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베트남 짜끼우 성모성지)
2024. 7. 4.
예레미야서 11장~20장
(예레 18,4)
옹기그릇에 흠집이
생기면 자기눈에 드는
다른 그릇이 나올때까지
계속해서 그 일을
되풀이하였다.
묵상ㅡ
비유의 천국이다.
주님께서는 전직이
시나리오 감독이거나
소설가 아니었을까.
예레미야서 11장에서
20장까지를 보면,
온통 비유로 가득하다.
신약성경에 등장한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이 비유를
많이 하신다.
말로 설명하면 될걸
굳이 비유를 해서
듣는 사람들이 아리까리,
눈동자를 막 굴리게 하신거다.
알아듣는 자는,
'아하! 그거구나'하고
리액션을 하지만,
못알아듣는 자는
'시방 뭐라는겨,
그거랑 이거랑 뭔 상관?'
고개를 갸웃한다.
하나씩 짚어보자.
너(주님의 백성)를
심어주신 만군의
주님께서 재앙을
선포하시며 뽑고
허물고 파괴한다신다.
첫번째 비유가 재밌다.
(예레 11,13~14)
유다야, 너희 신들이
너희 성읍만큼이나
많고 너희가 우상을
위해 세운 계단, 곧
바알에게 향을 피우려고
세운 제단이 예루살렘
골목만큼이나 많구나.
캬, 이런 비유,
이렇게 막 멋지게 쓴
사람 있음 나와보라그래.
나, 예루살렘 골목 가봤잖아.
주님무덤성당에 들어가서
밤샘기도를 하며, 임종하신
주님 조문도 하고 기도도 하고
그랬었다.
그리고 예루살렘의
시내와 골목들을
걸어다니면서 14처
십자가의 길을 바쳤다.
이스라엘엔 어딜가나
순례객이 많아서 골목마다
발디딜틈이 없었는데,
우리가 갔을땐, 내전
때문에 순례객이 적어
그 정도는 아니었다.
하여튼, 예루살렘엔
크고작은 골목들이
정말 많았던 기억이
나고, 미로처럼 구비구비,
구불구불, 잘못들어가면
찾아 나오기가 힘들것 같았다.
주님께서는 바알제단이
예루살렘 골목만큼
많아서, 재고의 여지없이
'니들 이제 죽었어!'
라고 표현하신거다.
그러니까 너는 이백성을
위해 기도도 하지말고
재앙의 때에 나에게
부르짖어도 나는 듣지
않을거야 라고 못박으신거다.
두번째 비유,
정말 으스스해.
(예레 12,9)
하이에나가 나의
소유를 탐욕스레
바라보느냐?
들짐승을 불러모으고
데려와서 내소유를
삼켜버리게 하여라.
좋은 말할때 들었어야지.
주님도 참 그래,
그냥 짐승들 시켜서
물어죽이게 할거라고
하시면 될걸,
맹수를 직접적으로
거론하실 필요까지야..
그런데 이해가 되었다.
동물의 왕국을 보면
사자보다 더 무섭고
집요하고 잔인한게
하이에나다.
생긴것도 얍삽하고
사냥감이 보이면,
끝까지 쫓아가서
잡아 먹는다.
그 광경을 목격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주님께서 내소유를
내어주고 잡아먹히게
하시겠단 말씀을
막연하게만 생각했을터,
그만큼, 무섭게 심판
하신다는 공갈협박이다.
세번째 비유,
탄성이 절로 나왔다.
(예레 13,7)
유프라테스강으로 가
흙을 헤치고 숨겨둔
곳에서 띠를 꺼냈다.
그런데 그 띠가 썩어서
아무짝에도 쓸모없게
되었다.
이 대목에선 예레미야의
비싼 인건비가 투입된다.
'아마포 띠를 사서 허리에
두르고 유프라테스강으로
가서, 바위틈새에 띠를
숨겨라. 그리고 다시 가서
띠를 찾아오너라.'
주님말씀 전하랴,
주변에서 왕따당하랴,
조롱당하랴, 외로우랴,
어디 가지말라는데
기억했다가 순종하랴,
세상 바쁜 예언자를
이리 가라 와라 하시다니!
그만큼 의미가 있는
예언이었기 때문인듯.
띠가 썩은걸 보여주시며
'나도 유다의 교만과
예루살렘의 교만을
그처럼 썩혀버리겠다.'
(예레 13,11)
이 띠가 사람의 허리에
붙어있듯이 내가 온
이스라엘집안과 온
유다집안을 나에게
붙어있게 한것은,
그들이 내백성이 되어
명성과 칭송과 영광을
얻게 하려고 한 것이다.
그런데 너희는 순종하지
않았어!!!!!
오, 이렇게 깊은 뜻이!!
그뜻을 쉽게 설명해주려고
비유를 하신거다.
이해가 팍팍 되면서
등골이 오싹해지는 느낌이다.
모세와 사무엘이 내앞에
서서 간청한대도 절대
징벌을 거두지 않겠다고
하시는 주님, 이게 다
히즈키야의 아들 므나쎄가
저지른 짓 때문이라고
한번 더 짚고 넘어가신다.
몹쓸놈의 므나쎄.
네번째 비유,
드디어 옹기그릇과
옹기장이가 등장한다.
(예레 18,4)
옹기장이는 진흙을
손으로 빚어 옹기그릇을
만드는데 옹기그릇에
흠집이 생기면 자기눈에
드는 다른 그릇이 나올
때까지 계속해서 그일을
되풀이하였다.
여기서도 역시
예레미야에게
옹기장이한테 가면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겠다고 하신거다.
그러시더니
내가 이 옹기장이처럼
할수없을것 같으냐?
너희도 옹기장이
손에 있는 진흙처럼
내손에 있다.
나는 언제든지 누구든
뽑고 허물고 없애
버리겠지만 돌아서면
재앙을 거두고 다시
심고 거두겠다고 하신다.
너희는 다 내 손안에
있소이다. 그러니 제발!!!
그런데 그들은,
'우리는 우리생각대로
살아가겠소. 우리는 모두
고집스럽고 악한 마음대로
행동하겠소.'라고
대답할거라는 거다.
너무나도 쉽고 명료하게
설명해주고 입에 떠
먹여주기까지 하는데도,
'냅둬유, 살던대로
살래유'라고 어깃장을
놓았으니, 주님께서
왜 이런 구체적인 비유를
들어 말씀 하셨는지 알것 같다.
다섯번째 비유,
이번엔 사람들앞에서
질그릇 단지를 깨트린
예레미야, 별걸 다한다.
1인 다역을 현란하게
소화하는 주인공 같으다.
(예레 19,11)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옹기장이가 다시는
주워 맞출수 없게
질그릇을 깨버리듯이
내가 이백성과 이 도성을
그렇게 부수겠다.
이렇듯 비유란,
말로만 전해지는
목소리의 힘보다,
시각적인 상상이
가능하도록 하여,
자신들이 처한 상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가늠할수 있게 하려는
의사소통의 장치가
아닐까 싶다.
비유의 달인,
예수님께서도 얼마나
기막힌 비유들을
쓰시며, 사람들의
마음을 쥐락펴락하셨는지
우리는 안다.
이해하기 어렵고 불투명한
것을 시각적으로 잘 드러나도록
쉽게 설명하는 것은,
말씀 선포자나
누굴 가르치거나
영혼구원의 사명에
힘쓰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싶다.
방대한 분량을 읽는
거라서 언제 다
읽나? 하고 긴장했는데
읽는 내내, 눈에 띄는
비유 문장들이 보물처럼
포진돼있어서 재밌게 읽었다.
다 알짜배기 비유들이다.
눈물을 흘리시면서까지,
당신 소유인 백성들에게
재앙과 징벌의 매를
치신 주님의 마음이
공감되면서,
'웬만하면 주님 속썩이지
말고 순종해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완고한 인간들 설득하시려고
비유를 섞어 말씀하시는
주님의 깊은 사랑이
가슴으로 느껴져서
울컥하기도 했다.
그렇도록 섬세하게
우리를 돌보시며 구원의
길로 인도하셨던 거다.
주님, 사랑합니다.
참으로 인내로우십니다.
당신과 연결된 띠를
허리에 꽉 묶고,
영원히 붙어서 당신
사랑의 정배가 되도록
이끌어주소서.
첫댓글 좋은 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