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질문- 도레스 레싱의 그 남자를 읽고
결혼이 파탄 난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파탄 난 관계를 보면 누구의 잘못이 더 클까 생각한다. 누구 잘못 때문에 저 부부는 저렇게 되었을까? 애니? 롭? 누구의 잘못 때문에 25년을 지속하며 세 아들을 낳아 길렀던 결혼 생활이 깨어진 것일까?
애니 탓일까? 애니는 개수대에 접시 하나, 의자에 행주 하나 걸려 있는 것을 보고도 “사방이 엉망”이라고 느끼는 사람이다. 글을 쓰며 모니터 너머 내 책상을 보니 애니가 내 아내였다면 얼마나 심한 욕을 얻어먹어야 했을까 아찔해진다.
애니의 과도한 깔끔함은 여기저기 드러난다. 메리가 “여기 바닥이 워낙 깨끗해서 음식이 떨어지면 그냥 주워 먹어도 되겠어.”라고 말한 그 바닥을 다시 청소하고 광택을 낸다. 롭이 실수로 쏟은 차에 소리를 지르며 분노한다. 남들 눈에는 깨끗하기만 한 광경이 그녀의 눈에는 ‘매우’ 거슬린다.
이런 예민함은 사람에 대해서도 작동한다. 애니에게는 해야 하는 일과 하면 안 되는 일이 분명하다. 애니에게 아들들은 “하면 안 되는 일을 한 적이 없어”라고 말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존재이지만 남편은 늘 ‘하면 안 되는 일’을 하는 사람이다. 이런 애니의 예민함이 파탄의 이유일까? 애니 탓일까?
아니다. 롭의 탓일 수도 있다. 롭은 애니가 새벽부터 나가 저녁까지 일을 하고 돌아왔음에도 불구하고 저녁식사가 준비되지 않았다고 소리나 지르는 사람이다. 도울 생각은 하지 않는다. 여자들의 일이라며 주전자 한번 불에 올려준 적도 없다. 애니가 지저분한 것을 싫어하는 줄 뻔히 알면서도 먼지투성이로 찾아올 정도로 배려할 줄 모른다. ‘하면 안 되는 일’을 골라서 한다.
게다가, 다른 여자를 만나 집을 나갔다.
그럼 이 결혼의 파탄은 롭의 탓일까?
2. 애니는 왜 롭을 원할까?
애니는 비록 자신만의 방식일지 모르지만 최선을 다해 롭을 사랑했다. 집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 남편을 위한 행동이었다. 애니는 롭과 사는 여자가 청소를 하지 않는다는 험담에 이렇게 대답한다.
“그 여자가 그 사람한테 나만큼 해줄 리가 없지. 그건 확실해.”
애니에게 청소는 롭을 위한, 롭을 사랑하는 행동이었다.
롭 앞에 흐트러진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롭이 방문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은 후 애니는 몸을 씻고, 머리카락을 다듬는다. 이것 또한 그를 위한 행동이었을지 모른다. 아마도 애니는 결혼 생활 내내 그러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배신하고 다른 여자와 살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그러하다.
그러나 롭은 그녀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않았다. 결혼 생활은 불행했다. 평생 그에게 이용당하는 느낌이었다. 롭의 이기적인 행동은 상처로 남아 계속해서 애니를 괴롭힌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요통으로 시달리던 일, 자신은 몸도 가누기 힘들 정도인데 그는 침대에 누워 신문을 읽던 일....... 이런 건 옳지 않아. 그녀는 혼자 외쳤다. 옳지 않아....... 자신이 지독히 부당한 일을 당했다는 생각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그러나 애니는 분노보다 더 많이 롭을 원한다. “그의 얼굴에 드러나 있던 애정을 떠올리자” 원망이 사그라든다. 그에 대해 분노하면서 동시에 간절히 원한다. 롭이 없으면 자신의 인생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왜?
3. 둘은 행복할 수 있을까?
애니와 롭이 다시 합친다면 행복할 수 있을까? 소설은 둘이 다시 부부가 될 것을 예상하게 한다. 롭도 원하고 애니도 원한다. 그 관계가 행복하게 지속될 수 있을까? 불안하다. 롭과 함께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억울한 경험을 억누르는 것이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을까? 애니를 사로잡고 있는 “그가 없으면 자신의 인생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을까? 다시 애니를 원하는 롭이 변할 수 있을까? 또 애니도 롭을 위해 변할 수 있을까? 서로 더 많은 상처를 주고 다시 파국을 맞지 않을까?
사랑이 무엇일까? 수많은 상처에도 불구하고 용서하고 받아들이며 살게 하는 것일까? 그 용서의 힘이 사랑일까? 그러면 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