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이 불상이요, 일마다 불공이다.
처처불상 사사불공(處處佛像 事事佛供)
곳곳이 불상이요, 일마다 불공이다.
<미상>
불교에는 사람들의 근기에 따라 팔만사천 방편문을 열어서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모두 제도하려는 것이 드넓은 자비정신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별의 별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갖가지 방법을 다 동원하면서 한 결 같이 불교라 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이라 한다.
불교의 교리 이외의 것은 논외로 하더라도 교리 안에서도 성문(聲聞)의 삶이 있고,
연각(緣覺)의 길이 있고, 보살(菩薩)의 인생이 있고, 다시 더하여 부처의 삶이 있다.
이것이 점차적인 수행계위의 순서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성문과 연각과 보살은
가설이고 방편이기 때문에 실은 부처로서의 삶만이 진실이다.
부처로서의 삶이란
불교 궁극의 삶이며 모든 사람들이 지향하는 바의 최상의 희망이다.
여기에 소개하고 있는 “곳곳이 불상이요, 일마다 불공이라.”는 말은
곧 모든 사람 사람들이 부처님이며 부처님인 사람들이 하는 일체의 일들은
모두가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불공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나는 인불사상(人佛思想)이라한다.
경전에서나 어록에서 모두 불교 극치의 가르침은
사람이 그대로 부처님이라는 말씀을 똑 같이 하고 있다.
깨달은 사람들의 안목으로 볼 때
사람사람이 본래로 갖추고 있는[人人本具] 그대로가 완전무결하여
더 이상의 다듬거나 수행을 보탤 것이 없기 때문에[箇箇圓成] 곳곳이 부처님이요,
하는 일마다 모두가 불공(佛供)이라는 사실을 천명하였다.
불교공부를 한다거나 수행을 한다는 일은 본래로 더 이상의
수행이 필요치 않고 이미 갖추고 있는 완전한 사실을 인식하는 것뿐이다.
그 어떤 수행을 더한다 하더라도
이미 갖추고 있는 것에서 더 첨가되거나 달리지지 않는다.
그야말로 불자들이 늘 외우고 있는 부증불감(不增不減) 그대로다.
그냥 그대로 눈을 뜨고 있고 귀를 열고 있으면
무량복덕과 신통묘용을 그대로 수용한다.
그래서 곳곳이 불상이요, 일마다 불공이다.
사람사람이 본래로 부처님임으로 모든 사람들을 부처님으로 받들면
더할 수 없는 일이거니와 설사 부처님같이 받들지는 못하더라도
내 자신을 위하는 것과 같이만 하더라도 세상은 사랑과 자비로 넘쳐나리라.
우리는 아직 이루지 못한 미래의 꿈에 허덕이지 말고
이미 가지고 있는 자신의 무한 복덕에 눈을 뜨게 하는
바르고 참된 이치[眞理]의 가르침을 널리 전파하여
각자의 지극한 복을 누리게 하는데 힘을 기우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