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밀이 / 김석수
요즘 아침저녁으로 쌀쌀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지만 이제는 초겨울로 접어든 느낌이다. 갑자기 날씨가 바뀌어서 아침 밖으로 나오면 몸이 움츠러들고 정신이 얼떨떨하다. 주말이면 내가 다니는 수영장은 문을 닫는다. 수영하러 못가면 활터에 간다. 요즘 일찍 활을 쏘러 가면 추워서 손이 시리다. 오늘은 활터에 가지 않고 뜨거운 물 마사지를 하고 싶어서 목욕탕으로 발길을 돌렸다. 우리 동네는 오래된 작은 목욕탕과 새로 생긴 큰 목욕탕이 있다. 작은 목욕탕은 목욕비가 싸지만 시설이 낡았다. 큰 목욕탕은 시설이 좋지만 값이 비싸다. 두 군데 모두 때밀이가 있다.
작은 목욕탕은 물이 좋고 때밀이가 친절하다. 퇴직한 뒤로 그곳에서 마사지도 할 겸 때를 가끔 밀었다.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 물 마사지를 하고 싶어서 큰 목욕탕으로 정했다. 문에 들어서니 이발사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는 작은 목욕탕에서 일하다 이곳으로 왔다. 예전에 작은 목욕탕에서 내 머리를 깎고 염색해서 잘 아는 사이다. 그는 60여 년 이발사로 일해서 단골이 많다. 그가 이발소를 옮길 때마다 단골도 대부분 함께 따라온다. 한때는 나도 그의 단골이었다.
그의 인사를 받고 탈의실 쪽으로 가니 낯선 사람이 다가와서 “혹시, 세신(洗身)하지 않으실래요?”라고 묻는다. 이전의 때밀이가 아파서 대신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엉겁결에 “그럽시다. 20분 뒤에 세신실(洗身室)로 갈게요.”라고 응답했다. 몸을 씻고 온탕에 들어와서 이런저런 생각이 났다. ‘때를 밀려면 작은 목욕탕으로 갔어야 하는데 취소할까?’ 하다가 ‘오랜만에 때도 밀고 마사지도 받지 뭐.’라고 마음을 잡았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니 긴장이 풀어지고 밖의 쌀쌀한 기운은 온데간데없다.
물 마사지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시간이 다 됐다고 그가 불러서 때를 미는 곳으로 갔다. 그는 내 오른손을 잡고 서서히 몸을 문지른다. 어깻죽지를 밀면서 괜찮냐고 묻는다. 손힘의 강도를 조금 높여서 민다. 양손을 다 밀고 허벅지 쪽으로 옮겨서 부드럽게 민다. 가슴과 배를 가볍게 문지른다. 옆으로 누우라고 하더니 어깨 뒷면을 닦는다. 등을 위로 가게하고 돌아서 누우라고 하더니 힘주어서 등을 누른다. 종아리를 마사지하고 발목까지 두드린다. 때를 다 밀고 난 뒤 등 마사지를 시원하게 해 준다. 몸이 개운하다.
그는 부산에서 40여 년간 때밀이로 일했다. 광주가 고향이라 이곳으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는다. 자녀가 모두 커서 직장에 다닌 뒤로 은퇴했다. ‘알바’로 가끔 이 일을 한다고 한다. 그는 탈의실에서 손님을 보면 때를 밀 사람인지 아닌지 대부분 알아맞힌다. 손님의 신체 구조를 보고 때를 민다. 때를 밀면서 근육이 어디가 뭉쳐 있는지 알 수 있다. 부산에 단골이 많다. ‘때밀이 전국 네트워크’로 연락하면 일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기회가 있다.
작은 목욕탕 때밀이는 다리를 절뚝거린다. 그는 때를 밀면서 가끔 이런저런 말을 한다. 주로 단골 이야기다. 어떤 손님은 몸이 뚱뚱해서 때를 미는 데 힘이 다른 사람 두 배 들어간다. 나이가 많은 노인은 살이 없어서 때를 밀기 어렵다. 그는 대기하는 손님이 없거나 기분이 좋으면 때를 밀고 난 뒤 전신 안마를 해 준다. 이마에 구슬땀을 흘리면서 몸을 문지른다. 그는 힘이 세다. 언젠가 엉킨 근육을 풀어준다고 내 팔을 잡아 뒤로 젖혀서 부러지는 줄 알았다. 그는 다리는 절지만 팔심이 세다.
때밀이도 전문 직업이다. 열심히 일하면 그만이다. 예전에 덴마크에서 택시 기사나 식당 종업원의 말을 듣고 놀란 적이 있다. 그들의 직업 자부심은 대단하다. 다른 어떤 직업도 부럽지 않고 전공 분야에서 자기가 최고다. 무엇보다도 자기 직업을 다른 사람 일과 비교하지 않는다. 그 인식의 밑바탕에는 택시 기사와 의사의 연봉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돈을 많이 벌수록 세금을 많이 내야 하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을 열심히 하면 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이 돈을 벌 수 있다. 다른 분야의 전문성을 서로 인정해 주며 빈부 차이가 크게 벌어지지 않도록 사회 구조가 짜여 있다. 이런 점이 북유럽 국가의 행복 지수가 높은 원인 중의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