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것은 참아도!
이영호
신문이나 TV 뉴스에서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이 보도될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다. 세상살이가 불안전하고 평화롭지 못하다는 징조(徵兆)다.
천인공노할 흉악 살인범이 죄를 짓고도 취재하는 기자의 질문에 ‘죄송합니다’라는 한마디, 공직자가 수천만 원, 수억 원의 공금횡령 또는 뇌물을 받아먹고도 모르쇠로 일관하다가 증거가 나오고 사실이 인정되고 나서야, 법의 심판을 받으면서 하는 말도 ‘죄송합니다’ 이다. 듣는 이로 하여금 분노를 느끼다가도 처절하기까지 하다.
교도소 탈주범이 인질극을 펼치다 자살하기 직전 외친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 역시 부를 축적하지 못한 상대적 박탈감의 또 다른 표현이다.
보통 사람들이 부자(富者)에 대한 인식과 생각이 천민자본주의(賤民資本主義)에 멈춰있는 것은, 부(富)의 축적 과정(蓄積 過程)에 대한 불공정함이 자리 잡고 있고. 정경유착, 탈세, 등으로 부를 이루는 방법에서 공정하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지는 몰라도 부자들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이다.
부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오늘날의 문제만이 아니라. 오랜 역사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말이 있듯이, 주위 사람이 잘되면 내가 못 되는 것 보다 샘이 나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남과 나를 비교해서 나보다 남이 잘되는 것을 부러워하거나 시기하는 것이다. 특히 한국인들이 남 잘되는 것을 배 아파하는 마음이 강하다고 한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라는 말 역시 같은 맥락이다.
먹고 사는 것보다 자존심이 중요하고, 남 잘되고 돈 많이 버는 것에 대해서 극도로 집착하며, 쓸데없는 생각에 관심이 많다. 형제자매는 물론 가까운 관계일수록 그렇다.
정말 굶어 죽을 정도로 배고프면 배 아파할 일이 없다. 생존만큼 중요한 것이 있는가?. 아프리카 미개의 못사는 나라가 행복 지수가 높은 것은, 먹고 사는 삶 자체가 중요하지, 남과 비교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은 먹고 살 만하니까, 신경 안 써도 되는 것을 신경 쓰고 사니까 문제다. 사치와 과욕으로 인한 비정상인 잘못된 생각과 판단을 하고 있으며, 공정하고 정의로운 삶을 위해서 체면, 권위, 가식(體面.權威,假飾)의 가면을 벗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유시장 경제원리에서는 돈을 많이 벌어 물질적인 풍요와 행복하게 살기를 누구나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법과 경제정의와 시장 질서를 지키고, 열심히 일하고 노력해서 부자가 되거나 잘사는 것을 누가 욕하겠는가, 불로소득이나 편법으로 자본시장을 교란해 가면서 부당이득을 취해서 잘 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 국민 모두 반성하고 꼭 고쳐야 할 것이 있다.
국민이 뽑아준 대통령이 얼마나 잘못했으면 감옥 가야 하는가?,
임기 동안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지 않고, 자신의 영달과 측근 가신들을 위한 정치를 하니 끝이 좋지 않게 되는 것이다.
역대 대통령들이 부정부패로 감옥 가는 것을 볼 때나,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면 과거 살던 거처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호화 아방궁으로 옮겨가는 것을 볼 때 한심하기 짝이 없다.
다른 나라의 경우, 대통령이나 총리로 임기가 끝나면 영광스럽게 퇴진한 후, 자기 고향 집으로, 20평 아파트로 돌아가 시민의 자격으로 국가를 위해 헌신 봉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독일의 메르켈 총리, 싱가포르의 이 강요 같은 지도자를 본받아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도 국민을 위하는, 국민의 아픈 곳을 어루만져 주는, 눈물을 같이 흘릴 수 있는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집 없어 해 매는 사람들을, 먹을 것을 걱정하고 국민을 생각하는 지도자를 희망하고 원한다.
여야의 이념 갈등이나 지역 간의 갈등과 정쟁으로 인한 병폐, 오래된 감정이 정치보복으로 이어져 감옥을 보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보복의 정치, 당파의 정치, 눈치의 정치로 이어지는 작태는 더 이상 없어져야 할 것이다.
보수와 진보, 불평등과 차별이 없는 사회, 돈보다 인간이 먼저인 사회,
금수저, 흙수저, 특권층의 구분이 없는 그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지금은 밀물처럼 닥쳐오는 제4차 산업혁명으로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고 있다. 불확실의 시대에, 한치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때에 세상은 온통 불안에 떨게 만들고 있다. 미래가 걱정된다.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남 잘되는 것 배 아파할 게 아니라, 나 혼자만이 잘 사는 사회가 아니라, 서로 도와가며 정을 나누고, 더불어 잘 사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우리 모두 이제부터 배고픈 것은 참지 말고, 배 아파할 것을 참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가 바로 설 수 있고, 선진 일등 국민으로 거듭날 것이다.
힘들수록 뒤를 돌아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나라가 살기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에, 배고픈 것을 참아가면서 새마을 운동으로 잘살아 보자고 노력했던 것들이나, 그 옛날 많이 불렀던 유행가 한 구절이 문뜩 떠오른다.
1958년도 반야월 작사, 박시춘 작곡, 박경원이 부른 노래 ‘남성 최고’라는 유행가 가사가 반세기가 지났는데도 지금의 시대상을 반추(反芻)하는 것 같다. 가사 하나하나를 음미하면서 불러본다.
1절
유학을 하고 영어를 하고
박사호 붙어야만 남자인가요
나라에 충성하고 정의에 살고
친구 간 의리 있고 인정 베풀고
남에게 친절하고 겸손을 하는
이러한 남자래야 남성 넘버원.
2절
다방을 가고 영화를 보고
사교춤 추어야만 여자인가요
가난한 집안 살림 나라의 살림
알뜰히 살뜰히도 두루 살피며
때 묻은 행주치마 정성이 어린
이러한 아낙네가 여성 넘버원.
3절
대학을 나와 벼슬을 하고
공명을 떨쳐야만 대장부인가
부모님 효도하고 공경을 하고
아내를 사랑하고 남편 위하고
귀여운 자녀교육 걱정을 하는
이러한 남녀래야 한국 남녀요.
3절 끝까지 부르고 나니 마음속에 남아있는 해묵은 악취가 사라지고 시원해지는 것 같다.
2024.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