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류 수정(김성회의 뿌리를 찾아서 경주이씨) - 1
김성회의 뿌리를 찾아서 <18> 경주이씨(慶州李氏) - 1
김성희씨가 써서 올린 글 뿌리를 찾아서 <18> 경주이씨(慶州李氏)에서 잘못된 기술이 많다.
장문의 글에서 원문은 【.............】로 나타내고 잘못 기술한 내용은 원문에 * 표시를 한 후 아래에
▲[................]로 나타낸 뒤 소견)을 올립니다.
【이알평의 알천 양산촌(閼川楊山村)은 6촌의 하나였고, 알평(謁平)은 6촌의 부족사회를 영도하는 수장이었다.
경주이씨 대종보에 따르면, 그는 6부족의 촌장과 협의한 후 박혁거세를 왕위에 세우고, 벼슬은 아찬(阿粲)에 올라 군사업무를 맡아보았다.
그 후 유리왕 9년(기원전 32년), 신라 건국의 공을 인정받아 이씨(李氏) 성(姓)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법흥왕 23년에는 *익호를 문선공(文宣公)으로 하였고, 무열왕 3년엔 은열왕(恩烈王)으로 추봉되었다고 한다.】
▲[*익호를 문선공(文宣公)]
소견)
謚號(익호)가 아니고 諡號(시호)이다.
경주 이씨이면 누구나 시조님의 시호를 문선공(文宣公)이라고 알거나 말하고 있으나 문선(文宣)은 공자님의 시호(諡號)이다.
공자님의 시호인 문선(文宣)을 법흥왕 때에 시조님에게 내렸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성인(聖人)의 시호(諡號)는 피휘(避諱)해야 하는데 이를 시조님에게 내렸다는 것은 믿을 바가 못 된다.
시조의 시호가 문선공(文宣公)이라고 남아있는 기록으로는 중앙화수회에서 1929년에 간행한 연간지 ‘瓢巖(표암)’이다.
한자로 된 문장에 시조의 시호를 문선공(文宣公)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에 띄엄띄엄 소개되는 사로 6촌의 촌장과 부장의 글에 시조님을 충헌공(忠憲公)이라고 된 곳이 3-4곳이 소개되고 있다.
성인의 시호를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를 생각하면 ‘문선공’보다는 ‘충헌공’이라는 시호가 시조님의 시호인 신빙성이 더 많다.
유림으로부터 성인의 시호인 문선을 시조의 시호로 사용하여 논란을 일으키는 것보다는 이를 좀 더 자세히 조사 연구하여 바루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시조 이알평 이후 35대까지 세손이 전해 내려오지 않고, 신라 말에 들어와 소판(蘇判) 벼슬을 한 *진골 출신 이거명(36대 李居明)에 이르러 본관성씨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하여 *경주이씨는 고시조(古始祖)를 이알평으로, 중시조(中始祖)를 이거명으로 삼고 있다.】
소견)
▲[*시조 이알평 이후 35대까지 세손이 전해 내려오지 않고, ]
소견)
본디 시조의 子(아들)인 시조 2세부터 아래로 중시조의 아버지(父)까지 약 900여 년은 계대가 실전되어 전연 알 수 없다다.
확실한 연도도 모르고 계대가 몇 대인지도 모른다.
약 900여 년 간 계대를 모르니 대강 1대를 30년으로 보아 35대로 볼 뿐이지 35대로 확정지어 말하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1900년 이후에 언급되고 1932년 분적종 합천이씨 임신대보에 처음 발굴되어 게재되었다는 ‘35대로 된 실전세계’의 35대 계대를 사실적으로 믿고 시조 35대에 중시조세수를 더하여 시조세수를 헤아려 읽는데 이는 잘못 말하는 것이다.
▲[*진골 출신 이거명(36대 李居明)에 이르러 ]
소견)
진골 출신 이거명(李居明)은 시조 36대가 아니다.
시조 子인 2세부터 중시조 父까지는 그냥 바른 계대를 모르기 때문에 중시조(휘 거명)는 먼 후손의 뜻인 원대손(遠代孫)이라 말한다.
▲[*경주이씨는 고시조(古始祖)를 이알평으로, 중시조(中始祖)를 이거명으로 삼고 있다.]
소견)
참 이상한 설명을 하고 있다.
‘고시조(古始祖)를 이알평으로,’ 시조이면 시조이지 고시조(古始祖)가 무엇인가?
우리나라 최고의 사서(史書)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경주이씨의 시조는 알평(謁平)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김 선생은 경주이씨의 시조인 이알평을 고시조(古始祖)라고 칭하고 있다.
어느 때인가는 어떤 글에 ‘알평 시조를 원시조(原始祖)라 하고 중시조인 이거명을 사실적인 시조’로 표기하였기에 남의 성씨에 대한 글을 쓰면서 시조면 시조이지 ‘원시조’가 무엇이며 중시조이면 중시조이지 ‘사실적인 시조’라고 하느냐? 라고 항의성 글도 보내기도 하였다.
시조 따로 ‘형식적인 시조’이고 중시조 따로 ‘사실적인 시조’라기에 이제는 위와 같이 수정하여 이알평은 ‘고시조’. 이거명은 ‘중시조’라고 표기 하였다.
우리 경주이씨 후손들은 ‘경주이씨는 시조(始祖)를 이알평(李謁平)으로, 중시조(中始祖)는 이거명(李居明)으로 모시고 있다.’는 것을 알고 글을 써야한다.
*이러한 글을 게재할 때는 중앙화수회의 자문을 구하든가 양해를 받아 글을 올려야 하지 않나?
카페 게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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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 수정(김성회의 뿌리를 찾아서 경주이씨) - 1
이이록(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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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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