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빈난했던 1970년대, 도산국민학교를 다닐 때 점심시간이면 유니세프(UNICEF)에서 보내오는 옥수수 식빵으로 전교생들이 끼니를 때우곤 했다. 점심시간 때 배급처럼 나눠주던 옥수수 식빵은 요즘 빵 가게에서 판매하는 썰지 않은 대형 식빵의 모양새와 매우 흡사했다. 식빵의 윗부분은 구울 때 열을 받아서인지 눌어붙어서 누런 갈색으로 변했는데 특히 그 부분이 맛이 좋았다. 그런 대형 식빵을 점심시간 때 보통 두 명이 한 개를 반으로 나눠서 받았는데 가끔은 개인당 한 개씩을 통째로 받을 때도 있었다. 그런 날은 기분이 정말 좋았다. 참말로 세상을 다 가진 듯 했다.
우리는 점심시간만 되면 교문 쪽으로 이목이 쏠렸다. "행여나 제무시(GMC) 검은 산판차가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할 때도 많았다. 하지만 기우에 그치듯이 산판차는 제시간에 어김없이 크락숀을 크게 "빵~빵~" 울려대며 늠름하게 정문을 통과해서 본관 앞에 나 보란 듯이 개선장군처럼 도착했다. 크락숀 소리가 마치 우리들을 향해 "이놈들~ 밥 왔다~ 밥 타러 오너라~" 하는 말처럼 들렸다. 그러면 선생님께서는 당번을 보냈고 당번은 자기 몸통보다도 더 큰 대나무 소쿠리에 담긴 식빵을 둘이서 낑낑거리며 들고서 교실로 들어왔다. 우리들은 덩실덩실 춤을 추며 빵 소쿠리를 마치 귀인 대하듯이 공손히 맞이했다.
한번은 하굣길 비포장 신작로 십 리 길을 털레털레 걸어오는 도중에 의인 엔떼이 청소깝 외나무 다리 아래 울퉁불퉁한 참남배로 앞길에서 제무시 트럭이 어찌하다가 떨어트린 옥수수 식빵이 가득 담긴 큰 대나무 소쿠리 한 개를 줍는 시쳇말로 엄청난 횡재를 만나는 사건도 있었다. 인적이 없는 길이다 보니 넝쿨째 굴러온 호박이었다. 요즘 말로 딱 로또 복권 당첨 같은 횡재수였다. 여러 명이 나눠서 간신히 책보자기에 싸서 분강촌 집까지 가져오는데 그 환희에 찬 기분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얼마나 행복하고 좋았던지 애국가를 연이어 4절까지 마구 부르고 이용복 선생의 어린시절(진달래 먹고 다람쥐 쫓던~)을 너댓 번이나 불렀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 느낀 그런 큰 행복감은 지금까지도 몇 번 누리지 못한 전설적인 감정이었다. 거의 일주일 동안 옥수수 식빵을 쪄서 먹고 뜯어먹고 구워도 먹었지만 결코 질리지는 않았다.
그 시절에는 매일 점심시간마다 아무 것도 모르고 아무 생각없이 그냥 무작성 받아서 걸신들린 것처럼 마구 먹기만 했지만 어른이 되고 나니 참 고맙고 신세를 진 국제기구였다. 부지런한 선ㆍ후대의 노력으로 이제는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어 지난했던 그 시절, 세계시민들로부터 받았던 그 큰 은혜를 다시 빈곤한 지구촌 아이들에게 되돌려 주고 있는 현실이 여간 다행스럽고도 자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요즘도 학생들에게 국제봉사기구와 지구촌 봉사활동에 대한 수업은 계속하고 있다. 지구촌 사회는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마을이기 때문이다.
유니세프는 1946년 개발도상국 아동들의 복지향상을 위하여 설립한 국제연합(유엔)의 특별기구이며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두고 있다. 유니세프는 이에 대한 공로로 1965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지구촌 곳곳에서 지난 80여 년 동안 아동들의 인권과 권리를 위해 아름다운 행보를 걸어온 유니세프의 숭고한 궤적에 깊은 경의를 표한다.
♤사진 및 그림 설명(caption): 사진은 도산국민학교 등하굣길 왕복 이십 리 신작로 주변 풍광이다. 지금 보아도 강변길을 따라 길게 펼쳐진 만만찮은 등하굣길이었다. <그림>은 1746년 겸재 정선 선생이 도산서원의 주변 풍광을 그린 "계상정거도(현재 일천원권 지폐 뒷면 산수화)"이다. 등굣길은 <그림> 왼편 산아래에 있는 분강촌에서 시작되어 <그림> 오른쪽에 있는 도산서원 앞의 천연대를 돌아서 아카시아 가로수 길을 따라 오 리 정도를 더 가야 학교가 나왔다. 사진 속 왼쪽 중앙에 하얗게 보이는 지대가 <그림> 속 오른편 앞으로 보이는 도산서원 지역이다. 1970년대 사진이지만 1746년에 그린 '계상정거도'의 구도와 거의 일치하고 있다. 사진 속에 보이는 길다란 왼쪽의 산세가 <그림> 속에 길게 곡선을 그으며 병풍처럼 둘러져 있는 서취병산이다. <그림> 왼편 산 위에서 촬영하면 사진과 같은 전경이 펼쳐진다.
♤사진 설명(caption): 도산국민학교는 1918년3월3일 개교해서 1993년3월1일 폐교된 안동댐 수몰지구에 위치했던 학교였다. 도산서원에서 강길 따라 2km 정도 올라가면 지금 수몰된 토계리에 학교가 있었다. 1976년 11월 안동댐 준공으로 인해 교사를 산너머 '예던길' 삽지껄인 단천 신교정으로 이건했으나 급기야는 학령 인구 감소로 18년 뒤에는 역사의 뒤안길로 완전히 사라졌다.
♤사진 설명(caption): 1975년 도산국민학교 56회 졸업생들이 본관 앞에서 촬영한 졸업 기념사진이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청포도 시인이자 의열단 소속의 강렬한 독립운동가인 이육사 선생(1회)과 세계적인 가속기 물리학자였던 포항공대 초대 총장인 김호길(무은재)박사(28회)가 졸업한 유서 깊은 학당이었다.
♤사진 출처 및 설명(caption): 미국 제너럴 모터스가 1912년부터 생산한 일명 '제무시(GMC) 트럭'은 해방전후 한국에 처음 들어와서 6.25전쟁 때는 군수품 수송을 도맡았으며, 개발경제시대에는 산업역군으로 팔도강산 온 도처에서 괴력을 발휘하며 한국인의 뇌리에 깊은 인상과 추억을 남겼다. 사진은 봉화군내에 아직도 남아 있는 제무시 트럭을 <전국안전신문>이 소개하면서 올린 사진이다. 유년시절 산판차로 많이 보아왔던 그 모양새 그대로이다. 유니세프의 '빵 차'로도 우리들과 굴곡진 한 세월을 같이 했던 만큼 친숙함과 아련한 그리움이 함께 배어난다.
첫댓글 당번도 빵 소쿠리를 들고 교실로 들어 올땐 신이 났지
나누어 주고 배급하는 빽(권한)도 있고 기분 좋아라 했지~
빵부스러기도 먹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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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그시절 소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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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시절
아름다운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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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빵모양과 비슷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