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三歸依戒
善知識이여
今發四弘願了이니 更與善知識하여
授無相三歸依戒하리라
善知識이여
歸依覺二足尊하며
歸依正離欲尊하며
歸依淨衆中尊할지니라
從今日去로는 稱覺爲師하고
更不歸依邪魔外道니라
以自性三寶로 常自證明하라
勸善知識하나니 歸依自性三寶하라
佛者覺也요
法者正也요
僧者淨也라
自心歸依覺하여 邪迷不生하고
少欲知足하여 能離財色을 名兩足尊이며
自心歸依正하여 念念無邪見하고 以無邪見故로
卽無人我貢高와 貪愛執着를
名離欲尊이요 自心歸依淨하여
一切塵勞-愛欲境界에 自性이
皆不染着을 名衆中尊이니라
若修此行하면 是自歸依거늘
凡夫不會하여 從日至夜로 受三歸戒하니
若言歸依佛하면
佛在何處인가 若不見佛이면 憑何所歸인가
言却成妄이니라
善知識이여
各自觀察하여 莫錯用心하라 經文分明히
言自歸依佛하셨지 不言歸依他佛이시니
自佛不歸하면 無所依處이니
今旣自悟이면 各須歸依自-心三寶하여
內調心性하고 外敬他人이 是自歸依也니라.
선지식이여!
이제 네가지 큰원을 발하여 마쳤으니
다시 선지식과 더불어 상없는 삼귀의계를 주리라.
선지식이여!
깨달으신 양족존께 귀의하며,
바른 이욕존께 귀의하며,
깨끗한 중중존께 귀의할지니
오늘부터 가서 깨달은 이(선지식)를 스승으로 삼고
다시 사마 외도에 의지하지 말지니라.
자성삼보로써 항상 스스로 증명하라.
선지식이여!
권하나니 자성삼보에 귀의하라,
불은
깨달음(始覺으로 깨달아야 할 청정本覺)이요,
법은
바른 것이요,
승은
깨끗한(조촐함) 것이니,
제 마음의 깨달음에 귀의하여
삿되고 미혹됨이 생기지 않고
욕심이 적어 만족할 줄 알아서
능히 재물과 색(相)을 여읨(여의면
복혜 구족)을 이름하여 양(二)족존이라 하며,
자기 마음의 바른 것에 귀의하여
생각 생각이 삿된 소견이 없고
삿된 소견이 없음으로써
곧 나다, 사람이다(四見)하는
교만(貢高)과 탐하고 아껴서 집착함을
여읨을 이름하여 이욕존이라 하고,
자기 마음의 깨끗함에 귀의하여
모든 번뇌와 애욕의 경계에
자성이 두루 물들지 않음을 이름하여
중중존이라 하느니라.
만일 이렇게 행하고 닦으면 이것이 스스로 귀의함이거늘
범부가 알지 못하여 해가 지고 밤이 다하도록(늘)
삼귀계를 받는다 하니
만일 부처(별도로 있는 佛)에게 귀의한다고 말하면
부처가 어느 곳에 있다는 것인가?
만일 부처를 보지 못한다면
무엇을 의지하여 귀의 할 것인가?
말(거짓명사)이 도리어 망령을 이루는 것이니라.
선지식이여!
각기 스스로 관찰하여 그릇되게 마음을 쓰지 말라.
경문에 분명히 '자기 부처에 귀의하라'고 말씀하셨지
다른 부처에 귀의하라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으니
자기 부처로 돌아 가지 않으면 의지할 곳이 없으니,
이제 이미 스스로 깨달았으면
모름지기 각기 자기 마음의 삼보에 귀의하여
안으로 心性을 고루고
밖으로 남을 공경하는 것이
바르게 스스로 귀의함인 것이니라.
강설:
깨달으신 양족존
(복과 지혜를 족히 갖춘 존귀함)이란
청정본성은 원래부터 두가지 복과 지혜를
족히 갖추었다는 뜻이며,
바른 이욕존(욕심을 여읜 존귀함)은
일체 탐욕을 여의었음으로 삿되지 않고
본래의 청정함으로 바름이며,
깨끗한 중중존(일체 모든 것이 존귀한 가운데)은
일체 가운데 가장 존귀한 분이란 뜻이니
이것은 깨달음의 성취요 원만한 갖춤이요
청정하여 존중함인 것이다.
따라서
깨달은 분(선지식)을 스승을 삼되
삿되거나 정각을 이루지 못한 이를 의지해서는
그릇되게 된다 하신 것이다.
※
구경은
자성 3보(불, 법, 승의 세가지 귀함)에
귀의(계합함으로 의지)함이니,
자성의 부처란
깨달음(覺)이요 즉 적멸의 고요함이며,
法이란
바른 것(어긋남이 없는 실다운 진리)이요,
승이란
깨끗함 즉 조촐하여 욕심이 없음인 것이다.
이 자성인 본래의 마음에 귀의하여
삿되고 미혹이 생기지 않게 되면
재물과 모든 相(色)에 탐욕(끄달려 집착함)을
여의게 되어 일체가 둘 아닌 同體大悲의 넓은
마음으로 四相이 없고 교만과 애욕과 번뇌에
물들어 침잠하지 않게 됨이 곧 자성삼보에
참으로 귀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도의 이치(眞理)를 모르고
밖으로 부처에 3귀계를 받는다 하면
받을 부처가 어디에 따로 있어서 구할 것인가?
안으로 마음의 번뇌를 다스리고
밖으로 남(모든 것)을 공경함이
바른 귀의라 하신 것이다.
佛은
인도 고어인 싼스크리트어로 붇다요, 중국말로는 佛이요,
우리말로는 부처이며 이 부처(本覺)를 깨달(始覺)은
이를 존칭하여 부처님이라 하는 것임을 살펴야한다.
善知識이여
旣歸依自三寶竟이니 各各至心으로
吾與說一體로되
三身自性佛하여 令汝等으로 見三身了然하여
自悟自性하리니 總隨我道하라
於自色身의 歸依淸淨法身佛하며
於自色身의 歸依千百億化身佛하며
於自色身이 歸依圓滿報身佛하노라
善知識이여
色身是舍宅이라 不可言歸向者이니라
三身佛은 在自性中하니 世人總有이나
爲自心迷하여 不見內性하고
外覓三身如來하며 不見自身中-有三身佛하나니
汝等聽說하라
令汝等-於自身中에 見自性-有三身佛하리니
此三身佛은 從自性生이라 不從外得이니라.
선지식이여!
이미 자성삼보에 귀의해 마쳤으니
각각 지극한 마음으로 내가 더불어 일체로되,
삼신인 자성불을 설하여 그대들로 하여금
3신을 분명하게 보아 자성을 스스로 깨닫게 하리니
모두 나를 따라 이르라.
※
"자기 색신의 청정 법신불에 귀의하며,
자기 색신의 천백억 화신불에 귀의하며,
자기 색신의 원만 보신불에 귀의하노라"
선지식이여!
색신은 바로 거주하는 집이라
향하여 돌아 간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니라.
삼신불은 자성 가운데 있으니
세상 사람이 모두(갖추어) 있으나
스스로 마음을 미혹케하여
안으로 자성을 보지 못하고
밖으로 3신 여래를 찾으며
자신(내) 가운데 3신불이 있음을 보지 못하나니,
너희는 설함을 들으라.
너희로 하여금 자신 가운데
자성의 3신불이 있음을 보게 하리니
이 3신불은 자성으로부터 나는 것이라
밖으로 부터 얻지 못하느니라.
강설:
일체(하나)이며 세가지 몸이라 하는
3신인
법신, 보신, 화신을
분명히 깨달아 보게 하리니
이 3신불 또한 밖에 있음이 아니요
자성 부처임을 스스로 깨달으라 하시었다.
자성을 떠나서 법신, 보신, 화신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법신불은 자성청정(本覺)이요,
보신불은 원만한 깨달음(始覺)이요,
화신(應覺)은 천백억(한량없이) 나툼인 것이니,
나라고 집착하는 색(四大)은 잠시 머무르는 집이니
無常한 것이기 때문에 나라고 집착하여 진아(참나)로
보아 귀의할 바가 못되는 것이므로
오직 자성 3보인 본래 청정 고요함과
올바른 진리(바름)와
깨끗하여 욕심이라는 것이 없어
조촐함에 귀의함이
바른 3보에 귀의함이라 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
(유정물-평등 일체로 보면 무정물도
그 안에 포함되나)에게
두루 있는 자기 본성에서 이 3신불이 나누어 지나
스스로 상에 집착하게 되고
假我인 五온
(색, 수, 상, 행, 식)을 참나(眞我)로 잘못 알아
국집함으로써 미혹하게 되어 본성을 장애하여
스스로 보지 못하고 밖으로 3신불을 찾아
자신을 잃어 버려 참주인 노릇을 못하고
四大 五온이 주인되어 중생노릇 하는 것이다.
이제 자신에게 있는
참 자기인 3신불을 안으로 찾아
깨달아 보게 되어야 하는 것이다.
4대인 색신은
거주하는 집과 같이 실로 빈 껍데기이니
집이란
사람이 있을 때 집으로써 집 다워 지는 것이요
사람이 떠나면 집은 곧 무정물이요
허물어질 無常한 것이므로,
사람(주인공)이 들어 머무는
빈 그릇(집)일 뿐 임을 알지 못하고
나라고 애착하나,
참나는 자성인 본성심인 것이다.
何名하여 淸淨法身인가
世人性本淸淨하여 萬法이 從自性生이니
思量一切惡事하면 卽生惡行하고
思量一切善事하면 卽生善行이라
如是諸法이 在自性中이
如天常淸하면 日月이 常明이나
爲浮雲蓋覆하면 上明下暗이다가
忽遇風吹雲散하면 上下俱明하여
萬象皆現이니 世人의 性常浮遊如彼天雲이니라
善知識이여
智如日하고 慧如月이니 智慧常明이나
於外着境하여 被妄念浮雲이 蓋覆하여
自性不得明朗하나
若遇善知識하여 聞眞正法하고
自除迷妄하여 內外明徹하면
於自性中에 萬法皆現이니
見性之人도 亦復如是이니 此名淸淨法身佛하니라
善知識이여
自心이 歸依自性하면 是歸依眞佛이니
自歸依者는
除却-自性中에 不善心과 嫉妬心驕慢心과
吾我心과 妄心輕人心과 慢人心邪見心과
貢高心 及一切時中하여 不善之行하고
常自見己過하고 不說他人好惡이 是自歸依이니
常須下心하여 普行恭敬하면 卽是見性通達하여
更無滯 이니 是自歸依니라.
무엇을 이름하여 청정법신이라 하는가?
세상 사람의 자성이 본래 청정해서
만법이 자성으로부터 생기나니,
일체 악한일을 생각하면 곧 악한 행이 나게 되고,
모든 착한 일을 생각하면 곧 착한 행이 나게 되는 것이라,
이같이
모든 법(萬有)이 자성 가운데 있는 것이
하늘 같이 항상 맑으면
해와 달(진여)이 항상 밝으나
뜬구름(妄念)이 하늘을 덮으면
위(본성)는 밝고 아래(중생심)는 어둡다가,
홀연이 바람(선지식)이 불어 줌을 만나
구름이 흩어지면 위와 아래가 모두 밝아져
(內外明徹)서 모든 것(모든 실상)이
다 나타나게 되는것이나
세상 사람(중생)의 성품이
떠 다니는 저 하늘(청정자성)에
구름(번뇌, 망상)과 같으니라.
선지식이여!
智는 해와 같고,
慧는 달과 같으니
지혜는 항상 밝으나
밖으로 경계에 집착해서
저 망념의 뜬구름이 하늘을 덮어서
자성의 밝음을 밝혀서 증득하지 못하나,
만약 선지식을 만나 참으로 바른 법을 듣고
스스로 미혹과 망념을 없애서
안과 밖이 분명하고 투철(안팎이 없는 안팎이나
理와 事에 사무치게 밝게 깨달음)하게 되어
자성 가운데의 만법(一切)이 다 나타나는 것이니
견성한 사람도 또한 다시 이와 같은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청정법신불이라 하느니라.
선지식이여!
자기 마음이 자성에 귀의(合一)하면
이것이 참부처에 귀의하는 것이니
스스로 귀의하는 자는
자성 가운데에 미처(어지러워)서
착하지 못한 마음(생각)과 질투심과
교만심과 오만심과 나라고 하는 마음과
거짓으로 속이는 마음,
사람을 가벼이 여기는 마음과
게으른 마음, 삿된 소견심과 교만심 및
일체시(항상) 가운데 미처서
착하지 못한 행을 다스려 없애 버리고,
항상 스스로 자기의 허물만 보고
타인의 좋고 나쁨을 말하지 않는 것이
바른 자성에 귀의함이니,
모름지기 항상 하심하여 널리 공경함을 행하면
곧 이 자성을 보아 통달하게 되어
다시 걸리고 막힘이 없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자성에 귀의함이니라.
강설:
이 3신불을 자세히 설파하시되
청정법신불이란
자성이 본래 맑아 깨끗한 것이며
일체 만상을 나투고 작용하는 근원이니,
악한 생각을 일으키면 악한 일이 생기되
모든 생긴 것이 자성 가운데에 있으며,
이 자성은 자기의 본성이요
일체 모든 것(법)의 성품(법성)이며,
이 본성은 온 우주에 두루 상즉하여 있는
갓이 없는 큼이니
이로부터 생긴 모든 것이 또한 도리어
이 안에 포용해 있기 때문이다.
이 자성이라는 본래 청정한 본성이
비유하면
빈 하늘(본성체) 같이 장애함이 없어
항상 맑으면 반야지혜가 항상 밝게 비추)나
(작용, 두터운 구름(번뇌, 망상인 망령)이
장애하여 가리면 위는 밝고
(본체는 그대로 여여부동함)
아래는 어둡(미혹된 중생)다가
홀연히 바람이 불어 줌을 입어
(선지식의 가르킴) 구름(망념)이 사라지면
본성과 작용인 행함이 함께 밝게 되어
모든 것의 실다움을 보아 알게되는 것이니,
선지식을 찾아 법문을 듣고
스스로 미혹과 망령인 삿된소견을 없애서
안팎(마음과 만상)이 투철하게 밝게 사무쳐
진제와 속제인 理와事에 걸림 없이 깨달아
알게 되는 곧 청정법신이 이와같다 하셨다.
또 이 청정자성에 귀의함이
참 부처에 귀의함이며
이렇게 자성에 참으로 귀의하게 되면
일체의 삿됨 등을 항상 여의고 행함에 있어
스스로 자기 허물을 살필지언정
밖으로 타인의 허물이나 옳고 그름을 보지 않는 것이니,
남의 허물을 보면 그 허물을 보는 것이
참 허물임을 돌이켜 보아 除하여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항상 마음을 낮추고 밖으로 공경함을 행하면
곧 자성에 귀의하게 되고 자성을 보아 통달하여
깨닫게 되어 막히고 걸림이 없게된다 하신 것이다.
何名하면 千百億化身인가
若不思萬法하면 性本如空하고
一念思量하면 名爲變化하니
思量惡事하면 化爲地獄이되고
思量善事하면 化爲天堂이되고
毒害는 化爲龍蛇가되고
慈悲는 化爲菩薩이되고
智慧는 化爲上界가되고
愚癡는 化爲下方이되니
自性이 變化甚多이나 迷人이 不能省覺하고
念念起惡하여 常行惡道하나 廻一念善하면
智慧卽生이니 此名自性化身佛이라니라.
무엇을 이름하여 천백억 화신인가?
만일 만법(모든 것)을
생각(분별 집착)하지 아니하면
자성이 본래 허공(청정)과 같고,
한 생각 헤아리면 이름하여 변화라 하나니,
악한 일을 생각하면 변화하여 지옥이 되고,
착한 일을 생각하면 변화하여 천당이 되고,
독하게 해롭힘(생각)은 변화하여 용이나 뱀이 되고,
자비(心)는 변화하여 보살이 되고,
지혜는 변화하여 천국의 경계가 되고,
어리석고 잘못됨은 변화하여
지옥, 아귀, 축생(下方)이 되느니라.
자성이 변화함이 심히 많으나
미혹한 사람이 능히 살펴 깨닫지 못하고
생각 생각 악을 일으켜 항상 나쁘고
험한 길을 행하나 한 생각 바르게 돌이키면
지혜가 곧 나는 것이니 이것을 이름하여
자성화신불이라 하니라.
강설:
천백억 화신이란
모든 것을 사량하지 않으면
청정부동한 법신불인 본성이 한생각 일으켜
나툼의 작용으로 변화하여 나타 나는 것이니
이렇게 나타난 現像이 되는 이것을 화함이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선한 생각은 선한 천당의 경계가 되고
악한 생각은 지옥의 경계로 화하고,
자비는 보살로 지혜는 천국으로
무지는 축생으로 이와같이 한량없는
(천백억) 나툼이 되는것이나,
미혹한 중생이 이것을 알지 못하고
잘못된 생각을 일으켜서 삿된 행을 하는 것이나
한 생각 바르게 돌이켜 본성의 반야(지혜)와 함께
나투게 됨을 화신불이라 하신 것이다.
何名하면 圓滿報身인가
譬如一燈이 能除千年暗하듯이 一智가
能滅萬年愚하나니 莫思向前하라
已過不可得이니 常思於後하여
念念圓明하여 自見本性하라
善惡雖殊이나 本性無二이며
無二之性이 名爲實性이니
於實性中에 不染善惡한
此名圓滿報身佛이니라
自性에 起一念惡하면 滅萬劫善因하며
自性에 起一念善하면 得恒沙惡盡하나니
直至無上菩提하여 念念自見하여 不失本念이
名爲報身이라하니라
善知識이여
從法身思量하면 卽是化身佛이요
念念自性自見하면 卽是報身佛이며
自悟自修하는 自性功德인 是眞歸依이라
皮肉是色身이니 色身是舍宅이라 不言歸依也요
但悟自性三身하면 卽識自性佛이니라.
무엇을 이름하여 원만보신인가?
마치 비유하면
한 등불이 능히 천년의 어두움을 없애듯이,
한 지혜가 만년의 어리석음을 능히 멸하나니
과거를 생각하지 말라.
이미 지난 것이라 가히 얻지 못할 것이니
항상 뒤를 생각하여 생각 생각 뚜렷이
밝게하여 스스로 본성을 볼지니라.
선과 악이 비록 다르나
본성은 둘이 없으며
둘이 없는 성품이 이름하여 실다운 자성이니
이 실다운 자성 가운데 선악에 물들지 않는
이것을 이름하여 원만보신불이라 하느니라.
자성에서 한 생각 악함을 일으키면
만겁 동안 착한 씨(因)가 없어지며,
자성에서 한생각 착함을 일으키면
수없는(恒沙) 악한 것이 다함(사라짐)을 얻게 되나니
바로 위 없는 보리에 이르러서
생각 생각 스스로 보아서 근본(본성)의 생각을
잃지 않음을 이름하여 보신이라 하느니라.
선지식이여!
법신을 쫓아 사량(일으킴)하면
곧 이것이 화신불이요,
생각 생각 자성을 스스로 보면
곧 이것이 보신불이며,
스스로 닦고 스스로 깨닫는
자성의 공덕(定, 慧)인 것이 참다움 귀의니라.
살가죽은 이 색신이니
색신은 거주하는 집이라
귀의할 것이라 말하지 못하는 것이요,
다만 자성의 3신을 깨달으면
곧 자성불을 알게 되는 것이니라.
강설:
원만보신이란 비유하면
한 등불이 오랜 어둠을 없애는 것처럼
한 지혜(반야)가 오랜 미혹을 능히 멸하는 것이니
생각을 바르고 밝게 하여 스스로 본성을 보면
선악등 일체가 참으로 비어 둘이 아니라,
둘 없는 성품을 실상의 진여자성이라 하며
이 진여자성에는
일체의 망념의 장애가 없는 것이니,
한 생각 악함을 일으키면
오랜 선因(성불의 원인종자)이 숨게 되고
착한(바른)생각 일으키면
수 없는 악함(삿됨)이 사라져서
무상보리(불지견)에 이르르게 되는 것이므로
스스로 보아
곧 본성의 바른 바의 생각을 잃지 않음을
원만보신불이라 하는 것이니
,
본성인
법신불(本覺)로부터 일으켜 나툼이
화신불(應覺)이요,
스스로 법신인 자성을 봄을
원만보신불(始覺)이니,
3신이
다르나 곧 둘이 아닌 것인지라
스스로 닦아 깨닫는 자성공덕(정혜)인
이것이
참으로 바른 귀의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성 3신을 깨달음이 자성인 참부처를 깨달아
보게되는 것이라 하신 것이다.
吾有一無相頌하니
若能誦持하면 言下令汝가 積劫迷罪를
一時消滅하리라 頌曰하시되
迷人修福不修道하며 只言修福便是道라하니
布施供養福無邊이나 心中三惡元來造하며
擬將修福欲滅罪하나 後世得福罪還在하네
但向心中除罪緣하면 各自性中眞懺悔하라
忽悟大乘眞懺悔하여 除邪行正卽無罪리라
學道常於自性觀하면 卽與諸佛同一類이니
吾祖惟傳此頓法하심은 普願見性同一體시네
若欲當來覓法身이면 離諸法相心中洗하되
努力自見莫悠悠하면 後念忽絶一世休리니
若悟大乘得見性이면 虔恭合掌至心求니라
師言하시되
善知識이여 總須誦取하여 依此修行하여
言下見性하면 雖去吾千里라도 如常在吾邊이나
於此言下不悟하면 卽對面千里리니
何勤遠來인가 珍重好去하라
一衆聞法하고 靡非不開悟하여 歡喜奉行하니라.
나에게 모습(相)이 없는 게송이 하나 있으니
만약 능히 외워 가지면
말 아래에 너희가 오랜 겁을 두고 쌓아온
미혹한 죄를 일시에 소멸케 되리라, 하시고
게송으로 이르시기를
迷한 자는 복만 닦고 도는 닦지 않으면서
(복을 구하면서 공덕을 닦지 않으면서)
다만 복 닦음을 편리하게 도라 말하나니
(그 복 닦는 행을 편리하게 도 닦는다하니)
보시공양이 복은 가이 없으나
(보시공양의 복의 과보는 한량없으나)
마음 가운데 3세의 나쁜 것을 먼저 지으며
(마음에 3세의 업인을 쌓게 되며)
복을 닦아 가져서 죄를 없애려고 생각하나
(복으로써 죄업을 씻고자 하나)
후세에 복은 얻되 죄는 돌아와 있네.
(나중 그 과의 복은 얻으나 업은 돌아온다네)
다만 마음 가운데를 향해 죄의 인연 없애려면
(마음에 과보의 인과를 여의어 해탈코자 하면)
각기 자성 가운데 참다운 참회를 하라
(잘못함을 참회하여 마음을 청정케 하라)
홀연히 대승의 참다운 참회를 깨달아서
(문득 대승 진리인 참다운 참회를 깨달아)
삿됨을 버리고 바른 것 행하면 곧 죄가 없으리라.
(삿된 소견 버리고 바름으로 행하면 죄업이 없으리라)
도를 배우매 항상 자성을 관하면
(불도를 닦음에 항상 본성을 반조하면)
곧 제불과 더불어 한가지로 같으니
(곧 모든 부처님과 다름이 없게 되니)
우리 조사의 돈법을 전하심은
(불조께서 몰록 깨침을 전하신 것은)
널리 견성하여 한가지 몸 되기 원함이네.
(모든 중생이 견성하여
둘 아닌 한바탕(體)을 깨닫길 원함이네)
만약 법신을 찾고자 한다면
(법신을 깨달아보고자 하면)
모든 법상을 마음 가운데에서 씻어 여의되
(모든 법이 본래 공하니 법이라는 것도 여의되)
태만하지 말고 힘써 스스로 보게 되면
(나태하지 말고 힘써닦아 스스로 보면)
뒷 생각 홀연히 끊어져 온 세상을 쉬리니
(망념이 사라져 더 닦을게 없으리(해탈)니)
만약 대승을 깨달아 견성을 증득하려면
(대승법을 깨달아 보는 성품을 증득하려면)
공경 합장하여 지극한 마음으로 구할지니라.
(일체가 둘 아님으로 지극하게 구하라)
대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선지식이여!
모두 모름지기 외워 가져서 이것을 의지해
수행하여 말 아래 견성하면
비록 나로 부터 천리를 떨어져도
항상 내곁에 있음과 같으나
이 말 아래 깨닫지 못하면
곧 얼굴을 맞대어도 천리리니
어찌 괴롭게 먼 데 올 것이 무엇인가?
조심하여 잘들가라" 하시니
온 대중이 법을 듣고
깨달음이 열리지 않은 이가 없이
즐겁고 기쁘게 받들어 행하였다.
강설:
끝으로 모두 이 게송을 외워 가져
(읽고 계합하여)서 말 아래 자성을 깨달아 보게 되면
나(제불조사)와 더불어 둘 아니게 됨이니
색신은 멀리 있어도 곧 함께 함이나
깨닫지 못하면 함께 있다 할지라도 천지현격이니
먼데서 찾아오는 수고를 아끼고
이 가르침에 의지해서 몰록 깨닫도록 하라 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