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명절은 기다림이다. 도시에 나가 있는 누나가 온다. 새옷과 새신을 기다리며 사립문이 삐걱거릴 정도로 여닫는다.
추석 전날에는 집 안팎을 청소한다. 아버지는 청소와 함께 우리집 재산 일호인 소가 먹을 여물과 풀을 충분히 준비한다. 어머니는 음식을 준비하고 나와 내 동생은 물을 퍼 나른다.
내가 국민학교 때까지 살았던 초가삼간 집은 우물이 없었다. 사시사철 연산댁의 우물을 식수로 사용하고 마을 길을 휘돌아 온 용천의 물을 생활용수로 이용한다. 세수하고, 목욕하고, 빨래하고, 고기 잡고, 오리도 키우고, 미나리를 재배해 학비도 마련하고.....
연산댁 둘째 손자는 나의 단짝 친구고 첫째 손자는 친구 같은 형이다. 연산댁 할머니의 너그러움과 친구 덕택에 어색하거나 힘들지 않게 우물을 사용할 수 있었다.
어느 추석 전날이었다. 그날도 누나를 기다리고 있는데 아버지가 불렀다. 추석 명절에 소에게 먹일 풀이 모자란다며 풀을 베어오라고 하셨다. “충분한데 왜 저러실까? 누나를 기다려야 하는데”라고 중얼거리며 풀망태를 메고 움직이지 않는 발길을 억지로 옮겼다. 집 앞 도랑을 훌쩍 뛰어넘다 뒤로 미끄러지며 낫으로 내 오른손등을 찍었다. “퍽” 소리와 함께 허연 속살이 스치듯 보이다가 피가 솟구쳤다. 입고 있던 윗옷을 벗어 감싸고 집으로 돌아와 쓰러졌다. 그해 추석은 없었다. 지금도 내 몸의 가장 큰 상처는 오른손등에 있다.
어른의 명절은 준비와 돈과 만남이다. 올해 추석 연휴는 유난히 덥다. 아들이 결혼한 해부터 추석 차례를 지내지 않고 고향의 부모님 산소에서 간단한 차례와 함께 성묘한다. 올해는 고향집 수리를 핑계 삼아 동생 가족과 저녁을 먹기로 했다.
추석 전날 일찍 출발하여 백운대의 고조부 산소를 벌초하고 “내가 움직일 수 있을 때까지는 찾아뵙겠습니다.”라고 웅얼거리며 술 한잔을 올렸다. 울산으로 내려가 공원묘지에 있는 장인어른 묘에 성묘를 마치고 큰처남 집에 계시는 장모님께 인사를 드렸다. 장모님을 보면 어머님이 생각난다. 인명은 재천이다.
고향집에서 본격적인 추석 명절을 준비한다. 아내는 음식을 준비하고 나는 집안 텃밭에서 잡초를 뽑고 배추, 무, 고추, 오이, 가지 등을 손보며 가을 상추씨를 뿌릴 고랑을 만든다. 작은 처남이 가져온 가을 상추씨를 뿌린 후 처남과 술잔을 나누며 저녁을 먹었다.
추석날 아침이다. 잔디 사이에 있는 잡초를 뽑고 잔디를 깎는다. 동생 가족과 손녀가 마음놓고 뛰놀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한다.
향 내음 대신 풀 향기가 물씬 풍기는 추석이다. 앞집과 옆집에도 향 내음이 나지 않는다.
고기 굽는 틀과 숯, 탁자와 의자를 준비해 놓고 부모님 산소에서 동생들과 만나 성묘한 후 영지 숙모님을 찾아뵙고 고향집에 돌아오니 해가 저문다.
마당에 음식상을 차리고 고기를 굽는다. 나와 동생이 굽던 고기를 아들과 조카들이 굽는다. 나는 모기향과 불을 피워 모기를 쫓으며 아기봉산의 석양을 본다. 걸음마 단계를 막 넘어선 손녀가 비눗방울 총을 쏘며 비틀거리는 모습이 신기하고 앙증스럽다. 모기 물려 벌게진 손발을 긁으며 징징거리는 모습이 상상되지만 어찌하랴.
고기 굽는 틀을 중심으로 둘러앉아 음식을 먹고 음료와 맥주를 마신다. 캠프장에서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도란도란 얘기하는 분위기와 비슷하다. 보름달이 떠오르고 밤이 깊어 갈수록 정이 더해진다.
시집와서 이런 추석은 처음이라는 제수씨와 재미있다는 조카들의 말에 흘린 땀이 아깝지 않다.
추석은 조상에게 감사의 차례를 드리고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우리의 큰 명절이다. 시대가 변하여 추석 명절을 보내는 방법은 달라지고 있지만 지금도 추석 전날이 되면 사립문을 밀고 들어오는 누나가 기다려진다.
2024.9.27.(25)
첫댓글 어린 시절 부터 정감 가는 추석 풍경 눈에 선합니다. 가족들과 정겹게 지내는 모습 모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