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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막한 요나서 설교 10개
2025년 11월 16일 / 요나서 1:1-10
하나님의 심판 / 욘 1:1-2 /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우리가 누군가와 가까워지려면 그 사람의 관심과 가까워져야 한다. 하나님과 가까워지려면 그분의 관심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분이시고 우리는 말씀을 들어야 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완전한 하나님으로부터 불완전한 인간은 말씀을 계속 들어야 한다. 하나님은 신자, 불신자 두 종류의 사람 모두에게 관심이 있다. 하나님은 이방인들에게 관심을 갖고 계시는데, 그들을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먼저 일어난 사람이 가서 외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깨어 일어나기를 바라시고 불신자들이 돌아오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가서 외치기 위해서는 먼저 일어나야 한다. 그리고 이방인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전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관심이다.
불순종이 가는 길 / 욘 1:3 /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뱃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하나님의 관심이 자신의 관심이 되어야 했음에도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다른 방향으로 가는 요나의 모습이 본문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그러나’로 시작하는 말씀은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라는 말씀에 요나의 반응은 ‘그러나’로 나타난다. 이 ‘그러나’라는 말을 읽을 때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짐작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니느웨 성으로 가기 위해서 일어나라고 했는데 요나는 하나님의 뜻을 피하려고 일어났다. 일어난 사실은 똑같지만, 동기는 전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일어난 사실보다도 무엇을 위한 일어남인지 그 동기가 더욱 중요하다. 우리가 지금 불순종의 길을 가고 있다면 ‘그러나’를 살펴보아야 한다. 일어난 사실은 같지만 무엇을 위한 일어남인지 늘 살펴야 한다.
무감각한 인생 / 욘 1:1-4 / 여호와께서 큰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 5)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기 시작하면 무감각한 인간이 된다. 그래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기가 매우 힘들어진다. 말씀에 불순종하는 삶은 내려가는 인생이 된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사는 것처럼 심적으로 깊은 안정감을 주는 것은 없다. 반면에 말씀을 거역하는 자들의 필연적인 체험은 영적 삶이 아닌 하락의 삶이다. 불순종한 요나에게 하나님은 대풍을 보내서 관심을 가지신다. 대풍도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배가 거의 깨어지게 하신다. 불순종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러나 요나는 깊이 잠이 들었다. 불순종하면 무감각한 인간이 된다. 말씀에 불순종하면 무감각한 사람으로 전락하게 된다. 하나님께 무관심하면 사람에게도 무관심하게 된다. 우리 모두 힘써 순종하자.
숨겨진 하나님의 음성 / 욘 1:6-8 / 선장이 그에게 가서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하니라 7)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임하였나 알아보자 하고 곧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뽑힌지라 8)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이 재앙이 누구 때문에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말하라 네 생업이 무엇이며 네가 어디서 왔으며 네 나라가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 하니
배 밑에 내려가 깊은 잠에 빠진 요나의 모습은 하나님께 불순종할 때 나타나는 우리 모습을 보여준다. 깊은 잠에 빠진 요나에게 선장이 말하기를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고 충고한다. 선장은 자신의 안전을 위하여 요나에게 충고한 것이다. 그러나 선장의 말에는 ‘일어나라’ 말이 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요나에게 일어나라고 하셨던 말씀과 동일하다. 결국 선장의 말 속에는 숨겨진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있는 것이다. 우리가 바르게 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교훈하기 위해서 세상의 소리를 사용하기도 하신다. 그것을 통해서라도 감추어진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진정한 회개 / 욘 1:9-13 /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 10) 자기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말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11) 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 하니 12)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13) 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로 돌리고자 하다가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
입만 살고 발은 죽은 삶은 수치를 당하게 된다. 진정한 회개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방인의 심문을 받은 요나는 회개하기 시작한다. 이방인의 심문을 받은 요나는 회개하기 시작한다. 재앙의 원인이 자기로 밝혀지자 자신이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배를 탔다고 고백하였다. 풍랑을 만난 것이 자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자기를 바다에 던지라는 요나의 말에 사공들은 던지지 않고 오히려 살리려고 애를 쓰고 있다. 요나의 잘못을 인정한 진실한 태도 때문이었다. 나를 던지면 상대방의 반응이 다르게 나온다. 내가 죽어지면 상대방도 변하게 된다. 오늘 우리의 삶이 변화되어야 한다. 회개는 말 뿐이 아니라 나를 던지는 것이다. 진실을 인정하고 참된 회개의 모습을 보이면 다음 문제는 쉬어질 수 있다.
끝없는 하나님의 사랑 / 욘 1:14-17 / 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때문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 15)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가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16)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 17)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배 속에 있으니라
인간의 사랑은 끝이 있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다. 이것인 인간과 하나님의 차이이다. 불순종함으로 하나님께 도전했던 인간에게 큰 물고기를 예비하시고 요나를 삼키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깊은 사랑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의 기준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설정되어야 한다.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우리의 배반과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시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오늘도 우리가 살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안락할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어려울 때도 찾아오신다. 끝없는 하나님의 사랑에 나도 반응해야 한다.
기도하는 인생 / 욘 2:1 / 요나가 물고기 배 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기도가 전혀 없던 1장과는 달리 2장에서 요나가 하나님께 기도하였다는 사실은 놀랍다. 무감각한 사람이 기도하는 사람으로 바뀐 것이다. 1장에서 전혀 발견되지 않던 요나의 기도가 2장에서 발견된다. 이것은 요나에게 엄청난 변화가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미 큰 물고기를 도구로 준비하셨다. 물고기 배 속은 요나에게 매우 큰 고통의 장소였지만 바로 이곳은 하나님을 불순종한 요나를 기도하게 만들기 위해서 준비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때때로 우리를 기도하게 만들기 위하여 물고기 배 속 같은 환경을 준비하신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주신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원망하며 불평할 때가 많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로 인식하는 사람들은 힘든 상황이라도 하나님이 기도하게끔 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을 인식하고 살아가는 사람의 증거는 무릎 꿇는 기도이다.
고난을 인하여 / 욘 2:2-3 /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3)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으므로 큰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요나가 기도하게 된 동기는 고난 때문이었다. 물고기 배 속은 고난의 장소이지만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보게 되었다고 한다. 요나는 하나님으로부터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달라진 내용이 없다. 여전히 물고기 배 속이다. 응답됐다고 해도 환경은 변한 것이 없다. 그의 기도 응답은 환경의 변화가 아니라 시작의 변화였다. 이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 ‘주께서 나를 바다에 던졌다’라는 표현이다. 사공이 던졌는데 주께서 던졌다고 말한다. 환경의 변화는 이차적이다. 시작의 변화가 먼저이다. 그래야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다. 요나는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을 인식하게 되었다. 고난은 우리의 모순된 모습을 바로 잡아주고 우리의 가치관을 바로 잡아준다.
회개와 소망 / 욘 2:4-6 /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5) 물이 나를 영혼까지 둘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워싸고 바다 풀이 내 머리를 감쌌나이다 6)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내가 말하기를’ 하고 기도하는 요나의 기도는 강요가 아니라 자신이 깨달은 신앙고백이다. 그의 고백은 회개와 소망이 주요 내용이다. 그의 회개 기도는 자신의 잘못과 그에게 다가온 고통과 자신이 얼마나 어려움 가운데에 있는지를 솔직하게 드러낸다.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라고 고백한다. 이러한 소망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가 최저로 낮아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낮아짐을 통하여 소망을 바라볼 수 있었다. 자신의 낮음을 아는 자만이 최고의 소망이신 하나님을 바라볼 수가 있다.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만이 소망이 있다. 죄인의 경험이 있었던 사람에게 의인의 감격이 있다. 골짜기를 경험한 사람만이 정상의 환희를 느낄 수 있다.
영혼이 피곤할 때 / 욘 2:7-10 /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8)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9)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10)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요나의 영혼이 피곤한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의 품을 떠났기 때문이다. 영혼의 피곤은 하나님을 불순종하면 영혼의 피곤이 찾아온다. 1장에서는 영혼의 피곤을 느낀 적이 없다. 하나님은 그가 계속해서 영혼의 피곤을 느끼도록 대풍을 통해서, 사공을 통해서, 자극을 주었지만 거의 무감각은 하나님을 의도적으로 거부하였다. 영혼의 피곤은 하나님을 불순종하므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이러한 피곤한 상태가 하나님을 재인식하는 기회가 된다면 영혼의 피곤은 새로운 디딤돌이 될 수도 있다. 영혼의 피곤으로 요나는 여호와를 생각하게 되었다. 여호와를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문제를 살피게 되고 하나님께 감사와 헌신이 있게 된다.
참고로 하면 유익한 글들
▮ 제임스 패커(James Innel Packer)목사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에서 이와 같이 말하였다. “선택할 때, 최선이 아닌 그저 좋은 것, 흔히 ‘이 정도면 됐지.’라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하면 안 됩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어떤 행동을 하면 죄로 물드는 것을 면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물어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우리는 선택할 때 ‘이것이 하나님 영광과 영혼의 유익을 위해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인가’라고 질문해야 합니다. 늘 마음을 새롭게 하고 하나님의 선하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야 하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한 계획을 알고 선택해야 합니다.”
▮ 사람이 물고기 배 속에서 살아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이것이 사실일까 질문들을 한다. 기록을 보니 1758년과 1771년 고래뱃속에서 사람이 살아난 기록이 있다. 요나에 관한 재미있는 글을 하나 읽었다. 한 자매가 비행기 안에서 성경을 읽고 있었다. 한참 쳐다보던 남자가 물었다. "설마 그곳에 기록된 것을 다 믿지는 않죠." "아뇨, 다 믿는데요. 하나님의 말씀이니까요." "그럼 그 고래에게 먹힌 사람 있잖아요. 다시 살아났다는 이야기. 그걸 믿는단 말이요?" "저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잘 모르지만 그대로 믿어요. 하나님의 말씀이니까요." 천국에 가면 요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물어볼 겁니다." 그 남자가 묻었다. "만약 그가 천국에 없으면 어떡하실래요?" 한참 생각하던 여인이 대답하였다. "그러면 당신이 한번 물어보세요."
▮ 2003년 우리나라 남극기지인 세종기지에서 조난사고가 있었다. 고무보트가 전복되어 연구원들이 물에 빠진 것이다. 간신히 헤엄쳐 나왔지만, 사방이 얼음투성이이다. 구조대가 올 때까지 버텨야 하는데, 잠이 쏟아졌다. 하지만 잠이 들면 큰일난다. 동사하게 된다. 그래서 얼음으로 얼굴을 비비는데 그래도 잠이 온다. 나중에는 서로 뺨을 때리면서 잠을 쫓았다는 신문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졸면 죽는다!” “자면 죽는다!” 영적으로 잠을 자면 하나님의 은혜가 소멸하고 모든 삶이 흔들리게 된다. 영적으로 깨어 있으면 은혜가 넘치고 형통하게 된다. 설사 고난이 오더라도 넉넉히 이기고 승리할 수 있다.
▮ ‘빅토르 위고’라는 하는 분은 프랑스의 문학가이다. ‘장발장’과 같은 소설을 썼는데, 젊었을 때 문란하고 방탕한 삶을 살아 자신의 가정이 불행했다. 그의 딸 레오플레너가 부친에게 바르게 살 것을 권했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1841년 여름, 그의 딸이 세느 강에 몸을 던져 시체가 떠올랐다는 소식에 그는 두문불출하며 오랫동안을 집에서 눈물을 흘리며 회개했다. 그리고 난 뒤 그는 정부 관리로 들어가서 후생성 관료, 문교부 장관을 지내고 프랑스 정부의 재정을 정리하는 관직에 있으면서 문학으로 전 세계 많은 사람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이 되었다.
▮ 물고기는 잠을 잘 때 눈을 감지 않는다. 죽을 때도 눈을 뜨고 죽는다. 초대교회 시절, 기독교인들은 핍박을 피해 로마 외곽의 지하 동굴 카타콤으로 도피했다. 이곳은 시체를 매장하던 장소였다. 로마는 장례지를 신성불가침한 곳으로 여기고 접근을 꺼렸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300년 동안 카타콤에서 생활하였다. 그들은 카타콤 벽에 물고기(ICHTHUS) 그림을 새겨 놓았다. 물고기를 그려놓은 이유는 잠잘 때도 눈을 감지 않는 물고기처럼 깨어 있으라는 메시지였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 아프리카에 가면 독수리과에 속한 세크러터리(Secretary Bird)라는 새가 있다. 여느 새와는 달리 특이한 면이 있다. 날개를 펴고 날기 시작하면 아무도 그 새를 쫓아갈 수 없다. 반면에 날개를 움츠리고 앉으면 두뇌의 기능이 둔감해진다. 얼마나 심한지 앉아있을 때 다른 동물이 잡아먹으려고 해도 도망갈 줄 모를 정도이다. 그러다가도 날개를 펴기만 하면 높이 하늘을 날아가고 높은 곳에서도 작은 짐승까지 볼 수 있을 정도로 눈이 밝다고 한다. 인생은 세크러터리 새와 같다. 영적으로 깨어 있으면 무한한 능력을 갖춘 존재가 된다. 그러나 영적 잠에 빠지면 사단이 농락해도 깨닫지 못하는 무기력한 상태가 된다. 그러므로 영적 잠에서 깨어나야 살아있는 그리스도인이다.
▮ 뉴턴은 1725년 7월 24일 영국 런던에서 선장의 아들로 태어났다. 존 뉴턴은 온갖 악행을 일삼다가 노예로 팔려가 아프리카에서 집단농장에서 노역하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의 친구였던 크리스천 선장에 의해 구조되어 영국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러나 존 뉴턴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노예 생활에서 구조해 주었음에도 하나님께 전혀 감사하지 않았고 배에서도 옛날처럼 늘 술에 만취되어 선원들에게 마구 욕설을 퍼부으며 행패를 부리고 싸움질했다. 그러다가 그 배가 캐나다 부근을 지날 때였다. 갑자기 풍랑이 일더니 배가 곧 뒤집힐 것처럼 흔들렸다. 식량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갔고 바닷물이 넘쳐 들어와 선원들이 사력을 다해 물을 퍼낼 정도가 되었다. 그러자 선원들은 그 배에 요나와 같은 존 뉴턴이 탔기 때문에 이런 풍랑을 만났다고 하면서 저를 바다에 던져야 한다고 고함을 지르며 뉴턴에게 달려들었다. 그런 죽음을 앞둔 험악한 분위기 앞에 그렇게 강퍅하고 완악한 존 뉴턴은 무릎을 꿇더니 눈물로 회개하기 시작했다.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 통렬히 회개하며 눈물로 울부짖자 바다는 곧 잔잔해졌고 그 공포의 7일 동안 단 한 사람의 희생자만 생겼다. 죽음을 극적으로 모면한 뉴턴은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뜻과 사랑을 깨달았고, 그 순간부터 그의 생활이 변화되기 시작했다. 그는 후에 목사가 되어 곳곳을 다니며 자기 삶을 간증함으로 많은 사람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했고, 그가 작시한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워"라는 찬송가 305장은 지금도 수많은 사람의 가슴을 울리고 있다.
▮ 뉴욕 빈민가에서 태어난 흑인 소년이 있었다. 그는 17세에 처음으로 음료수 공장에 아르바이트하러 나갔다. 음료수 파는 일을 하고 싶었지만, 감독관은 백인 아이들에게 그 일을 맡기고 그에게는 걸레질을 시켰다. 그렇지만 흑인 소년은 조금도 불평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였다. 감독관은 그 소년에게 일을 잘한다고 칭찬하였다. 궂은일을 불평 없이 묵묵히 하고 있는 그를 관심 있게 보았다. 다음 해에 또 아르바이트를 나갔더니 음료수 파는 일을 하도록 하여 주었다. 그다음 아르바이트 때에는 도랑 파는 일을 했다. 그런데 같이 일하는 한 사람은 월급을 적게 준다며 불평을 쏟아 놓았다. 그러나 한 사람은 묵묵히 도랑을 파고 있었다. 몇 해가 흘렀다. 다시 그 공장으로 아르바이트를 나갔다. 불평하던 사람은 여전히 도랑을 파고 있었다. 그러나 묵묵히 일하던 사람은 지게차를 운전하고 있었다. 또 몇 해가 지났다. 다시 그 공장에 가 보았더니 불평하던 사람은 해고되었다. 그러나 묵묵히 일하던 사람은 그 회사의 사장이 되어 있었다. 흑인 소년은 교훈을 얻었다. 그는 어떠한 위치에 있어도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겠다고 결심하였다. 그런 결심이 결국 콜린 파웰을 미국 최초의 흑인 국무장관으로 만들었다.
▮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고난과 시련을 많이 겪었다. 그런데 그는 그 모든 고통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긍정적으로 보았다. 그는 “고통은 내 서재의 책 중 최고의 책이다”라고 했다. 세상의 그 어떤 책들보다도 고난과 고통을 통해서 깨닫고 배우는 바가 더 크고 많다는 것이다. 책 중의 최고의 책은 고난의 책이다. 학교 중의 최고의 학교 또한 고난의 학교이다. 문제는 고난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있다.
▮ 심리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고민을 속으로 삭이지 않고 밖으로 드러내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고 한다. 그것을 속에 두고 있으면 병이 되고 더 큰 손해를 보게 된다. 지금의 가난이 영원한 가난이 아니요, 지금의 불행이 영원한 불행도 아니며, 지금의 아픔과 슬픔도 영원한 것이 아니다. 당신의 기도 저 건너편에 반드시 응답과 축복이 보장되어 있다. 이스라엘 백성처럼 고난이 많았던 민족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면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셔서 애굽, 앗수르, 블레셋 바벨론으로부터 건져 주셨다. 다시 말해서 성경의 분명한 사실은 어떤 고난 중에도 부르짖기만 하면 들어 주시고 응답하여 주셨다는 사실이다.
▮ 자동차왕 헨리 포드는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님께 맡기면 무엇이든지 최후에는 가장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괴로워할 필요가 전혀 없다”라고 했다. 하이든은 많은 역경을 겪으면서도 8백 개의 곡을 작곡한 대작곡가였다. 그의 삶이 힘들 때 그는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어느 날 기자가 그의 왕성한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느냐고 묻자 그는 개인 기도실을 보여 주며 ‘여기가 나의 지혜의 보고요 나의 능력의 산실입니다.’라고 하였다. 그의 작품 중에 불후의 명곡으로 불리는 천지창조는 66세 때 발표한 곡이다.
▮ 진화론 창시자 찰스 다윈은 말년에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리고 살아온 날들에 대한 깊은 회한으로 우울하게 보냈다. 다윈이 운명하기 몇 달 전에 호프 부인이 병실에 누워 있는 다윈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 다윈은 성경을 펼쳐 들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보고 호프 부인은 다소 의아해서 "지금 무엇을 읽고 계신가요?"하고 물었다. 다윈은 쓸쓸한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바이블입니다. 성경책을 읽고 있습니다. 아주 고귀한 생명의 책이지요"라고 했다. 그러자 호프 부인은 구약성경 창세기를 펼쳐 보이면서 "다윈 당신이 일평생 주장해 온 진화론은 허구였다는 사실을 인정하십니까? 당신의 얼굴에 그렇게 쓰여 있습니다"했고 후프 부인의 이 말에 다윈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아주 놀라운 간증을 털어놓았다. "나는 참 미숙한 젊은이였습니다. 모든 사물과 현상에 대해 의심하고 접근했습니다. 진화론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진화론은 의심의 산물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진화론을 학문이 아니라 창조론을 대적하는 종교처럼 믿게 된 것입니다. 제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증거 해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죽음의 위기가 그를 참 신앙으로 인도하였다. 죽음을 앞두고 다윈은 진화론을 접고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고백하며 증명해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말년에 하나님을 생각하였다.
▮ 영국의 유명한 목사 스펄전은 1800년도 런던에 6천 명에서 1만 명이 모여서 예배드리는 교회 건물을 지었다. 그때 영국에는 콜레라가 만연했다. 템즈 강변의 수없이 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콜레라에 걸려 앓다가 죽어갔다. 사람들은 모두 겁이 나서 콜레라 환자 곁에 가지 않았다. 그런데 스펄전 목사는 매일같이 콜레라 환자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장례도 치러주었다. 그러던 중 너무 지친 스펄전 목사에게도 콜레라 기운이 다가왔다. 온몸에 열이 나고 구토가 나고 설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좌절과 절망에 빠져 ‘이제 나도 죽는가 보다’하고 생각했다. 하루는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내가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화가 내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내 장막에 미치지 못하리니”라는 시편 말씀을 읽게 되었다. 그것을 본 스펄전 목사는 그 말씀이 자신의 영혼을 크게 흔드는 것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눈물을 흘리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이여 야웨는 나의 피난처시며 내가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콜레라의 화가 내게 미치지 못하고 콜레라의 재앙이 나의 장막에 오지 못합니다”라는 고백을 드리며 기도했다. 그러자 마음이 뜨거워지고 눈물이 쏟아지며 온 전신에 생기가 확 돌더니 콜레라 병이 깨끗이 낫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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