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미의 「기이한 풍경들」평설 / 홍일표
기이한 풍경들
조용미
사막에서 안개가 일어나 공중에 숲 같기도 하고 나무 같기도 한 것이 나타나 가보면 없고, 호수의 섬들이 출몰하고 나무의 그림자가 2백 리에 걸쳐 펼쳐진 듯 보였다는 연행 길에 사로잡힌다
드넓은 평원이 호수처럼 보이려면 얼마나 많은 안개가 필요한 것인가 얼마나 많은 나무가, 아니 얼마나 많은 환상이 필요한 것인가
그곳을 지나간 사람들은 하나같이 환상을 말하였다 환상을 말하지 않은 자는 계주를 지나가지 않은 자이다 연행록의 글과 그림은 환상도 꿈도 아닌 그저 기이한 풍경이라 말할 뿐
기이한 풍경이 역사를 바꾸었다 기이한 풍경이 오래 나의 정신을 점령했다 기이한 것들이 자라나 손발이 되었다 기이하고 기이한 풍경이 우리를 신비롭게 했다 거기서 우리는 문득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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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힘
조용미는 나직하고 곡진한 사유의 자장을 거느리고 존재의 내밀한 공간을 심도 있게 들여다보는 시인이다. 존재와의 시원적 접촉이 여러 작품에서 유현한 깊이를 획득하며 시의 영토를 확장한다. 조용미 시인이 ‘검은 색’의 세계에서 펼쳐 보이는 감각의 현상학은 죽음과 비애의 미학을 기초로 하고 있다.
최근에 발표한 「기이한 풍경들」은 조용미 시인의 또 다른 시적 방향을 헤아리게 한다. ‘기이한 풍경들’은 이성과 논리의 틀 안에서 벗어나 있는 것들이다. 남루한 일상의 틈바구니에서 대면할 수 없고, 생의 변경에서 어른거리는 신기루 같은 것으로 단숨에 삶의 단면을 전복하여 새로운 풍경을 펼쳐 보이기도 하며 생의 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안개는 현실의 질서를 지운다. 머나먼 ‘연행 길’을 무사히 걸어가기 위해서는 육체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이 때 안개는 ‘환상’으로 작용하여 ‘계주’를 지나게 하는 힘이 된다. ‘기이한 풍경들’이 오히려 생의 에너지가 되는 역설적 상황이다. 현실은 온갖 상식과 딱딱한 관념의 덩어리들이 굴러다니는 공간으로 이성과 논리가 중요한 잣대가 된다. 그 틀 안에 갇혀 자유롭게 운신하지 못하는 인간은 현실 저편의 것을 무의미한 것으로 판단하고 오직 눈앞에 현현하는 것들만 가치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환상은 현실의 갑갑한 공간을 벗어나게 하고 일탈의 계기를 마련한다.
*(철학)블랑쇼의 바깥의 사유, 라깡의 실재계, 바스통 바슐라르의 몽상, 선불교의 언어밖
환상은 문학의 중요한 자원이다. 사실주의자들은 크게 반발할지 모르지만 생의 영역을 확장시켜서 현실을 보다 비옥하게 하고 넓이와 깊이를 확보하게 하는 것이 환상이다. 단순히 개연성이 없다고 해서 매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화자는 말한다. ‘기이한 풍경이 역사를 바꾸었다’고. ‘기이한 풍경이 오래 나의 정신을 점령했다’고. 화자는 다양한 층위의 현실을 탐색하고, 현실 저편의 배면까지 꿰뚫어 보면서 ‘기이한 풍경들’에 몰입한 것이다. 현실과 역사를 바꾸는 것은 단지 물리적 힘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환상은 불확정성의 영역이며 초현실의 실체이지만 현실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기이한 것의 의미에 주목한 화자가 발견한 것은 현실 밖의 질서이다. 그것은 사물을 신비화하고, 미시화 세계에서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논리의 한 근거가 된다.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불연속적 시간관에 입각한 정신 활동이 ‘기이한 풍경들’이고 환상이다.
화자는 ‘거기서 우리는 문득 태어났다’고 말한다. 거기는 곧 ‘검은 신비’가 호흡하는 곳이고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는 곳이다. 존재의 심층에 침잠하여 내상을 다스리는 조용미 시인은 앞으로도 ‘기이한 풍경들’에 몰두하면서 지상의 생령들이 보지 못한 생의 비의를 예민한 촉수로 감지하여 우리 앞에 활연히 펼쳐 보여줄 것이다.
홍일표 (199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전문지 『시로 여는 세상』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