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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순수의 나라, 라오스
1. 힘들게 도착한 비엔티엔
12월 29일, 전날 저녁 7시에 하노이의 시외버스 정류장을 출발한 야간 침대버스는 22시간을 달려 이날 오후 5시 반에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엔에 도착하였다. 48석의 침대 좌석이 두 층으로 빡빡하게 배치된 버스에 출발시간 10여 분 전에 오르니 이미 대부분의 좌석에 승객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일행 17명이 오르려면 좌석이 많이 부족한 상태인데 건장한 버스 직원들은 무조건 오르라고 큰소리로 외치며 가방들을 버스 지붕 위로 들어올린다. 인솔 길잡이도 별다른 방법이 없는 듯, 직원들의 말을 따라 차에 오르라고 권한다.
일행 중 일부는 간신히 자리를 잡았으나 나머지는 통로에 앉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도 승객들은 계속 밀려든다. 아래층은 두 명이 누울 좌석에 네 명씩 끼어들기도 하는 등 80명이 넘는 인원이 탑승하여 초만원을 이룬 상태에서 버스가 출발한다. 아내와 처제, 캐서린은 장장 20여 시간을 아래층의 두 좌석에 세 사람이 끼어 있는 데다 또 한 사람이 들이 밀어서 앉고, 나는 2층의 한자리를 겨우 차지 할 수 있었다. 도중에 10여 명의 인원을 더 태우니 젊은 청년이 내 침대 모서리에 발을 붙이고 엉덩이는 반대편 침대에 걸치는 불안한 자세로 앉기도 한다.
야간버스
밤중에 한두 차례 멎은 버스는 아침 8시경 국경에 이르렀다. 국경의 출입국 수속에 두 시간이 걸린다. 출국수속 장소에서 라오스의 입국수속 장소까지는 도보로 20여 분 거리, 밤새 시달린 몸을 움직이는 것이 좋을 듯하여 라오스 국경 초소까지 비가 내려 젖은 도로를 걸었다. 비교적 간단한 입국수속을 한 후 버스에 오르니 오전 10시가 가깝다. 라오스는 최근에 한국의 국적기가 취항하면서 무비자입국이 허용되었는데 일행 중 캐나다 시민권을 가진 두 사람은 수십 달러의 수수료를 내고 별도의 비자를 받는 등 입국수속이 번거롭다.
오후 5시 반, 긴 여로의 종착지인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엔의 남부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였다. 뒷좌석을 트럭형으로 개조한 승합차에 올라 메콩강변에 위치한 숙소에 이르니 저녁 6시, 야간버스에 타려고 하노이의 숙소를 떠난 지 24시간이 넘어 다음 숙박 장소에 이르는 강행군으로 일행 모두 녹초가 되었다. 식사도 거른 채 좁은 공간에서 버틴 아내와 처제는 거의 탈진 상태다. 물에 불린 인스턴트 누룽지를 좀 먹고서야 간신히 몸을 추스린다. 15년 전, 시베리아 벌판을 화물열차를 타고 한 달 넘게 고생하며 동포들의 고난의 길을 따라갔던 회상의 열차 프로그램을 떠올리며 겨레와 부모세대가 겪은 고난의 대리 체험으로 여기자며 힘들어 하는 아내와 처제를 다독였다. 김훈기 교수는 하노이-비엔티엔 야간버스가 힘들다는 정보를 듣고 비행기 편을 이용하는 기지를 발휘하여 부러움을 사기도.
잠시 쉬다가 가족들과 함께 숙소 인근에 있는 '독참파'라는 한국 음식점에서 김치찌개와 된장찌개로 저녁식사를 한 후 호텔 앞의 메콩강변 광장에 자리 잡은 야시장을 돌아보니 일행들 여러 명이 노독을 잊은 채 밤거리를 거닐고 있다. 하늘에는 휘영청 밝은 달이 높이 떠 있고 은하수의 별들이 반짝이는 시원한 밤, 여행자들로 붐비는 노천시장에서는 각종 기념품과 옷, 장식구 등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손님 끌기에 바쁘다.
다음날(12월 30일) 새벽, 인적이 드문 메콩강변의 넓은 둑에 앉아 오랜 세월 쉬지 않고 흐르는 강물 곁에서 찰나의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음을 회상하며 명상에 잠겼다. 동틀녘에 아내와 함께 강변을 산책하러 다시 나오니 짙은 구름 사이로 눈부시게 밝은 해가 찬란한 빛을 발하며 강변 저 멀리 숲 사이로 떠오르더니 5분도 안되어 구름 속으로 사라진다. 마치 멀리 찾아 온 나그네를 환영하러 잠시 얼굴을 비추고 들어가듯.
운동 삼아 멀리 보이는 큰 동상 앞까지 걸어가노라니 한국의 어린이 놀이터와 비슷한 공원이 나타난다. 공원 한쪽에는 한국의 차관으로 메콩강변을 개발하는 프로젝트가 진행 되는 것을 기려 조성했다는 내용을 새긴 큰 돌판에 라오스국기와 태극기가 선명하게 그려졌다. 이를 바라보는 중 앳된 여학생 둘이 우리가 한국인인 것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넨다. 대학생이냐고 물으니 고등학생인데 불교재단에서 주선한 의료봉사활동에 참여하여 열흘간 라오스에 머물다 오늘 밤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젊은 시절에 외국에 나와 봉사활동을 하는 진취성과 적극성을 살려 훌륭한 인물이 되라고 격려하였다.
한국과 라오스 양국기를 새긴 돌판
아침 식사 후 여러 사람과 함께 비엔티엔 명소 탐방에 나섰다. 숙소에서 가까운 곳에 대통령 관저가 있다. 그 앞에서 대학교수로 있다가 은퇴한 라오스인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소개하니 관저 앞의 한국공원을 가리키며 한국의 기술력을 칭찬하고 건너편의 동상이 누구의 것인가 물으니 태국의 침탈에 항거하여 라오스를 지켜낸 왕을 기리는 동상이라고 설명해준다. 바로 앞 건물은 대통령궁인데 외국의 귀빈들이 묵는 방도 있다며 다음에 라오스를 찾을 때는 그곳에서 묵을 수 있기 바란다는 농담을 건네기도.
라오스는 불교도가 전 국민의 95%를 차지할 만큼 독실한 불교국가여서 규모가 큰 사찰들이 대통령궁 주변에 많이 있다. 유명 사찰 입구에 버스와 승합차들이 많이 주차하고 있는데 한 버스에서 한국 청년들이 무리지어 내린다. 다가가서 인사를 나누니 충남과학고등학교 학생들이 4박 5일 일정으로 과학탐구학습차 라오스를 찾게 되었다는 설명이다. 십여 년 전, 인도에서 배낭여행 온 젊은이들을 다수 접하며 청년들의 기백이 세계로 향한 것을 칭송하였는데 이제 그 열기가 고등학생까지 확대되는 것을 보니 믿음직하다.
대통령궁 앞에 세워진 국왕의 동상
하루 동안의 짧은 비엔티엔 체류를 마치고 우리 일행은 오후 2시에 여행자들의 천국으로 알려진 방비엥으로 향하였다. 명승지로 가는 것은 좋지만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의 중심지인 수도를 잠깐 스쳐 지나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2.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 방비엥
1월 1일, 2013년 새해를 라오스의 휴양지 방비엥에서 맞이하였다. 전날 저녁에 묵은해를 보내며 주변의 친지들에게 다음과 같은 메일을 보냈다.
'다사다난한 2012년이 막을 내립니다. 여기는 라오스의 휴양지 방비엥, 한국음식점에서 저녁을 들고 수박파티로 송년을 기립니다. 희망의 새해를 맞이하여 더욱 건강하고 보람찬 날들을 누리기 바랍니다.'
중국의 명승지 계림과 운대산을 합친 듯, 산수가 빼어난 방비엥에서 보내고 맞는 송구영신의 감회가 별다르다. 강변에 자리 잡은 게스트 하우스 식당 천정에는 여행 중인 한국의 아가씨들이 정성들여 장식한 풍선이 가득하고 강변을 가로지르는 창공의 열기구가 하늘 높이 꿈을 실어 나른다.
이른 아침부터 게스트 하우스 앞에 여행자를 상대로 한 먹거리 좌판이 열리는 가운데 젊은 탁발승들이 추운 날씨에 맨발 차림으로 줄을 지어 골목길을 내려오는 모습이 눈길을 끈다. 행렬 중에는 10여 살 또래의 동자승도 섞여 있네. 맨발의 동자들을 바라 보노라니 안쓰럽다.
이른 아침 탁발에 나선 동자승들
저녁식사 때 게스트 하우스와 한국음식점을 경영하는 젊은 사장과 대화를 나누며 라오스의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라오스에 들어온 지 2년 되었고 식당과 게스트 하우스를 개업한 지 5개월째로 매일 100여 명의 손님들을 상대하느라 쉴 틈이 없다는 그는 라오스인들이 순박하고 정직하며 생활수준도 예상보다 높은 편이라는 것, 산악지방이 많아서 쌀은 수입하고 전기는 수출한다는 것, 바다가 없는 내륙국이지만 인도차이나의 여러 나라가 이곳을 거쳐 다른 나라로 들어가는 교통의 요충이어서 발전의 여지가 많다며 몇 년 후면 베이징에서 싱가포르로 이어지는 특급철도가 라오스를 관통한다고 이야기한다.
방비엥은 배낭족 등 장기여행자들의 홈타운 같은 호젓한 시골도시인데 쏭강을 끼고 들어선 고을 주변으로 굽이굽이 기암괴석의 작은 산들이 이어지고 원시자연을 간직한 동굴과 보트, 카약, 튜브 등의 뱃놀이에 적절한 강변을 끼고 있어서 전망 좋은 곳곳에 리조트와 게스트 하우스들이 즐비하다. 일행들은 아침, 저녁으로 게스트 하우스 주변의 마을길을 산책하고 낮에는 동굴탐사와 뱃놀이, 자전거타기, 카약타기, 수영 등 취향에 맞춰 휴양지의 여러 놀이를 즐기는데 손님들이 가득한 식당의 비디오 화면에는 경쾌한 리듬의 강남 스타일이 반복하여 비춰진다.
오전에 인근의 동굴까지 걸어가면서 운동장에서 학생들이 신나게 뛰노는 초등학교를 지나노라니 한동안 우리의 시골 초등학교도 저처럼 어린이들로 꽉 찼던 일이 떠오른다. 산 언덕에 있는 동굴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방비엥 시가지와 주변 산세가 한 폭의 그림이다. 동굴에서 돌아와 작은 트럭을 타고 산수가 좋은 물놀이터인 블루라곤으로 향하였다. 비포장도로를 오가는 길이 먼지가 많이 나고 울퉁불퉁한데 먼저 떠난 앤디와 젊은 일행들이 자전거 타고 오는 모습이 보인다. 손을 흔들어 반가워하는데 앤디의 표정은 심상찮다. 나중에, 자전거의 성능이 좋지 않아 너무 힘이 들었던지라 순간, 표정 관리를 제대로 못하였다고 말하여 모두들 크게 웃었다. 모정에서 바라보는 블루라곤의 물빛도 근사했지만 캐서린이 아침 시장에서 사가지고 숙소에서 삶아온 돼지고기에 쌀밥과 상추, 마늘, 고추장을 곁들여 먹는 소풍길의 점심이 우리를 행복하게 했다.
블루 라군에서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들
낮 12시에 우리 일행은 이틀 간의 방비엥 탐사를 마치고 다음 행선지인 옛 왕도 루앙프라방으로 출발한다. 한 폭의 산수화처럼 아름다운 방비엥이여, 안녕.
추신
12시 경에 방비엥을 출발한 버스는 한 시간쯤 달려 휴게소에서 점심 먹을 시간을 주고 계속 북쪽으로 달린다. 높은 산들로 에워싸인 산악지방이 여러 시간 이어진다. 산간 도로변에는 키가 크고 굵은 억새꽃이 한창이고 잎이 무성한 바나나 나무에는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 있다. 저 바나나 열매는 누구의 소유일까?
높은 산자락에 움막처럼 다닥다닥 붙은 낡은 집들이 눈에 띤다. 고산족이 사는 마을인가, 어떤 동네에서는 새해맞이 잔치인지 채색 옷을 입은 젊은이들이 짝을 지어 노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차량 통행이 뜸한 곳인데도 교통사고가 났는지 한적한 마을의 도로에 오토바이가 튕겨 나오고 그 옆에는 고통을 호소하는 젊은이가 엎어져 있다. 하필 새해 첫날 액운이 덮치는가, 젊은이여 떨쳐 일어나라.
저녁 6시 반, 높고 큰 산을 수없이 넘어온 버스가 루앙프라방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숙소에 여장을 풀고 가까운 곳에 있는 야시장으로 나가 저렴한 가격의 야채뷔페를 들었다. 소수민족들의 수공예품이 주 종목인 시장터를 돌다가 한복을 차려 입은 중년부부를 만났다. 현지의 교육기관에서 일한다는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새해 복 많이 받으라고 축수하였다. 휴대폰에는 새해를 축하하는 가족과 친지들의 메시지가 여럿 뜬다. 모두들 건강하고 밝은 날들이기를.
3. 문화유산이 가득한 옛 왕도, 루앙프라방
1월 3일, 800여 년 간 란씽 왕조의 수도로 숱한 흥망성쇠를 겪어낸 루앙프라방에서 이틀 간의 여정을 마치고 다음 행선지인 태국의 치앙마이로 떠난다. 루앙프라방은 사원과 왕궁, 소수민족의 풍습 등 옛 모습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메콩강과 칸강이 도시의 양 옆으로 흐르는 고즈넉한 도시에는 화려하고 웅대한 사원들이 큰 길 옆에 연달아 들어서 있고 이른 새벽에는 길을 따라 이어지는 황갈색 승려복의 탁발행렬이 멀리 찾아온 나그네들에게 평안함과 따뜻함을 안겨준다.
루앙프라방의 유명한 볼거리인 황금불상 '파방(phabang)이 안치된(루앙프라방의 이름도 이 불상의 이름에서 유래 된 것이라고 함) 국립박물관은 이전에 왕궁으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이를 보기 위해 수많은 관광객들이 줄을 잇는다. 박물관 뒤편에는 왕이 타던 황금마차와 고급 캐딜락이 옛 영화의 흔적으로 남아있고.
파방이 안치된 국립박물관
시내 중심에 해발 약 100m의 푸씨(phousi)언덕이 있다. 해질녘에 이곳에 올라 메콩강 너머 아스라한 산자락으로 사라지는 일몰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음도 순례자의 큰 기쁨이다. 루앙프라방 시가지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조망도 출중하거니와 세계 각처에서 찾아온 여행마니아들로 꽉 들어찬 언덕 위의 인파도 인상에 남는다. 옆 자리에는 오스트리아의 비엔나에서 왔다는 건장한 여성이 앉아있고 그 앞에는 일본인들 여럿이 일찍부터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푸씨 언덕에서 바라 본 루앙프라방 전경
소수민족들의 수공예품 등이 많이 진열된 야시장에서 여성들은 이웃들에게 줄 선물을 사기도 하고 골목길에 들어선 좌판의 먹거리 시장에는 값싸면서도 풍성하게 먹을 수 있는 장소에 발 디딜 틈 없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첫날은 1만 킵(1400원)을 주고 야채뷔페에서 먹었고 둘째 날은 숯불에 구운 닭, 돼지고기, 생선에 밥과 상추, 오이를 곁들인 식탁이 훌륭하다.
오전 9시, 아내와 처제가 루앙프라방 공항으로 떠났다. 다음 행선지인 태국의 치앙마이까지는 야간버스와 밴을 이용하여 24시간여를 이동하는데 지난번 하노이에서 비엔티엔으로 오는 과정이 연약한 여성으로서는 너무 힘들었기 때문, 그러나 나는 약간 고달프더라도 여행사의 기존 코스를 그대로 이용하기로 하였다.
아내와 처제가 떠난 후 산티아고, 요셉, 캐서린, 캐나다 교민(74세의 노장에게는 미처 애칭을 붙이지 않았다.) 등 5명이 차 한 대를 전세 내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꽝씨 폭포로 향하였다. 시가지를 벗어나서 산길을 따라 달리는 시골 풍광이 조용하고 아름답다. 길옆의 작은 학교에서 뛰노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이 발랄하고 자전거와 오토바이로 힘차게 달리는 관광객들의 행렬이 드문드문 이어진다. 차량이 지나는 길목에서는 조합에서 통행료를 징수하는지 두 차례나 운전기사가 내려 신고를 하고 통과한다.
폭포 입구의 주차장에 도착하니 오전 11시 반, 2만 킵(2.5달러)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서니 초입에서 여러 마리의 반달곰이 방문객을 쳐다보며 어슬렁거리고 그 앞의 철조망 밖에서는 서너 살쯤 된 어린아이가 개와 한 몸이 되어 뒹구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여러 계단을 이루며 떨어지는 폭포 물줄기를 따라 이어지는 트래킹 코스를 밟아 올라가니 비취색 물웅덩이에서 물놀이하는 서양인들이 제법 많이 눈에 띤다. 수영복을 준비해 갔지만 차분하게 물에 들어갈 상황이 아니어서 눈으로만 즐겼다.
비가 많이 내리지 않는 건기인데도 폭포를 가르며 떨어지는 수량이 제법 많다. 이를 배경으로 카메라에 포즈를 취하는 무리들이 많은 휴식처에서 캐서린이 준비해온 쌀밥에 상추, 오이, 고추장을 곁들이고 아내가 싸준 바나나와 요셉이 현장에서 사온 맥주를 더하여 먹는 점심이 푸짐하다.
꽝씨 폭포에서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
귀로에는 도로변에서 가까운 고산족 마을에 잠시 들렀다. 루앙프라방의 야시장에서 많이 보던 소수민족의 수공예품을 가득히 진열해 놓은 골목길을 딱히 사고 싶은 물건이 없어 그대로 돌아 나오려니 약간 미안한 마음이다. 큰 물통에 저장된 물을 받아 온몸에 비누칠 해 가며 어린아이를 목욕시키는 부부의 순박한 모습에서 명절이면 목간통에 더운 물 받아 목욕하던 어린 시절의 시골풍경을 떠올리기도.
고산족의 소박한 수공예품
숙소에 돌아오니 오후 3시 반, 오전에 체크아웃을 한 터라 그늘진 곳의 소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태국의 치앙마이를 향한 긴 여정에 올랐다. 저녁 6시에 숙소를 나와 외곽의 버스터미널에 이르니 국경까지 밤새워 가는 차편이 침대가 아닌 좌석버스다. 12시간 넘게 타고 갈 일이 심란하나 지난 여름, 파키스탄의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30시간 넘게 버스에 앉아 견디어 낸 일을 떠올리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추신
여행 책자에서 루앙프라방의 탁발풍경을 묘사한 글을 소개한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탁발
해가 뜨기 전 사원에서 법고소리가 들린다. 아침 6시, 뿌연 안개 사이로 승려들의 긴 행렬과 그보다 더 긴 신도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매일 아침마다 펼쳐지는 탁발풍경은 루앙프라방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의식과도 같다. 탁발은 불교에서 수행자들이 지켜야 할 규율 중 하나로 음식을 공양 받는 것을 말한다. 불교를 국교로 삼은 동남아시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하지만 '사원의 도시'라는 별칭이 붙은 루앙프라방은 탁발과 무척 잘 어울린다. 그래서인지 보시를 하는 사람 중 절반이 외국인일 정도로 탁발은 하나의 여행코스가 되었다. 사람들은 탁발행렬이 지나가는 곳에 자리를 깔고 앉아 밥과 과일을 보시한다. 탁발을 구경하는 것도 흥미롭지만 그 행렬을 따라다니는 아이들도 눈길을 끈다.
* 루앙프라방의 탁발 장면을 이틀 연속 살폈다. 첫째 날은 숙소 가까운 곳에서, 둘째 날은 큰 사원들이 밀집해 있는 먼 곳까지 가보았다. 탁발승이나 사람들이 많기는 여행자골목인 숙소부근이다. 아내와 처제는 탁발행렬 후미의 어린 승려들에게 연필과 볼펜을 건네주었다. 어떤 승려는 처제가 손가방 속의 볼펜을 꺼내느라 지체하는 동안 기다렸다가 받아가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