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호 수필의 문학 현상론적 탁월성

[안규수]

<장병호 작가론>

                                                 장병호 수필의 문학 현상론적 탁월성

                                                               -글은 곧 사람이다

                                                                                                                                        안규수

   들어가며

  ‘글은 곧 사람이다’라는 명제가 있다. 일찍이 프랑스 박물학자이자 철학자였던 뷔풍이 한 명언이다. 서두에 이 말을 언급하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흔히 문학의 5대 장르를 이야기할 때 시, 소설, 희곡, 수필, 평론을 든다. 이들 가운데 뷔풍의 말에 가장 잘 들어맞는 장르가 바로 수필이 아닌가 한다. 따라서 수필만큼 그의 사람됨을 확연히 드러낼 수 있는 장르도 없다. 장병호의 수필은 모두에서 언급한 뷔풍의 말이 아주 잘 들어맞는다.

  여기에 전제 조건이 있다. 진정성이다. 진정성이 담보되어야 글은 곧 그 사람이 된다. 그는 작품에서 자신의 약점을 애써 감추려 들지 않고 미사여구 포장하지 않는다. 이점이 독자에게 큰 흡입력으로 작용한다. 작품은 읽혀야 생명력이 완성된다. 그의 글은 가독성 뛰어나다.

  년 초 나는 전혀 모르는 분으로부터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장병호 수필가였다. 그렇게 시작한 인연은 서로의 수필집을 주고받으면서 급속히 가까워졌다. 행복해지려면 행복한 사람과 가까이 살라는 말이 있다. 오랜 풍상을 견뎌낸 한 그루 나무가 신령한 기운으로 주변을 지키듯이, 아름다운 영혼을 지닌 사람은 주변에 선하고 밝은 생의 에너지를 파급시킨다.

   고백과 겸손

  연륜은 학문과는 또 다른 절대성을 담보한다. 학문은 배우고 악하면 될 것이나 연륜은 많은 세월과 부딪혀야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깨달음의 지혜를 만나게 되는바 그 깨달음은 배우고 익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몸으로 부딪치며 겪어 보고 얻어지는 관조, 달관, 내려놓은, 비움, 성찰과 통찰 등 복합적인 삶의 과정이 녹아 있는 것이다.

  진정성 있는 글이 되기 위해서는 작가의 자기 고백과 겸손이 필수적이다. 자서전과 자전적 수필의 차이점은 분명하다. 자서전이 한 개인 생의 후반부까지 살아온 과정을 연대기적 기록 중심으로 기술한 것이라면, 자전적 수필은 특정 시기나 사건에 대한 자기 고백과 의미 부여가 반드시 들어가는 특징이 있다.

  평생 교단에서 제자들과 함께 살아온 작가가 학교 재직 시절, 학생들에게 ‘다시 태어난다면 어떻게 살고 싶은가’라는 주제로 글을 쓰게 했다. 황당한 내용이 많았다. 작가는 자신의 다음 생애 소망을 생각해 보았다. ‘한 분야의 전문가로 살고 싶다’가 첫 번째이고, ‘어디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고 싶다’가 두 번째이다. 다시 태어난다면 도시보다 시골에서 살고 싶단다. 마지막으로 이웃에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했다. 가족과 일에 대한 사랑이 넘쳐흐르고, 한평생 교단에 많은 학생에게 기꺼이 친구가 되어 그들의 고민을 해결해주며 살아온 삶의 철학이 잔잔히 녹아 있다. 여기에 작가의 언급이 마무리되었다면 독자에게 별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을 것이다. 작가가 언급한 네 가지는 경제적인 면이 해결되어야 함을 전제로 한다. 먹고살 형편이 안 되는데 하고 싶은 전문분야에 몰입할 수 있겠는가. 자유로운 영혼은 로망일 뿐이다. 작가 장병호는 현실적 한계를 솔직히 고백한다.

  이제껏 세상을 살아보니 역시 중요한 것은 먹고사는 문제이다. 생계 문제가 해결되느냐 마느냐에 따라 인간의 행불행이 갈린다. 아무리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이 태산 같더라도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으면 몇 발짝 못 가서 고꾸라지고 만다. 내가 다시 태어나 하고 싶은 일들도 먹고사는 문제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것들이다. 밥벌이도 하고 자기가 추구하는 일도 곁들일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것이 어디 호락호락한가. 현실에서 어려우니 상상의 나래나마 펼쳐보는 것이다.

                                                                                                                  - 「자유로운 영혼」 중에서

  작가가 여학교에 근무할 때였다. 한번은 그해 대학에 들어간 제자들이 우르르 그를 찾아왔다. 장병호 선생님을 보러 온 것이다. 제자들이 졸업하고 반년이 지나 친구들과 스승님을 찾아온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만큼 그는 스승으로서 학생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는 제자들에게 점심을 사주겠다 하고는 학교 인근 중국집으로 향했다. 그는 내심 호기 있게 “한턱내마”하고 싶었지만, 지갑에는 겨우 이만 원이 들어 있었다. 가장 저렴한 짜장면값 감당하기도 빠듯한 돈이었다. 제자들에게 묻지도 않고 인원수대로 짜장면을 주문했다. 무엇인가 기대한 제자들에게 짜장면 한 그릇은 너무 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은 지금도 잊지 못한다.

  “다음 방학 때 또 오너라. 그때는 더 맛난 것 사줄게.”

  헤어지면서 면목이 없는 가운데 이렇게 말을 던졌다. 아이들은 “네, 선생님 잘 먹었어요.” 하고 응답했지만 아무래도 말투에 힘이 실려 있지 않아 보였다. 아이들을 보내놓고 마음이 내내 편치 않았다. 다음 겨울방학 때 혹시나 하고 기다렸다. 그러나 그 애들은 두 번 다시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지금도 그 친구들을 생각하면 저절로 낯이 뜨거워진다. 나는 이렇게 외치며 용서를 빌고 싶다.

  “애들아! 그때는 정말 미안했어. 언제 다시 한번 기회를 다오. 진짜 멋지게 한번 쏠 테니까.”

                                                                                                         - 「낯 뜨거운 짜장면」 중에서

   학이시습(學而時習)

  배움의 목적은 시기에 따라 달라진다. 대체로 젊은 시기에는 사회에서 요구되는 역할 수행을 위한 기능 중심의 교육이 주를 차지한다. 그러나 은퇴 후의 배움은 여가를 적절히 활용하여 취미를 살리고 즐거움을 추구한다.

  “배우고 때에 맞게 익히면 그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학이시습지 불역열호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논어 제1편 학이學而의 첫 구절은 작가의 명제다. 그의 가훈도 ‘학이시습’이기 때문이다. 재직 중 서예를 배울 때, 연말 회원전에 낼 작품에 논어가 생각나서 ‘學而時習’을 써서 제출했다. 전시회가 끝나고 액자를 거실 벽에 걸어 두었다. 어느 날 초등학생 딸이 학교 숙제인 가훈을 물어 임기응변으로 액자를 가르키며 “늘 공부하면서 살자는 뜻이란다”라고 설명해 준 것이 계기가 되었다.

  그의 약력을 보면 이해가 된다. 작가는 사범대학에서 국어 교육학을 전공하였고, 석박사 학위도 받았다. 외길을 걸어 온 셈이다. 여러 중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고, 전남교육청 등 교육행정을 담당하다 순천 왕운중학교 교장을 마지막으로 정년 퇴임한 전형적인 교육자이다. 2000년 <문예 운동>에서 평론 등단하였고, 2015년 <문학춘추>에서 수필 등단한 그는 평론집 2권, 수필집 6권, 향토연구서 2권 등 총 10권의 서적을 출간한 대단한 글쟁이이다. 평론집으로는 『소외의 문학 갈등의 문학』, 『척박한 시대와 문학의 힘』을 출간하였고, 수필집으로는 『코스모스를 기다리며』, 『천사들의 꿈 노래』, 『태산이 높다 하되』, 『등대지기의 꿈』, 『은막의 매혹』, 『부엉이 기르기』가 있다. 향토사 연구서로는 『연 자루에 올라 팔마비를 노래하다』, <순천의 인물 100인』를 집필하였다. 또한 2012년에 <전남문학상>을 수상하였고, 한국문협 회원, 전남문협 부회장, 순천문협 고문, 장흥문협회장, 순천팔마문학회장, 별곡문학 회원, 전남수필 회장, 영호남수필문학협회 광주·전남 회장, 김승옥문학연구회 회장 등 지역 문학발전을 위해 헌신한 지역 문단의 대들보이자 선구자이다.

  그에게 ‘배움’이란 무엇일까.

  먼저 작품 「중국어를 배우는 까닭」을 살펴보자. 그는 지금 문화센터에서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몇 년 전 야간강좌로 듣다 폐강되어 아쉬워하다 다시 도전했다. 그의 공부에 대한 열정은 알아줄 만하다.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즐거움 때문이다. 먹고 살자고 일을 하면 하수이지만, 즐거워서 일하면 상수라 했다. 그는 배움에서도 상수다.

  어떤 이는 “중국어는 왜 배우세요? 어디다 써먹게요?” 하고 묻기도 한다. 이럴 때는 딱히 할 말이 없다. 내가 무슨 목적을 위하여 공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찌 아무런 목적도 없이 공부할 수 있느냐고 고개를 갸우뚱거릴지 모르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내가 이것을 배워서 어디다 써먹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굳이 써먹는다면 어쩌다 길거리에서 중국인을 만났을 때 인사를 나눈다거나, 아니면 중국 여행을 갔을 현지인들과 한두 마디 소통하는 데 도움이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얼마나 자주 있겠는가.

  곰곰 생각해 보면 내가 중국어를 배우는 이유는 그냥 ‘끌렸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대답이 될 것 같다.

                                                                                                         - 「중국어를 배우는 까닭」 중에서

  그림을 그리며 배우는 과정에서도 그는 이미 아마추어 경지를 넘어섰다. 정년퇴직 후 시작한 데생과 수채화 강좌는 지금도 수강 중이다. 작가가 그림에 관심을 가진 건 중학생 시절이었다. 초등학생 때 만화를 잘 그려 주위에서 솜씨 좋다는 말을 듣기도 했던 그는 그만 중단하고 말았다. 그 갈증이 퇴직 후 그를 미술에 발을 들여놓게 한 계기가 되었다. 그림 배우는 즐거움에 더해 사물을 보는 눈도 새롭게 트였다. 놀라운 변화다. 배움의 즐거움에서 한 단계 발전한 것이다.

  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았던 숲과 나무들이 이제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저게 어떻게 그늘이 지고 덩어리를 이루고 있나 지그시 바라본다. 허름한 집이나 낡은 창고 같은 것도 옛날에는 무심히 넘겼는데 요즘은 저걸 그린다면 어떤 방향이 좋을까 하고 이리저리 고개를 기웃거려보곤 한다.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이제 조금씩 그림에 눈이 뜨이나 보다. 그렇지만 아직은 어디 가서 붓을 놀린다고 말할 정도는 못 된다. 앞으로 갈 길이 까마득한데 힘이 닿는 데까지 옛날 학창 시절의 아쉬움을 풀어볼까 한다.

                                                                                                                      - 「그림 배우기」 중에서

  배움은 철저히 자신의 의지와 노력에 달려 있다. 작가는 평생 교단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 가르치는 과정을 통해서 선생도 학생도 함께 성장한다. 장병호 수필가는 배움에 거침이 없다. 지금도 거의 한 주간을 배움에 투자하고 있어 그를 만나려면 금요일 이후만 가능하다.

   시선 확장

  한편 작가의 관조 세계는 매우 감각적이다. 그는 여러 가지 재주를 가지고 있어 음악과 미술 영화에도 조예가 깊다. 수필집 『부엉이 기르기』 5부는 가요에 관한 예리한 분석을 볼 수 있다. 먼저 작품 「노랫말이 고와야」에서는 유행가 노랫말이 어법에 맞지 않는 경우를 세밀하게 지적한다. 1964년 발표한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를 비롯한 무려 35곡을 분석하였다. 방송 매체는 대중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유행가는 방송을 타고 전파된다. 방송의 어법 오류는 대중들에게 자칫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잘못된 노랫말은 일상화된다. 작가는 가수 남진의 노랫말,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얼굴만 이쁘다고 여자냐?”를 “노랫말이 고와야 노래지 곡만 이쁘다고 노래냐?”로 바꾸어 노랫말 어법에 소홀한 가요계를 질타한다.

  우리 가요의 주류는 사랑과 이별이다. 이유가 뭘까. 작품 「사랑 노래에 취하다」에서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대중가요에 왜 이렇게 사랑 이야기가 많을까?

  아마도 그것은 인간의 삶에서 사랑이 가장 원초적인 감정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람은 감정의 동물인 만큼 모든 인간관계가 심리에 의해 좌우된다. 그리고 그 심리 가운데 가장 본능적인 것이 바로 애정 심리이다. 따라서 그 애정 심리가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처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니까 사람이 가장 행복한 때는 사랑을 얻는 순간이고, 반대로 가장 불행해질 때는 사랑을 잃어버렸을 때가 될 것이다.

                                                                                                       - 「사랑 노래에 취하다」 중에서

  우리 가요에서는 사랑의 기쁨보다는 슬픔을 읊은 노래가 훨씬 많다며 노랫말까지 인용하여 그 이유를 분석한 작가의 식견은 대단하다. 이 한 편의 글에서 작가가 거론한 노래는 무려 35편이다. 작가가 낭만주의자임을 암시하는 글이 있다. 작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에서 작가는 생에 가장 기쁜 순간이 “젊은 시절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라고 말한다. 그는 사랑의 기쁨을 노래한 우리 가요를 이성애. 송창식, 나훈아, 설운도, 윤형주, 김동주 등 6명의 가수와 춘향가 등 7편을 통해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절반으로 나누어졌던 남녀가 하나로 결합하려는 욕구가 격렬하게 발동하기 때문에 사랑이 최고의 기쁨이고, 사랑 노래는 끝이 없을 것이라고 예견한다.

  이른바 ‘호모 에로티쿠스(Homo Eroticus)’라고 하듯이 인간은 본디 사랑을 갈구하는 존재이다. 사람은 누구나 사랑의 에너지를 갖고 있다. 그것은 생존 본능과 종족 보존 본능과도 같은 것이다. 그리하여 마땅한 이성을 만났을 때 기민하게 반응하며 뜨거운 욕망으로 불타오르는 것이다

                                                                                               -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중에서

  무엇이 사람의 감정 중 가장 순수할까. 작가는 “그리움의 감정”이라고 말하며 우리 가요에서 예를 든다. 가수 안다성의 노래 <사랑이 메아리칠 때>(1963)에서는 세월이 흘렀지만 그리움은 변치 않는다고 했다. 정미조의 <그리운 생각>(1972)에서는 그리움을 이기는 방법론을 제시했다. 장 현의 <미련>(1974)에서는 잊으려 하지만 그리움만 커지는 안타까움을 노래했다. 6편의 가요를 심층 분석하였고 13편을 소개하였다.

  봄을 노래하는 가요는 「봄 향기가 흐르는 시간」에서 5편을 자세히 소개하며 평을 하였고, 비 오는 날 들기 좋은 5편의 가요를 작품 「비 내리는 휴일에는」에서 소개하였다. 감상에 젖는 가을의 정취는 가수 박강수의 <가을은 참 예쁘다>, 윤도현의 <가을 우체국 앞에서>, 고인이 된 김광석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등 9편을 평과 함께 소개하였다.

  가요뿐만 아니라 영화에 관해서도 작가 장병호는 조예가 깊다. 「외국영화 제목 우리말 옮기기」에서는 무려 67편의 영화 제목을 분석하였다. 실로 엄청난 작업이다. 그의 영화감상법은 독특하다.

  영화에 관심이 있다 보니 제목에도 눈길이 많이 간다.

  나는 영화를 볼 때면 항상 그 제목을 짚어 보곤 한다. 제목은 영화의 얼굴이다. 내 경우 제목만 보고서 영화를 선택하는 일은 별로 없으나 그것이 얼마나 영화의 내용과 어울리며, 어떻게 영화의 핵심을 드러내고 있는가를 따져보는 것도 영화 보는 재미 중의 하나이다. 특히 외국영화를 볼 때면 그 원제목을 눈여겨본다. 원제목이 어떻게 우리말로 번역되었으며, 또 영화의 내용과 얼마나 부합되는가를 살피다 보면 영화 보는 즐거움이 더욱 커진다.

                                                                                        - 「외국영화 제목 우리말 옮기기」 중에서

  이런 그에게 외국영화의 생소한 원제목 사용과 번역의 오류 등은 지적 사항이 될 수밖에 없다. 외국영화에 제목을 붙이는 방법은 세 가지로 분류된다. 우리 제목을 직역하거나, 원제목을 의역하거나, 원제목 발음을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다. 첫 번째인 원제목 직역의 경우 원뜻을 살리면서 우리 발음에도 무리가 없어야 한다. 두 번째 경우는 원제목이 번역되기 어려울 때 사용한다. 제대로 의역하면 원제목보다 더욱더 함축적이고, 의미 전달이 매끄럽다. <언제나 마음은 태양 – To Sir with Love>, <사랑과 영혼 – The Ghost>가 잘된 번역이라 평했다. 세 번째 경우는 원제목이 고유명사이거나 아니면 툭툭한 의미를 지녔을 경우 그대로 사용한다. <벤허 – Ben Her>, <닥터 지바고 – Doctor Zhivago>, <람보 – Rambo> 등이 해당한다. 신 스틸러(Scene Stealer)는 맛깔나는 연기를 하는 조연을 일컫는 말이다. 작품 「시선 강탈자」에서 ‘명품조연’ 영화 10편을 분석한다. 그는 1960년부터 영화에 심취하며 다양한 분석기법은 그 분야에 대단한 전문가임을 익히 알 수 있다.

  다수의 수필은 주로 가정사를 다룬다. 본인이나 부모의 인생을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여 현재 시점의 시각으로 재조명하지만, 시선은 ‘나와 가정’에 한정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 것처럼 수필도 자신의 삶을 떠나 존재할 수 없다. 치매는 자칫 한 가족을 불행과 절망으로 몰아간다. 요즘은 요양등급 제도로 시설에 위탁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치매는 가족 구성원들에게 심한 어려움을 안긴다. 치매는 단순히 가정만의 문제만이 아니다. 고령화 사회(인구의 7%), 고령사회(14%)를 지나 초고령 사회(21%)가 눈앞으로 다가온 현실에서 치매를 바라보는 시각도 변해야 한다. 작가는 「치매 노인 어디로 갈 것인가」에서 치매 문제를 정면으로 거론한다.

  국민 80%가 지지하던 2016년 촛불집회는 국민이 선택한 국가 최고지도자를 향한 국민적 저항이었다. 작가도 집회에 참여하여 열기를 느끼며 참가한 모습을 「서울 2016년 겨울」에서 스케치한다. 한국 현대사의 오점 중 하나는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 사건 후 일어난 군부 쿠데타 12·12 사태다. 작가는 모 시사 월간지에서 공개한 당시 녹음테이프를 들으며 사건 당시의 상황을 분석한다. 아울러 신군부 세력의 권력 장악을 비판하며, 이 땅에서 정의가 사라진 원인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친일파를 처벌하지 않고 그대로 권력 중심에 기용하여 민족정기를 세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역사를 바꾼 사람들」에서 명쾌하게 분석한다.

   나가며

  그의 수필은 궁극적으로 도달하는 관조의 시선은 내려놓거나 비우는 비움의 철학과 달관의 세계에 이른다. 무릇 수필이 제대로 대접을 받기 위해서는 단순히 자기 고백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수필이 세상의 문제에 눈을 감으면 그저 음풍농월吟風弄月에 지나지 않는다. 수필이 제대로 대접받기 위해서는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 고민하며 그 해결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 점에 있어서 장병호 작가의 시선은 현상론적 탁월성이 뚜렷하다.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럴 뿐만 아니라 작가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을 날카롭게 직시한다. 수필적 삶을 추구하는 그는“과연 내 삶이 내 글처럼 양심적이고, 선을 행하며 인간적인가?” 이 문제를 고민한다. 그가 문학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이 든다는 것은 자연의 순리대로 점점 가벼워지는 연습에 들어가는 거다. 부러질 무게도 없는 갈대처럼. 그는 다르다. 이렇게 그의 수필집을 대하고 단편적으로나마 서평의 변을 내놓으면서 드는 생각은 지역 문단에서 마을 지키는 수호목처럼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가길 기원한다.

[장병호]

저의 수필에 대한 과분한 평가 대단히 감사합니다. 사실은 몸들 바를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