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23일
본문 : 창49:28-33
제목 : 축복하고 돌아갔더라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믿음으로 마음에 새겨 습관처럼 말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이 구절을 되뇌며 참 많이 기도했습니다. 그냥 기도해도 되는데 왜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너무나 사랑하셨고, 그들과 함께 많은 일들을 하셨습니다. 그들의 삶에는 하나님과의 이야기가 개인적, 그리고 민족적으로 선명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저는 우리가 그 믿음의 줄기 안에 있음에 감사하며 그 은혜에 동참하고 있는 것을 고백하는 마음으로 그렇게 기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들이 걸었던 걸음을 걸어야 하고, 그들이 서 있던 땅을 밟고 서야 하며, 그들이 참고 견디며 땀과 눈물을 흘렸던 신앙을 동일하게 품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한 분만을 믿고 신뢰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렸던 그들의 믿음을 따라 그들을 인도하셨던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섬기는 삶을 향한 간절한 소망을 우리도 품어야 합니다. 이토록 크고 거룩한 그분의 뜻을 품은 그리스도인이 바로 우리라는 것을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보다 더 가슴 벅찬 은혜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눕니다.
앞에서 언급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에 대해 함께 나누기 원합니다. 먼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이름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매우 특별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의 혈통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그의 믿음의 혈통인 이삭은 아버지의 신앙을 지켰으며, 이삭의 아들 야곱 또한 3대를 이은 신앙인이 되었습니다. 그 혈통에서 다윗이 나왔으며, 그 혈통으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유산은 사람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섭리의 은혜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자기가 원해서 믿음의 자리에 있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철저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믿음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그분의 섭리 가운데 하나부터 열까지 다 이루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믿음의 길에 세워주셨고, 그곳에서 믿음을 발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라는 진리를 우리에게 계시로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나의 노력으로 아브라함의 믿음의 경지에 오르겠다는 교만한 생각을 버리고, 오직 철저한 순종과 신뢰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는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은혜가 자손들에게 흐르는 복음과 빛의 가문, 믿음과 참 평안의 가문 안으로 저와 여러분을 부르신 하나님께 우리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죽은 후 이삭은 새로운 시대를 살았지만 그에게는 변하지 않는 진리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가 변함없이 하나님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현재를 사는 우리 또한 그 은혜의 동일 선상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의 흐름의 중심에는 우리의 영의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모시는 예배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자격 없는 죄인을 사랑하셔서 죄를 해결해주시고, 찾아오셔서 만나주시고, 동행해주시고, 마침내 연합해주심으로써 홀로 영광 받으시는 거룩한 행위인 예배를 우리를 통해 이루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가리켜 '하나님의 함께하심'이라고 말합니다.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 '임마누엘'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라는 뜻입니다. 이렇듯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믿음의 혈통의 축복은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사람들과 택하심을 받은 모든 교회에 임하게 되며,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믿고, 신뢰하며 순종함으로 그분을 따라갑니다. 이것이 선진들의 믿음의 길에 동참하는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의 삶이자 신앙관입니다.
인생이 힘들어도, 외로워도, 죽음 앞에 놓여있어도 믿음의 선진들처럼 우리도 주님께 순종하고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야곱의 관점에서 보면 할아버지가 그렇게 살았고, 아버지가 그렇게 살았으며, 자신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야곱의 믿음은 그의 12명의 아들 중 요셉에게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는 야곱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생을 마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는 죽기 전 자신의 마지막 사역을 해낸 후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그의 자녀들을 축복하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이 점을 깊이 상고하고 싶습니다. 그는 자기 마음대로 축복을 더하거나 덜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분량만큼 정확하게 축복했습니다. 신앙인, 아버지, 제사장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야곱의 모습을 우리는 본받아야 합니다. 창49:28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사람의 분량을 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야곱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축복의 양을 기가 막히게 알고 있었으며, 그것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과 매우 친밀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영명교회 성도 여러분, 야곱의 끝은 자신이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에게 축복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와 죽습니다. 그런데 죽으면서 다른 사람을, 그것도 우리에게 원수와 같은 사람들을 축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야곱에게 있어서 원수는 요셉의 10명의 형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자 그들의 동생인 요셉을 미워하여 죽이려고 했습니다. 즉 요셉이 아버지에게 어떤 아들인지 뻔히 알면서도 이성을 잃고 광기에 사로잡혀 짐승도 짓지 않는 죄를 범했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를 속여 아둔한 자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요셉 또한 형들의 악행으로 인해 저주의 자리에서 지옥 같은 고생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악으로 선을 돋보이게 만드시는 지혜의 하나님께서는 그런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만드시고 믿음의 가문이 시작되는 역사를 이루셨으니 그분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좋든 싫든 원수보다 못한 자녀들을 축복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가는 야곱의 모습은 우리의 신앙의 자세를 돌아보게 합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야곱은 그들을 용서하고 축복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야곱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이 충성과 순종을 다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통해 이 세상과 작별하고 그분께 가는 장면을 기록한 것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그중에서 특별히 살펴보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창49:29 '야곱이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되 내가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여기서 야곱이 돌아간다고 말한 조상들은 그의 아버지 이삭과 할아버지 아브라함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먼저 가 있는 곳은 어디일까요? 바로 우리의 영원한 본향 천국입니다. 복잡하고 험한 이 세상을 사는 우리도 늘 우리의 본향인 하나님의 품을 그리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삶을 좋아하시고 기뻐하시며 그것을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릇된 불신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울왕은 처음에는 믿음과 겸손의 신앙인이었지만 삶의 과정 속에서 불신이 점점 커졌고 결국에는 불행한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믿음으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통제하지 못한 가룟 유다 또한 마음을 죄에 점령당한 채 마귀가 주는 생각대로 행하여 결국 저주 받은 모습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우리는 이런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 됩니다. 교만하면 이런 황망한 죄악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걷고, 이삭이 일하고, 야곱이 견뎠기 때문에 요셉이 나오고 이스라엘의 12지파가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뜻과 노력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하심을 믿고 순종함으로 아브라함의 신앙의 계보에 거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귀한 영명교회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