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틀거리는 혼
조 정 래
길종은 여인의 앞에다 얌전하게 차를 세웠다. 그리고 빠르게 몸을 돌려 뒷문을 열었다. 여인은 차를 세우던 때와 마찬가지로 차분한 몸짓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어서 오십시오. 어디로 모실까요?”
길종은 백미러에 담긴 여인을 정중하게 영접했다.
“응암동 가주세요.”
여인은 이마의 땀을 찍어내며 손 부채를 부쳤다. 기승을 부리던 해가 봐주겠다는 듯 어렵게 서산을 넘긴 했지만 더위는 여전히 가득 담겨 있었다.
“응암동…….”
길종은 얼버무렸다. 또 머릿속에서는 서울의 무수한 동네들이 뒤죽박죽되고 있었다. 더위의 탓이 아니었다. 새벽 열차를 내린 시골뜨기처럼 전혀 방향을 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서울의 지도가 대충 그려져 있다가도 막상 손님에게 목적지를 듣고 나면 그 지도는 물먹은 휴지꼴이 되곤 했다. 열 명의 손님을 태우면 대여섯 번 정도는 당하는 어지럼증이었다. 그러니까 머리에 들어 있는 지도란 지극히 어설픈 약도에 지나지 않았다. 거기에는 며칠 천까지 자신이 묶여 있었던 거의 규격화된 생활권과 익히 잘 알려진 몇몇의 동네들이 표시된 게 고작이었다. 사람을 찾으려면 서울은 끝도 없이 넓고, 몸을 감추려면 서울은 손바닥만 하게 좁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었다. 비안개로 덮인 숲속을 헤매는 기분으로 더듬더듬 차를 몰아가며 길종은 참으로 새삼스럽고 새삼스럽게 넓은 서울을 우러러 혀를 내둘렀다.
“죄송합니 다만 응암동이 어디쯤 되는지요?”
어지간히 열없는 일이었지만 솔직할 수밖에 없었다. 괜히 어림잡고 몰아대다간 바가지 요금 씌우는 파렴치범으로 몰리기 십상이었다. 그래서 한번에 알아들을 수 있도록 또박또박 물었다.
'응암동을 모르세요? 서울 오신 지 얼마 안 되는 모양이군요.”
백미러 속에서 여인은 약간 웃고 있었다. 우선 길종은 안심했다. 여인은 차를 갈아타버리는 변덕을 부릴 것 같지는 않았다. 그걸 예방하기 위해서 차를 이미 시내 쪽으로 몰고 있는 참이었다. 그러나 이런 예방책도 더러 무위로 끝나기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당장 차를 세우라고 호령이었다. 야속한 것은 이쪽 형편이지 떳떳한 권리 행사를 하는 손님을 탓할 수는 없었다. 식당 보이가 비프스테이크를 주문하는 손님한테 그게 뭐냐고 되묻는 거나 다름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응암동은요, 독립문을 지나서…….”
여인은 다시 이마의 땀을 찍어댔다.
“그냥 가세요, 가르쳐드릴 테니.”
아예 모를 테니 필요한 길목에서 방향 지시를 하겠다는 뜻이었다. 여인은 여름에 약한 모양이었다. 될 수 있는 대로 말을 줄이려는 여인의 얼굴에는 더위가 끈적끈적한 질감으로 배어 있었다. 길종은 언뜻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걸 곧 말로 바꿀 수는 없었다.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다섯 자씩의 네 가지 말을 뻔질나게 잘하는 위인일수록 정작 그 속은 반대라는 가당찮은 고정관념을 길종은 가지고 있었다.
“천천히 가도 괜찮아요. 서울 길은 너무 복잡해요.”
길종은 얼른 백미러를 보았다. 여인은 분명 불안한 눈길이었다.
“제가 운전을 한 지는 4년째 됩니다.”
길종은 어색하게 웃었다.
“서울은 시골하곤 달라요.”
여인은 그래도 불안을 떼치지 못했다. 날씨도 더운데 이런 부담까지 줄 수는 없었다.
“실은 시골에서 운전을 한 게 아니라 줄곧 서울에서만 해왔습니다.”
“아니, 그런데 어찌…….”
길종은 하마터면 핸들을 90도 이상 꺾을 뻔했다. 여인은 놀라움보다는 차가운 경계의 빛을 드러내고 있었다. 길종은 당황했다.
“그동안 자가용만 몰았거든요. 매일 거의 같은 길만 왔다갔다하다 보니 다른 동네는 잘 알 수가 있어야지요. 영업용 몬 것이 오늘로 이틀쨉니다.”
길종은 한달음에 이렇게 말했다.
“네에, 그랬었군요.”
여인은 고개를 끄덕였는데 약간 민망한 듯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길종은 얼결에 거짓말을 한 것이 개운치 않았지만 굳이 정정을 위한 사족을 붙이지 않아도 되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자가용 운전은 6개월에 지나지 않았다. 나머지 세월은 군바리 시절에 지프를 몰았던 것이다.
전방의 제멋대로 생겨먹은 길을, 그것도 부대장을 태우고 오락가락하면서 지휘봉으로 골통 한번 얻어맞지 않고 핸들을 돌려댔으니까 운전 기술은 과히 나쁜 편은 아니었다. 그 시절을 무사히 넘긴 것은 난장판의 서울 거리를 헤엄쳐다닌 것과 별로 다를 바 없었다. 그렇다고 몽땅 4년을 서울에서 굴러먹었다고 얼렁뚱땅 넘기기에는 아무래도 억지스러웠다. 제아무리 자가용이라 하더라도 4년이면 이렇게 더듬거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나 여인은 여기까지 신경을 소모시키지는 않았다.
“자가용이 훨씬 편할 텐데 왜 그만두셨어요. 무슨 사고라도 저질렀나요?”
여인은 마음을 놓은 게 아니었다. 계속 자신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길종은 퍼뜩 그날의 일을 떠올렸다. 역시 사고는 사고였다. 교통사고가 아닐 뿐이었다. 더 이상 어쩌는 방법이 없었다. 중 보기 싫으면 절 떠난다고 했었다. 꼭 그런 심정이었다. 핸들 돌려 겨우겨우 목구멍에 거미줄 치는 꼴 면하는 주제에 뭐 진밥 마른밥 가려먹자는 시건방진 수작을 벌인 것이 아니었다. 걸핏하면 아무의 입에나 오르내리는 그 흔해빠진 ‘자존심’이란 말 한 마디조차 내세워보지 않았다. 다만 더 견딜 수가 없어서 물러난 것이었다.
“사고가 난 게 아니구요, 그러니까 뭐랄까…… 사람답게 살고 싶은 거…… 하여튼 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길종은 쓴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저었다. 다시 돌이키고 싶지 않은 기억이었다. 그 일을 생각하기만 하면 같은 밀도의 불쾌감과 통쾌감이 엉클어졌다.
“무슨 일로 다투셨나 부죠?”
안으로 접어드는 성품의 여자들이 대부분 그러하듯 이 여인도 한번 품은 의문에 대해서는 양배추를 벗기듯 차근차근 풀어가는 성미인 것 같았다.
“글쎄요…… 우리 같은 신세에 감히 어떻게 주인과 다투겠습니까.”
“그치만 편한 일자릴 버리고 고된 일을 시작한 데는 그만 한 곡절이 있었을 게 아녜요.”
“모르셔서 그렇지 영업용이 훨씬 속 편하고 좋습니다. 손님이 가자는 대로 가고 미터에 나온 대로 돈을 받고, 이보다 더 심간 편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일하는 시간도 길고, 아무려면 자가용에 비할라구요.”
“일하는 시간이 조금 짧으면 뭘 합니까. 속이 썩지 말아야 살지요.”
“운전만 하면 그만이지 무슨 속 썩을 일이 그렇게 많나요?”
앞의 등받이를 잡은 여인은 백미러 속에서 궁금증이 짙은 눈빛으로 이야기를 요구하고 있었다. 서른이 됐을까 말까한 여인의 차분한 얼굴은 묘하게도 포근한 느낌을 발산하고 있었다. 그건 여자의 냄새가 아니라 어머니나 누나 같은 냄새었다. 길종은 이 여인에게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주책스러운 유혹을 받고 있었다.
“속 썩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랍니다. 들어보시겠어요?”
“네에, 하세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참, 이 다릴 건너서 오른쪽 정릉으로 꺾으세요. 북악터널로 가야죠.”
길종은 여인이 시키는 대로 우회전, 북악터널이란 말을 듣고 보니 어렴풋이 눈에 익은 길 같기도 했다. 민 사장을 태우고 두어 번 지나간 기억이 있었다. 그때는 모두 밤이 늦어서였다. 세검정 쪽의 터널 입구 가까이에 자리 잡은 호텔에서 잠시 눈속임을 한 민 사장이 아가씨를 데려다 주려고 부랴부랴 지나친 길이었다. 그런 날은 으레 사업상 늦어졌다는 당연한 거짓말을 했고, 자신은 능청스럽게 사장의 거짓말의 증인 노릇을 그럴싸하게 해치우는 것이었다.
“미스터 최, 틀림없지!”
사장 부인은 이런 추궁이 팬티 바람으로 서 있는 거나 다를 게 없다는 것을 도무지 고려하지 않았다.
“그러믄요, 사모님.”
길종은 언제나처럼 늘어빠진 목소리를 지어내서 사장에게 그리고 사모님에게 변함없는 충성을 증언하는 것이었다.
“거짓 말하먼 없어요!”
부인은 앙칼지게 협박으로 다짐 했고,
“이거 왜 자꾸 이래. 어디다 대고 감히 사람 체면을 깎는 거야!”
사장은 사뭇 노여운 표정으로 꾸짖었다. 그럼 부인은 만족한 웃음을 선인장 꽃처럼 일시에 활짝 피운다. 역시 사장은 수완 좋은 젊은 사업가다운 거동을 취하는 것이었다. 이런 고역쯤은 재미로 치부할 수도 있었지만 문제는 잠자리였다. 이런 날이면 으레 통금에 임박하게 마련이어서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사장 내외는 자신의 존재 같은 것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길종은 어두운 마당 가운데 멍하니 서 있다가 차고로 내려오는 것이다. 차 속으로 기어들어가 웅크리고 누운 길종은 7만 원의 월급을 곱씹다가 아무 결론도 없이 흐물흐물 피곤에 풀리고는 마는 것이었다.
“여기가 전부 정릉예요.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여인은 여자다운 호기심을 발동시키고 있었다.
“아 네, 그래서…….”
길종은 자리를 고쳐앉으며 약간 헤식은 웃음을 흘렸다. 그날의 일을 생각하면 이상하게도 픽 바람 빠지는 웃음이 나오는 것이었다. 달구어질 대로 달구어진 감정으로 저지른 일이면서도 돌이켜보면 꼭 영화 화면에서 익힌 잔상만 같았다. 그건 어쩌면 자신이 운전사가 된 것부터 영화 화면적인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가용 운전사―그것도 엄연한 직업이었다. 직업 중에서도 가장 흔해빠지고 손쉬운 월급쟁이였다. 산다는 것이 다 그렇고 그렇게 마련이겠지만 특히 월급쟁이라는 것은 목숨 저당 잡힌 빚쓰기 놀음이었다. 길종은 군대에 불려나가기 전에 1년 동안 직장 생활을 했으면서도 이런 막다른 결론에 부딪히지는 않았었다. 그때는 나이 탓도 있었겠지만 역시 직업도 직업 나름이었고 그에 따라 다소 정도의 차이는 인정했다. 그러나 월급쟁이는 어쩔 수 없는 월급쟁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었다.
길종은 다른 자가용 운전사들과 마찬가지로 민 사장을 위시한 그 권속들의 발 노릇을 빈틈없이 수행했다. 초등학교 2학년짜리 큰딸을 등교시키는 것을 일과 시작으로 하여 사장을 9시 반까지 회사로 모셔다 올리고 그 다음부터는 예고 없는 명령에 따라 핸들을 돌려대며 정해지지 않은 퇴근 시간을 향하여 하루를 밀어붙이는 것이다.
자가용은 사장보다 부인이 더 많이 쓰는 편이었다. 사장이 내린 다음 차를 지하 차고에 낑낑 몰아넣고 올라가면 비서실에는 어느새 부인의 호출 명령이 험상궂게 대기하고 있곤 했다. 길종은 부리나케 되돌아서 계단을 뛰어내리는 것이다. 딱지를 떼지 않을 만큼 잽싸게 교통 위반을 저질러가며 이태원으로 달려가야 했다. 그러나 부인은 언제나 고맙기 그지없는 환영사를 준비해 놓고 있었다.
“미스터 쵠 젊은 사람이 뭐 이따위로 행동이 느려. 그래 가지고 이 험한 세상 살아지겠어.”
길종은 입에 반창고를 겹겹이 붙이고 그저 머리만 주억거린다. 해명을 하면 변명이 되고 변명은 대꾸가 되고 대꾸는 불충이 되고 불충은 몹쓸 놈이 되고 몹쓸 놈은 모가지 싹으로 둔갑하는 것이다. 돈 없는 놈 먹고 싶은 것 많으면 군침이나 잔뜩 삼켜 헛배만 부르듯, 하고 싶은 말 질겅질겅 씹어 목젖이 뻐근하도록 삼키는 도리밖에 없었다. 젊은 사람 좋아하는군. 내 나이 스물여덟 어면 당신하곤 겨우 세 살 차이 밖엔 안 돼. 너무 이러지 말어. 나도 약속대로였다면 지금쯤……. 길종은 그만 마음을 닫고 만다. 그 일만 생각하면 자신이 더없이 처량해지기 때문이었다. 사회라는 것과 혼자라는 소외감은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병이었다. 그 수렁으로 다시 빠져들기 전에 길종은 자신을 부축하는 것이다.
어쩌다가 정말 늦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뭐야! 미스터 최! 왜 꾸물거려 왜. 누구 죽는 꼴 봐야 속 시왼하겠어? 또 한 번 그따위로 굴면 알지. 정신 똑바로 차리라구.”
부인은 제멋대로 악다구니를 썼고 길종은 그 소나기를 송두리째 뒤집어쓰는 도리밖에 없었다. 자기 남편인 사장이 차를 썼기 때문인 것을 번연히 알고 있으면서도 그녀는 걸레쪽 같은 성질을 다스리지 못해 화풀이를 하는 것이었다.
길종은 이미 귀에서 귀로 맞통하는 굴을 뚫어놓은 지 오래였다.
이렇게 해서 부인이 납시는 곳은 미장원이거나 실내 수영장이 아니면 친구들이 모인 호텔의 커피숍 정도였다. 이런 때는 차를 대기시켜 놓은 채 10분 간격으로 비서실에 전화질을 해대는 것이다. 얼 뻬고 차 안에 들어앉았다가 잠이라도 들었는데 회사에서 차를 찾게 되면 일은 떡치게 되는 것이다. 7만 원의 월급에서 거의 매일 백 원 가까운 돈이 통화료로 찢겨져나갔다. 다른 운전사들 말로는 더러 점심값 정도는 받아내는 모양이었지만 이들 내외는 전혀 그런 자선을 베푸는 일이 없었다. 길종은 차라리 그런 몰인정이 홀가분했다. 점심값이라고 5백 원짜리 한 장 던져주는 걸 받아서 배를 채우며 그런 푸대접을 받게 되면 더욱더 서글퍼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경리과를 통해 나오는 봉투에 든 액수만으로 만족하는 것이 오히려 떳떳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돈만은 단 한푼도 헛되게 쓰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매일 백 원 가까운 돈이 통화료로 부서져나가는 것이다. 살을 베어내는 것처럼 아까웠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운전사 노릇을 시작하고 얼마 안 되어서였다. 그날도 부인은 호텔 커피숍에서 친구들과 키득거리고 있었다. 회사로 전화를 걸었더니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으로 긴급 철수 명령이 떨어졌다. 길종은 헐레벌떡 엘리베이터에 뛰어들어 커피숍으로 갔다. 부인은 서너 명의 여자들과 구석 자리에 몰려 앉아 안면 근육에 미용체조를 시키며 하 좋은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사모님, 사장님께서 급히 차를 쓰실 일이 생기신 모양입니다.”
길종은 허리를 굽혔다. 여자들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집중되는 것을 느끼며 길종은 엉거주춤해졌다.
“무슨 일이래요?”
“잘 모르겠습니다.”
“오래 걸릴래나?”
“잘 모르겠습니다.”
“아이 속상해! 곧장 돌아오도록 해요. 알았어?”
“네에…….”
무례한 시선들에 주눅이 들어 부인의 반말지거리에 신경쓸 여유가 없었다.
“얘, 애, 느네 운전사 참 똘똘하게 생겼다.”
“글쎄 말이다. 저만하면 생김새도 제법 갖추었는걸?”
“운전사로선 상품이다, 얘.”
“차암, 저만하면 우리 옥자하구 짝을 맞출 수 있겠다. 내 생각 어때?”
“느네 식모 옥자하구? 그것 참 멋진 생각인데?”
“어머머, 잘 어울리겠다.”
뒤에서는 웃음소리가 낭자하게 퍼지고 있었다. 길종은 하마터면 되돌아서 쫓아가 탁자를 엎을 뻔했었다. 그 위기를 어떻게 참아냈는지 자신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날 밤 길종은 그 일을 되새기며 넝마가 된 스스로의 모습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운전사 노릇을 작정했을 때 자신은 이미 사람으로 대접 받기를 체념하기보다는 포기해버렸다는 확인이 있을 뿐이었다.
한번은 연락을 받고 예나 다름없이 황급하게 집으로 차를 몰았다. 부인은 집에서 입은 옷 그대로 슬리퍼를 끌며 차에 올랐다. 또 시장엘 가는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길종은 입 안이 떫어졌다. 택시 기본요금도 안 나올 거리를 꼭꼭 차를 불러들여 타고 가는 행투쯤이야 ‘제멋에 겨워 흥!’이니까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부인의 꽁무니를 강아지처럼 졸졸 따라서 시장 바닥을 헤매야 하는 것은 딱 질색이었다. 무슨 놈의 악취미가 들어다 주고 배달까지 해주는 슈퍼마켓을 지나쳐서 너저분하고 북적대는 시장 바닥으로 나오는지 모를 일이었다. 삐딱하게 생각하면 자신을 골탕 먹이기 위한 수단이라고 오해하기가 십상이었다. 하지만 지엄하신 부인께서 무슨 할 일이 없다고 운전사놈 골탕 먹일 일을 도모하랴 싶으면 아직도 사람이기를 바라는 자신이 더욱 서글퍼지는 것이었다.
길종은 시장 어귀에다 차를 세우려 했다.
“아냐, 아냐. 저 로터리 극장 앞에 세우도록 해요.”
부인은 앞의 등받이를 탁탁 두드렸다.
“극장 앞에요?”
길종은 의아해서 되물었다. 그 극장은 어디선가 자꾸 지린내가 풍길 것 같은 인상이었던 것이다.
“꼭 보고 싶었던 영환데 이 극장에 불쑥 나타났지 뭐야.”
부인은 신나는 음성이었고, 길종은 서서히 핸들을 돌려 로터리를 돌았다.
차를 세운 길종은 버릇대로 급히 내려서 뒷문을 열었다. 기다리고 있던 부인이 내려섰다.
“회사에 들어갔다가 끝날 시간 맞춰서 다시 올까요?”
10분 걸러 전화질 해대기도 귀찮고, 회사에서 부르더라도 부인을 찾아내려면 번거로울 것 같아 길종은 이렇게 물었다.
“미쳤어요? 보다가 재미없으면 나와얄 거 아녜요.”
부인은 앙칼지게 쏘아붙였다.
아, 그땐 택시를 타면 될 거 아뇨. 그게 돈도 훨씬 싸게 먹힌단 말이오. 곧 터져나오는 말이었지만 길종은 꿀꺽 삼켜버렀다.
“그럼 기다리도록 하겠습니다.”
길종은 머리를 꾸벅했고 부인은 슬리펴를 칙 칙 끌며 매표구로 다가갔다.
길종은 차롤 빼서 딱지를 떼지 않을 자리면서 극장이 한 눈에 들어오는 곳을 찾았다. 날씨가 푹푹 쪄대고 있었다. 어디 빵집에라도 들어가 콜라나 한잔 마시며 더위를 피했으면 싶었다. 그러나 부인의 말마따나 재미가 없어 언제 나오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별수 없이 차 안에 처박혀 극장 앞을 지키며 통닭이 될 수밖에 없었다.
차가 신호등에 걸렸다.
“여기가 문화촌예요. 오른쪽으로 도세요. 근데 그 여자 참 어지간하군요. 그래서 속상해 그만두셨나요?”
“아니지요. 그게 뭐 속상할 일입니까. 운전사가 주인 기다리는 것, 당연하죠.”
“그럼 그보다 더 속상하는 일이 있었단 말인가요?”
“말하자면 그런 셈이죠.”
“참 너무들 하는군요. 그 집이 좀 유별났던가 보죠?”
“다른 운전사들 말 들어보면 뭐 별로 그렇지도 않은 것 같더군요. 잘해 준대야 그렇고, 다 오십보백보지요.”
신호등이 노란 불로 바뀌었다. 길종은 차를 불광동 방향으로 우회전시켰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백미러의 여인은 안쓰러운 표정이었다.
“네에, 그래서…….”
길종은 군복을 벗은 다음날로 옛 직장을 찾아갔다. 그러나 교장은 바뀌고 없었다. 몇몇 낯익은 선생들과 손아귀가 아플 지경의 악수만 나누었을 뿐 신통한 말을 들을 수가 없었다. 교대(敎大)를 나온 신규 자격자들이 포화 상태를 이루어 그 해결책으로 신입생 정원을 줄이게 될 거라는 소식 앞에서 길종은 그만 암담해졌다. 군대의 세월 동안 세상은 변했고, 군대를 마음대로 끌어갔듯 복직의 보장도 없이 다시 멋대로 내팽개쳐버린 것이었다. 우선 구비 서류를 갖추어 교육위원회에 제출하라는 말만 듣고 그들과 헤어졌다. 운동장에서 왁자하게 떠드는 꼬맹이들의 반짝임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길종은 왠지 모를 스산함을 느꼈다. 소외감이라고 할까, 이방감이라고 할까. 저 싱싱한 생명의 빛보라들과는 영영 멀어질 것만 같은 절망적 예감을 떼칠 수가 없었다. 영감(靈感)이라는 것이 지속적인 사고(思考)의 순간적 발화이듯이 역시 예감도 기존하는 사실로부터 비롯되는 사고의 가정적 판단이었던 것이다.
서류를 접수한 직원은 신학기까지 기다리라는 표정 없는 말을 했다. 그 말이 너무 막막해서 좌로 돌고 우로 돌아보았지만 몸을 기댈 만한 바람벽이 없었다. 별수 없이 모교를 찾아갔다. 어떻게 잘될 테니 염려 말고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사족이 더 붙었을 뿐 기다리라는 막막함은 더 짙은 색깔이 되어버렸다. 그후 3개월의 지루한 겨울을 이겨낸 인내는 좌절로 막을 내렸다.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사방으로 뛰어다녔지만 그 이유 설명이라도 하듯 신문에는 교대 출신들의 취업난에 따른 문제점들이 큼직큼직 하게 실리고 있었다. 다시 2개월이 지나갔고 어느새 봄이 밀어닥쳐 있었다.
기약 없는 1년을 다시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때는 벌써 시계와 트랜지스터가 전당포 주인의 막창자 꼬리쯤을 기름지게 해준 뒤였다. 군대에 묶여 있던 세월 동안에 서울이 배나 커진 것처럼 느껴지는 것과 같이 뒤에서 밀어붙이는 사람들의 숫자도 그만큼 늘어나 있었던 것이다. 이 나라의 생산 품목 중 과잉을 이루는 것은 사람뿐이었다. 길종은 생각다 못해 책까지 내다 팔아 돈을 만들었다. 그리고 운전사 면허 시험을 치렀다.
그날, 7월 17일이 토요일이라서 무더운 주말은 연휴를 이루었다. 운전을 시작하고부터 일요일을 모르고 살아왔는데 사장은 또 영락없이 휴일을 앗아갔다. 유성온천으로 일가가 피서를 떠난다는 것이었다. 복더위 피서를 온천으로 가다니 기가 찰 노릇이라고 헛웃음을 쳤던 것을 곧 수정해야 했다. 짐을 실으며 애들 떠드는 소릴 듣고 나서야 사장 처가가 대전이라는 것을 알았다.
두 시간 가까이 고속도로를 달려 10시쯤 대전에 도착했다. 그러고 나서도 잠시를 쉬지 못하고 땀을 뻘뻘 흘리며 핸들을 돌려댔다. 사장의 애들과 처가 쪽 애들을 대여섯 명 포개 싣고 여기저기 구경을 시키고 다녀야 했다.
사장 내외는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해서야 온천장으로 항했다. 부부가 호텔로 들어간 다음에야 길종은 시트에 허물어져내렸다. 하루종일 흘린 땀으로 전신은 끈적끈적했다. 얼마를 늘어져 있던 길종은 화단 옆의 수돗가로 가서 낯을 씻었다. 다소 피곤이 걷히는 것 같았다.
어둠살을 타고 개구리 울음 소리가 무슨 노래처럼 파문짓고 있었다.
개골, 개골, 개골, 개골…….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싱그러운 여름의 소리였다. 잔잔한 연못에 돌을 던졌을 때처럼 그 소리는 생동감 넘치는 물굽이를 이루며 퍼져나가는 것이다. 수많은 개구리가 제멋대로 울어대는 소리라서 불규칙 할 것 같은데도 기묘하게 정 연한 화음을 이루고 있었다.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 노래였다. 그건 지워졌던 고향의 음성이었다. 길종은 뭉클한 서러움 같은 것을 느꼈다. 순식간에 많은 기억들이 파도로 밀려들었다. 교육대학을 갈 수밖에 없었던 가정 형편, 교직 1년 동안의 새로운 보람의 발견과 그에 걸맞은 새로운 실망의 절벽, 정지된 3년의 세월, 선생님에서 미스터 최나 최씨로 변한 자신의 호칭, 복직 소식은 감감한 채로 너무들 하시지를 되풀이하며 막연한 대상을 원망하는 실의에 빠진 어머니……. 길종은 코를 팽 풀었다. 그리고 뚜벅뚜벅 걸어 호텔을 나왔다. 배를 채워야 될 것 같았다.
얼음 덩이를 더 얻어 휘저어가며 냉면을 먹고 호텔로 돌아왔다. 사방에는 무더운 여름밤이 드리워져 있었고, 모기떼가 극성을 부리기 시작했다.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사장 내외는 나타나질 않았다. 에어컨 시설이 잘된 나이트클럽에서 쇼를 즐기며 맥주를 들이켜느라고 혼을 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서울로 되돌아가려면 별로 시간의 여유가 없었다. 그렇다고 눈치 없이
찾아나설 수도 없었다. 모기떼와 육박전을 벌여가며 땀만 삐질삐질 흘렀다. 꼭 더워서 나는 땀만은 아니었다.
신경질과 짜증이 조바심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현관으로 들어섰다. 벽시계는 염치없이 10시 10분을 지나고 있었다.
“빌어먹을…….”
길종은 자신도 모르게 이렇게 쏟아놓고 있었다.
사장은 11시가 넘어 혼자 나타났다.
“내일 떠나도록 할 테니 그만 자게.”
사장은 이 한 마디를 던지고 돌아서버렸다. 길종은 흔들거리는 현관문을 멍하니 바라보고 서 있었다. 돈은 몇십 원 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하루에 5백 원 이상은 쓰지 않았다. 그래도 오늘은 넉넉히 5백 원을 넣어온 것이었다. 길종은 쩝쩝 입맛을 다시며 돌아섰다.
차 문을 열자 숨 막히는 열기가 흑 끼쳐왔다. 그러나 밖에 쭈그리고 앉아 이슬을 맞고 모기에 뜯길 수는 없었다. 모기 때문에 차창을 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더워서 잘 수도 없었다. 길종은 시트에 누웠다 일어났다 하다간 벌컥 문을 열고 나와서 마당을 서성댔다. 그러다가 다시 차로 들어가선 얼마를 못 견디고 또 나왔다. 그 짓을 되풀이하는 동안 날이 번히 트여왔고 모기들의 극성도 잦아들었다. 그래서 차창을 열어놓고 겨우 한숨을 잘 수 있었다.
빵 하나로 아침밥을 때웠다. 그리고 사장 내외를 태우고 공주 마곡사엘 갔다. 사장은 점심으로 곰탕을 사주었다. 길종은 배가 아프다는 이유로 한 숟갈도 뜨지 않았다. 대전으로 돌아와서는 어두워질 때까지 애들을 태우고 다녔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라면 한 냄비를 사먹었다.
대전을 출발한 것은 9시 50분이 지나서였다. 길종은 속이 부글부글 꿇어오르고 있었다. 핸들을 잡은 손이 자꾸만 떨려왔다. 제아무리 속력을 낸다고 하더라도 서울에 도착하면 통금이 임박할 것이었다. 또 차고의 차 속에 틀어박혀 밤을 새워야 하는 것이다. 길종은 어금니를 꽈악 맞물었다. 먼발치로 휴게소를 확인하며 길종은 속도를 줄였다. 휴게소 중앙에 서 있는 차는 서울행 고속버스가 틀림없었다. 길종은 휴게소로 차를 몰고 들어가며 20일 치의 월급이 퍼뜩 떠올랐지만 다음 순간 그 생각을 완강하게 뿌리쳤다.
“시간이 늦었는데 여긴 왜 들어와!”
사장이 벌컥 소리 질렀고,
“엔진에 불이 납니다.”
길종은 쏴붙이듯 하고 재빨리 차를 내렸다. 그리고 고속버스로 뛰어갔다.
“부모님 이 위급해서 그러는데 나 서울까지 좀 태워주시오, 아가씨.”
길종이 절박하게 말했고 놀란 표정의 안내양이 운전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운전사가 표정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빨리 타세요. 곧 떠나요.”
“예예,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길종은 차로 달려갔다. 그리고 뒷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나 드러워서 오늘부터 운전 안 해!”
길종은 사장을 향해 열쇠를 내던졌다. 그리고 돌아서서 뛰기 시작했다. 길종이 오르자마자 고속버스는 출발했다.
“어머머, 그럼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여인은 너무나 당연한 그래서 천치스럽거나 천진스러운 구분이 잘 안 되는 식의 물음을 던졌다.
“글쎄요…….”
길종은 엷게 웃기만 했다.
“참 믿어지지 않는 일이군요, 네에, 저기 가게 앞에 세워주세요.”
여인은 가늘게 혀를 차며 돈을 내밀었다. 길종은 차가 멎은 다음 여인에게 잔돈을 거슬러주었다.
“가만있어, 이게 얼만가……, 이 돈 더 받으세요.”
여인은 받아든 동전을 몇 개 헤아려 다시 내밀었다.
“감사합니다만 팁은 필요 없습니다.”
“이건 팁이 아녜요. 터널 지나올 때 대신 내신 50원예요.”
여인이 딱한 표정으로 일깨웠고.
“아 그렇습니까. 정말 감사합니다.”
길종이 쑥스럽게 웃으며 돈을 받았다. 여인은 멀어져갔고 그 뒷모습을 길종은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1976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