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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전북불교대학 ‘인격을 불격으로, 세상을 정토로’ | ||||||||||||||||||||||||||||||||||||
현장보고 - 한국불교 희망을 찾아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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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全州)의 순우리말은 ‘온 고을’이다. 예로부터 사람 살기에 완벽하게 좋은 땅이라 하여 완산주(完山州)라고도 불렀다. 동남으로 노령 · 소백산맥이 감싸고, 서쪽엔 호남평야가 펼쳐져 있다. 지평선 너머 서해는 온갖 수산물의 보고이다. 산, 들, 바다가 에워싸고 있으니 이보다 온전한 땅이 어디 있으랴…… 어디든 먹고살 만하면 풍류가 따르기 마련이다. 전주에서 판소리와 음식이 발전한 것도 이런 연유이다. 여기에 교육이 뒷받침되면 천년만년 살기 좋은 고을이 된다. 전주가 그러하다. 전북불교대학은 전주에서 가장 먼저 조성한 신도시 완산구에 자리하고 있다. 땅 기운이 좋다는 완산칠봉 산자락에 완산불교회관이 있는데, 불교회관의 3층과 4층이 전북불교대학이다. 전북불교대학은 올해로 개교 30주년을 맞았다. 지난봄, 3월 31일 입학식이자 개교기념일을 맞아 초대학장 강건기 박사(전북대 명예교수)를 초청해 개교 30주년 특별강좌를 펼쳤다. 강건기 초대학장은 전북불교대학을 시작한 계기를 이렇게 말한다. “1980년대 들어 사회적으로 불교에 대한 관심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전북대학교 불교학생회 지도교수를 맡고 있었고, 졸업생들이 계속 불교 공부를 하고 싶다는 요청도 있었습니다. 여기에 개인적으로 불교학을 공부하면서 받은 은혜에 보답하고 ‘빚 갚는’다는 생각에 불교 교양대학을 구상했습니다.” 해방 이후부터 호남불교는 타종교에 밀려 교세가 열악한 편이다. 당시 전북불교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전주 시내 고등학교의 절반가량이 선교를 목적으로 설립한 미션스쿨이었다. 외국인 의료진이 진료를 맡은 전주 예수병원은 전국에서도 손꼽는 대형병원으로 의료를 통한 선교가 매우 활발했다. 해방 후 미 군정을 거치면서 한국사회는 서구 문명을 따라야 앞서가는 것처럼 여겼다. 그래서 부모들은 초파일마다 사찰을 찾아 등을 밝히면서 자녀들은 교회에 나가도록 했다. 그래야 사회에 뒤처지지 않는 것으로 여겼던 것이다. 학교에서 종교가 불교인 학생들은 친구들에게 놀림거리가 되기도 했다. 직장에서도 ‘나는 불자’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이를 찾기 힘들었다. 이렇게 서건과 동진을 거쳐 해동으로 이어온 호남의 법등(法燈)은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나 다행히도 전북불교대학의 개교로 꺼져가던 호남 전법의 등이 다시 밝혀졌다. 당시 서울에서는 대원회를 중심으로 ‘불교의 현대화, 대중화, 생활화’를 내걸고 대중불교운동이 펼쳐졌다. 1973년에는 국내 처음으로 대원불교대학이 설립됐다. 대원회와 함께 전국을 다니며 대중불교운동을 펼치던 강건기 당시 전북대 교수는 전주에 불교교양대학을 설립하고자 발원했다. 전북불교회장 소공 거사를 비롯해 전주 재가불교의 산 증인 청산 거사 등 지역 불교지도자들이 힘을 보탰다. 승가에서도 불교대학 설립을 거들었다. 김제 원각사 춘명 스님을 비롯, 사암 스님들도 종파를 초월해 전북불교대학을 후원했다.
1988년, 마침내 호남 최초로 불교 전문교육 도량인 전북불교대학이 문을 열었다. 전북불교대학은 재가불자들이 뜻을 모아 개설했다. 운영도 재가불자들이 맡았고, 일반대학의 커리큘럼을 적용했다. 학제는 2년제(1989년 불교학과 법사과로 전환)이며, 부처님 생애-근본불교-대승불교 순으로 기초를 확실히 다진 다음 경전과 조사어록 등 한국불교를 공부하도록 했다. 전북불교대학 관계자들은 첫 입학식 때 3, 40명이 모이면 성공이라 여겼다. 그런데 뜻밖의 현상이 일어났다. 무려 230명이 제1회 학인으로 입학선서를 한 것이다. 모두들 기적이 일어났다고 여겼다. 사실 호남불교는 위축된 것이 아니었다. 다만 불교에 대한 열망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었다. 잠재된 불교 열망을 드러내게 하는 것이 불교대학의 역할로 떠올랐다. 강의를 하는 이나 받는 이, 모두가 환희심에 찼다. 첫 강의는 중앙동 전북불교청년회 법당을 빌려 시작했다. 강의실이 비좁아 대부분 서서 강의를 받았다. 화장실도 하나여서 쉬는 시간에는 한바탕 난리를 치러야 했다. 개교 후 한 달 만에 넓은 강의실을 찾아 다가동으로 학사를 옮겼다. 전세살이의 설움은 전북불교대학도 예외는 아니어서, 강의실을 찾아 전전하다가 효자동 학사를 거쳐 1998년에야 마침내 오늘의 완산불교회관에 정착했다. 완산불교회관은 정혜사가 포교를 위해 건립한 불교회관이다. 당시 정혜사 주지 혜일 스님을 비롯해 사중 스님들은 불교교육에 큰 관심을 보여, 지역에서 묵묵히 불교교육을 맡고 있는 전북불교대학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래서 정혜사 부설로 완산불교회관을 건립하면서 설계부터 불교대학 교육시설을 염두에 두고 건축했다. 이후 전북불교대학은 완산불교회관 3층과 4층을 무상으로 임대해 사용하고 있다. 3층은 대강의실과 소강의실, 교무실, 4층은 법당과 공양실을 갖추고 있다.
전북불교 대학의 학훈은 ‘인격을 불격으로, 세상을 정토로’이다. 인격을 불격으로 바꾸는 자리(自利)와 세상을 정토로 바꾸고자 하는 이타(利他)의 정신을 담고 있다. 교육 방향은 ‘지혜를 증진하는 교육으로, 교학뿐 아니라 실천과 수행을 함께 하는 교육’이다. 전북불교대학에서 말하는 대학인(大學人)은 ‘크게 사람 되는 것[大]을 공부하는[學] 사람[人]’이다. 큰 사람은 부처를 뜻한다. 공부해서 깨닫자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대학에서 공부하는 도반을 학인이라 부른다. 이처럼 불교대학은 부처 되는 공부를 하는 곳이다. 불교를 공부하는 이는 무언가 달라도 다르기 마련이다. 불교학과 29회 심광섭 학인은 신행 수기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불교를 배우지 못한 2년 전과 지금의 나를 돌아보니, 적어도 운전 중에 욕은 하지 않는 것 같다. 길 위의 상황은 매우 다양하다. 자동차와 연관된 일을 하면서 살다 보니, 참으로 많은 것들을 보게 된다. 어처구니없고 황당한 사연도 많다. 그럴 땐 이렇게 마음을 추스른다. ‘그래, 배운 내가 참는다.’” 전북불교대학은 해마다 150~200여 명의 신입생이 모인다. 그동안 졸업학인이 3,600여 명에 이른다. 현재 31회 불교학과와 25회 법사과에 123명의 학인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고 있다. 전북불교대학 강의는 전주뿐 아니라 전국에서 수강한다. 훌륭한 강의와 체계적인 커리큘럼이 명성을 얻으면서 전국적으로 통신반 수강자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한때는 미국에까지 강의 테이프를 보내기도 했다. 강의뿐 아니라 사상강연회(9회), 수련대회(47회), 성지순례(61회), 특강(200회), 수계식(22회) 등 각종 행사도 개최한다. 그리고 전법사단, 문화재답사반, 합창단, 자원봉사단 등 다양한 동아리가 활동하고 있다. 함께 공부했던 동기간에는 끈끈한 정이 있기 마련이다. 졸업 후에도 학인들은 총동문회뿐 아니라 대부분 기별로 매달 모임을 갖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혈연보다 더 진한 학연을 이어가고 있다. 전북불교대학이 연륜을 쌓아가면서 전북지역의 불교도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가장 큰 변화는 거사들의 등장이다. 그동안 지역의 사찰행사는 참가자 대부분이 여성불자여서 치마불교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부처님오신날 연등회를 비롯해 불교행사에 전북불교대학의 역할이 커졌다. 행사에 참가하는 재학생, 졸업생의 인원도 숫자가 늘었지만, 무엇보다 거사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예전에 불자임을 드러내지 않던 이들도 이제는 관공서나 회사에서 당당히 불자임을 밝힌다. 근래 들어 불자를 바라보는 시각도 ‘진중하고 사려심 깊은 사람’ ‘참사람’으로 바뀌고 있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타 종교인들의 입학이다. 불교대학에 입학하는 학인들을 살펴보면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은 무교인이 절반을 넘는다. 다음으로 타 종교인이다. 불교대학 신입생 대상 설문조사를 하면 불교에 관심이 많고 불교를 알고 싶어 하는 타 종교인이 의외로 많은 편이다.
불교대학에 입학한 학인 가운데 종교가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연이 비슷하다. 어려서 친구 따라 교회에 나갔으나 나이 들면서 왠지 불교가 끌린다는 것이다. 사찰에 있는 불상이나 불화가 더 이상 무섭지 않고 친근하게 느껴진다고 한다. 그들의 내면 깊숙한 곳에 1,600년 이상 이어온 불교 DNA가 자리해 있는 것이다. 서서히 교회 나가는 횟수가 줄어들고, 그렇다고 갑자기 절에 다니기도 어색한 터에 우연히 불교를 공부하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불교에 대해 알아볼까’ 하는 마음에서 전북불교대학 문턱을 넘는다. 종교가 다른 학인들은 대부분 불교대학 첫 강의에 무릎을 치며 감동한다. 타 종교에서 찾지 못하고 막혔던 문제를 한 방에 털어버리기 때문이다. 마음을 찾는 참공부이기에 그럴 만도 하다. 전북불교대학은 불교교육뿐 아니라 작지만 의미 있는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이 돋보인다. 법당에서 학인들이 새벽예불을 봉행하는 것도 그런 예 중 하나다. 전주 시내 도로는 새벽 4시경이면 승합차량으로 북적거리기 시작한다. 새벽기도를 위해 전주 시내 모든 교회의 차량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다 5시경이면 거리가 한산해진다. 본래 타 종교에서 하는 새벽기도는 불교의 새벽예불을 본받았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불교인들은 가까운 곳에 도량이 있어도 새벽예불을 외면하곤 한다. 20여 년 전이었다. 전북불교대학에서 배출한 전법사들이 부처님께 예불을 올리기로 했다. 새벽마다 불교대학 법당에서 목탁이 울렸다. 새벽예불 팀은 새벽기도를 원하는 이가 있으면 전주 시내 어디든 달려갔다. 전주에서 처음으로 새벽예불 동참자를 위해 차량이 시내를 돌기 시작한 것이다. 전주 기린봉 기슭에는 군경묘지가 있다. 군경묘지의 영령들은 대부분 젊어서 타계했기 때문에 자녀가 없는 영가가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세월이 흐를수록 군경묘지를 찾는 가족들의 발길이 뜸하다. 그렇지만 매월 지장재일(음력 18일)이면 군경묘지에 작은 법석이 펼쳐진다. 전북불교대학 염불팀이 군경묘지에서 영가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천도의식을 한다. 소박하지만 간단히 제물을 준비하고 영가들에게 《지장경》 《아미타경》 등 부처님 말씀을 들려주고 있다. 이 또한 20여 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전북불교대학이 오랜 세월에도 변함없이 지역불교를 이끌어 오고 있는 것은 초창기 토대가 튼튼하기 때문이다. 그 주역은 초대학장 강건기 박사이다. 강 박사는 1966년 동국대학교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태국 왕실 초청으로 방콕에서 남방의 근본불교를 수행했다. 그 후 미국 뉴욕대학교에서 〈토마스 머튼과 보조 지눌사상의 비교연구〉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해 전북대학교에서 불교철학을 지도했다. 강 박사는 30여 년 전 대중불교운동을 발원하고 전국을 다니며 불교강의를 펼쳤다. 전북불교대학은 대중불교운동의 결실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강 박사는 2004년까지 20여 년간 전북불교대학장을 맡아 전북불교 교육과 발전에 힘썼다. 이후 2대 한광수 학장(2004), 3대 도원 스님(2014년)에 이어 현재 4대 이창구 학장(2016년)이 불교대학을 이끌고 있다. 강건기 초대학장과 현 이창구 학장은 전북대 철학과 사제지간이다. 두 학장의 인연은 또 있다. 지난해 이창구 학장은 구산선문 답사기를 정리한 《아홉 개의 산문이 열리다》를 출간하여, 제13회 불교출판문화대상을 받았다. 강건기 박사도 《마음 닦는 길》로 제1회 불교출판문화대상을 받은 바 있다. 전북불교대학에서 2명의 학장이 불교출판문화대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린 것이다. 전북불교대학은 2001년 대학부설 출판사로 ‘도서출판 부처님 세상’을 설립해 불교 전문서적을 발행하고 있다. 특히 부처님 세상에서 출판한 《부처님 생애》 《근본불교》 《대승불교》는 불교대학 교재로 사용되어, 불교를 처음 접하는 초심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판형이 작아 휴대하기 좋고 불교대학 수업에 맞춰 8강으로 정리되어 있어 읽기 편하다. 지난 2016년, 4대 이창구 학장이 취임하면서 전북불교대학은 다양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이창구 학장은 전북불교대학의 미래를 이렇게 소개한다. “지금까지 전북불교대학 30년의 역사가 대학의 기초를 다지고 건물을 세운 기간이라면, 앞으로 30년은 외형이 아니라 내실을 튼튼히 다지는 시간으로 가꾸려고 합니다. 대학의 발전과 낙후된 전북불교의 활성화는 단순한 외적 성장이 아니라 공부와 수행, 내적 성찰이 바탕이 되어야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 학장은 작은 꿈이 하나 있다. 전북불교대학을 지역의 인문학 전당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학기 중에는 불교 공부와 신행에 집중하고, 방학 동안에는 불교대학 학인뿐만 아니라, 전주 시민들도 참여할 수 있는 인문학 강좌를 열고 있다. 그동안 동화와 인문학, 철학이 필요한 시간, 중국의 사상가들, 동양의 고전 읽기 등의 강좌를 진행했다. 지난 여름방학에 펼친 ‘동양의 고전 읽기’는 《대학》과 《중용》이었다. 이 학장의 명쾌한 강의는 불교대학 학인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인기가 높았다. 강의가 거듭되면서 입소문이 퍼져 수강생이 늘어나고 있다. 이렇게 방학 동안 열린 인문학 강좌에 참여했다가 불교대학에 입학한 이들이 제법 된다. 또한 내실을 기하기 위해 답사반을 운영하고 있다. 매달 열리는 답사순례는 ‘철학과 문화가 있는 답사’를 주제로 진행된다. 그동안 구산선문 사찰, 화엄 10찰을 주제로 답사를 마쳤고, 내년부터는 《삼국유사》를 주제로 답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이창구 학장은 강의뿐 아니라 불교 저술에도 힘쓰고 있다. 〈불교란 무엇인가, 불교란 무엇이 아닌가〉 〈안다는 것 산다는 것〉 〈불교학의 해석과 실천〉 등 다양한 내용의 글을 집필하고 있다. 이 학장은 불교 공부를 하면서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과연 이 어려운 불교를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전문 학자들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 불교를 대중들이 이해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생각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아주 쉽게 대중들에게 당신이 깨친 진리를 전하셨는데, 오늘의 불교학자들은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부처님 정신으로 돌아가 대중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강의를 하고 대중들이 공감할 수 있는 책을 쓰고자 발원했다. 미약하지만 부처님 정신을 잃지 않고 대중들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책 쓰기에 더욱 노력하겠다는 다짐이었다. 그동안 전북불교대학은 역사와 명성에 걸맞게 양적, 질적 성장을 했다. 그러나 미래를 생각하면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불교대학의 ‘생존’이다. 불자가 감소한 탓도 있지만 해를 거듭하면서 신입생 모집에 어려움이 많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젊은 층의 불자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사찰에 비하면 불교대학은 젊은 편이라 할 수 있다. 한국불교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젊은 불자들을 양성할 수 있을까’에 포교의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전북불교대학은 불교학과와 법사과를 졸업하고 전법사 고시를 치른다. 전법사 고시에 합격한 전법사들이 지역 군부대를 찾아 법회를 주관하고 있다. 청년 불자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이다. 또한 전북불교대학은 정기간행물로 신문 〈전북불교〉를 발행하고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데 문서포교만 한 것이 없다. 〈전북불교〉는 불교대학에서 열린 특강을 요약하고 지역불교 소식, 학인 동정, 신행 수기 등을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 SNS를 활용해 포교에도 힘쓰고 있다. 모두가 젊은 불자 양성을 위한 노력이다. 불교를 아무리 많이 알아도 실제로 그렇게 살아지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앎과 삶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기 때문이다. 도둑질, 거짓말, 험한 말, 이간 붙이는 말 이런 말 등을 하면 안 된다고 잘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잘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아는 대로 사는 사람이 부처님이고, 아는 대로 살아지지 않는 존재가 바로 중생이라 한다. 전북불교대학은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을 ‘참회, 발원의 날’로 정하고 절 수행과 명상 등을 하고 있다. 단순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머리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명상하고 절 수행을 통해 지난 한 달간의 생활을 성찰, 참회하며 새롭게 발원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부처님 재세 시 행해졌던 포살의 현대판이라 하겠다. 전북불교대학은 지난 9월, 조계종 불교상담개발원과 ‘생명살림, 지킴, 이음 프로젝트’ 업무협약을 맺고 자살예방 사업에 나섰다. 매달 생명살림법회를 열고 있는 전북불교대학은 내년 학기 커리큘럼에 ‘불교 자살예방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을 개설할 예정이다. 생명존중과 자살예방 운동을 통해 사회문제에 적극 참여하고 불교의 대중화, 사회화, 지성화에 앞장서기 위해서이다. 전북불교대학 강의실에 들어서면 정면에 큼지막하게 ‘학문사변행(學問思辯行)’이란 글귀가 눈에 띈다. 이는 《중용》에 나오는 학문연구법으로 널리 배우고(博學), 세밀하게 질문하며(審問), 신중하게 생각하고(愼思), 명확하게 분별하며(明辯), 독실하게 행동하라는 것(篤行)이다. 순천 송광사에서 정혜결사를 이끈 보조지눌 스님이 그러했다. 정혜결사 이후 앞만 보고 뚜벅뚜벅 걸어갔다. ‘호시우행(虎視牛行)’ 했던 것이다. 전북불교대학 또한 호남불교를 위해 인적자원을 배출해내는 마중물이자 호시우행하는 재가자들의 수행도량으로 거듭 나고 있다. ■
이준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