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를 하러 가서
8대 종손이신 큰 형님이 생전에 흩어져 있는 산소를 한 곳에 모았다. 종손들만이 안장된 묘역이었다. 이 묘역에 벌초를 끝내면 탑안 할매 산소로 간다. 탑안 할매는 종부가 아니다. 영천이문에 후손을 남기지도 않았다.
종손의 묘역에 안장되어 있지 않은 산소로 벌초를 하러 가는 것이 조카들에게는 궁금한 일이다. 잠시 쉬는 동안에 형님이 조카에게 탑안 할매 이야기를 했다. 증조부께서 겨우 서른 나이 이실 때 어린 아들 형제를 남기고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셨다. 마을 훈장이었던 증조부는 그 동네의 과수댁을 후처로 맞아서 함께 살았다. 정식으로 재취 장가를 든 것이 아니다 보니 탑안 할매에게 집안의 홀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코흘리게 어린 아이들도 하대를 하면서 집안 어른으로 대접하지 않았다.
마음이 상하신 증조부는 첩첩산골인 이곳으로 이사를 와서 살았다. 탑안 할매는 우리집에 와서 어린 할아버지 형제분을 친자식보다 더 정성스레 거두었다. 할머니는 우리집에서 겨우 10년을 사시고 혈육 하나 남기지 않고 돌아가셨다. 증조부가 40세 였다. 그후로 여든 아홉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혼자 지내셨다.
증조부도, 우리 할아버지도 탑안 할매를 잊지 못해서 산소를 만들어 모시면서 해마다 벌초를 했다. 돌아가신 지 얼마나 되었느냐고 조카가 물었다. ‘보자, 백 삼 사십 년은 되었을 거야’ 형님의 대답이다. 형님도 나도 할머니를 만난 일이 없고, 알지도 못한다. 나는 어머니로부터 이야기로 들었을 뿐이다. 어머니 또한 시어머니에게서 이야기로 들었을 뿐이라고 했다. 우리 형제들이 지금은 칠순이고 팔순이다. 조카들도 사십 대이다. 큰 조카는 내일 모래면 회갑이라고 했다. 탑안 할매 산소를 벌초하는 일을 나도 그렇고, 조카들도 당연하게 여긴다. 어릴 때부터 벌초를 해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얼굴도 모르는 그분을 왜 기억하고 있을까? 산소를 만들어서 벌초를 하는 사이에 우리 가슴 속으로 들어와서 살아 있기 때문이다.
산소에 들려서 묘비문을 읽을 적마다 선조들이 살았던 아득한 옛날을 떠올린다. 우리는 생몰년대를 손으로 더듬으면서 ‘고종 때 사셨구나.’ ‘이 할아버지는 영조 때네.’ ‘할아버지가 그러시던데 이 할아버지는 부자셨대. 화적 떼가 담을 넘어와서 돈궤를 훔쳐갔다더라.’ 나는 이런 이야기를 어릴 때 벌초 일에 따라다니면서 윗대 어른에게 들었다. 지금은 그 이야기를 조카들에게 해준다. 이야기를 전할 동안에는 선대 할아버지들은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살아 숨을 쉬신다.
기억은 불러내야 돌아온다. 무엇이 기억을 불러낼까? 흔적이다. 솥뚜껑을 보고 자라를 기억해내면 솥뚜껑이 흔적이다. 산소는 조상의 흔적이다. 벌초를 하러 가는 길은 조상의 기억을 불러내는 흔적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 세상에서 살 수 있을까? 의사가 내린 답보다 철학자가 내린 답이 맞다고 생각한다. ‘ 사람들이 나를 기억해 줄 때까지 나는 죽지 않는다.’
모임에 가면 무덤의 존재가 우리의 생활을 얼마나 불편하게 하는가를 두고 말을 많이 한다. 후손들은 또 얼마나 번거러울까? 그러면서 ‘나는 절대로 무덤을 만들지 않겠다.’고 호언한다. 무덤의 좋은 역할을 넌지시 꺼내보면 구시대 사람으로 낙인찍히기 마련이다.
우리는 제초기를 메고 탑안 할매 산소로 자리를 옮겼다. 분봉은 낮아지고 풀들로 뒤덮여 있다. 그래도 무덤은 우리에게 탑안 할매의 기억을 떠올리게 해준다. 나도 탑안 할매처럼 내 아이에게, 내 손자에게 또 더 먼 내 후손에게 기억으로 남아서 오래 동안 살 수 있을까? 오래 동안 살아있으려면 나는 어떤 기억을 만들어주어야 할까?
2016. 9
첫댓글 오늘 세벽에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산소에
봄 벌초 다녀와서
이런 글을 주시니 더욱 ᆢ
제사나 벌초 같은 일이 저물어가지만 아직은 서산에는 있으니 ᆢ
저희 할머니가 영천 이씨 입니다 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