.
다윗이 못났다고 부족함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던 것처럼 여러분도 부족하다고 원망하지 말고 사람의지 하지 말고 힘써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시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