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복저수지 메기매운탕과 유년의 기억
드디어 메기매운탕이 나왔다. 그런데 아주 단순하다. 메기는 보이지도 않고 수제비 몇 점만 살짝 보인다. 조금 도톰하고 나박나박 썬 무 조각도 국물 위로 살짝 낯을 보였다. 발갛게 고춧물이 든 무 조각을 보기만 해도 입맛이 시원하다. 대파랑 깻잎이랑 쑥갓이 고명처럼 파랗게 얹혀있다. 마늘이나 생강은 보이지 않는다. 메기매운탕이라면 빨갛게 익은 민물새우 몇 마리쯤 보일 줄 알았는데 아니다. 소문에 비해 보기에는 별것 아니었다. 그렇지 메기매운탕이 뭐 별건가.
세종시 연서면에 있는 고복저수지 메기매운탕이 청주까지 소문이 났다. 다녀온 사람들은 그 집 메기매운탕을 먹어보지 않고는 매운탕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고 침을 튀겼다. 속으로 ‘메기매운탕이 뭐 별건가? 비릿하고 껄쭉하겠지.’하고 무시해 버렸다. 그리고 청주에도 있는 메기매운탕집을 드나들었다. 그저 수제비 건져 먹는 맛, 냄비 바닥에 빨갛게 익어 붙어 있는 고소한 민물새우 맛으로 만족했다.
음식을 소재로 수필을 쓴다면서 이름난 고복저수지 메기매운탕 맛을 보지 못한 것이 때로는 자존심 상하기는 했다. 사람들 앞에서 나도 먹어본 척하면서 말을 돌렸다. 슬그머니 고복저수지 부근을 서성거린 적도 있다. 그런데 갈 때마다 사람들이 밖에까지 줄을 서서 기다리는 바람에 감춘 소망을 이루지 못했다.
한창 때 백두대간을 함께 걸었던 산 친구와 오랜만에 세종시 전의면의 이성李城, 작성鵲城, 금이성金伊城으로 이어지는 등마루 13km를 밟았다. 아름다운 사찰 비암사로 내려오니 오후 3시가 넘었다. 고복저수지 부근 메기매운탕집으로 달려가니 차가 서너 대밖에 없다. 점심때가 지난 것이다. 오늘은 정말 맛볼 수 있겠구나. 좋은 친구까지 함께 했으니 금상첨화가 아닌가.
문안에 들어서는데 매운탕집에서 나는 특유의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메기매운탕을 끓여 댔으면 문안에 들어서자마자 비린내로 이맛살을 찌푸려야 하는데 냄새는 그림자도 없다. 무슨 조화로운 비법이라도 있으렷다.
배고픈 사람 둘이서 먹을 만치 달라고 했다. 2인분을 좀 넉넉히 드리겠노라고 하는 대답이 아름답다. 상차림은 아주 단순하다. 깍두기, 콩나물무침, 배추김치, 도라지고추장무침, 어묵볶음, 새발나물무침이 전부였다. 푸릇한 나물이 뭔지 몰라 아주머니에게 물으니 ‘새발나물’이라고만 가르쳐 주었다. 우선 깍두기를 먹어보았다. 깍두기는 곰탕집 깍두기의 4분의 1 정도 크기여서 먹기 좋았다. 젓갈이 들어가지 않았는지 맛이 달콤하고 깔끔하다. 다음에 새발나물무침으로 젓가락이 갔다. 처음 먹어보는 나물이라 조금 조심스럽기는 했다. 돌나물무침처럼 양념장을 얹어서 무치지 않고 그냥 내왔다. 맛이 상큼하다. 그런데 나물 자체에서 약간의 향과 함께 짭짤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메기매운탕을 먹고 나면 입에 남는 비릿한 맛을 씻어주는데 제격일 것 같았다.
냄비가 두툼하지 않아서 바로 끓는다. 침을 꼴깍꼴깍 삼키고 있는데 아주머니의 허락이 떨어졌다. 국물 한 숟가락을 살짝 떴다. 기름이 돌지 않는다. 고추장매운탕으로 보이는데 걸쭉하지도 않다. 메기를 넣었으면 기름이 테를 두르거나 비린내가 나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다. 숟가락을 가만히 입안에 넣어 살며시 혓바닥에 국물을 흘렸다. 일단 짜지는 않았다. 비릿한 맛도 없다. 입안이 화끈하게 맵지도 않다. 그냥 무해무덕하다. 대개 매운탕은 매운맛으로 고객을 사로잡는데 그렇지 않다. 그런데 꿀꺽 삼키는 순간, 아- 고소하다. 됐다. 이 맛이다. 나는 마치 내가 맛을 내기라도 한 듯이 성취감에 취해 버렸다.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다 예뻐 보였다.
생선은 오래 끓을수록 더 진한 맛을 낸다. 한 5분 더 기다리는 것쯤이야 미식가가 겪어야하는 짧은 고통이다. 오른손에 숟가락을 든 채 참고 참으며 기다렸다. 국자로 고기 한 점을 나눔 접시에 덜어 왔다. 생선살은 하나도 부서지지 않은 채 살아 있는 것처럼 오동통하다. 숟가락으로 건드리니 뼈는 뼈대로 고깃살은 고깃살대로 분리된다. 하얀 고깃살을 입에 넣고 그냥 꾹 눌러보았다. 부드럽고 담백하다. 비리지 않다. 깔밋하다. 메기 고유의 맛이 민물새우 고소함에 묻히지 않고 살아있다. 우리는 얼굴만 바라보고 한 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다. 바로 이것이 전통의 맛이다. 깔끔한 재료들만으로 깔끔하게 맛을 낸 것이다. 새우 맛 같은 속셈이 없는 두 사람의 우정을 닮아 깔끔하고 담백하다.
대부분 민물생선매운탕 전문 식당에서 육수를 낼 때 소나 돼지의 뼈를 고아서 만들기도 하고 멸치나 다른 생선을 넣어 고아내기도 한다. 그런데 이 식당 육수는 일단 동물성 맛은 나지 않았다. 버섯, 양파, 무 같은 식물성 재료만을 넣어 만들었을 것 같다. 나중에 물어보니 내 짐작이 맞았다. 또 새발나물은 해남 바닷가에서 직송해 온다고 한다. 그래서 향과 함께 약간의 염기가 있었나 보다. 육수에도 분명 해초가 들어갔을 것이다. 정성도 중요하지만 맛을 내고 조화시키는 먹거리의 속성을 연구하는 것도 필요한가 보다.
우리는 시장하기도 했지만 매운탕의 특별한 맛 때문에 순식간에 한 냄비를 해치웠다. 나오면서 들으니 1980년부터 어머니가 고복저수지 낚시꾼들에게 매운탕을 끓여 팔았는데 손님이 많아져 큰 식당을 짓고 이사하여 이제는 아들이 운영한다고 한다. 육수를 만드는 비법이 궁금했지만 젊은 며느리는 어머니께서 자신에게만 일러 주셨기에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다고 한다. 다만 동물성을 쓰지 않아 비린내가 나지 않는 것이라는 말만 조심스럽게 해 준다. 나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된장이나 고추장은 어떻게 쓰느냐고 슬쩍 물었다. 된장도 고추장도 절대 쓰지 않고 특별히 숙성시킨 양념 소스sauce만을 사용한다고 귀띔해 주었다.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빙허각 이씨의 규합총서에는 메기매운탕을 ‘점어鮎魚는 물을 끓여 튀하면 미끄러운 것이 없어진다. 좋은 고추장에 꿀을 좀 섞어 끓이면 좋다’라고 설명하고 있어서 당시에도 즐겨 먹었음을 알 수 있다. 메기는 심장을 강하게 하고 특히 당뇨병에 좋다고 한다. 저칼로리 고단백이라 여름 보양식으로 좋다고 한다. 그러나 나 같은 통풍 환자에게는 별로 이로울 게 없다고는 한다. 하지만 가끔 어쩔 수 없는 외도는 나의 도반道伴인 통풍도 용서할 것이라고 믿는다.
돌이켜 보면 어린 시절에 냇가에서 피라미나 붕어새끼를 움키다가도 메기 한 마리가 걸리면 개선장군이 되었다. 기다란 수염을 가진 시커먼 메기를 들고 무용담을 이야기하듯 식구들 앞에서 으스대던 일이 생각난다. 고복저수지 부근에서 낚시꾼의 시장기를 덜어주던 어머니의 손맛 같은 메기매운탕은 사람들의 유년의 기억을 되살리기에 충분한 맛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오는가 보다. 맛은 재료의 속성을 알고 정성을 다하는 데서 나온다. 처음 시작하신 어른은 사람들에게 음식 장사를 한 것이 아니라 진솔한 어머니의 마음을 전해 준 것이다. 따뜻한 인간의 사랑을 깨우쳐 준 것이다. 어머니 손맛으로 사람들의 아련한 기억을 되살리고, 손맛에 담긴 사랑을 가르쳐 우정을 더욱 도탑게 하였다. 결국 메기의 활력으로 생활에 찌든 삶을 헹구어 준 것이다.
돌아오는 길 저수지에는 생기가 이들이들하다.
(에세이포레 2016년 여름호 게재)
첫댓글 침이 꿀꺽 넘어 갑니다. 맛이 좋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가족들과 한 번 가보세요. 깔끔한 맛입니다.
예.
매운탕 먹고 싶네요. 에뜨락 회원들 진천가서 붕어찜 먹던 생각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