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코너] 낙산사의 파랑새
조선일보
입력 2005.04.07. 18:33 | 수정 2020.08.19. 16:48
중생의 고통의 소리를 보고 구원의 손길을 뻗는 보살이라 하여 관세음(觀世音) 또는 관음(觀音)보살이라 한다. 서양에 마리아신앙이 있었다면 동양에는 관음신앙이 있었다. 이 관세음보살은 아무 데서나 사는 것이 아니라 여덟 군데에 국한해 살고 있다. 남인도 코몰린만의 포탈라, 티베트 수도 달라이라마의 궁전이 들어선 포탈라산, 실론 푸탈람항인 포탈라, 중국 절강성 주산(舟山)열도의 한 섬인 보타산(普陀山), 중국 열하성(熱河省) 승덕(承德)에 있는 보타락사(普陀落寺), 일본 기이(紀伊)반도의 보타락(普陀落)과 닛코(日光), 그리고 한국 동해안 낙산(洛山)이다. 낙산의 원명은 보타락가산으로, 약해서 낙산이 됐다. 곧 낙산사가 들어선 현장은 관세음보살의 8대 성지 가운데 하나로 세계적인 성지다.
고려 스님 익장(益莊)이 써 남긴 낙산사의 유래는 이렇다. 지금 의상대 맞은편 바다를 향한 암굴 속에 관세음보살이 사는데 신라의 고승 의상(義湘) 대사가 그 굴 오십 보 앞 바닷물에 잠겼다 드러났다 하는 암반에 두 이레를 앉아 관음의 모습을 보고자 기도를 했다. 끝내 드러내지 않자 부덕을 자책, 바다에 몸을 던졌더니 보살이 용으로 하여금 앞발을 뻗게 해 구하고서 수정 염주와 여의주를 주면서 "내 몸은 볼 수 없다. 다만 굴 위에 대나무 두 그루가 솟아있는 곳이 내 정수리이니 그곳에 절을 짓고 불상을 모셔라" 했다. 그렇게 지은 절이 낙산사요 수정 염주와 여의주는 사보(寺寶)로 간직해 내려오는 동안 외난과 화재로부터 안전했다 하며, 몽골 침략 때 절 종이 이 두 보물을 땅에 묻어 보존했다는 것을 끝으로 행방을 알 수 없다.
춘원 이광수의 명작 '꿈'도 바로 이 낙산사에서 있었던 한 스님의 사랑을 관음상과 교감시킨 것이다. 파랑새로 변신 기적을 이따금 일으켜 왔던 낙산 관음보살이기도 하다. 원효대사가 관음성지인 낙산을 찾아갈 때 세 차례에 걸쳐 신앙의 시련을 겪는데 바로 파랑새의 소행이며, 설악산 오세암에 폭설로 갇힌 다섯 살 아이를 겨울 동안 보살펴 살려낸 것도 낙산 파랑새다.
몽골의 외침, 임진왜란, 6·25 전쟁 등 큰 병화(兵禍)가 있을 때마다 낙산사는 탔고 산불로 전소한 기록도 한두 차례가 아니다. 유형문화재인 세조 하사의 동종이 녹아 버렸지만 무형문화재인 낙산 파랑새는 그곳에 새 둥지 틀고 영생할 것이다.
(이규태 kyoutae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