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3851]아계 이산해(鵝溪 李山海) 선생친필-해월헌(海月軒)
울진군 기성면 사동마을은 바닷가와 맞닿아 있는 자그마한 마을입니다.
해촌마을인 셈이지요. 학자들은 반농반어의 마을을 해촌으로,
어업만으로 살아가는 마을을 어촌으로 구분합니다.
울진 연안, 동해의 연안마을은 이 구분에 따르면 대부분이 해촌인 셈입니다.
사동마을은 울진지방은 물론 이른바 전통 반촌(班村)으로 여겨지는 안동이나
봉화 등지에서도 알려질 만큼 이름이 나 있는 곳입니다.
해월헌(海月軒)과 이 고가의 주인이었던
해월 황여일(海月 黃汝一, 1556~1618)선생 때문입니다.
해월 황여일 선생은 조선조 선조 때의 이름난 문장가이자 유학자이며 대시인입니다.
흔히 국문학계에서 조선조의 3대 시인으로
백호(白湖) 임제(林悌), 오산(五山) 차천로(車天輅), 해월 황여일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 중 오산 차천로와 해월 황여일은 외교문서의 대가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해월선생의 총기와 외교적 기량은 1599년(선조 32) 명나라 북경에 가서
신종황제와 가진 문답을 통해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당시 해월은 사헌부 장령으로 명나라 사신인 정응태의 무고 사건을 해명키 위해
명나라를 방문했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나는 해인 1598년(선조 31) 7년 전쟁이 종전을 향해 치닫고 있을 때,
명나라는 조선으로 찬획주사(贊畫主事) 정응태(丁應泰)를 사신으로 파견합니다.
그는 ‘조선이 일본과 힘을 합쳐 고구려의 옛 땅을 회복하려한다’고 명나라에 고변했고,
이러한 오해를 풀기 위해 선조는 진주사(陳奏使)를 파견했습니다.
당시 정사(正使)는 백사 이항복이었으며 부사(副使)는 월사 이정구,
해월은 서장관(書狀官)으로 명나라에 건너갔습니다.
당시 명나라의 유명한 관상가가 해월을 보고 단번에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눈치 챘고,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명나라 황제 신종이 해월에게 물었습니다.
“조선은 고작 삼천리강토인데 그대는 어찌하여 만리 정기를 타고나서
명나라를 치려 하느냐?”
해월은 신종 황제 앞에서 거침없이 대답했습니다.
“저희 집 앞에는 만리창해가 있습니다. 바다만 바라보고 살았고 그래서
중국 땅은 넘보지 않았습니다.”
해월의 탁월한 외교적 수사에 탄복한 신종은 “조선에는 너 하나밖에 없구나.” 하며,
‘너 하나밖에 없다’는 뜻의 ‘여일’이라는 이름이 공연히 지어진 이름이 아니라고
칭찬했습니다.
해월과 동년(同年) 동월(同月)에 태어나 동갑나기로 해월과 각별했던
백사 이항복은 후일 자신의 문집인 백사집(白沙集)에
“신종의 오해를 푼 것은 해월의 공이었다.”며 당시의 해월의 활약상을 기록했습니다.
해월헌기 시판
해월헌은 황여일 선생의 별구(別構)입니다.
당초에는 사동마을 마악산 기슭에 있었으나 해월 선생 사후에
후손들이 현재의 위치로 이건했습니다.
해월헌은 정면4칸, 측면3칸의 팔작지붕의 기와집으로 전면에는
누마루처럼 생긴 툇마루를 두고 난간을 둘렀습니다.
1985년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61호로 지정됐습니다.
해월헌이 눈길을 끄는 것은 건축물의 단아함에도 있지만,
당호인 해월헌 편액과 툇마루에 빼곡하게 걸려 있는 시 편액(詩 扁額) 때문입니다.
해월헌의 당호는 아계 이산해(鵝溪 李山海) 선생의 친필입니다.
아계 이산해 선생은 조선조 선조 대에 영의정을 지낸 정치가이자 뛰어난 문인으로,
문장이 매우 빼어나 ‘문장 8가(文章八家)’로 일컬어졌습니다.
해월헌의 편액과 건립 기문은 아계선생이 당파에 휩싸여
기성면 황보리에서 유배생활을 할 때 썼습니다.
해월헌 현판
해월헌을 떠받치고 있는 또 다른 기운은, 이곳이 울진지방에서 유일하게
영남사림학파의 학맥과 정신을 배태한 산실이라는 점입니다.
이 곳 해월헌과 해월헌의 주인인 황여일 선생을 모시는 명계서원을 중심으로
퇴계 이황을 기점으로하는 영남사림의 선비정신이 비로소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해월헌에는 실학자인 지봉 이수광의 시를 비롯하여 오산 차천로, 백호 임제,
약포 정탁, 백사 이항복, 상촌 신흠 선생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문인들의 시편이
오랜 역사의 부침을 간직한 채 빼곡하게 걸려있습니다.
이 중 차천로와 신흠, 이항복은 학교의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 낯익은 이름이어서
또 다른 감회를 자아내줍니다.
인용= 남효선작가님 글 울진 영남사림의 배태지, 해월헌