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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준비된 대통령 1
대한민국 대통령 취임식은 1987년 현행 헌법 개정 이후, 2월 25일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서 귀빈을 초청해 진행되는 것이 관례였다. 전년 12월에 대통령 선거에서 새 대통령이 당선되면 꾸려지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대통령 의전 행사를 담당하는 행정자치부와 논의해, 새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함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행사를 준비하였다. 이번 제19대 대통령의 경우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보궐선거를 통해 당선되었기 때문에, 인수위 없이 당선과 동시에 임기가 시작됨에 따라 이전처럼 취임식을 준비할 기간이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에 행정자치부는 선거 전 미리 취임식 형태별로 여러 가지 안(安)을 준비해 놓고, 당선이 확정될 즈음 문 대통령 측에 이들 방안을 제시해 이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취임 선서 위주의 약식 행사를 택했으며, 세부적으로는 국민의례와 취임선서, 국민께 드리는 말씀 발표로만 구성되었다. 이전의 취임식에서 이뤄졌던 보신각 타종 행사나 군악·의장대 행진, 예포 발사, 축하 공연 등은 제외되었다. 행정자치부는 “국정 현안을 신속히 타개하려는 대통령의 의지를 반영해 취임 선서 위주로 행사를 대폭 간소화했다.”고 밝혔다.
취임 선서 행사 참석자 300여 명에게는 행자부 의정담당관실 직원 30여 명이 총동원돼 취임식 당일 오전 6시쯤부터 전화 등을 통해 정세균 국회의장, 양승태 대법원장, 황교안 국무총리 등 5부 요인과 국회의원, 국무위원, 주요 군 지휘관 등 300여 명에게 비상 연락을 취했다. 이날 중앙선관위가 10일 오전 8시 9분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을 확정하자 그 직후 청와대는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기를 다시 올렸다. 지난 3월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따른 파면 직후 내려진 지 60일 만이다. 취임식에 앞서 문 대통령은 자유 한국당, 국민의 당, 바른 정당, 정의당 순으로 야 4당을 방문해, 각 정당 대표와 원내대표들과 회동을 하며 국정 운영에 대한 협조를 구했다. 문 대통령의 취임사는 ‘국민께 드리는 말씀’으로, 정식 취임사가 아닌 대국민 담화문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를 통해 이전까지와는 다른 대통령의 모습을 약속했다. “대통령부터 새로워지겠다.”는 말로 대선 후보 시절 주요 공약 중 하나였던 ‘광화문 시대 대통령’을 천명, 청와대를 나와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에서 집무하면서 국민과 소통을 할 것을 확인했다. 이어 권위적 대통령 문화를 청산하고,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자 깨끗한 대통령, 약속을 지키는 솔직한 대통령, 따뜻하고 친구 같은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문 대통령은 “분열과 갈등의 정치를 바꾸겠다.”고 강조하며, “야당은 국정 운영의 동반자”라며 “대화를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나겠다.”고 밝혔다. 당선이 확실시되는 새벽 1시에 비밀 회동 후 그야말로 숨 가쁘게 진행되었던 취임식은 그야말로 단 이십여 분만에 끝났다. 아무리 이번 대선이 대통령 궐위에 따른 보궐선거로 치러진 까닭에 문재인 대통령은 인수위 기간 없이 당선 후 곧바로 취임 선서를 하고 바로 직무에 임해야 한다지만 2013년 2월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열린 박 전 대통령의 취임식 때 역대 최대인 7만여 명이 참석했던 것에 비하자면 국회의사당 로텐더 홀에서 약식으로 열린 취임식은 너무 단출했다. 보궐선거가 아닌 정상적인 대선이라 할지라도 평소 그의 소신이나 스타일을 보아서는 문 대통령은 약소하게 행사를 거행했을 것만 같다. 그의 평소 품성에서 느껴지는 품행이 그렇다. 나는 실용적이며 검소한 첫 시작부터 마음이 들었다. 번개 불에 콩 볶아 먹듯 짧은 시간 내 짧게 이루어진 취임식 행사지만 이를 위해 밤새 준비는 쉴 틈이 없었다. 하물며 5년을 책임질 국사라 할 것이면 그 준비는 어떠하랴. 그는 선거 내내 준비된 대통령임을 말했다. 유비무환이다. 유비무환(有備無患) ‘평소 준비가 철저하면 후에 위기가 닥쳐도 근심이 없음’을 뜻하는 말이다. 초등학생에게 아는 사자성어(四子成語)를 물어보면 가장 먼저 나오는 말 중 하나일 것이다. 그만큼 많이 알고 있는 단어이지만 과연 그만큼 실천은 하고 있을까? 이 땅에서 유비무환을 제대로 실천한 대표적 인물은 누구일까. 단연코 이순신 장군이다. 그의 창의 정신과 선승구전의 유비무환 정신이 빛을 내면서 새로운 기록을 계속 이어갔다. 이순신은 1591년 2월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정3품)로 부임하자마자 그해 3월부터 거북선 창제에 나섰다. 관하 5관(순천, 낙안, 보성, 광양, 고흥) 5포(사도, 여도, 녹도, 발포, 방답)의 군사와 군기 및 군량 점검을 하면서 신상필벌에 따라 군대를 강도 높게 조련해나갔다. ‘용장(勇將) 밑에 약졸(弱卒)없다.’는 말은 이순신의 전라좌도 수군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다. 이순신은 또 사람을 끌어 모았다. 1577년 전라좌수사를 역임한 ‘백전노장’ 정걸(丁傑)을 찾아가 나이 차이가 31년이나 났지만 조방장(助防將 참모장)으로 모시겠다고 청했다. ‘까마득한 후배 장수’의 청을 기꺼이 받아들인 정걸은 판옥선을 만든 주역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판옥선에 철익전 및 불화살 등을 쏠 수 있는 대총통을 설치해 조선 수군을 최강의 함대로 만들었다. ‘싸우면 반드시 이긴다.’는 정신으로 전투에 임했던 장군은 사전에 철저한 준비를 했다. 유비무환(有備無患)정신이다. 거북선을 만들어 한산 대첩에 사용하기까지 불과 1년 5개월이란 짧은 기간, 하지만 이순신은 준비는 철저했으며 용장 이순신은 큰일을 도모하기 위해 ‘백전노장’ 정걸(丁傑)을 찾아가 나이 차이가 31년이나 났지만 조방장(助防將 참모장)으로 모시겠다고 청했었다. 과연 문 대통령에게도 이런 기대가 가능할까. 그는 선거 내내 준비된 대통령임을 강조했었다. 기실 문재인이 말하는 이 준비된 대통령이란 슬로건은 1997년 김대중 후보가 맨 처음 들고 나왔던 말이다. IMF로 힘들었던 20년 전 그 시절. 우리는 또 다른 희망을 만났었다. 기업은 줄줄이 도산하고, 가정은 파산하고, 중산층은 몰락하고. 국가가 파산이었기에 가계의 파산은 당연했다. 그러나 우리는 금 모으기로 하나 되고, IMF 위기를 넘기고, 햇볕정책으로 남북 관계를 개선해 나갔고 세상은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 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국민에게 감사하다며 울먹였으나 그가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우리 대한민국은 어떻게 됐을까? 우리는 또 다시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 헌정 사상 최초 대통령 탄핵, 경제 위기 불평등과 불공정, 안보 위기가 우리를 짓누른다. 문 대통령은 그 시절을 상기하듯 바로 그가 준비된 대통령이라고 했다. 이번에는 당선되자마자 새 정부가 탄생한다. 2개월 정도의 인수위 기간이 없어 당선 전에 치밀한 국정 시스템 로드맵이 없으면 문제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헝클어진 국정 난맥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에 따른 국민의 정치적 기대치도 엄청나 자칫 큰 부담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국정 전반에 대한 장악능력이 없고, 국정전반 메커니즘을 모르면 큰 어려움에 봉착하고 국민들 눈높이도 미치지 못할게 뻔하다. 5년을 다 채울 수 없는 정부가 또 탄생할 수도 있다. 그는 승수의 논리로써 이렇듯 ‘준비된’이라는 말을 대통령 이미지화하며 이 시점에서 누가 가장 적임자인가 하며 되물으며 표심을 파고들었다. 이미 검증되고, 준비가 철저하고 치밀한 문재인, 생가해보자면 이 슬로건 자체가 또한 철저히 준비된 것이었다. 당선이 유력시 되는 5월 9일 밤 11시 50분, 그가 또다시 찾은 곳은 바로 광화문이다. 광화문은 촛불 집회가 열렸던 곳이고 세월호 유족이나 블랙리스트들이 억울함과 참혹함을 견디던 민생 현장의 곳이다. 이 또한 그의 치밀함이 아닐까. 그는 더 나아가 앞으로 광화문 시대를 열겠다고 했다. 그는 그날 환호 물결 속에서도 결코 노란 리본을 빼놓지 않았다. 과연 치밀한 그의 준비성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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