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신神이다 / 이훈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깨달은 소중한 체험이 있다면 그건 시간이 해결 못할 악운도 재앙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이야말로 신神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박완서, <시간은 신이었을까>, <<세상에 예쁜 것<>, 마음산책, 2012. ‘밀리의 서재’
책을 펼치면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수필이지만 보지 못한 분이 있을 테니 원문을 거의 그대로 옮기면서 소개한다.
점심 때쯤 K 교수가 바람이나 쐬러 가자는 연락이 와서 그의 차를 타고 양수리 쪽으로 나간다. 그런데 그가 데리고 간 곳은 ‘내’게 아름다운 추억이 깃든 음식점이었다.
“나에게는 추억이 있는 장소였다. 그 동네는 남편하고 나하고 툭하면 바람을 쐬러 다니던 데였다. 여름만 되면 남편은 그 동네 단골 음식점에서 장어구이와 쏘가리매운탕을 먹는 걸 즐겼다. 남편의 유일한 취미가 식도락이었다. 남편이 나를 앞서 저세상으로 간 지 금년(2007년―옮긴이)이 이십 년째가 된다. 일 년 남짓한 투병 생활이 허사로 끝나고 임종의 날이 얼마 안 남았을 때도 남편은 마지막으로 그 동네 그 집에 가고 싶어 했다. 그는 혼자 걷기도 어려울 때였지만 우리는 그게 마지막 소풍이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식구들이 총동원해서 짐짓 명랑하게, 그러나 속으로는 목이 메는 심정으로 그 매운탕집엘 갔다.”
몇 줄 건너뛰고 끝까지 그대로 옮긴다.
흐르는 강가에서 바람을 쐬면서 어린 손자가 뛰노는 모습과 젊은 아들과 사위가 강물에 물수제비를 뜨는 걸 구경했다. 그때는 보이는 모든 것이 왜 그리도 아름다웠던지. 젊은 내 새끼들의 옷깃과 검은 머리칼을 나부끼게 하는 바람조차도 어디 멀고 신비한 곳으로부터 그 애들이 특별히 아름답게 보이라고 불어온 특별한 바람처럼 느꼈으니까. 아마도 나는 그때 곧 세상을 하직할 남편의 눈으로 그 모든 것을 보았을 것이다.
그 후 며칠 안 있다 남편은 이 세상을 떴다. 남편이 세상을 뜨고 나서 일 년도 채 안 됐을 때, 내가 혼자된 슬픔을 잘 극복하지 못하고 힘들게 사는 걸 보다 못한 어떤 친구가 나를 위로한답시고 그 집에 데려간 적이 있다. 여전히 쪽진 아주머니가 손수 반찬을 만들고 숯불에 장어를 굽고 있었다. 나는 그 아주머니가 내 남편의 안부를 물을까 봐 속으로 전전긍긍했지만 그런 일 없이 그냥 넘어갔다. 그래도 장어를 먹을 생각은 조금도 나지 않았다. 그 굽는 냄새도 싫었다. 친구의 호의를 무시할 수 없어 조금 먹는 시늉만 했는데도 토할 것 같은 걸 참느라 진땀을 흘렸고 결국은 얹힌 게 오래갔다.
그리고 이십 년 동안 가지 않던 동네로 K 교수가 접어들었고 정확하게 그 기와집으로 가는 게 아닌가. K 교수에게 그 집에 얽힌 옛날얘기를 한 적도 없으니 순전히 우연의 일치였다. 쪽진 아주머니는 보이지 않았고, 마당의 후박나무와 은행나무는 몰라보게 큰 거목이 되어 있었다. 음식점과 찻집도 많아져서 예전 같지 않았지만 강바람만은 예전 그대로 상쾌했다. K 교수는 내 의견은 묻지도 않고 이 집은 장어구이와 쏘가리탕이 일품이라고 그걸 시켰다. 나는 혹시 그걸 먹을 수 없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 두 가지가 차례로 나오자 건강한 식욕을 느꼈고, 그 옛날 남편이 그랬던 것처럼 달게 먹었다. 그리고 남편을 떠나보낸 고통이 순하게 치유된 자신을 느꼈다. 시간이 나를 치유해준 것이다.
이 다음에 바로 이어지는 것이 맨 앞에 옮긴 대목이다. 다시 읽어 보자.
이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깨달은 소중한 체험이 있다면 그건 시간이 해결 못할 악운도 재앙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간이야말로 신神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소설가의 연륜(박완서는 1931년생이다)과 간단히 말하기 어려운 경험에서 나온 말씀이어서 더 공감이 간다. 시간은 생생한 느낌을 줄여 준다. 이런 과정에서 자신을 남 보듯 하는 거리가 생긴다. 마음을 열어 주위를 살피게 하고 내 주관적인 평가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한다. 시간이 지나 내 글을 보면 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일을 떠올려 보자.
나는 시간이 약이라면서 다음처럼 얘기한 적이 있다.
둘째는 (고통에서 벗어나려면―옮긴이 덧붙임)시간이 약이라는 점을 믿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아픔의 강도가 차츰차츰 줄어듭니다. 그래서 아예 잊어먹까지 합니다. 애인과 헤어지는 고통을 생각해 봅시다. 그 당시에는 감당할 수 없지만 시간이 흐르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덧 아픔이 사라져 버릴뿐더러 다른 사람과 사랑을 나누고 결혼까지 합니다. 이게 인간의 큰 슬픔이기도 합니다. 영원을 약속했는데 헤어지고서도 문제 없이 잘 산다는 게 일관성이라는 기준에서 보면 슬픈 일 아닌가요! 그렇지만 이 거리와 시간 때문에 인간은 목숨을 버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기도 합니다. 요컨대 시간은 고통을 치료하는 가장 좋은 약입니다. ‘시간이 진실을 발견한다’는 스토아 철학자의 그럴듯한 말도 있습니다.
이훈, <고통을 치유하는 50가지 방법>, https://cafe.daum.net/ihun/jIQm/155
당장에 죽을 것 같은 일도 시간이 흐르면 아무것도 아닌 일로 바뀌고 심지어 ‘내가 왜 그리 엄살을 피웠나?’ 하는 생각에도 이르게 된다. 신과 같은 시간의 힘을 믿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