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주부 체험 / 곽주현
아내가 며칠 전에 사촌 여동생들을 만난다며 나들이를 다녀왔다. 이튿날부터 가끔 기침을 콜록콜록한다. 혹시나 해서 ‘열이 있는가? 목이 아픈가?’ 등 증상을 물어도 다른 곳은 아무렇지도 않단다. 그리고 이틀이 지났다. 이제는 목도 좀 아프단다. 오미크론일지도 모르니 병원에 가보라 해도 예전부터 호흡기가 나빠 감기에 걸리면 자주 기침을 한다며 염려하지 말라 한다. 요즘 유행병은 전혀 아닐 거라며 자신 있게 말한다. 본인이 그러하니 더 권하기가 뭣하고 견딜만하다고 해서 그냥 지나갔다.
목포로 가는 길에 농장에 들려 땅을 고르고 비닐로 덮어 씨감자를 세 이랑을 심었다. 두어 시간 일했는데 아내가 힘들어한다. 항상 나보다 빠른 손놀림으로 작업을 앞서가는 데 오늘은 평상시와 다른 모습이다. 일을 끝내고 다시 차를 타고 가면서 창문을 몇 번 열었다 닫았다 하며 운전했다. 아내는 그렇지 않아도 몸 상태가 안 좋은데 왜 자꾸 바람을 맞게 하냐며 약간 짜증이다. 지난주는 대통령 선거도 있고 딸이 재택근무도 해서 일주일 넘게 아이들을 보지 못해서인지 자꾸 제한속도를 넘는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받아 차에 태워 그들 집으로 들어왔다. 저녁 식사 후에 할머니가 동화책을 읽어 주면서 자꾸 잔기침하기에 느낌이 안 좋아 딸에게 가정용 코로나 진단 도구로 빨리 검사해 보라 하고 나는 글쓰기 강의를 들었다. 갑자기 두 손주가 큰일 났다며 잠긴 내 방문을 쾅쾅 세차게 두드린다. 할머니가 코로나에 걸렸다며 겁먹은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본다. 진단기구에 노란 두 줄이 선명하게 그어져 있다. 아내는 언짢은 얼굴로 아무 말 없이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 시각부터 온 가족이 비상사태에 들어갔다. 강좌를 듣다 말고 나도 즉시 검사를 했다. 기다리는 10여 분이 몇 시간만큼 길었다. 다행히 한 줄이다. 딸은 어쩌면 좋겠냐며 눈치를 살핀다. “어쩌기는, 격리하고 치료해야지 뭐.”하고는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수업이 끝나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이들 걱정에 우리가 빨리 갔으면 했던 것 같다. 모두 잠들고 이미 밤이 깊었다.
이튿날 광주에 도착하자 곧 코로나 지정병원으로 갔다. 십여 명이 대기하고 있고 왜 약을 바로 안 주냐고 거세게 항의하는 분도 있다. 여기서는 검사만 하고 치료제는 보건소에서 처방한다고 설명을 해도 이러다 죽겠다며 목소리가 더 커진다. 우리도 항원검사를 받았다. 60세 이상은 의료보험이 적용되어 검사비가 6,200원이란다. 어제 집에서 했던 것과 같은 결과가 나왔다. 아내는 양성, 나는 음성이다. 집에 가 있으면 담당자가 연락할 거라며 아무런 조치도 없이 돌려보낸다. 우선 약국에서 코로나 치료에 도움이 되는 약을 몇 가지 샀다. 무슨 약을 한 보따리나 준다. 삼만 원을 냈다. 설명서를 읽어보니 해열, 두통, 근육, 코막힘 등 모두 감기에 먹는 것과 똑같다.
아내는 안방에 격리되고 모든 가사를 내가 맡았다. 있는 반찬으로 저녁상을 차렸다. 지난여름에 담가 둔 고추 장아찌를 무쳐보라 해서 시킨 대로 했는데 너무 짜다. 그래서 매실청을 넣었더니 이번에는 또 너무 달다. 설거지까지 두 시간이 더 걸렸다. 이틀을 기다려도 보건소에서 아무런 연락이 없고 전화를 걸어도 계속 통화 중이다. 광주에서만 하루에 만 오천여 명의 확진자가 나오니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른 것 같다. 오후에야 연결이 되어 상태를 점검받았다. 3일째 되는 날 보건소에서 소포가 왔다. 체온계, 맥박계, 진통제 그리고 자가 진단 꾸러미와 함께 앱을 설치하고 체온, 맥박 그리고 통증 부위를 매일 2회씩 표시하라는 안내서도 들어있다.
둘째 날은 농장에서 뽑아온 시금치를 무쳤다. 만드는 방법을 대충 듣고 요리를 하는데 참깨, 마늘 등 양념이 있는 곳을 매번 물어야 했다. 그때마다 아내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진다. ‘아이고 참! 내가 하고 말지.’ 혼자 말한 것 같은데 내 귀까지 들렸다. “마님 음식 대령했습니다.”라고 말하고 따로 밥을 먹고 있는데 나물이 맛있다고 크게 칭찬한다. 성공작인 것 같다. 빈 그릇을 내놓으면서 “이제는 나 없이도 잘 살겠네.” 하기에 “무슨 그런 심한 농담을 하시나?” 하면서 웃었다. 식사 준비도 그렇지만 일반 환자와 달리 식사 후 끼니마다 접시, 밥그릇, 수저 등 모든 식기류를 물을 끓여 소독하고 쓰레기도 따로 처리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컸다.
셋째 날은 감자 한 봉지, 즉석요리용 곰탕, 간식용 과자 등을 마트에서 샀다. 점심때 먹으려고 햄버거 가게로 들어가 커다란 전자 메뉴판 앞에서 주문하는데 자꾸 오류가 뜬다. 그때 젊은 여성이 다가와 “도와 드릴까요?” 한다. 카드를 넘겨주니 내가 고르는 것을 금방 결재한다. 이제는 전자 기기를 다르지 못하면 먹을 것도 사지 못하는 세상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좀 씁쓸했다. 그분이 점원인 줄 알았는데 아이가 앉아 있는 수레로 간다. 나오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자 아이가 방긋 웃는다. 빵 가게도 들렸다. 여자 주인이 물건이 담긴 내 커다란 비닐봉지를 보고는 무슨 잔치가 있느냐며 웃는다. 아내가 부재중이어서 그런다고 했더니 “그래도 먹을 건 먹어야지요.”하면서 덤으로 하나 더 넣어준다. 불쌍한 홀아비로 보였나?
넷째 날 아침 식사 준비로 허둥대고 있는데 큰며느리에게서 전화가 왔다. 일찍 웬일인가 싶어 살짝 불안해하며 받았다. 병간호에 고생한다는 말과 함께 즉석요리(밀키트)를 보냈다며 잘 요리해서 먹으란다. 아파트 문 앞에 큰 가방이 두 개나 놓여있다. 누룽지 해물 덮밥, 닭 한 마리 칼국수와 다른 가방에는 덜렁 한우 한 팩만 들어있다. 점심으로 해물 덮밥을 요리했다. 설명서대로 끊이기만 하면 먹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게 내 수준에서는 쉬운 게 아니었다. (누룽지는 식용유로 30초간 튀기고, 채소를 3분간 삶아 물 800 시시(cc)와 해산물을 넣어 2분간 볶은 뒤, 소스를 넣어 10분간 끓여서 마지막에 청경채를 넣어 마무리한다.) 설명서를 따라 하다 잘 안되어 아내를 급하게 불렀다. 내가 들고 있는 재료 봉지에 실린 완성된 음식 사진을 보고는 “아, 그거네.” 한다. 그리고는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지시를 내린다. “역시 전문가는 다르네.”라고 칭찬하니 “이제야 알았소?”라며 목에 힘을 준다. 약간 짭조름했지만, 맛이 괜찮았다.
아침 먹고 나면 점심 걱정, 청소하고 나면 저녁때가 되고 웬 식사 시간이 그리 빨리 닥치는지 다른 것을 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 살림하는 주부들이 새삼스럽게 위대해 보인다. 더구나 직업을 가진 여성분들은 더욱더 그렇다. 딸이 가끔 나도 다음 생은 남자로 태어났으면 좋겠다는 푸념을 한다. 티브이를 보고 있던 사위가 얼른 일어나 손자에게 목욕하자며 화장실로 데리고 간다. 그래도 나는 자취 경력이 십수 년이기에 이런 사태를 감당할 수 있었다.
요즘 세끼를 꼬박꼬박 집밥을 챙겨 먹는다는 ‘삼식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나이가 들면 특히 정년 후에는 혼자 밥을 먹어야 할 때가 많아진다. 아내는 귀찮을 수밖에 없다. 밥도 짓고 된장국 정도는 끓여 보는 실습이 꼭 필요하다. 그리고 가게에 가면 어머니 손맛이 나는 반찬이 여러 가지 있다. 그런데 사다 먹어 본 일이 없으면 실행이 참 어렵다. 아내의 코로나 덕분(?)에 주부 체험을 진하게 했다. 오늘 점심에는 닭 칼국수를 요리했다. 아내는 날로 음식 솜씨가 좋아진다며 이제 한시름 놓겠다 한다. 뭐 그러면 요즘 가끔 티브이에서 본 ‘졸혼’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아니면 외출하고서는 전화로 “나, 오늘 늦겠으니 밥하고 된장국 좀 끓여 놔” 이 소리를 자주 하려나? 좀 겁이 난다. 설마?
첫댓글 하하. 선생님!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 없지요.
연습한만큼 는 선생님 요리 실력에 박수를 보냅니다.
역지사지 마음이 직장 여성으로서 고맙기만 합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사모님이 마음 놓는다고 하신 것을 보니 음식 솜씨가 보통이 아닌가 봅니다.
저도 기러기 생활하다 보니 혼자 밥을 많이 해 먹는답니다. 저는 미리 연습하고 있으니 다행이네요. 시금치 좋아하는데, 무침에도 도전해 봐야 겠습니다.
사모님의 고충도 이해하고 반찬 만들기에도 성공하시고 힘드셨겠지만 괜찮은 경험하셨네요.
ㅎㅎ 주부체험 너무나 실감납니다.
대부분 여성들은 음식을 눈대중으로 대충 만들지만 남성들은 계량이 정학해서 표준 맛을 만들어내더라고요. 사모님이 만족하셨을 거예요.
세끼 밥하는 것도 서로 돕지 않으면 힘들어요. 여성은 나이 들면 기력이 딸리거든요.
사모님이 엄청 고마워하셨을거예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