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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요물나라 원문보기 글쓴이: 요물
옛날에 무관들이 수련하던 곳이라고 한다. 폭포가 숲으로 뒤덮여 있는 남의 눈에 띄지 않으며, 물이 얼음처럼 차가워서 시원하니 수련장으로 이만한 곳이 없었다. 무관들은 여름이면 이곳에서 무예를 갈고 닦았다. 그리고 수련이 끝나는 날 나물을 안주삼아 술을 마시며 춤을 추고 놀았다. 폭포 이름 무주채 (舞酒菜) 는 거기서 유래되었다. |
폭포이름이 그럴듯 하다. 폭포 앞 암반에 자리잡은 부평에서 왔다는 분들이 벌써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람이 자주 다니지 않
는 탓인지 홀로 온 날 반가이 맞는다. 곁들여 한 숨 고르며 폭포 이름같지는 않더라도 건네주는 한 반 주 넘겨 목을 축이고 출
발했다.
푸다닥 거려 나는 새 소리가 청아하며 계곡을 옆에 끼고 건너고 돌아 오름짓을 하여 갔다.
국망봉까지 반 쯤 올랐을까. 계곡을 버리고 남진하여 오르다 서진하며 오름짓을 계속 한다. 단풍나무가 많아 가을이면 예쁜
단풍나무들이 붉은 터널이 멋질 꺼란 생각을 하며 그늘을 걸었다.
바위지대로 올라선 지능선에 닿는다. 한 숨 몰아 쉬며 올랐던 발자욱을 뒤돌아 본다. 뜨겁고 찬란한 여름 초록색의 나무들
이 더 돋보인다.
꿩의다리 꽃이 발섶에 스쳐 거기 앉으라 하고
[진지]와 참호의 군사시설 들은 이곳에도 자리잡고 있다.
[국망봉 1,134m]의 가평군 북면 적목리 산 1-1번지의 국망봉 정상석이 좁은 바위틈을 비집고 있다. 헬기장을 지나
'국망봉 0.2km, 견치봉 1.24km'의 이정목이 가르키는 방향따라 북쪽으로 향했다. '개이빨산 1.30km, 도마치 7.76km'의 이정목
위 에 서면 너른 헬기장의 한북정맥의 최고봉, 국망봉 해발 1,168m의 정상에 섰다.
[국망봉 정상석]
국망봉은
후 고구려의 궁예왕이 철원에 도읍을 정하고 국기를 굳혀가는 과정에서 날로 폭정이 심해지자 그의 부인 강씨가 왕에게 간언을 하였으나 이를 듣지 않고 오히려 부인 강씨를 강씨봉으로 귀양을 보냈으며 그후 왕건에 패한 궁예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강씨를 찾았으나 이미 세상을 떠난뒤라 일찍이 찾지 못한 회한에 잠겨 국망봉 정상에 올라 도읍지였던 철원을 바라보았다 해서 국망봉이라 부르게 됐다고 전한다. |
[국망봉 삼각점] 2등급 삼각점에 발을 딛고
국망봉에서 보이는 북쪽 한북정맥의 걷지 못한 길을 되돌아 보며 신로봉-도마봉-도마치봉-백운산-광덕산까지 조망되며 북동으로
눈을 돌리면 가리산이 지척에 있고
동쪽으로 눈을 돌리면 도마봉에서 가지 친 석룡산이 손에 잡힐 듯 하다.
이동면의 풍경도 조망되는 산정이다. 포천의 울타리를 치고 있는 명성지맥의 한줄기가 손톱만큼씩 마루금에 내밀어 손짓하는
듯 날 불러 세운다.
가야할 산 들의 개이빨산과 민둥산이 하늘금을 그리며 이리 돌고 저리 돌아간다.
이동면의 분지가 산에 둘러싸여 한폭의 그림같은 풍경이 조망되는 장소이다. 국망봉을 내려 간다.
[참조팝나무]
여름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참조팝나무를 확대하여 사진에 담고 국망봉을 내려선다. 활짝 핀 참조팝나무꽃도 돋보인다.
경기도 이동면과 가평군 사내면의 경계를 간다.
[더덕]
더덕의 굽잇길 돌아가는 벼랑아래에 걸쳐있다. 등산로 곳곳에 웃자란 나무와 풀들이 조망을 가리고 길을 막기 때문에 후텁지근
한 날씨에 산길을 가는 것 자체가 곤욕일 꺼라 생각했는데 시원한 바람결이 인다. 1,000미터급 산릉에 올라 오랫만의 우둘투둘
밟으니 이 능선에 호감이 생긴다.
[하산길 5.20, 국망봉 정상 0.30km]의 이정목은 이동면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지나
발섶에 스치는 오이풀은 바람결따라 여름을 만난 듯 넘실댔다.
이동면 갈림길을 지나 견치봉으로 가는 이정목은 수시로 세워져 있으며 '꿩의다리, 더덕, 참조팝나무꽃'들의 풍경에 취해 걸어가
보면 파란하늘이 보이고 아무 소리도 안들리고 것 같았다.
[견치봉, 개이빨산]해발 1.102m의 정상석의 산정에 올라 보면 뾰족뾰족한 암봉이 마치 개이빨같 이 축 늘어서 있다고 하여 개이빨산
또는 견치봉이라고 부른다고 하나 그 느낌은 없었다.
[가는장구채]가 너무 작아 확대하려 애써 보아도 잘 잡히지 않았다. 바람 탓이려니~ 열매가 장구채 모양이고 장구채에 비해
줄기가 가늘어서 유래되었다는 꽃이름이 생각이 않나 입에서 맴돌곤 했다.
절벽아래 이동면의 풍경이 들어왔다.
[적목리 용수교]의 갈림길을 지나 민둥산으로 가는 이정목은 1.2km에서 700m의 거리가 가까워져 가는 길목에 미역줄나무가
엉키고 엉켜 가야할 길을 막았다.
여름 초록 향기 물씬 풍기는 여정이다.
군사시설이 있고 큰 산이라 어데서든 알아 볼 수 있는 화악산이 손에 잡힐 듯 하고 마치 갈 곳을 일러주는 이정표같았다.
민둥산에 올라선다.
[민둥산]
나 혼자 아닌 또 다른 산악회에서 왔다는 하나, 둘, 셋... 민둥산에 올라선다. '혼자 왔어요?" "네" 민낮인것 처럼 왠지 쑥쓰러움
을 느끼며 민둥산 정상석에 섰다.
민둥산에서 유독 화악산이 조망되는 특권을 가지고 있는가 보다. '어느 곳으로 가세요?' ''도성고개요' 나는 어데까지 갈지
모르는데 도성고개로 굳히기로 대답했는지 모른다.
도성고개의 이정목 옆으로 민둥산을 내려갔다.
철쭉터널을 지나 미역줄나무 꽃이 핀 터널을 빠져 나오자 온갖 풀들의 아우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던 터라 허리와 허벅지를 스치
는 그네들의 무수한 손길을 숨죽여야 했다.
각씨봉 뒤 보이는 삼각산이 이빨빠진 산들처럼 제일 먼저 눈에 띤다. 설렁설렁 걷고 걸어가다 힘들고 지치면 내려 가리라.
저 산 뒤에 아직 끝나지 않은 장마비가 내린다면 그 촉촉한 비바람 스치는 이마에 달고 능선 위에 쾌재를 부르리,
몇년 전 하루에 가는 백두대간의 테마가 생각났다. 몸담고 있던 카페에서 하루에 730km를 6구간으로 나누어 자정 0시에 시작
하여 24시간 안에 끝나는 산행이 끝나는 것이었는데 아마 그 테마의 이름을 빌어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긱이 들어 사진에 담았다.
그 분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다 헬기장에게 내어주고 숲길따라 속삭이는 여름 같았다. 서울이 지척인 듯 앞에 펼쳐진 삼각산
에 눈이 갔다.
도성고개의 이정목을 지나 폐타이어참호 근처에 고사나무 2그루가 웃자란 나무들 속에 안간힘을 쓰며 저 산을 바라본다.
[도성고개]
강씨봉 휴양림으로 내려가는 길목에서 그 유혹을 뿌리치고 강씨봉으로 향했다. 더듬더듬 걷다가 허리를 펴 하늘을 보았다.
뻥 뚫린 하늘,
나는 초록의 대양을 표류하다가 장어구름 둥둥 떠 있는 하늘아래 서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긴의자에 누워 있었다.
'저 잦나무숲 그늘이 좋으련만'
통나무계단 투벅투벅 걸으며 오름짓을 하고
강씨봉으로 가는 이정목은 수시로 있고 강씨봉 오름길 하늘말나리꽃은 하늘만 쳐다본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감빛깔은
생기가 넘쳐 흐르고 뜨겁고 찬란한 여름의 한가운데에 있는가 보다.
[강씨봉]
[삼각점]
조망에 트였다. 강씨봉을 둘러 싼 산들이 병풍을 친 듯 산과 산이 연결된다. 화악산을 보고 있노라면 명지산이 솟구쳐 있고
발가까이 귀목봉이 그랬다. 걸어온 발걸음을 찍는 듯 다시 눈에 넣어보고
가야할 산들이 도열되어 굽이쳐 갔다.
동쪽으로 보면 아침에 버스를 타고 논남기에서 뒤돌아 것던 곳도 발아래 이고 서쪽으로 일동면의 모습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
풍경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 같았다.
저 멀리 삼각산의 하늘금이 온갖 세상의 모든 산들을 끌어 모으듯 하고 산 너머의 지평선이 끝없이 펼쳐져 갔다. 오늘 산행 중
풍광은 가장 높은 국망봉도 아니, 개이빨산도 아닌, 민둥산도 아닌. 강씨봉이 으뜸이다.
저 멀리 굽이굽이 산 넘어 가자.
헬기장을 지나
[x756.8봉]을 지나 오뚜기 고개로 간다.
7부능선의 현위치목을 지나 밧줄을 잡고 내려가고 긴의자에 앉아 잠시 쉬어 가고 가야할 산들이 이마에 닿듯 펼쳐지는 그 산을
향해 걸었다.
연보랏빛 산수국이 하늘향해 꽃피고 밧줄을 잡고 내려 가기도 했다.
귀목봉으로 가는 이정목이 있는 오뚜기고개에 선다.
[오뚜기고개]
해발 700고지에 서니 위로 고개 내민 귀목봉이 보였다.
[경기도 가평군 북면 적목리 산 1-1번지. 강씨봉고개, 오뚜기고개]
포천으로 가는 강씨봉고개
강씨봉마을에서 포천시 일동면을 넘는 고개를 강씨봉고개, 또는 오뚜기고개라 한다. 궁예의 부인 강씨가 살았던 곳으로 알려진 강씨봉마을은 곳곳에 강씨의 이름이 붙어있다. 이 고개도 마찬가지다. 그런가 하면, 한국전쟁 이후 이곳에 군사도로를 만들 때, 작업했던 이름을 따서 오뚜기고개라 부르기도 한다. |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을꺼란 짐작을 하면서 가야할 산들이 보이는 산등성이를 뒤로 하고 포천일동의 이정목을 따라 절벽을 가르며
고도를 낮추어 가는 기산리임도를 따랐다.
[기산리임도]
사진을 찍으려 조심해 사진렌즈를 확대하는데 나를 보고 뛰쳐 벼랑아래로 도망쳤다. 멧돼지였다. 70여 키로쯤 보이는 걸로 큰
멧돼지는 아니었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포착한 넘인데 허사였다.
헬기장을 지나
절개지의 긴 임도는 계속되고
이름모를 산아래 무리울의 깊은 골에도 주택들의 풍경이 보였다. 산을 벗삼아 걸어야 이길과 이제는 헤어져야 할 시간, 강씨봉
등산로 안내도가 있는 368지방도로로 내려섰다.
도로따라 걸었다. 지청교를 지나 일동면 화대2리 버스정류장, 제일온천이 맞은편에 있었다. 다음 산행지인 청계산을 어떻게 이
어가야 할지 고민을 안고 아쉬움의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또 다른 여정을 생각해 보자며 의정부행 138-5번 버스에 올랐다. 이미 해는 저산에 지고 어둠이 와 있었다.
의정부역에서 전철을 타고 긴 시간을 지나 귀가할 수 있었다. 곯아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