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입추立秋⇨ 태양의 황경은 135도이고
양력 8월 8일경에 든다
▣이 시기는
절기상으로는 가을의 첫 달이기는 하지만,
기온 상으로는 가장 무더운 여름이다.
그러나 이날을 기점으로 하여
맹위를 떨치던 더위는 물러나기 시작하지만
아직 날은 더워
바닷가나 계곡을 찾느라 길에서 고생한다.
그러나 입추는 갈바람을 예약하는 날이므로
더위로 말미암은 고생도 머지않았다.
▣이 때에는 금기金氣(오행 상의 金, 가을)를
받아들인다는 뜻에서
흰색으로 된 옷과 흰색 치장을 하고
개고기와 참깨를 함께 먹어 양생을 도왔다
또한 金의 기운이 발생하여
숙살肅殺의 기운이 강해지는 때이므로
과거에는 충의忠義를 엄정하게 가르쳤다
▣입추부터는 김장용 무, 배추를 심기도 하지만
농촌도 한가해지기 시작하는데, 음력 5월에는
너무 바빠서 “발등에 오줌을 싼다”는 말이
있는 것과는 반대로
음력 7, 8월은 농사일이 좀 한가하기 때문에
“어정 7월, 건들 8월”이라는 얘기가 있다
▣입추의 초후初候에는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중후中候에는 이슬이 진하게 내리며,
말후末候에는 쓰르라미가 울기 시작한다.
▣입추를 전후하여
마지막 불볕 더위가 기승을 부리며,
이때부터 벼를 비롯한 곡식이 여무는데,
조선 시대에는 입추에 날씨가 맑으면
곡식이 풍년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고.
비가 조금 내리면 무탈하지만 많이
내리면 벼가 상하고
천둥이 치고 바람이 심하게 불면
벼의 수확에 지장이 있을 것을 걱정했다.
또한 이 무렵에 김장용 배추와 무를 파종하며
가을을 대비한다.
▣예전엔 벼가 한창 익어가는 입추 무렵에
비가 닷새 동안만 계속되면
날이 개기를 비는 기청제祈晴祭를 올렸다.
《태종실록》에 "예조에서 아뢰기를,
'백곡이 결실할 때인 지금 오랫동안 계속해서
비가 내리니, 기청제를 행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라는 기록이 있다.
기청제를 하는 동안에는
성안으로 통하는 물길을 막고,
성안의 모든 샘물을 덮으며,
물을 쓰면 안 되는 것은 물론
소변을 보아서도 안 되었다.
기청제 전날 밤에는
비를 섭섭하게 하는 행위는 일체 금지되는데
심지어 부부가 각방을 써야 했는가 하면
또 이날 부녀자의 시장 나들이는 모두 금하고,
제사를 지내는 곳에는
양색陽色인 붉은 깃발을 휘날리고
제주도 붉은 옷차림이었다.
그리고 양방陽方인 남문南門을 열고
음방陰方인 북문은 닫았다.
▣입추는 가을 절기가 시작되는 날로
말복 앞에 찾아오는데, 생각 같아서는
말복이 먼저 오고 입추가 올 것 같지만
실제는 입추가 먼저 온다.
주역에 보면 남자라고 해서 양기만을,
여자라고 해서 음기만 가지고 있지 않다,
조금씩은 겹쳐 있다고 하는데 계절도 마찬가지지로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려면
연결되는 부분이 있어야 하고,
이 역할을 입추와 말복이 하고 있다.
▣가을 '秋' 자를 파자 하면
"秋“ 는 ”벼 화禾“ + ”불 화火“가 되는데,
농경사회에서 벼가 익는 계절이란 뜻이다.
이를 "벼(禾)가 불(火) 같은 태양에
익는 계절이 가을" 이라 풀이하고 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가을을 말하는 것이 적지 않은데, 대개 가을을
풍요로운 계절과 연관하는 속담이 많다.
◉가을 닭띠는 잘 산다.
◉가을 식은 밥이 봄 양식이다.
◉가을에 밭에 가면 가난한 친정에 가는 것보다 낫다.
◉가을 일은 미련한 놈이 잘 한다.
▣중국에서는 입추에 신맛의 과일과
야채를 많이 먹고, 위와 폐를 잘 보살펴
곧 서늘해지는 가을 날씨에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고기나 생선을 먹어 여름
더위에 지친 몸의 원기를 북돋거나
수박을 먹어 더위를 식히곤 했다.
▣가을의 정의( 민족대백과사전)
◉ 동양의 역歷(24절기상)에서는⇨
입추(8월 7일)부터 입동(11월8일) 사이
◉ 기상학적으로는⇨ 9월~ 11월
◉ 천문학적으로는⇨ 추분(9월 23일)부터
동지(12월 21일)까지
☆과학적으로는 초가을은
하루 최고 기온이 25도 이하로 내려가는 시기이고
늦가을이란 하루 평균기온이 10~15도 이다.
첫댓글 입추는 갈바람을 예약햐는 날이므로 더위로 말미암은 고생도 머지 않았다.
이 한마디에 찜똥더위를 식히렵니다.
선선한 가을 바람을 이렇게 기다려 보기도 처음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