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년 월급쟁이 내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내가 "월급쟁이" 노룻 1975년5월부터 그간에 받은 월급은 420번이나 된다.
달마다 나오는 월급은 한 달 동안의 노동에대가로서 봉투 속에다 현찰을 넣어
주어기에 이른바 "월급봉투" 라는 말이 생긴 것이다. 월급봉투는 월급쟁이와
그가족들의 생계가 달려 있고 생활의 밑천이기에 월급쟁이 생활에는 절대적 가치이다
월급봉투가 유일한 소득원인 바에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 봉투가 마음에 찬 것은 아니었으나 그런 봉투마저 만저보지 못한 생활권 밖의
사람들도 참 많은 세상에서 월급봉투라는 것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살아온 나는
퍽 행운이었다
적은 월급이나마 고맙게 여기며 아끼고 쪼게고 허리띠를 졸라 매며 가계를 꾸려온
아내이기에 기죽지 않고 부족함을 잘 참아가며 올곧게 자라준 자녀이기에 나는 보통가장으로서
평온하게 살아온 편이다 어쨌건 이 월급봉투 덕분이다 그래서 였을까 이 월급봉투를 소중히
차곡차곡
모아두었다 420장이 되어야 하는데 웬일인지 그 중에 20여장이 없어져서 아쉽기 그지없다
어째서 일까 아무래도 정성이 흐렸던 탓일가.
이 봉투는 내 젊은 시절 절절한 애환이다 30 년이 넘는 공직생활에 적나라한 내 발자국이고
그 긴 세월
속에 고스란히 녹아있는 내 삶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여러가지 의미에서 이 월급봉투는 내 직장생활에서 가장 적나라한 족적이고 살아있는 역사인 것이다 사회 국가의 변화발전을 이 월급봉투를 통해서 깊이 있게 느껴주기를 기대한다
월급봉투를 정성스럽게 비닐 파일에 한나한나 끼워 넣으며 나름대로 깊은 사념에 사로잡힌다
이 월급봉투가 길이 본존되어 이것들이 하나한나 모아지면서 나 공수의 가정이 형성되고 가꾸어
졌으며 이것이 한 사람의 삶이였음을 가만가만 속삭여주었으면 한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젊음이 있었기에 행복이었고 그 행복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바로 가족이 함께 만들었음을 다시금 생각하며 깊은 고마움을 보넨다
아울러 늦어지만 나라에도 그때는 몰랐던 진한 감사의 마음을 이제 와서야 국가에 바친다.
한 공 수 올림
첫댓글 갑자기 공수 친구의 감동적인 글이 마음을 찐하게 하네.
나도 계산해 보니 1971년 3월부터 받았으니 480장의 월급봉투가 있어야 하는데
그간 모아놓은 봉투를 확인해 보지 않았지만 많이 부족하겠지.
전엔 얇팍하든 두툼하든 봉급날이면 봉급봉투를 받고 그 안의 돈을 꺼내 세어보는 것도 자그마한 기쁨의 하나였는데...
상당히 오래전부터 봉급은 통장으로...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컴퓨터로 내역서까지 보내주니 관심이 없으면
봉급이 나왔는지... 얼마 나왔는지 알 수도 없는 때에 살고 있답니다.
가끔은
월급날이면 월급봉투로 아내 앞에서 기를 폈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월급날 외상값 갚고 마시는 한 잔의 막걸리 맛도
그동안 건강하게 잘 있는지 궁금하고 오늘도 좋은날 보내게나 그리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월급봉투 교직생활하면서 처음부터 잘 보관해서 가끔은 추억으로 보고 있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