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장의 동방, 해운대의 영광을 위해
우리가 사는 해운대는 부산의 가장 동쪽에 위치해 있다. 다음은 1995년 부산직할시가 광역화되어 기장군이 부산으로 편입되기 전까지의 행정구역도이다. 역시 해운대가 부산의 가장 동쪽 끝에 위치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행정구역도를 자세히 살펴보면 무언가 많이 이상하다. 방위는 인간이 지리적 공간을 분별하는 중요한 인식체계이다. 그럼에도 지도에 표기된 행정구 명칭으로 사용된 동서남북 방위가 어색하게 뒤죽박죽이어서 무척 혼란스럽다. 중구는 남구보다 오히려 남서쪽에 있고, 동구는 남구 바로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왜 이런 일들이 벌어졌을까?
결과가 있기까지는 그 이전의 어떤 사건이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어찌된 일인지 역사를 조금 거슬러 올라가 조선말 우리 고장의 지도에서 그 원인을 찾아보자.
우리 고장의 중심을 의미하는 이름, 지금의 중구 지역은 지도에서 중심은커녕 영도 건너편 산 아래의 작고 궁벽한 구역으로 그려져 있을 뿐이다. 중심하고는 거리가 한참 떨어져 있다.
다시 이 지도를 행정구역도와 대조해 보자. 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듯, 우리 고장의 중심은 동래구에 해당된다. 그러면 동래구를 중심으로 놓고 다시 보자. 동쪽에 있는 해운대구는 동면, 서쪽은 지금의 부산진구인 서면이다. 서면이라는 지명은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다. 부산진구의 부전동·전포동 일대를 아직도 그렇게 부른다. 그리고 남면은 지금의 남구, 북면은 북구다. 그렇다. 이제야 뭔가 제대로 아귀가 맞아떨어진다.
그러면 어떻게 그 궁벽한 변방이 우리 고장의 중심을 뜻하는 중구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을까? 지금 중구·동구의 옛 시청 그리고 부산역 일대 대부분의 평지는 1907년부터 일제가 항만 건설을 위해 바다를 매립하여 만든 땅이다. 동구 구역에는 구한말까지 왜관이 있었으며, 1910년 이후로는 중구·동구·서구·영도구 일대에 일제의 조선침략 교두보 역할을 했던 부산부가 설치되었다. 아! 지금의 중구는 바로 그 침략 교두보의 중심이었다.
원래 우리 고장의 이름은 부산이 아니라 동래였다. ‘동방의 봉래’라는 이름 뜻처럼 풍수상 유수한 길지로 소문난 곳이며, 해운대는 그 길지 중의 동방 즉, 해가 가장 먼저 뜨는 역동적인 활기가 서려 있는 땅이다. 다시 해운대구를 동구로 되돌리기는 어렵겠지만 그 영광만은 되살릴 필요가 있다.
‘낙이불류 애이불비’. 뼈아픈 역사적 과오는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할 테지만, 반성이 지나치면 패배의식을 낳는다. 부산시의 역사·문화행정은 과거의 역사적 고난과 질곡을 과도하게 드러내어 오히려 패배의식을 조장하는 경향이 심하다. 해운대의 영광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필히 그 문제점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정 승 욱
대동민속문화연구소장 · 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