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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자: 2025.10.19 주일 낮 예배
- 제목: 살리는 것은 영이요 생명이라
- 말씀: 요6:63
- 선포: 대한예수교장로회 만나교회담임 이덕휴목사
- 찬송: 338.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 은혜찬양: 서로 사랑하자
338.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yeram.org)
생명을 주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며 인간의 육체는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적인 생명에 관한 것이다.
예수님은 사역 초기에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그를 끄시거나 부르시지 아니하면 아무도 내게로 올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6:44)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요 6:60-63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이르시되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그러면 너희는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느냐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부르심받은 자
1. 하나님의 부르심
하나님의 부르심은 아버지께서 사람을 당신께로 끌어당기는 과정입니다. 그것은 영적 진리를 이해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열어 주시는 것을 포함하며, 문자 그대로 그 개인을 위한 구원의 초대입니다.
구원의 의미에 대해 많은 혼란이 있으니 단순화합시다. 육체적 의미에서 구원은 대개 죽음에서 구출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불타는 건물에서 구출된 사람이 끔찍한 죽음에서 구출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적 구원은 영원한 죽음에서 구출되거나 구원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차이점은 영적 죽음은 돌아올 수 없는 죽음이며 문자 그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육체적 죽음을 경험하더라도 그분이 오실 때 영으로 변화되어 영토록 살 것입니다.
2. 구원을 위한 길은 영을 위하여 생명의 위한 길이다.
구원을 위하여 우리는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회개는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먼저 나의 죄를 고백하고 사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대화를 위한 준비자세입니다.
옛날 삿또 원님재판은 먼저 "네 죄를 네가 알렸다?"(참조: 요한복음 7:53-8:11)로 시작하여 "저 놈을 매우쳐라" 이것입니다. 원님은 고을의 왕이었습니다. 매우 치면 실토합니다. 우리가 지은 죄는 죄의 결과 뿐만 아니라 죄 자체를 우리스스로 미워해야 한다. 두들겨 맞고 실토하는 것은 삿또 원님재판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로운 심판은 '미쉬파트'라고 합니다.
'공의(체다카)'과 '정의(미쉬파트)'는 하나님의 두 속성입니다. '미쉬파트(מִשְׁפָט)'는 하나님의 백성이 마땅히 지켜야 할 거룩한 공동체의 불문율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율법을 주셨고, 그들은 율법에 따라서 재판을 하고 재판을 받았습니다. 반면에 신약에서 의(디카이오수네, δικαιοσυνη)로 번역되는 '체다카(צדקה)'는 '의로움' '옳음' '바름'이란 뜻입니다. 가변적인 의가 아니라 절대적인 의, 곧 불변의 진리인 하나님의 의righteousness를 말합니다.
מִשְׁפָט (미쉬파트)란 용어를 살펴보자. 이 단어는 출24:5에 나온다. RSV는 이 용어를 대체로 일관되게 ordinace라고 번역해주고, KJV는 judgement라고 번역한다. 몇 가지 예외는 있지만 영역본들은 일관된 번역어를 사용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러나 한글역본들은 너무나 다양하여 통일성을 갖추려고 애쓴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개역한글과 개역개정은 율례라고 번역했는데 새번역과 공동역과 카톨릭역은 법규라고 옮기고 있다. 다른 구절들에서 번역어는 더욱 다양하게 들쭉날쭉하다. 성경의 독자들은 혼란에 빠진다. 율례는 무엇이며 또한 규례는 무엇이고, 율령은 더욱 어려운 개념이며 법규란 좀 친숙게 느껴진다.
여기서는 מִשְׁפָט (미쉬파트)가 무엇인지 그 개념을 잡아보고, 그것을 한글로 어떻게 옮기면 좋겠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더 나아가 성경에 언급된 구절에서 번역어를 통일되게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려고 한다. 명사 (미쉬파트)가 파생해 나온 동사는 שָׁפַט (샤파트)인데 그 뜻은 재판하다/행정하다란 뜻이다(judge/govern). 이 동사의 쉐골형 명사는 שֶׁפֶט (쉐페트)인데 판결을 뜻하며 그것의 동명사형은 שְׁפוֹט (쉬포트)로서 역시 재판의 판결을 의미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מ (멤)이 접두하는 명사형이 מִשְׁפָט (미쉬파트)인데 히영사전에는 justice, ordinace라고 설명이 주어져 있다. 우리말로는 사법적 정의라고 설명할 수가 있을 것 같다.
개념을 더 명확히 하기 위해서 동사 שָׁפַט (샤파트)를 살펴보자. 고대에 이 동사는 본디 행정절차를 실행하는 행위를 가리켰다. 고대인들은 현대의 관공서에서 보듯이 법률, 시행, 사법 등의 기능들이 분화되어 있지 않았기에 이 동사를 재판하다라고 번역하면 현대인에게 이해가 되지 않기 십상이다. 현대에 재판하다라는 말은 언제나 사법 행위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고대 상황에서 이 동사가 사용되었을 때 문맥상 그것이 종교나 시민사회나 행정 등의 여러 가지 상황에 사용된다. 현대어로는 이것을 상황에 따라 다르게 번역해 주어야 비로소 이해가 된다. 심지어 이 동사의 분사형 명사הַשּׁוֹפֵט (하쇼페트)는 사사기에 많이 등장하는데 사사(개역) 또는 판관이란 용어로 번역되어 있다. 이 개념의 폭넓은 속성을 담기 위해서 NIV는 leader(지도자)이라고 번역한다.
고대인들이 이 동사를 사용했을 때 현대인들처럼 법률로 다스리는 사법적 판결에 한정하지 않고 시민생활이나 종교적인 상황 등 넓은 맥락에서도 사용했을 것이다. 지도자 한 사람에게 사법, 행정, 통치권이 통합되어 있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이 동사의 다양한 용례들을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1)통치자로서 행동하다(민18:22-28, 등) / (2)시민사회나 가정이나 종교에서 송사를 해결하는 행위(신25:1) / (3)판결과 집행의 기능을 둘 다 행사하는 경우(삼상24:16). 이 경우에는 한 지도자가 구원하고, 무죄를 선언하고, 정죄하고, 벌을 주는 기능을 다 수행한다. (4)모든 권위를 다 행하는 경우로는 하나님에게 적용된다(시96:13).
이처럼 광의의 개념을 지닌 שָׁפַט (샤파트) 동사로부터 מִשְׁפָט (미쉬파트)란 명사가 파생했으니 이 명사도 무척 다양한 경우에 넓은 뜻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다양한 용례들을 정리하여 개념을 뽑아 보자면, 생활 속에서 판단하기 어려운 갈등이나 분쟁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해결하는 일반적인 원리나 규범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것을 우리말로 짚어내자면 관습, 관례, 통례로 표현할 수 있겠고 더 좁히자면 관습법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오랜 전통 속에서 사람들 사이에 통용되고 있는 판단의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으로 공동체의 생활규범이 מִשְׁפָט (미쉬파트)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어떤 사회에든지 불문율과 같이 오래된 관습과 관례가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그 관례를 대체하여 세속사회를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 공동체로 전환할 것을 요청하는 하나님의 뜻이 토라에서 מִשְׁפָט (미쉬파트)란 단어로 표현되고 있다. 이것은 어떤 세속적인 왕이나 영주나 귀족과 같은 권력자를 위한 법이 아니다.
마을 공동체의 성원이 자발적으로 스스로 협동하며 사랑하며 살아가는 가운데 생겨난 무언의 약속이 מִשְׁפָט (미쉬파트)였다. 작은 부락이나 약소한 족속의 관습은 제국의 통치에 소속되어 폐기되기가 일쑤였다. 이러한 제국의 이데올로기로 통합되어 부락이 해체되고 국가란 제도의 법률 속에서 법제화되고 또는 폐기되는 과정을 딛고 디아스포라 공동체는 작은 부락의 생활 속에 하나님의 법 곧 מִשְׁפָט (미쉬파트)를 자율적이고도 자치적인 사랑의 행동 규범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므로 토라가 사용하는 מִשְׁפָט (미쉬파트)란 단어의 개념은 제국의 질서 Romana Pax (로마나 팍스)가 강제하고 통제하는 법이 딛고 있는 폭력의 관계를 제거하고 그 대신에 하나님의 사랑을 원리로 제시하는 평화와 이웃사랑과 상생의 법 관념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מִשְׁפָט (미쉬파트)는 하나님의 백성이 마땅히 지켜야 하며 저절로 지켜지는 거룩한 공동체의 불문율이다.
요한복음14장1절로 6절말씀은 바로 생명의 길이요 진리의 길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3. 부름을 받는데 선택받지 못하는 것
주님의 부르심이 없다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하지 못한 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분명히 주님의 부르심이 있다는 것이 전제된다는 것인데 다시 말씀드리면 부르심과 함께 택함을 받는 것이 순서라는 것입니다. 부르심을 받는 것은 곧 선택되었다는 것과 같을까요?
"택함받은 자"의 성경적 사용은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단지 영적인 적용일 뿐입니다. "그런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롬11:7)
이어지는 사도바울의 말씀을 정리해드리자면 이렇습니다. 롬 11:7-12절에서 주시는 사도바울의 말씀의 요지는 결국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이 찾고 있던 하나님의 은총을 얻지 못하였다는 말씀입니다. 단지 소수의 사람들,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들만이 그 은총을 얻었을 뿐, 다른 사람들은 완악해져 버린 것이 말씀의 요지입니다.
일생 동안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합니다. 그들이 회개로 그 부르심에 응답할 때, 그들은 이 시대에 성령을 받도록 하나님에 의해 선택되거나 선택됩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많으나 택함을 받은 자는 적다"고 말씀하셨을 때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는 모든 사람들 중에서 회개로 응답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選民: 가려진 백정,선민), 즉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이 됩니다. 이 내용을 가장 적절히 말씀하신 구절이 바로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 있습니다. 알곡을 거두어드릴 수 있는 길을 주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것이지요.
씨뿌리는 자의 비유는 마태복음 13장 1절부터 23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씨를 뿌리는 농부의 이야기를 통해, 씨앗이 네 가지 종류의 땅에 떨어지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각 땅은 사람의 마음 상태를 상징합니다
농부는 씨를 잘고르고 밭을 잘 일구고 자라는 식물을 잘 길러야 좋은 수확을 할 수있습니다. 네가지 일을 완벽하게 행하지 못하면 가을의 추수는 없습니다. 좀 시사적인 비유가 되겠습니다만, 농삿군이나 장삿군이나 삯일하는 것은 마찬가지 압니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삿"이란 우리말은 아마도 품파는 삯일군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국어사전에는 없으니 이 말을 인용하거나 사용하실 때에는 좀 더 사려깊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장삿군이 수익창출을 얻기 위해서는 종잣돈을 잘 마련하고 사업수완을 잘 행해야 합니다. 씨앗을 돈뿌리듯하고 돈을 씨뿌리듯하면 됩니다. 우리는 말씀의 씨앗을 가슴에 두고 새겨야 합니다. 주님께서 비유하신 말씀을 생명의 말씀으로 영을 살리는 말씀으로 새겨야 하는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 나가는 말씀
일생 동안 부름을 받지 못하거나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요? 세상적인 일을 하고자 하는 것은 저와 여러분의 공통된 마음의 의지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위하여 선택되고 선택받은 백성이 해야 하는 일을 찾는 것은 저와 여러분의 몫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의 구세주이자 주권자이신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이 시간 다시 한 번더 깊이 새기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왕국을 위하여 존재한다는 것을 명심(가슴팍에 새기는)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 모이신 여러분 중에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해결하고자 여기에 오셨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뜻에 부름받고 그의 종으로서 그가 시키는 일을 하고자 이곳에 모였습니까? 이것이 신앙인의 부르심과 택함받은 자의 사명을 감당하고자 하는 것이 차이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살았던 모든 개인이 결국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이해하게 될 세심하게 마련된 계획을 통해 일하고 계십니다. 믿음과 순종으로 응답하는 사람들은 영원한 죽음에서 구원받을 것입니다.영의 삶의 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종교적 신념을 실천하든 최선을 다한 사람들(선한 이웃의 삶)에게 영생을 주시지는 않으실 것이지만, 모든 인간에게 그분의 부르심을 듣고 응답할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걸까요? 스스로 기도하면서 자문자답해보시기 바랍니다. 왜 하나님은 나를 부르셨는가
그 부르심의 목적을 무엇인가? 어디에 쓰실려고 나같은 죄인을 부르셨는가? 나도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것인가? 오늘부터 다시 기도제목을 세우시고 기도하고 응답받는 우리 만나인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고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으셨으니 이는 우리 복음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르신 것이요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으려 하려 함이니라"(데살로니가후서 2:13-14).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로 선택한다는 것은 개인적이고 영적으로 성장하는 삶을 시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래 나열된 많은 기사에서 그 과정을 설명합니다. 거기에서 회심, 회개, 세례에 대한 자세한 성경 지침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살기를 원하시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찾을 수 있습니다.
오곡백과가 무르익어 이젠 논밭이 형형색색으로 변하고 있는 결실의 계절에 우리 만나인의 신앙과 결실이 하나님 원하시는 분량으로 성장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오늘도 주님께서 우리 만나인에게 주신 말씀은 살전5:16-18입니다. 함께 봉독하시면서 말씀을 마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