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케네 5 - 사자문을 지나 산정에서 미케네유적을 보고 건너편의 무덤까지 구경하다!
2024년 5월 1일 미케네에서 버스로 Isthmos 에서 내려 아테네에서 오는 나프플리온
Navplion 행 버스를 타고 피흐티 Fichti 에 내려서 택시를 타고 미케네
Mycenae 에 도착해 12유로 하는 입장권을 끊어 박물관에 들어 도기등을 구경합니다.
그러고는 왼쪽 아래에 있는 왕족들의 무덤인 Grave Circle A 를 구경하는데 독일인 하인리히
슐리만이 발굴한 왕족들의 다양한 유물들이 발굴된 장소 원형 묘지로
아가멤논의 황금 가면등 유물 출토되었으니 주요 유물은 아테네 국립 박물관에 보관중입니다.
언덕길을 오르니 산정에 쌓은 성채가 나타나는데 성문 위에는 두 마리 사자
조각상이 새겨져 있으니 저 유명한 사자문이라 들어서서 더 올라가니
산정에 자리한 미케네 유적은 황량한 언덕에 돌로 성벽을 쌓은 성채 입니다.
여기 산정에 서서 보면 절반은 절벽이고 나머지도 가파른 언덕이니 적군이 기어 오르기에는 엄청
어려워 난공불락으로 생각되는데 반대편에도 정면의 사자문과 같은 문이 서 있어 볼만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는 신화시대로 시작되는데 그리스의 고대 문화는 “그리스-
로마 문명” 이라는 말을 낳았을 정도로 인류 문명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오늘날 민주주의가 탄생한 나라이기도 하나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다!
신화시대 얘기중에 하나인 아이킬로스의 비극인 아가멤논은..... 10년에 걸친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후 돌아온 아가멤논은 자신의 왕궁에서 부인과 그 정부에 의해 목숨을 잃는데,
아가멤논이 트로이로 출정할 때 바람이 불지 않자 자신의 딸을 제물로 삼았으니 부인의 복수라?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원정군 선박 수를 보면 미케네는 180척으로 강국이었는데 BC
1100년경 미케네는 소멸하니..... 도리스인의 침입설, 혹심한 가뭄으로 이주설,
히타이트 제국을 멸망시키고 이집트에도 쳐들어간 “바다의 민족” 침입설 등이 있습니다.
일리아스는 고대 그리스의 서사시로 시인 호메로스가 저자이니 현존하는 고대 그리스 문학 중 가장 오래된
서사시로 《오디세이아》와 더불어 고대 그리스와 후대 서양의 문학, 예술, 문화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리스 신화의 전설적 트로이아 전쟁의 51일간을 다루고 있는데, 트로이아의 왕세자 헥토르와 아카이오이족
의 용장인 아킬레우스, 이 두 주인공을 중심으로 하여 원한과 복수에서 파생되는 사람과 나라의
이야기이니 정해진 운명을 벗어나지는 못하지만 명예로운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영웅들의 처절한 싸움입니다?
어느덧 10년째를 맞이하고 있는 전쟁, 아폴론에 의해 아카이오이(그리스) 진영에 역병이 돌기 시작
했다. 역병의 원인은 아카이오이족이 아폴론을 모시는 사제 크리세스의 딸
크리세이스를 유괴한 데다가, 아가멤논이 고집을 부리며 그녀를 돌려보내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라...
고대 그리스에는 데살리아의 세스크로(기원전 5000년)나 디미니(기원전 4000년)등에 신석기
시대의 주거 흔적이 남아있으며 키클라데스 제도 살리앙고스(기원전 4000년)에서 신석기
문화의 발자취가 발견되니 동방이나 북방에서 생활 터전을 찾아와 정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후 기원전 20세기 무렵이 되면 알카이아인과 이오니아인이 그리스 본토에 이주해 와서 정착하니
그리스어를 사용한 그리스인의 선조로 같은 무렵 지중해 크리티 섬에서는 해상무역이
활발해짐에 따라 이집트의 기술과 아시아의 기술이 한데 섞여 새로운 문화와 청동기 문화가 싹틉니다.
이른바 크노소스를 중심으로 한 미노아 문명은 고도의 문명이었으니 펠레폰니소스 반도에 정착해 살던
알카이아인들은 기원전 16세기경 크리티문명과 교류하여 미케네문명을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기원전 15세기에 산토리니(티라)섬의 화산 폭발로 미노아 문명은 쇠퇴해 버리고 대신한 것이 미케네 문명으로
기원전 13세기까지 발전은 계속되니 현재 미케네문명에 관해서는 선문자(線文字) B가 해독 되었습니다.
이 시대 대표적인 유적으로서여기 미케네의 왕궁터, 특히 사자문이 잘 보존되어 있으니 미케네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 군대가 10년간 소아시아의 트로이를 공격한 전쟁은 기원전 1250년경
그리스군의 승리로 끝나지만 그러나 그 후 곧 이민족의 침입으로 미케네문명도 사라져 버립니다.
이른바 그리스 문화의 암흑시대는 기원전 12세기부터 기원전 800년까지 300~400년간 이어지는
데.... 미케네문명이 붕괴되자 그리스의 여러 왕국들도 같은 운명을 맞으니
고대 그리스에 암흑시대가 닥친 것인데, 이렇게 해서 얼마간 그리스 문화는 그 빛을 잃어버립니다.
미케네 Mycenae 는 펠로폰네소스 반도 아르골리스에 있던 고대 성채도시로 기원전
15세기 크레타 문명에 속하는 미케네 문명의 중심지로 청동기 시대에 번영을
누렸으니 역사의 아버지 호메로스는 미케네를 “금칯 찬란한 도시”라고 일컬었습니다.
1876년 독일 고고학자 슐리만이 유적을 발굴했으니... 미케네 문명의 중심지로 BC 1400∼BC 1200
년경까지 번영을 누렸는데 삼각형 산에 동서 300m, 남북 150m의 견고한 성벽이 있습니다.
미케네 문명은 B.C. 1600~ B.C.1200년경 고대 그리스 문명 이전 문명으로 아카이아인
에 의해 성립되어 B.C. 1400년경 크레타 문명의 뒤를 이어 에게해를 지배했습니다.
미케네는 아르고스 평야에 크레타와 지중해 섬들에 쉽게 접근할수 있어 서아시아와 이탈리아에 식민지
를 건설했으며 육로로 중부 그리스에 닿는 교통의 요지였으니“도시의 약탈자” 라 불리는 아가멤논의
통치하에서 번영을 누려 황금이 흘러넘쳤다는데 트로이 전젱후 아가멤논은 부인과 정부에게 암살당합니다.
전설 속에 등장하는 트로이와 미케네의 존재를 믿었던 독일의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은 무모하고
허황되다는 비난에도 불구하거고 1873년 트로이 발굴에 성공한후 다음 목표를 미케네로 정했습니다.
1876년 미케네의 성문인 사자문 안쪽에서 수혈묘를 발견했으니 호메로스가 “황금이
흘러넘치는 미케네” 라 표현했던 것을 무덤의 황금 부장품을 통해 확인되었습니다.
무덤 속의 왕자는 황금 가면과 갑옷을 입고 있었으며, 금과 은으로 만든 용기와 호화로운
검들, 커다란 금제 화관과 호박등 크레타 문명의 영향을 받은 증거로 본다고 합니다.
미케네 왕릉의 부장품 중에는 전차 릴리프(부조) 가 새겨진 것도 있었는데.... 전차는
이집트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던 병기로 이후 서아시아로 넓게 퍼져나갔습니다.
1950년대에 성벽 바깥쪽에서 원형묘가 발견되었으며.... 도시 중앙에 궁전이 있고 동쪽으로 열주
의 집이라고 불리는 건물, 서쪽으로 슐리만이 발견한 원형묘와 주거지구가 늘어서 있습니다.
궁전은 메가론 형식으로 건설되었으며 서쪽에는 키클로프스 쌓기 방법으로 돌을
쌓아서 만든 성벽과 벽면을 프레스코로 장식한 신전등 건축물이 있습니다.
황금이 흘러넘쳤던 미케네는 B.C. 1200년경에 멸망했으니 도리스인들의 침략을 받았다고 보는데
혹은 히타이트를 멸망시키고 이집트에 침입해 왕국을 세운 바다의 민족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도리스인은 고대 그리스 민족의 한 분파로, B.C. 1200년경~B.C. 1100년경에
철기 문화와 함께 발칸 반도에서 그리스로 남하한 민족으로 여겨집니다.
B.C. 1200년대는 멸망의 시대로..... 강력한 힘을 자랑했던 철의 제국 히타이트와 티린스, 레프간디
같은 지중해 도시국가들도 멸망의 비운을 맛봐야 했으니 저 도리스인들의 침입으로 본답니다?
산정에서 가파른 S자 길을 걸어 무화과 나무를 지나 성문을 나오면서 둘러보니 오늘 구름 처럼 인산인해
를 이룬 방문객은 99% 이상이 백인이라.... 오늘은 특히 대학생 단체가 많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미케네 유적지를 내려와 이제 남쪽의 나브플리온 Navplion 으로 가야 하니 먼저 피흐티 피흐티
Fichti 로 가기 위해 입구에 있는 안내문에서 전화번호를 보고 전화를 걸어 택시를 부릅니다.
7~8분 만에 택시가 도착했기로 배낭을 트렁크에 넣은후 피흐티 Ficht 에 가자고
하니 기사는 좀 천천히 가자면서.... 먼저 자기를 따라 오라며 앞장을 섭니다.
아마도 이런 일에 익숙한 모양인데.... 영문을 모른채 3~4분을 뒤따라
가니 손으로 가리키는데...... 거기에 엄청 큰 무덤이 보입니다?
미케네 성벽에서 떨어진 곳에 아트레우스의 보고라 불린 왕족의 묘가 발견
되었는데 석재 덩어리를 돌출식으로 쌓아올린 뾰족한 반구형
건축물이니 여행 가이드북에서 읽기는 했는데 미처생각하지 못한 곳입니다.
미케네 Mycenae 의 이 무덤은 아트레우스의 보고라 불리는데.... 네모로 다듬은 큰
돌을 쌓아 올려 둥근 천장을 만들었으니 3,300년이 지난 지금도 흐트러
진데가 없는데 톨로스식 이라 불리는 이런 무덤은 그리스에 9개가 있다고 합니다.
덕분에 잘 구경하고는 나와 택시에 타고 피흐티 Fichti 에 도착해 아테네에서 출발한
버스를 타고 나프플리온 Navplion 에 가야하는데 택시 기사는 이
택시를 타고 바로 가지 않겠는냐고 묻습니다? 단 20유로 저렴한 가격에 가겠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