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이곳 도전리 생활도 1년이 되어 갑니다.
환경의 변화에 따라 걱정과 두려움도 있었지만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오늘을 열심히 살다보니
이제는 이곳 시골생활에 익숙해 지는 것 같습니다.
매일 미사를 봉헌하면서 하루 일과를 시작하고,
일과 시간에 쫓기지 않고 자연과 벗하며 순리대로 살며
농사일을 하면서 하느님의 창조사업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만족할 줄 알면 기쁘다(知足可樂)는 말 처럼
욕심내지 않고 하루 하루 오늘만을 생각하며 살려고 하다보니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주님께 감사드리며 근심 걱정이 없습니다.
아무 것도 없어도 주님과 함께 있으면 모든 것이 좋고 (0 + God = Good),
아무리 좋은 것도 주님이 안계시면 아무것도 아니라
(Good - God = 0)는 말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봄
바오로딸 어린이 행사
4월 30일
바오로딸 수녀님들이 매년 어린이들을 위한 행사를 열고,
마을 어르신들을 초청해 영화 시청후 식사대접을 했다.
바울리나 생일(5.3)
딸과 안드레아 신부님이 방문해 축하해 주었다.
신부님은 이사 후 2년 동안 친구 사료값을 주시고 방문했다.
부평리 고구마 밭에서(5.5)
북여주 성당은 2003년 9월 여주성당에서 분당하여
가건물에서 미사를 드리면서 도판판매, 고구마밭 경작을 하면서 신축헌금을 마련하여
2007년 6월 기공식을 하고, 2008년 7월 입당식을 하였다.
매년 전 신자가 부평리 교구땅 3,000평에 고구마를 심고
1주일 후 비닐을 뚫고 싹을 꺼내는 작업을 한다.
추석 전에 도회지 본당에서 주문을 받아 캐서 발송했다.
이렇게 1년에 3번 이상 고구마 밭에서 일하며
공동체 일치와 친교를 나누었다.
카시아노 집 방문
6월
카시아노 가족은 우리보다 10년 먼저 이 동네에 이사를 왔는데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 속에 그 집 하나만 있었다.
승용차로는 가기 힘든 산 속 길을 10분 이상 차를 타고 들어가면
손수 판 연못도 있고 손수 지은 소박한 집, 그리고 동물들을 기르고 있었다.
그들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온 식구가 새벽미사를 오는데
맨 앞에서 5남매가 큰 소리로 성가를 부르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한 번은 홍수로 길이 끊겼는데
1시간 가까이 걸리는 다른 길을 통해
미사에 참례하는 열심한 신앙인 가정이었다.
초여름 저녁식사 초대를 받아 그 집에 간 적이 있는데
석양이 지는 6시경 도착해보니
온 식구가 연못가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삼종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흡사 밀레의 만종처럼…
이후 우리집에 초대해서 맛있는 음식을 아내가 제공해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성탄절 미사 때 카시아노 자녀들이 하는 작은음악회에
서울에서 온 우리딸이 반주를 해주기도 했다.
바오로딸 종신서원식
6.29
바오로딸 수도회에서는 종신서원을 준비하기 위해
도전리에 있는 사도모후의 집에서 6개월 피정을 한다.
이 기간 종신서원 예정자 수녀님들과 지도수녀님을 자주 만난다.
침묵중에 산책하거나 공동 야외활동 그리고 피정 끝무렵
우리집에서 음식을 나누며 축하하는 자리도 갖는다.
메년 본원 종신서원식에 초대되어 축하하러 갔다.
반모임(다리 밑에서)
여름 어느날
도전(7)구역 1반모임하는 모습입니다.
보통은 공소에 모여서 하지만 가끔은 야외에서도 합니다.
9일기도를 할 때는 굵은 묵주알로 된 15단 묵주를 가지고 함께 합니다.
각자 시작할 때는 알을 잘 굴리며 가지만,
2단 정도 가면 두 분이 부딪칩니다.
한 분은 시계방향으로 다른 분은 반대 방향으로 진행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두 분이 티격태격 합니다.
서로 자신이 맞는 방향이라고...
기도하면서 잠시 웃는 시간이지요.
여름
도전리에서 처음 농사로 얻은 수확물입니다.
그리고 근처에는 당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이 1년 내내 흐릅니다.
다슬기도 있고 버들치도 있어 1년에 몇 번 잡아 먹기도 합니다.
사랑하올 어머니 레지오 방문
(2006.9.13)
아내가 단장으로 있있던 레지오팀 자매님들이 방문헀다.
이 팀은 같은 같은 구역 아파트에 살았기에
매년 김장하러 방문하기도 했다.
성가소비녀 수녀님( 2명) 방문(사랑방 담당)
9.5
본당 카페와 몇몇 수도원 게시판에 글을 올렸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댓글을 읽는 재미에 푹 빠졌었다.
특히 신앙에 관한 글을 찾아 수녀원 게시판에 올리면
특히 수녀님들이 무척 좋아하셨다.
성가소비녀 수녀원게시판(사랑방)에 글을 올렸는데
인기가 있어 담당 수녀님 2분이 취재차 방문했다.
게시판 단골손님인 저의 집을 방문 취재하고 나서
수녀님이 간단하게 수녀원 게시판에 올린 사진입니다.
더 많은 글과 사진은 수녀원 회보지에 게시되었습니다.
▼ 세잎크로바님의 집에 잠시 다녀왔습니다.
스승예수 제자수녀회 성당
새벽 6시 30분 미사
하루도 빠지지 않고 미사를 드리고 하루를 시작했다.
안식년을 맞으신 신부님, 개인 피정 오신 신부님 등이
미사집전을 하셨다.
특히 강론내용이 좋고 수녀님들과의 대화도 좋았다.
강길웅 신부, 류해욱 신부, 김종수 주교님 강론이 좋았고
갈멜, 바오로딸, 스승예수 수녀님들은 매일 만났다.
그리고 대축일에는 복사도 서고
독서와 화답송도 노래로 했다.
물론 전례담당 수녀님의 지도를 받으며 배웠다.
감곡성당 순례(스승예수 수녀님과 함께)
9.15
차량봉사겸 성지순례를 가서 김웅렬 신부를 만나고
사제관에서 십자가 보목에 친구(親口)도 했다.
가을
2006-09-19
성가복지병원 봉사자 감곡성당 순례
9.21
서울에서 5년간 토요일마다 봉사했던 성가복지병원 봉사자들이
감곡성당 순례온다고 하여 그곳에서 만났다.
같이 봉사하던 봉사자들과 수녀님들도 만났다.
지씨 종친회 방문
(9.26)
우리집 형제들(형,누나) 가족과
사촌 형제들이 방문했다.
카시아노 형제에게 양 한 마리를 부탁하자,
양고기는 잘못 요리하면 냄새가 난다고 하면서
본인이 직접 방문해 요리해 구워주었다.
도전분교 가을 운동회
(10.30)
전교생이 9명인 가을운동회는
학생보다는 마을 어른들이 더 좋아했다.
삼성 자매님들 김장하러 방문
(11.16)
같은 구역에 살던 자매님들이 김장하러 방문했다.
내가 기른 무, 배추, 고추가루, 마늘, 갓 등을 준비하고
서울 자매님들은 젓갈을 주비해 오셨다.
1박 2일 작업을 하고 봉지마다 담아서 싣고갔다.
2006.12
북여주성당 활동
*기만 가족
사람들은 그 가족을 장애인의 집이라고 부른다.
자원봉사자들이 한달에 한 번 방문하여 머리도 깎아주고 청소도 해준다.
아버지는 고지식하고 법이 없이도 사는 사람으로
약삭빠르거나 경제적인 이득을 얻기위한 잔 꾀를 부리지 않아
항상 손해를 보는 스타일이다.
시대의 흐름에 맞추지 못하고 예전에 살던 그 방법과 사고를 가지고 산다.
오두막 집에 살다, 얼마 전 사위가 집을 지어 주었다,
방이 한 개로 3식구가 한 방에 거주하는데 방은 제법 크다.
어머니는 허리가 90도로 구부러져 땅만 보면서 걷는데
그 몸으로 집 주위의 논과 밭을 다니시며
나물을 캐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인다.
기만이는 50이 다되어 가는데도 아직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있다.
나이가 많이 들어보여 60대 쯤으로 보이는데 동네 일은 도맡아서 한다.
한 마디로 동네 일꾼이다.
기만이를 일꾼으로 잡으려고 서로 경쟁한다.
1년 내내 남의 일을 해주고 일당을 받는데
보통 사람보다 적게 일당을 준다.
하루 3만원 준다고 한다.(보통 5만원)
이유인즉 술을 좋아하고 일을 게을리 한다는 핑계를 대지만
실은 새벽부터 컴컴할 때까지 일을 시키는 이기주의자 들이다.
그리고는 항상 기만이에게 불만을 표시하며
큰 소리로 욕을 하기도 한다.
나를 만나면 "형, 나 여자 하나 소개해 줘" 한다.
전에 여러번 여자를 만나게 해 주었지만 성사가 되지 않았다고 들었다.
술을 좋아해서 일을 하다가 지치면 앉아 쉬는데
저쪽 끝에 막걸리를 갖다 놓고 보여주면
열심히 그곳까지 일을 하며 간다는 이야기들도 한다.
그렇게 남의 일을 매일 하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다.
마을의 일꾼을 천직으로 알고 있듯이
소처럼 묵묵히 일을 한다.
일이 끝나고 나면 매일 저녁 구판장에서 막걸리 몇 병을 사가지고
어둑한 길을 흥겹게 노래를 부르며 간다.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마실거라며…
우리가 보기엔 궁핍한 생활에 삶이 고달파 보이지만
그 가족은 겉으로 보기엔 마냥 행복한 것 같다.
세 식구가 막걸리 한 잔 하면서 하루를 마감하는 것이…
내일 일은 내일 맡기고, 오늘을 행복하게 사는
일상도의 삶을 사는 가족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