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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행일 및 모임장소 : 2017년 6월 10일(토) /고속터미날역 5번출구 (10시 30분)
◈ 참석 : 15명 (갑무, 진오, 양주, 경식, 승렬, 윤상, 삼환, 전작, 해황, 문형, 정한, 광일, 황표, 양기, 천옥)
◈ 산책코스: 고속버스터미날-서래공원-성모병원-누에다리-몽마르뜨공원-서리풀다리-서래마을뒷산-청권사
◈ 동반시 : "녹슨 철모" / 성지월
◈ 뒤풀이 : 감자탕에 소·맥주 및 막걸리 / '원당감자탕'(방배역 먹자골목)
이번에 시산회에서 서리풀 공원길을 트레킹 코스로 하여 신입회원인 내가 감히 기자를 자청했다. 이런 기록 작성은 처음이지만 이 코스가 내가 사는 집과 붙어있는 뒷동산길 같은 곳이어서 잘 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인데 여러 선배들의 기대치에 못 미치지 않을까 걱정된 마음으로 시작하니 양해를 바란다.
집합시간은 10시30분, 아무래도 서울 한 복판의 코스이고 교통편이 좋은 곳이고 코스도 길지 않아서인지 한 총장께서 출발 시간을 느슨하게 잡은 모양이다. 집합장소를 고속버스터미널역 5번 출구라고 해서 10시까지 가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10시 30분이 다되어 가도 반절도 안보이더니 다른 친구들은 건너편 서래공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서래공원은 서울 성모병원 건너편에 모기업이 조성하여 서울시에 기증한 약 6,500평방미터의 작은 공원으로 2003년 4월 개원하였는데 기증한 기업은 옆에 신축빌딩을 허가 받기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들은 이산가족 만난 만큼이나 반갑게 악수한 후 성모병원 앞, 장례식장 옆을 지나 트레킹코스로 진입했다. (서울 성모병원 The Catholic University of Korea Seoul St. Mary's Hospital 은 1980년 5월 강남성모병원으로 개원하여 2008년 12월 신축, 서울 성모병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병상수는 1,354개로 6위이지만 매출액 기준은 빅5에 포함되고 단일 병동평수는 57,400평으로 한국 최고라고 한다)
트레킹을 시작하자마자 가파른 계단이 눈앞에 나온다. 오늘 코스 중 가장 가파른 계단이다. 그래봐야 단련된 선수들은 가쁘게 숨을 쉬지도 않고 바로 올라서니 왼쪽으로 미도 2차 아파트가 보이고 11시 방향엔 미도 1차 아파트, 오른쪽엔 가톨릭 병원 건물들(옛 병동, 성의회관, 연구동, 교수연구실 등)이 보인다.
어디나 그러듯이 간단한 운동기구가 있는 언덕을 무시하고 계속 산 계단을 올라 등나무 밑에 벤치를 보니 바로 휴식모드로 바뀐다. 벤치에 걸터앉아 먹을 것을 배낭에서 무겁다며 각자 꺼내어 배분하자 바로 입으로 직행한다. 하기야 11시 가까이 되니 간식이 있으면 산을 오르는 친구에겐 맛있을 수밖에 없다. 칡술, 바나나 말린 것 등등 얻어먹긴 먹었는데 잘 생각이 안 난다.
아무리 짧은 코스라 할지라도 한 곳에 지체하면 안 된다 싶어 다시 오르기를 계속한다. 한 5분 오르니 미도산(?) 정상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서울고등법원, 서울중앙지방검찰청등의 법원 단지가 보인다. 거기서 오른쪽으로 내리막길을 수 분간 걸으면 누에다리가 나온다. 처음 설계할 때부터 누에모양으로 만들어 반포대로로 짤린 법원 뒷산과 몽마르트 공원을 이어서 반포대로를 오버 패스하여 연결한 것이다. 공사비가 29억원 들었다고 기억한다.
누에 다리에서 보면 발아래로는 8차선의 대로를 달리는 자동차들이 어지럽게 달리고 있고 왼쪽을 보면 저 만치 우면산 정상과 그 아래 삿갓 모양의 예술의 전당, 그리고 서초역 사거리엔 서울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향나무가 서 있다(수령 870살 키 15.5m). 서초동 법원 단지가 들어서기 전까지는 꽃동네로 여기저기 꽃을 파는 비닐하우스가 많았고 나도 신혼시절엔 이곳에 와서 꽃을 사가기도 했던 곳이다.
그 사거리엔 사랑의 교회, TV 뉴스에 잘 나오는 대법원, 대검찰청, 서초경찰서가 있고 다시 누에다리 오른쪽으로 보면 저 멀리에 남산, 그리고 분수가 나오는 반포대교 그 반포대교 옆엔 세빛섬 그리고 우리가 출발 전 만났던 서래공원 성모병원, 조달청 드리고 지식의 보고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 도서관이 보인다, 국립중앙도서관엔 모든 책을 열람할 수 있으나 대여는 안 된다. 나는 가끔 중앙도서관의 북카페를 이용하는데 그냥 커피숍이다 분위기가 조용하여 애용한다.
누에다리를 건너면 하얀 누에 석조 조형물이 보이고 그 아래 이렇게 써놓은 글이 있다
[ 서초의 꿈 / 잠몽(蠶夢) ]
누에가 부귀와 다산의 화신으로 둘이 된 사연을 아는가
누에가 사랑과 밀회를 약속하는 견우직녀 다리로 떠 있는 내력을 아는가
세월이 헤집은 언덕에 천 개의 꿈을 초롱으로 매단 서리풀 사람들.
한 세상 지나 마뉘꿀 고개 넘거던 별 따다 하늘에 걸고
하늘기운 땅 정기 탄 천충(天蟲)기려 자손번성 성채 세운 뜻이나 알고 가소
작가 : 김영걸 김시찬
또 누에에 대한 이런 설명도 있다.
누에는 예로부터 신성시되어 천충 즉 하늘이 내린 곤충으로 불렸다. 너무나 청결해 오염된 땅에서는 살지 않고 지저분한 뽕잎은 먹지 않는다. 약 45일 정도의 일생동안 5번에 걸쳐 허물을 벗고 성충이 되면 1000~1500m의 실로 고치를 짓는다.
이후에는 나방이 되어 3일간의 사랑으로 500개 정도의 알을 낳는다.
<중략>
누에의 신성한 기운을 받아 서초구민의 건강과 행복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상서로운 기운이 서린 이곳에 누에다리를 놓았다. 그리고 두 마리의 누에가 사랑을 나누는 잠몽을 설치해 여기에 오가는 모든 사람이 소원을 빌고... <이하 생략>
이렇듯 어떤 사람은 여기에 키스도 하고 소원을 빌기도 한다. 도대체 인간의 욕심은 어디까지인가 장소와 때를 가리지 않는다. 이제 이곳을 지나면 몽마르뜨공원이 눈앞에 나타난다.
몽마르뜨공원(면적20,054m²)은 원래 아까시나무가 우거진 야산이었으나 지난 2000년 서울특별시 상수도사업본부에서 반포 지역의 원활한 수돗물 공급을 위해 배수지를 만들고 서초구에서는 서울특별시와의 협의를 통해 주민들에게 휴식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서 '몽마르뜨공원'을 조성하게 되었다. 특히 인근 서래마을에는 프랑스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어 마을 진입로를 몽마르뜨길로 부르고 있었기 때문에 이 공원의 이름을 '몽마르뜨공원'으로 명명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곳엔 집에서 기르던 애완용 토끼를 너무 자라거나 늙으면 이곳에 슬그머니 갖다 두어 여기저기 토기들이 뛰어 다니고 하는데 요즘은 잘 보이지 않는다. 늙음이 슬픔이다. 또 2008년부터 매년 10월 초쯤 한불음악 축제가 이곳에서 열려 서래마을 사는 이다도시등이 출연하기도 하는데 재작년에는 정동하가 불렀던 비상, 작년엔 손승연의 마포종점이 기억에 남는다.
여기를 지나면 서초동 정보사에서 서래마을을 이어주는 왕복 2차선이 산행을 막곤 했는데 누에다리를 만들 때쯤 나무로 서리풀다리를 놓아 공원길과 서래마을 뒷산과 연결이 되어
끊김이 없이 걸을 수 있게 했다.
이곳 서래마을은 프랑스인 거주지가 들어선 1985년 주한프랑스학교(Ecole Francaise de Seoul)가 이곳으로 이전하면서부터다. 2008년 기준 한국에 거주하는 프랑스인 1,000여 명 중 절반 정도가 이곳에 살고 있다. 서래마을이 프랑스인들의 거주지역으로 자리 잡게 되고 자연스럽게 글로벌 빌리지가 세워짐에 따라 다른 여러 나라 외국인들도 서래마을을 자신들의 거주지로 선택하고 있다. 또한 연예인들도 많이 산다.
서래로 거리로 들어가면, 서울 프랑스 학교를 찾아볼 수 있다. 불어로 'Attention ecole(학교 앞 주의)'이라고 쓰인 도로 표지판이 눈길을 끈다. 파리크라상 서래점은 조금 특별하다. 아침이면 갓 구운 바게트를 사기 위해 자전거 탄 사람들이 빵집 앞에 긴 줄을 서 있으며, 이곳은 프랑스에서 직수입한 재료로 정통 프랑스식 바게트 맛을 재현, 프랑스인들도 즐겨 찾는 곳이다. 이곳에 있는 서래마을의 상점들은 소박하며 아기자기하다. 유럽의 작은 식당을 옮겨 놓은 듯한 상점과 식당들이 많은 거리이다.
최근 몇 년간 서래마을의 모습은 빠르게 변모하고 있다. 골목마다 프랑스풍 '와인바와 고급 커피숍, 햇볕을 즐기며 식사나 차를 즐길 수 잇게 발코니를 튼 카페나 레스토랑이 많아지면서 서울에서 가장 현대적이고 멋스러운 장소로 인기 급부상 중이다.
이제 다시 오르막 산길이 시작된다. 내려 왔으니 올라가야 한다. 오르막 마지막쯤이면 대여섯 번의 가픈 숨소리가 들리지만 이내 꼭대기에 다다른다. 그래도 양기의 말소리는 확성기에서 나오는 것처럼 쩡쩡하다 이름이 좋은 것 같다(조양기는 조용하다는데...).
언덕 위 같은 곳을 올라서면 세 갈래 길인데 왼쪽으론 할아버지쉼터, 오른쪽으로는 할머니 쉼터다. 왼쪽으로 가면 할아버지만 있을 것 같아 오른쪽 길을 택한다. 이 길로 가야만 코스가 더 길어 지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여자 할머니들과 조우하지 않을까 했지만 두 사람의 할머니 부부 한 쌍이 쉼터에 있었다가 고장 난 라디오처럼 들리는 양기 말소리에 슬그머니 자리를 뜬다.
감히 15명의 단체에 도전하랴! 옛날엔 남녀 칠세 부동석이라고 했지만, 불륜방지를 위해서 이산은 남녀 65세 이상 부동석의 뜻으로 할아버지 할머니쉼터를 따로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허허허.
12시를 넘기니 염 회장님께서 좋은 곳에 자리를 잡자고 한다. 역시 회장님의 책임은 남다르다. 다른 길보다 인적이 뜸한 숲속 언덕에 자리를 펴고 모두들 가져온 먹을 것을 내놓는다. 며느리가 무쳐준 가자미회, 참치김밥, 마누라가 만들어준 초밥, 과일 등등.
그런데 오늘은 막걸리가 빠졌다. 도심 속 코스라서 아무도 챙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오늘의 하이라이트 시 낭독은 엄숙히 개시되었다. 제목이 녹슨 철모이기 때문이다.
"녹슨 철모" / 성지월
누구의 손길도
와 닿지 않는 곳에서
파괴된 채 홀로 남은
녹슨 철모하나
전쟁의 처절한 삶속에
피 비린내 나는
과거를 대변하는
구리 고드름
포탄에 맞아
찢어진 철모사이로
나의 원혼은
이름 모를 야생화로
다시태어나
모진 생명력을 이어가고
그곳에 너의 영혼이
살아 생동하고
네 향기가 이 세상에 퍼져
세월 속에 존재하는 한
조국은 영원히 건재할 것이다
주인은 간데없고
외로운 너만 홀로
어제의 전장을 사수하고
퇴색한 사공에
햇빛만 찰란하다.
유월의 동반시는 호국 정신이 묻어나는 녹슨 철모다. 이 시를 낭독하고 나니 지난해 유월에 보았던 가까운 현충원에 묻혀있는 채명신 장군이 생각난다. 1926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채 장군은 1950년 6.25전쟁에 참전하고, 1961년 박정희의 군사쿠테타에 가담, 1965-69년 월남전 사령관을 지내고 1972년 유신헌법 개헌을 반대한 이유로 4성 장군이 되지 못한 채, 제대한 채명신 장군 묘를 본적이 있다.
장성급은 8평의 묘에 묻히지만, 살아생전 죽어서도 월남 참전 용사와 같이 하겠다는 유언으로 월남전 전우들의 묘비 앞 대열에 똑 같은 크기의 비, 면적(1평)으로 영면한 채명신 장군. 지금도 월남전 병사들을 제일 앞에서 지휘하는 것 같았다. 우리의 진정한 장군이며 영웅이다.
다시 남은 2/3 코스를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목적지 청권사 뒷동산에 도착했다. 계속 키 큰 나무숲 아래를 걸어서 땀은 나지 않았다. 아직 에너지가 남이 남은 듯 윗몸 일으키기 운동을 하는 친구도 있다.
청권사(淸權祠)는 조선 태종의 둘째 아들이자 세종의 형인 효령대군(孝寧大君) 보(補)의 사당과 묘소로 정식 명칭은 청권사부묘소(淸權祠附墓所)이다. 묘역 18,736평에 사당 건평 12평을 비롯한 2동의 건물과 묘 1기를 포함해 1972년 8월 30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되어 사단법인 청권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문을 닫아서 실제로 들어갈 수 없었다. 역사적인 문화적인 곳이라면 주말, 휴일에도 오픈해야하는 것 아닌가.
이제는 모든 트레킹이 끝나, 마지막의 향연을 위해 방배역의 먹자골목에 들어서니 초입에 원당감자탕 식당이 보인다. 감자탕이 목적이 아니고 막국수가 눈에 들어왔는데 제육볶음이 맛있다하여 제육볶음과 막걸리 맥주 소주로 배를 더욱 불렸다. 살찌겄어. 다시 같은 코스로 가자는 친구도 있지만 한번 눌러 앉아서 배 채우고 한잔하면 눕고 싶어져 버려. 지금까지 읽어준 친구들에게 감사. 부족한 부분은 그대의 기억으로 보충하시라.
2017년 6월 14일 홍황표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