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구의 불빛
문 열릴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어두워진 바다 건너 포구에서
깜박이는 불빛을 오랫동안 바라보다가
문득 '기다림'이란 말이 떠올랐다
우리네 인생 여정은 늘 기다림의 연속이다.
떠나간 사람에 대한 기다림, 약속된 날짜의 기다림,
푸른 꿈을 안고 집 을나선 새벽차의 기다림,
가을을 해바라기하는 농부들의 기다림..
그 많은 기다림들 중에 이젠 내 삶에는
즐거운 기다림만이 가득했으면 하는 바람을,
아니 욕심을 내어본다.
밤이 깊어지면서 더욱 고요해진 산사.
밤새의 울음소리. 마당을 뒹굴고 지나가는 바람,
그리고 마치 꿈결처럼,
기다림의 등불처럼 반짝이는 포구의 불빛을 보며
오늘 저녁은 푹 상념에 젖어본다.
캄감해진 밤 바다는 저 불빛들이 있기에 비로소 살아서 숨 쉬고,
여정에 지친 나그네들도
그 불빛을 보며 잠시나마 지친 하루의 위안을 받는다.
여행을 하다 보면 산 좋고 물 맑은 데가 정말 많다
그런 환경을 배경으로 멋진 집이라도
지어져 있으면 감탄사가 결로 나온다.
야! 저렇게 좋은 데 사는 사람들은 무슨 큰심이 있을까.
나도 저런 데 한번 살아봤으면' 하고..
누구라도 가져볼 만한 생각이다
타인에 의해 보이는 삶, 평가되는 삶
그런 삶을 우리는 얼마나 살고 있는가
출가 전 병원에 간 일이 있는데
그곳에서 비구니 노스님 한 분과
같이 모시고 온 젊은 스님 한 분을 뵈었다.
그떄만 해도 스님들은 산속 깊은 곳에서
솔잎이나 먹고 살고 아프지도 않으며,
축지법을 쓰고 무술을 잘해 잘못하다간
혼나는 아주 무지한 단편 상식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스님을 병원에서 본 것이다
그때의 느낌은 거의 충격 수준이었다
어떻게 스님이 아플 수가 있지?
스님들도 시내에 다닐 수가 있나?
내도록 기독교적 문화에 접해 있었고 불교를 접할 일이 없던 내게,
그 스님들은 스님들도
다치고 아프기도 하는, 평범한 '사람'이란 걸 깨닫게 해줬다
세상살이의 온갖 어려움에 부대끼다 보면
호숫가 별장에 사는 사람이나
산속에서 아무 근심 없이 도나 닦고 있을 스님들이 부럽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별장이나 산속에 사는 사람들도
그들 나름대로 근심과 고통 속에서 살고 있는 경우도 많다.
저 포구에서 깜박이는 불빛을 보며,
지나는 여행객들이
---'야, 정말 멋진 항구야' 할 순 있지만,
그 불빛 아래 에는 오늘도 지친 몸 가누며
하루하루 연명하는 가난한 어부들의 거친 삶이 존재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항상 내가 처한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모두 행복해하며 사는 듯한 남들의 삶을 보며 비교하고 마음 상해한다
길에 나가 백 사람을 잡고 물어보라.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라고....
현실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구십구만 원 가진 사람이
만 원 가진 사람보고 달라 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사람의 욕심이란
밑 빠진 항아리처럼 채워지지가 않는 것이다
포구의 깜박거리는 불빛 아래 사는 사람이나,
호숫가 별장에 사는 사람이나, 재벌이나,
어느 누구라도 그들 나름대로 추구하는 욕망은 존재한다.
그러나 삶은
저 멀리 보이는 불빛도 별장도 아니고.
당장 내가 부대끼며 살아내야 하는
---- '바로 이 공간, 이 시간'이다.
내가 지금 앉아 있는
이 좌복을 벗어난 나는 존재할 수가 없다
현실을 떠난 행복이나 꿈은 일 층도 짓지 않고
삼 층부터 지어달라는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
다리는 굳게
내가 지금 서 있는 땅을 밟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내 마음을,
내가 살고 있는 주변을 먼저 바꾸면 되는 것이다.
그리하면 내 집이 호숫가 별장도 될 수 있고.
밤바다에서 멋있게 불빛이 깜박이는 포구도 되는 것이다.
8.17 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